최선호의 디자인 오디세이
화려한 꽃과 식물의 문양이 추상적으로 어우러진 아라베스크(Arabesque)는 디자인의 원조이며 이슬람 문화의 정수다.여기 한 폭의 이슬람 세밀화가 있다. 온갖 꽃이 화려하게 핀 정원에서 왕자는 공주를 만나고 있다. 공주의 시녀는 금제 주전자에 찻잔을 각각 들고 있고, 왕자는 떨리고 설레는 감정을 어찌하지 못하며 두 손을 자신의 가슴에 대고 심장 박동을 조절하고 있다. 꽃은 만발했다. 접시꽃과 석류, 원추리, 복숭아, 살구, 붓꽃, 배꽃, 패랭이꽃….
수없이 많은 꽃과 무수한 꽃향기는 꿈속일까, 꿈 밖일까. 푸른 밤하늘에는 초승달이 뜨고 별빛이 총총하다. 별을 보고 방향을 정해야 하기 때문에 사막에서의 별빛은 생명이다. 별빛이 없으면 사막을 건너지 못한다. 초승달에 별빛이 가장 또릿하게 보이기 때문에 아랍의 모든 문양에는 초승달이 있다. 사계절이 뚜렷한 온대지방의 정주민들이 보름달을 최고의 미덕으로 숭상했던 것과는 정반대다.
그 청초한 별빛이 화면 상단에 초롱하고 아라베스크 무늬와 아랍어 서체는 자연스럽게 하나의 문양으로 자리 잡았다. 그림 속 선남선녀의 감정을 절정으로 고조시킨다. 누가 봐도 사랑하는 연인의 꿈속 풍경이다. 포도, 사과, 복숭아, 자두, 무화과, 살구, 석류, 수박, 메론, 가지, 오이, 유자, 땅콩, 아몬드, 도토리 등 사막의 과일과 채소들이 모두 아라베스크 풍경 속으로 들어온다. 아름다운 그림이다.
고대 지중해의 유산인 아라베스크 문양
아라베스크는 양식화된 식물 모티브와 줄기 등을 뜻하는 르네상스시대 이탈리아어 아라베스코(arabesco)에서 유래했다. 아라베스크 무늬의 기원은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지중해적 유산이다. 이슬람 예술가들은 자연을 양식화해 표현했다. 무한한 창조력을 가진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모든 것은 그 자체의 끊임없는 흐름을 가지며 아라베스크가 이러한 특성을 잘 표현하고 있다. 이슬람 미술의 역사는 식물의 형상을 기하학적 형상으로 변화시킨 역사다.
이슬람은 코란의 강력한 영향력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미학적으로 통일된 예술적 문명이다. 이슬람은 신만이 영원하고, 다른 모든 것은 바뀔 수 있으며 덧없고 일시적이고 우연하다고 믿는다. 전능한 신 알라의 창조적 행위 없이는 세상에 어떠한 형태도 존재하지 않는다. 신의 이러한 행동은 추상적이고 객관적이며 순간순간 세상을 재창조한다고 믿는다. 신의 창조 이외에 자연을 모방하는 예술은 없다. 모방할 수 없는 신의 작업을 모방하거나 흉내 내려는 시도는 불경스러운 것으로 간주한다. 모든 창조물 위에 서 있는, 이름으로밖에 부를 수 없는, 무엇과도 닮지 않은 그러한 초월적이고 무한한 신 앞에서 인간의 자리는 더 이상 커질 수 없으며 예술에서의 표현 또한 지극히 한정적이다.
인물과 동물 문양을 금지한 이슬람 미술에서는 추상적이고 장식적인 표현이 발달했다. 이러한 미학적 감각은 아라베스크에서 절정을 이룬다. 아라베스크는 자연에서 가져왔지만 너무나 단순화시켜서 그것이 무엇인지 거의 알아보지 못한다. 장식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비현실적 무늬로 표현되는데, 그것은 신의 무한한 완전성에 비해 일시적이고 변하는 삶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장식 무늬의 무형적인 성격은 이슬람 건축에 쓰이는 재료인 치장 벽토, 벽돌, 타일, 마른 진흙과 잘 어울린다. 이로써 기하학적인 무늬를 만드는데, 이런 추상적이고 장식적인 무늬는 건물 표면을 혼란스럽게 매우 작은 부분들로 쪼개 무거운 건물을 가볍게 보이도록 했다.
기하학적 장식 무늬는 그리스에서 기원한 별 모양의 다각형이다. 이슬람은 기하학적, 수학적 사색을 문양으로 만들었다. 이것을 이슬람의 미학적 가치에 적용해 비율과 형태를 확실히 했다. 무엇을 표현하느냐보다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더 신경을 쓰는 이슬람 문화에서 서체는 예술의 경지로 끌어 올려졌다. 글은 신의 말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서체를 사용한다. 코란은 ‘펜을 가르치는 신, 사람에게 모르는 것을 가르치는 신’ 같은 구절에서 문자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아랍어와 문자를 예술로 승화시킨 이슬람 서체는 코란의 보급과 함께 급속도로 확산됐고, 서체는 이슬람 미술의 중요한 요소가 됐다. 이슬람 세계의 통치자들은 서체에 조예가 깊었으며, 코란의 필사 작업에 참여한 서예가들은 상당한 자부심을 가졌다.
이슬람의 개념
이슬람이라는 개념은 거대하다. 그것은 광범위한 지역을 포함하고, 7세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거의 15세기를 걸쳐 있는 역사적 현상이다. 전통적으로 이슬람 영토라고 인정받는 곳으로만 한정한다고 해도 북아프리카, 중동아시아, 중앙아시아까지, 발칸반도에서 사하라 이남 지역까지 걸쳐 있다. 이러한 넓이는 필연적으로 매우 다양한 정치적, 문화적 양상을 띰에도 이슬람 전체를 관통하는 일련의 이슬람적 특성을 발견할 수 있다. 그중 하나가 아라베스크 문양이다. 이슬람은 강한 공동체 의식을 간직한다. 이 믿음은 인종, 문화, 언어 심지어는 종교적 차이까지도 지배하고 초월한다.
이슬람교도들의 공동체, 움마(Umma)는 이슬람의 본질적인 공동체다. 이슬람의 모든 예배 의식은 집단 예배식이다. 예배는 사제도 집전자도 없으며, 그저 앞에 선 사람밖에 없는 민주적인 의식이다. 공동체의 우두머리 이맘(Imam)은 교도들의 집단 움직임에 리듬을 맞추어 준다. 그리고 전 세계에서 온 성지 순례자들이 있다. 구분할 수 없는 똑같은 의상을 입은 수백만 명의 이슬람교도들이 똑같은 의식의 몸짓을 취하고 있다.
이슬람의 법은 신의 법을 은유한 예배식으로 현자들의 합의를 거쳐 준수된다. 이 합의는 어떠한 계시보다도 우월한 것으로 여겨지며, 공동체는 논란의 여지가 없는 전통에 따라 예언자 마호메트는 절대 실수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입증했다. 그런 점에서 이슬람의 종교적 메시지를 신봉하지 않는 사람일지라도 더 이상 이슬람이 제공하는 어마어마한 준거를 무시하고는 이슬람 세계에서 상상할 수 없다. 이 포용적인 소속 의식은 너무나 강력해서 기독교인 시리아 학자 아플라크는 이슬람을 “아라비아 민족주의가 낳은 가장 중요한 문화”라고 정의했다.
사회에 대한 이슬람 개념의 특징은 평등주의적 이상이다. 이 개념은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들을 동일한 수준에 놓는다. 이슬람은 계급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슬람 세계에서는 예언자 마호메트의 자손들과 시아파교도들의 경우 적법한 이맘을 제외하고는 귀족이 없다. 사회의 불평등은 신의 원칙에 따라 생긴 것이 아니라 역사의 우연과 불완전성에서 생긴 산물이라고 본다. 방대하고도 다채로운 이슬람 역사에서 가져온 다양한 예와 함께 이슬람 세계의 모든 예술과 문화적 표현이 반영돼 있다. 그것이 아라베스크다.
이슬람 문화
사막의 밤하늘에 지성처럼 빛나는 별빛과 황야를 가르는 사막의 모래바람, 그리고 무슬림의 굽은 칼끝을 스치는 곡선에서 이슬람의 문화예술은 꽃을 피웠다. 별빛 같은 기하학적 패턴과 바람 같은 서체, 초화문의 넝쿨 문양은 모스크와 코란과 카펫과 도자기를 장식했고, 이슬람 세상을 아라베스크 무늬로 뒤덮었다.
사막의 밤은 초승달의 별빛과 함께 했고, 깊고 푸른 밤은 청화의 푸른빛으로 승화됐다. 사막 모래에서 유리가 발견되면서 이슬람 예술은 유리와 타일의 비약적인 발전을 보였고, 대수와 기하학의 발전은 아라비아 숫자를 낳게 했다. 실크로드 대상의 낙타 등에는 향료와 금은보화와 코란을 담은 상자들로 가득했고 흑해와 중앙아시아 고원과 타클라마칸 사막을 거슬러 멀리 중국의 시안(西安)과 베이징(北京)을 오고 갔다. 그 문화는 다시 한반도와 일본에까지 이어졌다.
사막의 현악기는 기타의 원조가 돼 스페인의 작곡가 타레가의 기타협주곡 ‘알함브라궁전의 추억’ 같은 명곡을 만들었다.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의 그라나다가 중세 이슬람 최고의 건축인 알함브라궁전을 건축한 아름다움과 무관하지 않다. 기타는 사막 밤하늘의 별빛이 만들어낸 소리다. 맑고 청아하면서도 애잔한 선율은 낙타 목에 쩔렁대는 방울소리와 짝을 이루어 천년의 밤을 밝혔다.
아라비아커피의 원산지는 에티오피아지만 커피가 화려한 꽃을 피운 곳은 바그다드다. 이슬람의 율법에 술과 돼지고기를 금하는 대신 커피의 쓴맛과 감미로운 향기, 카페인의 각성은 중국에서 수입한 고가의 청화백자 잔과 함께 아랍인들에게 최고의 사치를 만들어 주었다. ‘아라비안나이트’의 요술 양탄자는 모스크의 바닥을 장식하고 베두인의 사막 텐트 실내를 따듯하게 감싸 주었다. 모래와 바람을 평생의 벗으로 삼고 양과 낙타의 젖과 모피와 고기로 삶을 이어온 사막의 무슬림들에게 코란은 서로의 동질성을 연결하고 평등에 대한 징표였다.
한반도의 영향
한반도는 전통적으로 중화문화권에 속해 있다. 당, 송, 원, 명, 청으로 이어지는 중국의 역사는 신라, 고려, 조선으로 이어지는 한국의 역사에 큰 산맥이었다. 한자라는 언어가 그것이요, 한글 창제 이후에도 유교 철학이 우리네 가슴에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중화를 넘어 그 건너 멀리 중앙아시아와 인도, 더 넘어 아랍은 멀고 먼 아득한 나라였다. 아랍어권 밖에서 이슬람을 이해하기는 어려웠고, 사막과 고원의 기후에서 태어난 종교와 문화를 이해하기 또한 난해했다.
그럼에도 조선 후기 중국을 통해 들어온 청화(靑花)는 이슬람의 유물이다. 청화의 원산지는 이란 고원의 카샨(Kashan)이다. 청화는 실크로드 아랍 상인의 낙타 등에 실려 수천 킬로미터를 건너와 경덕진의 자기로 살아나고, 다시 조선의 청화백자로 빛을 보게 된다. 청화백자의 당초문(唐草紋)은 글자 그대로의 의미는 당나라 초화무늬로 넝쿨줄기와 잎, 꽃이 어우러져 연속으로 펼쳐진다. 이러한 무늬를 아무런 의심 없이 전통 문양으로 받아들이는데, 사실은 이슬람 아라베스크 문양이 실크로드를 타고 중국으로 건너와 조선의 청화백자 무늬로 자리 잡은 것이다.
섬나라 일본은 이슬람의 영향을 더욱 다양하게 받았는데, 교토 직물의 화려한 문양과 14세기 선종사원에서 물을 쓰지 않고 돌이나 자갈을 사용해 만든 정원인 가레산스이, 즉 고산수(枯山水) 형식 정원이 대표적이다. 그것은 사막의 부족한 물과 흙 대신 쇄석과 돌로만 조경된 전형적인 이슬람 사막 정원의 표상이다. 여기에 나무의 전지와 분재 기법 또한 이슬람의 영향이요, 일본의 커피 문화나 카레 음식 또한 이슬람 영향의 좋은 예다.
문화는 돌고 돈다. 우리가 중국을 바라볼 때 중국은 인도와 아랍, 그리고 멀리 유럽을 바라보았고, 아랍은 고대 그리스 로마의 유적을 그리워했다. 유럽인들은 반대로 중국과 일본과 인도를 그리워했다. 모던 디자인의 가치를 척도로 잴 수는 없지만 이슬람의 아라베스크는 종교와 이념과 지역을 떠나서 골고루 깊숙하게 일상의 실생활에 스며들고 있다. 꽃무늬 옷감과 아라베스크풍의 넥타이 디자인이라든지 대단지 건물의 옥상 지붕 마감의 첨단 불빛이 모스크의 튀어나온 미감과도 크게 어긋나지 않다.
이슬람의 상징색은 녹색, 청색, 갈색, 흰색, 검정이다. 황무지에 나무가 귀해 나뭇잎 색이, 사막의 푸른 밤하늘인 프러시안 블루와 누런 모래의 갈색이 이슬람을 상징하게 됐으며, 여기에 흑백의 무채색이 건조하고 뜨거운 햇빛과 바람을 막아주는 최적의 선택이 됐다. 조선 여인들이 외출할 때 썼던 쓰개치마도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이슬람 여인들의 부르카(burka)와 같은 것은 아닌지 생각에 꼬리를 문다.
이슬람 건축의 백미 알함브라궁전에는 방마다 물길이 흐르고 정원마다 분수가 놓여 있다. 유럽 건축에서 보이는 분수는 따지고 보면 사막 문화의 오아시스를 실내와 정원, 길거리로 꺼내놓은 것이다. 미의 정점은 이슬람 문양이다. 거기에 아라베스크가 있다.
최선호 111w111@hanmail.net
서울대 미술대학 회화과 동 대학원, 뉴욕대 대학원 졸업.
국립현대미술관, 삼성미술관 리움, 시카고 스마트뮤지움,
버밍햄 뮤지움 등 작품 소장. 현재 전업 화가. 저서 ‘한국의 미 산책’(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