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학술·장학재단 ‘대세’…사업유형 다각화 추세

재단 설립 현황 & 트렌드

1970년대까지 미미했던 재단법인의 설립은 1980년대 들어 급증했고, 1990년대와 2000년대를 거치며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또 하나, 여전히 학술·장학 유형의 재단이 많은 가운데 최근 설립되는 재단의 특징을 보면 사업 영역이 다각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양적 팽창과 함께 내용적으로 진화하고 있는 재단의 현주소를 짚어봤다.



재단(foundation)은 비영리 조직의 법적인 형태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공익적 또는 자선적 목적을 가지고 공익 활동을 수행하는 다른 비영리 조직을 재정적으로 지원하거나, 재단이 직접 공익 활동을 수행하는 데 소요되는 재원을 제공하는 조직을 말한다. 즉, 넓은 의미에서 재단은 공익적 활동을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재정적 지원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비영리 조직인 것이다.

재단에 대한 기본적 발상은 출연자 혹은 기부자의 재산을 독립된 기관으로 전환한다는 데서 출발한다. 다시 말해 출연한 재산 혹은 이를 토대로 얻어진 수익을 한정되지 않은 기간 동안에 특정한 목적을 위해 사용해야만 하는 의무가 있다. 이처럼 재단은 재산권의 이동 및 전환과 관계돼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일정한 규제를 갖고 있다.

재단에 대한 개념과 정의는 국가마다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 일본, 독일, 이탈리아 등 민법을 갖는 나라에서 재단은 법적인 지위, 즉 재단법인의 지위를 가지고 공익적 사업을 수행한다. 미국, 영국, 캐나다 등 관습법을 채택하고 있는 나라 중 미국을 제외하고는 법적 형태가 아닌 재산과 위탁인의 관계인 신탁(trust)의 형태를 취한다. 미국에서의 재단은 세법에서 규정하는 공익적 활동을 수행하는 면세 조직으로 규정되며, 대부분의 재원을 기부자에게서 기증받고 기부자에 의해 운영되는 조직을 자선조직으로 규정한다.

국내 재단의 역사, 재산 도피 및 탈세로 부정적 시각도
재단은 일반적으로 공익 활동을 수행하는 비영리 조직이기는 하지만, 공익 재단이 되기 위해서는 재단이 수행하는 활동이 공익적 성격을 띠어야 한다. 만일 재단의 활동이 사적인 이익을 위한 경우에는 공익 재단으로 구분할 수 없으며, 공익 재단의 공익 활동에 대해서는 나라마다 관련법이나 세법에서 규정하고 있다. 이 모든 배경으로 볼 때 20세기에 공익적 사업을 위해 태동한 미국의 재단에서 오늘날 공익 재단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미국의 공익 재단들은 초기부터 장기적으로 사회적 문제의 원인을 탐구하고 근본 원인을 치유할 수 있는 해결방안을 찾는 것을 목표로 했다.

국내에서 재단법인이 최초로 설립된 시기는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말로, 재단법인의 효시는 1939년 삼양사 창업주인 김연수 회장에 의해 설립된 양영회다. 김 회장은 창업 15년째인 1939년 6월 사재 34만 원을 출연(出捐)해 가난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이후 한국전쟁 등을 거치며 기금 수입이 고갈돼 1962년까지 중단됐다가 그 해 다시 장학사업을 재개했다. 양영회는 양영재단으로 이름을 바꿔 지금까지 그 명맥을 잇고 있다. 양영회가 출범한 지 2개월 뒤에는 (주)경방의 창업주인 김용완 당시 경성방직 사장이 삼양동제회를 설립해 뒤를 이었다. 1974년 경방육영회로 명칭이 바뀐 삼양동제회는 양영회와 마찬가지로 장학 사업에 주력하고 있다. 이후 은성장학회(1940년 5월)와 영신아카데미(1941년 1월)가 설립되는 등 해방 이전까지 국내에서 설립된 재단법인은 4개에 불과했다.

해방 이후 재단 설립은 불모지에 가까웠다. 해방과 전쟁을 겪으며 기업인이나 유지들의 재산이 고갈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난한 학생들의 학업을 돕는 소규모 육영·장학 사업 단체들은 봇물을 이뤘다. 문제는 이들 중에 육영·장학 사업과는 거리가 먼 다른 목적을 가지고 설립된 단체가 많았다는 사실이다. 재산 도피와 탈세의 목적으로 활용됐던 것. 이는 일반인들이 국내 재단법인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게 된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고, 1970년대 들어서도 일부 기업인들이 재산을 부정한 방법으로 상속하거나 탈세 목적으로 이용한 사례가 늘면서 재단은 곧 있는 사람들의 재산 도피처라는 오명을 낳았다.

1980년대는 이전 시기와 비교해 재단법인의 설립 수가 급격히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다. 이 시기에는 국내 재벌들의 기업 재단 설립이 증가했는데, 1980년대 들어 소득분배의 격차 등에 대한 문제 제기가 본격화되고 기업들도 재단 설립의 실질적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면서였다.
1990년대 이후 재단 설립은 그야말로 꽃을 피우게 된다. 1990년대만 해도 이전 1980년대와 비교해 재단법인의 설립이 두 배 이상 증가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비판 증가와 사회복지 체계에서 민간 기업 부문의 역할이 재조명되기 시작하면서였다. 이 시기에 국내 기업들이 설립한 70개 기업 재단의 총 자산규모는 2조103억 원에 이른다. 2000년 이후에도 새로 설립되는 재단들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지난해 6월, ‘국내 민간 공익 재단 기초 연구’를 발표한 아름다운재단 기부문화연구소는 국내 민간 공익 재단의 수를 1190개로 추정했다. 공익 재단 중 부처별 특별법이나 지방자치단체 조례를 통해 설립됐거나, 출연자에 정부가 포함돼 있는 재단을 제외한 수치다. 이를 다시 법인별로 분류하면 재단법인이 약 92%인 1089개에 달했고 사회복지법인이 나머지 101개였다.

1990년대 이후 개인 재단 설립 급증, 자산규모는 소액
국내 재단법인의 굵직한 역사를 이끌어온 것은 기업 재단이지만 전체를 두고 봤을 때 설립 주체는 개인이 45.7%로 가장 많았고, 개인과 기업, 단체가 함께 출연한 경우도 25.7%에 달했다. 시대별로 봐도 재단 설립의 주체가 개인인 경우가 가장 많았다. 그러나 개인이 설립 주체인 재단은 자산규모가 작은 것이 일반적이다. 자산규모별로 분류했을 때 50억 원 미만은 개인 설립이 가장 많았고, 100억 원 이상부터는 기업 재단이나 기업과 기업 오너가 함께 출연한 복합 형태가 많았다. 시기별로도 개인 재단의 설립은 1990년대 이후 급증하는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재단에 대한 개인의 의식이 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편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공익 재단 중 1000억 원 이상의 대규모 자산을 가진 공익 재단은 12개에 불과했다. 이 중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사재를 출연한 현대차정몽구재단과 이종환 삼영화학그룹 회장이 사재를 출연한 관정이종환교육재단 정도를 개인 재단으로 볼 수 있으나, 이 부분에서도 일부 전문가들은 완전 개인 재단의 형태로 보기 어렵다는 목소리도 있다.

1990년대 이후, 그리고 2000년대 들어 재단 설립이 급증하고 있음에도 오히려 1000억 원 이상의 자산규모를 가진 재단법인의 비중이 줄어들고 있다는 점은 눈길을 끈다. 1000억 원 이상의 자산규모를 가진 재단은 1970년대 이전에 설립된 비중이 절반을 차지한다. 2000년대 들어서는 중소 규모의 자산을 가지고 출범하는 재단 수가 상대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특히 10억 이상 50억 원 미만인 재단법인의 수는 급증세를 보인다.



재단들의 사업 유형 또한 진화해왔다. 국세청 공시 기준인 학술·장학, 문화, 교육, 사회복지, 의료, 기타 등 총 여섯 가지 유형으로 분류해본 결과, 학술·장학 사업을 하는 재단이 67.8%로 압도적이었고, 그다음으로 사회복지가 14.3%를 차지했다. 이는 국내 재단의 역사와도 맞물린다. 대부분 장학 사업으로 출범해 이후 학술 지원으로 영역을 넓혀간 게 일반적이었던 것.

2000년대 들어 두드러지는 특징은 재단법인들의 사업 유형이 여전히 학술과 장학에 집중되면서도 동시에 사회복지 부문이 새롭게 급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2000년 이후 사회복지를 유형으로 하는 재단법인의 설립이 1990년대와 비교했을 때 세 배 이상이라는 수치가 이를 반증한다. 이는 국내 경제 상황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데, 국내 재단법인들 역시 늘어만 가는 사회복지 수요에 적극 대응하고 있음을 뜻하는 바이기도 하다.

한편, 연간 수입의 경우 1억 원에서 5억 원 이상이 34.5%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고, 60% 이상이 5억 원 미만인 것으로 나타나 적지 않은 재단들이 매년 소규모의 수입을 거둬들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국내 재단 활성화 부분과도 맞물리는 것으로, 실제로 많은 재단들이 휴면 상태라는 일각의 지적을 떠올리게 하는 부분이다.


재단의 역사, 어떻게 시작됐나
재단 형성에 대한 역사적 배경은 중세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세의 전 기간을 통해 재단은 고아원, 학교, 대학과 같은 의료 및 교육기관을 운영했던 종교기관과 같은 의미로 사용됐다. 특히 전통사회에서 재단과 유사한 역할을 수행한 기구로는 중세의 수도원을 들 수 있다.

수도원은 기능뿐만 아니라 존재 유형도 오늘날의 재단과 비슷했다. 수도원이 외부의 지원으로 존재했기 때문이다. 유럽의 초기 대학도 수도원과 비슷한 기능이 많았다. 중세의 대학은 자치적으로, 자율적으로 기능을 하는 기관이었다. 그러나 르네상스 말기, 유럽의 대학들은 지적 활동의 중심에서 멀어졌고 학자들은 대학 밖에서 탐구를 계속해야 했다. 학자들이 필요로 하는 지적 지원이나 경제적 지원을 대학으로부터 충분히 공급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재단의 기능으로서의 수도원과 대학의 기능이 약화되자, 오늘날 재단의 전통과 유사한 최초의 펠로십(fellowship) 프로그램을 운영한 개인 후원자들이 등장했다. 그러나 그 운영 방식이나 존재 형태는 오늘날의 전형적 재단과는 차이가 많다.

20세기 들어와 본격적으로 현대적인 의미의 재단법인이 설립된 곳은 미국이다. 초창기 미국의 재단은 당시 축적된 소수 기업가들의 막대한 부를 사회에 재분배하는 장치로 출발했다. 록펠러, 카네기, 밴더빌트 등이 그 예로 당시 신흥 부유층이었던 그들의 힘이 최고조에 달하자 강력한 반발이 나타났고, 19세기를 지나 20세기 초에 들어오면서 미국의 기업가들은 사회적 비판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포드재단이나 록펠러재단 등과 같은 대규모 재단을 설립하고 자선적 기부에 나서게 된다. 이 시기 미국 부자들 사이에는 ‘자선문화’가 유행했는데, 자선사업 문화의 주요 요소 중 하나가 바로 재단을 설립하는 것이었다. 이처럼 현대적 의미의 재단은 순수한 미국적 발명품으로 간주되곤 한다. 즉 제한적인 수입의 재분배 구조를 가지고 있던 사회에서 과도한 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하나의 해결책이었던 것이다.


박진영 기자 bluepjy@hankyung.com
참고 자료 국내 민간 공익 재단 기초 연구(아름다운재단 기부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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