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호 USGTF코리아연맹 대표
미국골프티칭프로협회(USGTF)는 전 세계 62개국, 2만5000여 명의 회원을 둔 티칭 프로 단체다. 1998년 USGTF코리아(USGTF-KOREA)연맹을 결성한 김용호 대표는 구력 35여 년을 자랑하는 베테랑 레슨 프로다. 골프와 함께 35년을 보낸 그에게 골프 레슨을 청했다.약속이 있던 날, 김용호 USGTF코리아연맹 대표는 사무실에서 이인준 프로와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이 프로는 캐리 웹을 지도한 세계적인 레슨 프로 이안 츠릭과 함께 호주에서 선수들을 지도하는 세계적인 수준의 레슨 프로다. 유소연, 배상문 등이 그에게서 골프를 배웠다. 이 프로는 김 대표의 제자이며, 이안 츠릭은 20년 이상된 지기다. 김 대표는 레슨 프로들끼리 자주 만나 정보도 교환하고 서로에게 부족한 부분을 배우기도 한다고도 했다.
사무실을 훑어보는 기자에게 그는 1998년 USGTF를 한국에 들여온 이야기를 시작했다. USGTF는 전 세계 62개국에 나가 있는 레슨 프로들의 단체다. 협회에서 인정한 티칭 프로가 되려면 시험 라운드에서 77타 이내를 치고, 4일간 32시간 이상의 교육을 받은 후 시험을 통과해야 자격이 주어진다. 한국프로골프협회(KPGA)는 타수만 잘 나오면 프로 자격을 얻지만 USGTF는 골프뿐 아니라 티칭 관련 시험까지 통과해야 자격을 준다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이다.
그가 이끄는 USGTF코리아연맹은 한국뿐 아니라 태국, 베트남,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하와이, 괌 등 동남아 15개국을 관장하고 있다. 아시아에는 USGTF 자격을 보유한 프로가 1만1000여 명, 한국에는 8900여 명이 있다.
“USGTF코리아연맹 회원들은 KPGA 회원과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KPGA는 공을 쳐야 먹고 사는 단체지만, 우리 회원들은 먹고 살만 해서 공치는 사람들입니다.(웃음) 회원들의 직업을 봐도 대학교수에서 군인, 기업체 최고경영자(CEO), 골프연습장 오너 등 다양합니다. 골프계의 로터리 클럽 정도로 생각하면 됩니다.”
그래서인지 USGTF코리아연맹에는 각 분야 골프 고수들이 모여 있다. 김 대표 자신이 좋은 예다. USGTF를 도입하기 전, 그는 중소기업 CEO였다. 30대에 중소기업을 시작한 그는 1979년 비즈니스를 위해 본격적으로 골프를 쳤다.
중소기업 사장이 미국으로 골프 레슨을 떠난 이유
지고는 못 배기는 성격 탓에 입문 1년 만에 싱글을 쳤다. 기분이 좋은 날은 75개를 치기도 했다. 적수가 없다고 기고만장하던 때였다. 일은 그런 시기에 생긴다. 그에게 골프를 가르친 이가 내기를 걸어왔다. 타당 1만 원짜리 내기였다.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내기에 건 돈이 모두 자신의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기대는 좌절로 끝이 났다. 18홀을 도는 동안 주머니에서 나간 돈만 187만 원이었다.
나이가 많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실력이 부족한 것도 아니었다. 그날의 패배가 도무지 설명이 되지 않았다. 티칭 프로에게도 해답을 얻지 못했다. 그는 그 답을 찾기 위해 미국행을 감행했다. 1983년의 일이다. 무모한 도전이었지만 젊기에 가능했다.
미국에 도착한 그는 세계적인 티칭 프로를 찾아갔다. 이름을 밝힐 수는 없지만, 그 코치는 한국에서 풀지 못한 그의 숙제를 말끔하게 풀어주었다. 문제는 ‘마인드 컨트롤’이었던 것이다. 지금이야 일반 골퍼들도 다 아는 얘기지만 당시만 해도 마인드 컨트롤의 중요성이 대두되지 않던 시절이다. 김 대표는 코치에게 골프의 기본을 다시 배웠다. 그때만 해도 한국에서는 골프를 칠 때 ‘머리 들지 마라’는 게 정석이었다. 그런데 미국에서 만난 사부는 ‘앞머리 돌아가는 건 아무 상관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골프의 기본 원리를 차근차근 배우게 됐다.
“배구에서 강 스파이크를 받을 때, 우리 몸에는 3개의 90도가 나옵니다. 골프도 유사합니다. 그런 원리는 가르치지 않고 스윙 자세부터 가르치니까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어드레스 할 때 힘을 빼라’, ‘손목 쓰지 마라’고 하지만 원리를 모르면 잘 안돼요. 사실 원리만 알면 힘 빼는 건 5분도 안 걸립니다.”
그는 실제로 골프의 스윙 원리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했다. 스윙의 원리를 알고 하면 운동이 되지만, 모르고 하면 노동이 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미국서 그 원리를 터득한 후 골프에서 져본 적이 거의 없다고 했다.
한참 골프를 치던 시절, 그가 남긴 유명한 일화가 몇 개 있다. 태국에서 후배 프로 선수들과 함께 한 경기도 그중 하나다. 긴장감을 주기 위해 타당 1만 원짜리 내기를 했는데, 18홀 동안 그가 딴 돈이 493만 원에 달했다. 그 뒤로 후배들이 “형이랑 골프 칠 때는 내기 안 한다”는 말을 했다.
“그 뒤로 필드에서 제 별명이 핀발이가 됐습니다. 길고 짧음의 차이가 있을 뿐 좌우로는 오차가 거의 없거든요. 원리를 알면 그게 가능합니다. 지금도 항상 이븐은 칩니다.”
미국서 골프에 도가 튼 그는 한국에 돌아온 뒤 골프연습장 등의 사업을 했다. 그러다 1998년 USGTF를 들여오며 본격적으로 티칭을 시작했다. 외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투어 프로와 티칭 프로의 구분이 모호한 게 현실이다. 투어 프로를 하다 성적이 좋지 않으면 티칭 프로로 전향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골프를 잘 치는 사람이, 잘 가르친다는 보장은 없다. 투어 프로는 골프는 잘 치지만, 가르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될성부른 선수들은 떡잎부터 다르더라
투어 프로와 달리 그의 레슨은 일단 쉽고 편하다. 쉽기 때문에 이해도 빠르다. 그 덕에 36세 프로 지망생이 6개월 만에 KPGA를 통과하기도 했고, 경남 하동에서 실내골프장을 할 때 만난 어린 선수는 1년 만에 KPGA를 통과하기도 했다.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크게 될 아이들은 일찍부터 표가 납니다. 열심히 하고 특히 골프를 즐길 줄 아는 아이들은 성적도 잘 나와요. 부모에게 끌려와서 마지못해 하는 아이들은 실력도 잘 안 늘고, 오래가지 못하더군요.”
연맹 일로 바쁜 탓에 예전처럼 선수들을 가르치기는 어렵지만 CEO들을 대상으로 한 티칭은 지속적으로 한다. 야마하 골프의 공식 수입·판매사인 오리엔트골프 이갑종 사장도 그에게 티칭을 받았다.
이 사장과는 10년 전 지인의 소개로 만났다. 점심을 하다 김 대표에게 골프의 원리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이 사장이 필드에서 만나자고 먼저 제안했다. 당시는 이 사장이 골프에 갓 입문한 때로 평균 성적이 90대 후반이었다.
“일주일 후 대명 비발디파크골프클럽에서 라운딩을 가졌습니다. 레슨을 하면서 라운딩을 했는데, 제가 1오버를 치고 이 사장님이 84개를 쳤습니다. 놀래시더군요. 이전 기록이 96타였으니 놀랄 수밖에요. 사우나를 하고 나오면서 이 사장님이 도와줄 게 없느냐고 하시기에 연맹 이름의 골프대회를 열어달라고 했죠. 그랬더니 투어 프로들과 달리 그렇게 한결같은 샷을 보여준 건 처음이라며, 흔쾌히 대회를 열어주셨어요.”
필드 레슨은 게임에 지장을 주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그 또한 잘못된 선입견이라고 했다. 가장 빠르게 효과를 볼 수 있는 게 현장 지도다. 그는 현장에서 못 고치면 연습장에서는 절대 못 고친다고 했다. 평평한 연습장에서는 백날 고쳐야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골퍼들은 알겠지만 필드에서는 다리 위치가 조금만 달라도 샷이 달라진다. 따라서 상황에 따른 맞춤식 티칭이 가능해야 한다.
김 대표는 많은 티칭 프로들이 범하는 가장 큰 잘못 중 하나가 어드레스라고 지적했다. 대부분의 티칭 프로들은 교과서대로 똑같은 어드레스를 주문한다. 하지만 골퍼의 체격과 체력, 유연성에 따라 다르게 가르쳐야 한다.
그는 어드레스를 바로잡는 방법 중 간단한 한 가지를 소개했다. 스탠스를 잡을 때 왼쪽 발을 바깥쪽으로 오픈하는 것이다. 나이가 30세만 넘어도 하체가 스윙을 리드하기가 어렵다. 그럴 때는 왼발을 오픈시켜 놓고 스윙하는 게 옳다.
“물론 스윙 전에 어드레스를 봐야죠. 스윙이 잘못되면 그 앞 단계를 봐야 합니다. 임팩트가 잘못되면 백스윙에, 백스윙이 잘못되면 어드레스에 문제가 있는 겁니다.”
레슨비로 897만 원을 받은 사연
원리를 알고 문제를 해결하다 보니 그 효과가 빠르고 대단하다. 몇 해 전 그에게 골프를 배운 지방 중견기업 임원이 대표적인 수혜자다. 해당 기업 부장들을 대상으로 골프를 가르치는데 임원이 만나기를 청했다. 임원은 당시 나이 67세에 체구도 작아 드라이버 거리가 100~150m정도였다.
팔만 이용해 스윙하는 그에게 허리를 쓰고 보디 턴을 하라고 했더니 ‘이 나이에 무슨…’ 하는 반응이었다. 일단 시키는 대로 하라고 하고는, 시장에서 파는 2000원짜리 나무 빗자루를 주고 스윙을 시켰다. 팔만 이용해 스윙을 할 경우 몇 번 휘두르고 나면 젊은 사람도 힘들기 마련이다. 그 역시 몇 번 휘두른 후 못 하겠다고 손을 들었다. 그런 그에게 원심력의 원리를 설명하며 허리의 중요성을 말해주었다. 다행히 공학도라서 그랬는지 금방 알아들었다. 그 뒤 체계적인 레슨을 받고는 드라이버 거리만 200m이상으로 늘었다. 105~110개이던 평균 타수도 80대 중반으로 줄었다.
“레슨 뒤에 저녁을 먹자고 해서 지방에 내려갔어요. 저녁 먹는 자리에서 다짜고짜 봉투를 주셨어요. 열어 보니 897만 원이 들어 있었어요. 뭐냐고 여쭤보니까 이틀 동안 친구들과 골프 쳐서 딴 돈이라고 하시더라고요. 30년 동안 친구들한테 당하기만 했는데, 속이 다 후련하다고 무척 즐거워하셨어요.”
김 대표는 내기 골프에서 지지 않는 그만의 노하우도 들려줬다. 게임에 앞서 지갑에서 현금 얼마를 꺼내놓는다. 그런 후 ‘저 돈은 내 돈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며 편하게 게임을 즐긴다. 이기려고 덤비면 절대 이길 수 없는 게 골프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상대를 이기려고 들면 플레이는 흔들리게 돼 있다. 상대가 어떻게 치든 ‘나는 이 돈 내놓고 내 페이스대로 치겠다’고 하면 돈 잃을 일은 절대 없다.
9년 전 암 수술 후에도 변함없는 비거리 자랑
골프로 한참 날리던 김 대표는 9년 전 편도선암 수술을 받았다. 19시간의 수술 끝에 극적으로 회생한 그는 그때 연맹 회원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지방 병원에서 수술 날짜까지 잡았는데, 국가정보원 고위 간부로 있는 연맹 회원이 서울로 그를 불렀다. USGTF 시험을 함께 본 막역한 사이인 그는 김 대표를 서울대병원에 입원시키고 수술을 받게 했다. 병원에 있는 동안도 회원인 의사들이 음으로 양으로 그를 돌봤다. 김 대표는 자신이 그 덕에 살아났다고 거듭 고마워했다.
수술과 항암 치료로 체력이 많이 떨어져 드라이버 거리가 40m 줄었다. 그래도 230m는 나간다. 아이언도 7번 아이언은 150m, 9번 아이언을 잡으면 130m는 나온다. 투어 프로처럼 스윙을 하지 않아도 그 정도 거리가 나온다. 그는 원리만 알면 얼마든지 가능한 거리라며, 다시 한 번 원리의 이해를 강조했다.
“ ‘어드레스 할 때 힘을 빼라’, ‘손목 쓰지 마라’고 하지만 원리를 모르면 잘 안돼요. 사실 원리만 알면 힘 빼는 건 5분도 안 걸립니다.”
“골프 레슨도 트렌드가 있습니다. 요즘 중요하게 여기는 건 피니시입니다. 어떤 라이가 됐든 피니시는 제대로 나와야 합니다. 저는 그걸 1980년대 초반에 이미 다 배웠거든요. 아내도, 아들도 전부 저한테만 골프를 배웠습니다. 다른 프로한테 배우라 해도 저한테만 배우겠다고 해서요. 둘 다 연습 안 해도 기본 80대는 칩니다.”
오랫동안 골프계에 몸담은 덕에 이제는 손만 봐도 골프 실력을 짐작할 수 있다. 손바닥을 봐서 깨끗하면 아예 못 치거나, 아주 고수이거나 둘 중 하나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진짜 공을 잘 치는 사람은 군살 별로 없이 손이 깨끗하다. 연습량이 많은 프로들도 필요한 부분이 아니면 군살이 없다.
그는 갈비뼈가 나갔다고 자랑삼아 이야기하는 골퍼들을 보면 측은하다고 했다. 갈비뼈가 나갔다는 건 근육을 잘못 썼다는 얘기다. 안 쓰던 근육을 쓰면 결리기는 하지만 아파서는 안 된다. 정확하게 그립을 잡고 제대로 스윙을 하면 손바닥이 까지거나 아플 일은 절대 없다.
“클럽 선택을 두고 고민하는 분들도 많던데, 자기가 봐서 마음에 드는 클럽을 쓰면 됩니다. 요즘은 기술이 좋아서 다 좋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야마하 클럽을 좋아합니다. 디자인도 좋고, 타구음도 마음에 들어요. 클럽 선택도 멘탈과 연관이 있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클럽을 잡으면 자신감이 생겨서 좋은 스윙이 나오니까요. 물론 연장 탓하기 전에 스윙부터 고쳐야죠.(웃음)”
신규섭 기자 wawoo@hankyung.com
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