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PEOPLE] 왕회장이 헬기 타고 강원도 간 사연 “이봐, 메밀막국수 먹어봤어?”

‘왕회장’으로 불렸던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왕성한 활동만큼이나 대식가로 알려져 있다. 거침없는 성격의 소유자인 왕회장은 먹고 싶은 음식이 있으면 그 즉시 먹어야 직성이 풀렸으니, 그중 하나가 메밀막국수다. 점심시간, 그가 현대 사옥에 헬기까지 띄운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봐, 해봤어? 해보기나 했어?” 맨땅에서 세계 정상의 자동차, 조선회사를 일군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생전에 자주 했던 말이다. 시도해보지도 않고 미리 포기하는 나약한 정신 상태를 꼬집는 이 호통은 수십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현대인들에게 경종을 울린다.

인생살이나 경영에서 정 회장은 자신의 직관을 믿고 그 즉시 행동으로 옮겼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고개를 젓는 일들도 그는 역발상으로 보란 듯이 이겨냈다.

조선업을 하기 위해 영국 바클레이스은행장에게 돈을 빌리러 갔을 당시, 500원짜리 지폐에 그려져 있는 거북선 그림을 보여주며 “한국은 영국보다 앞서 철갑선을 만든 조선의 종주국”이라고 우겨 차관 도입에 성공했다. “한국산 자동차를 만들지 말라”는 스나이더 주한 미국 대사의 협박을 거절하고 이 땅에 자동차 산업을 일궜으며 서해 방조제 물막이 공사 때는 유조선을 끌고 와 거센 물살을 막아 일을 끝내기도 했다.

그의 ‘불가능은 없다’ 정신은 의외의 영역에서도 발휘됐다. 정 회장은 입맛을 당기는 음식이 있으면 헬기를 타고서라도 먹곤 했다. 이북이 고향인 그는 유난히 메밀막국수를 좋아했다. 점심시간, 서울 계동 현대 본사 사옥에 헬리콥터를 띄워 강원도 양양의 막국숫집으로 날아갔던 일화는 유명하다. 정 회장은 시원한 동치미 국물에 만 메밀막국수를 먹고 “역시 최고”라며 엄지를 치켜세운 뒤 서울로 돌아갔다. 때로는 속초 공항에서 서울까지 비행기로 동치미 막국수 국물을 공수해 먹기도 했다. 인터넷에 ‘정주영’을 검색하면 ‘막국수’가 연관검색어로 뜰 정도인데, 강릉 송정 해변 막국수, 양양 실로암 막국수 등 강원도 일대 수십 개의 막국숫집이 정 회장과의 추억을 자랑하느라 바쁘다.



고혈압·당뇨병에 좋고 여름철 기력 보충 해줘



메밀국수는 보릿고개 시절, 강원도 산골에서 흔한 구황작물인 메밀을 활용해 만들어 먹었던 음식 중 하나다. 그저 허기 채우기 용에 불과했던 이 막국수는 메밀의 영양학적 측면이 부각되면서부터 웰빙 식품으로 거듭났다.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에 따르면 메밀은 소화기를 튼튼하게 하고 기력을 북돋아주는 식품으로 유명한데, 메밀 속 루틴 성분은 혈액순환과 고혈압, 당뇨병에 효능이 있다. 쌀이나 밀보다 단백질 함량이 높고, 무기질과 비타민도 풍부하다. 하지만 찬 성분 때문에 소화가 안 될 수 있어 우리 조상들은 예로부터 무를 곁들여 먹었다. 메밀국수를 먹을 때 무즙을 넣고, 동치미 국물에 메밀 면을 말아먹는 방식은 선조들의 지혜의 산물이라 하겠다. 올여름 시원한 동치미 국물에 만 메밀막국수로 무더위와 스트레스를 날려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이윤경 기자 ramji@hankyung.com
사진 한국경제 DB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