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갤러리는 사명감, 인내심 있어야 성공한다”

김윤섭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

미술 시장이 점차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지만, 과연 지금 갤러리를 오픈하는 게 적기일까.
지난해 전국적으로 수많은 갤러리들이 오픈한 ‘현상’의 이면에는 어떤 배경이 있을까.
갤러리 전성시대라고까지 일컬어지는 지금, 미술 시장을 둘러싼 배경과 성공적인 갤러리 오픈을 위한 조언을 김윤섭 한국미술 경영연구소장에게 들었다.




지난해 갤러리 오픈이 성황을 이뤘다. 그 배경은 뭐라고 보는가.
“두 가지 측면에서 갤러리 오픈의 적기였다고 본다. 첫 번째는 장기적인 경기 침체 국면이 한몫했다. 시장이 활황일 때가 오히려 갤러리를 열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힘든 시기다. 그만큼 투자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반대로 시장이 위축됐을 때가 저예산으로 오픈할 수 있는 적기다. 작년에 많은 갤러리가 오픈한 데는 그런 경제적 여건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는 미술계의 지각 변동이다. 때마침 지금은 작가들의 성향이 시장 논리보다 작가주의적 순수한 창작 의지를 중심으로 재정립되고 있는 시기다. 예전에 소위 물감이 마르기도 전에 작품이 팔리던 때는 작가들 콧대가 정말 높아서 힘들 때가 있었다.”

올해도 크고 작은 갤러리 오픈 소식이 속속 들려온다. 이 현상이 당분간 계속될까.
“그렇다. 경기가 회복세로 전환됐다고 보는 시각이 많고 미술 시장도 내후년쯤에는 다시 상승세를 탈 것이라는 전망도 있어 만일 갤러리를 오픈할 의사가 있다면 늦어도 올해 안에는 시도해볼 만할 것 같다. 다만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 새로 오픈하는 갤러리만큼이나 문 닫은 갤러리들도 많았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새로 오픈하는 갤러리들은 어떤 트렌드가 있나.
“대부분 중진 작가 이하, 연령대로 하면 많아야 50대에서 40대 미만의 젊은 작가들의 작품 전시가 많다는 점이다. 좀 더 세분화해서 보면 세 가지 정도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젊은 유망 작가를 후원하는 성격이고, 또 하나는 해외에서 유학한 우리나라 작가를 포함, 해외 작가나 새로운 트렌드를 소개하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회화, 조각, 공예 등 장르를 혼용한 복합 갤러리 성격이다. 그런데 이런 성향은 오픈 갤러리뿐만 아니라 기존 갤러리들도 그렇게 변해가는 추세다.”

소비자들의 취향을 반영한 결과인가.
“그렇다. 10년 전만 해도 갤러리는 공급자 중심이었지만, 지금은 철저하게 소비자 중심으로 전환됐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조금씩 반향을 일으키더니 미술사적으로 유래가 없던 활황을 거치면서 소비자들의 힘, 즉 돈의 힘을 알게 된 거다. 그러니 소비자들의 기호에 맞출 수밖에. 돈 문제만이 아니라 공부하는 소비자들이 많아졌다는 것도 원인이다. 예전에는 수요자들이 한정된 정보만 제공받았다면, 지금은 열린 정보가 너무 많은 거다. 따라서 공급자들도 트렌드를 공부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바로 그 트렌드를 좇아가지 못해 문을 닫은 곳들도 많다. 지금은 컨템퍼러리 아트의 트렌드 변화 주기가 굉장히 짧아졌다. 따라서 변화를 발 빠르게 읽어내고 대처해야 한다. 그렇다고 너무 앞서가도 안 되고 균형감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갤러리 오픈을 꿈꾸고 있다면 어떤 측면에서 접근하는 게 바람직할까.
“갤러리는 겉으로 보기엔 화려한데 독이 있다. ‘한번 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시작하기에는 힘든 점이 너무나 많다. 그래서 반드시 자신의 성향, 지향점, 오픈하고자 하는 갤러리의 성격이나 트렌드를 명확히 하고 진입해야 한다. 갤러리는 문화여가생활 중 하나고, 자기만족을 위한 투자이기 때문에 스스로 원하지 않는 것을 의무방어전으로 하기는 힘들다. 전문적으로 화랑업을 하던 사람들이야 먹고 살아야 하니까 어쩔 수 없이 한다지만 새로 시작하는 사람들은 그걸 견디기 어려운 거다. 경제적 측면에서 봐도 돈 벌기가 쉬운 구조가 아니다. 갤러리가 작가 초대전을 하려면 최소 2000만 원이 든다. 작가는 작품이 안 팔려도 그만이고 소비자도 안 사면 그만이지만 중개상인 갤러리만 손해를 보는 거다. 작품이 잘 팔린다고 해도 유지비 빼고 나면 남는 게 많지 않다. 상황이 이러니 안을 들여다보면 속앓이를 하는 갤러리들이 많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성공할 수 있나.
“소위 티(T)자형 모드여야 한다. 정보 수집과 소통의 교감은 좌우로 넓히되, 뿌리를 두고 중심을 잡을 수 있는 성향은 깊어야 한다. 그래야 흔들리지 않고 자기 자리를 지킬 수 있다. 그게 성공의 포인트인 이유는 미술 산업이란 세월과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인내심이 뒤따라야 성공할 수 있다. 미술품은 분명 상품이지만 소비되고 소모되고 감가상각 되는 일반 산업품과는 다르다. 오래갈수록 부가가치가 늘어나는 게 미술품이기 때문에 세월의 힘이 필요한 거다. 따라서 갤러리를 오픈할 때는 오픈을 위한 예산만이 아니라 최소 몇 년을 지속할 수 있는 예산 규모를 세우고 시작해야 한다.”

그 기간이란 어느 정도인가.
“갤러리를 오픈하고 5년에서 10년 정도를 버티면 단골이 생긴다. 왜냐면 작가가 성장하려면 최소 그 정도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작가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 갤러리에서 추천하는 작가는 믿을 만하다’라는 신뢰감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갤러리의 역할이 나오는데, 미술품의 가치는 미술품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창작자인 작가의 역량에서 나온다. 그런데 작가가 계속 이어서 활동할 수 있도록 후원해주는 게 바로 갤러리의 역할이다. 일반 산업품의 사후관리(AS)는 부속품을 바꿔주는 것이지만, 미술품의 AS는 미술품 자체가 아니라 작가의 역량 후원인 것이다.”

성공적인 갤러리 오픈 이후 운영에 이르기까지 놓지 말아야 할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뭔가.
“갤러리를 왜 하려고 하는가에 대한 자문자답의 화두를 놓지 말아야 한다. 갤러리 운영은 자기만을 위한 수익사업이 아니라 사명감이다. 처음에는 자기만족이나 경제적 이득을 위해 시작했다 하더라도 조금 지나면 책무와 의무가 따라온다. 미술품은 태어나는 순간 공공재다. 돈을 벌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자신의 삶의 가치를 높이고 충족시키는 그런 목적으로 해야 한다. 자기만의 전문적인 색깔을 갖는 것도 중요한 포인트다. 개인적으로 전망해보자면 향후 마니아층이 늘면서 갤러리 형식의 생활공간도 늘어나고 미술품에 대한 기호도 늘어날 것이다. 결국 전문적 성향을 충족시켜 줄 만한 갤러리들이 오래 살아남게 될 것이다.”



김윤섭 소장은…
월간 ‘미술세계’ 기자 및 편집장 출신으로 월간 ‘아트 프라이스’와 ‘월간옥션’의 편집이사를 지냈다. 2007년 9월 국내 대학 최초로 동국대 사회교육원에 미술 시장 전문 강좌 ‘아트마켓&아트테크’ 특별 강좌를 개설해 주관하고 있다.
현재 미술경영연구소장과 동국대 겸임교수로 활동 중이며, 최근 ‘2013 태화강국제설치미술제’의 예술감독을 맡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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