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QUEUR STORY] 스카치위스키의 탄생


지인들과 위스키를 즐길 때 위스키의 유래와 역사에 대해 배경 지식을 간단히 설명해보는 건 어떨까. “위스키는 처음에 약이였다”고 운을 떼고 당신의 교양을 자랑해보자.

프랑스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프렌치 패러독스(French paradox)라고 들어봤을 것이다. 우리말로 하면 ‘프랑스인의 역설’이다. 이는 다른 나라 국민에 비해 고지방 식단을 많이 즐김에도 프랑스 사람이 오히려 심장병 발병률이 낮은 이유가 와인을 즐기는 습관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오면서 이런 현상을 얘기한 것이다.

이렇게 와인에서 패러독스가 통하듯이 위스키도 알고 보면 패러독스가 있다. 천년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고대 켈트시대부터 위스키는 몸을 치유하는 ‘약’으로 애용됐고 스카치위스키의 본고장 스코틀랜드 하일랜드 지방에서는 민간요법으로 위스키를 이용해 핫토디(hot toddy)라는 차를 만들어 감기와 폐렴 예방 목적으로 남녀노소 모두가 지금까지 음용하고 있다.



위스키는 생명의 물

위스키가 생명, 건강을 위한 목적으로 사용된다는 것을 고증하듯이 위스키의 어원은 라틴어의 아쿠아 비테(aqua vitae) 즉 ‘생명의 물’이다. 이런 사실은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면 기막힌 역설일 것이다. 이것이 고대 켈트족의 언어인 게일어로 우스개 바하(uisge beatha)가 음 변형이 돼 다시 우스개(uisge), 우스키(uisky)로 변천해 오늘날 아일랜드·미국에서는 whiskey, 스코틀랜드·캐나다·일본에서는 ‘e’가 빠진 whisky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연금술사들이 개발한 증류 기법

그럼 생명의 물이라 불리는 위스키가 어떻게 탄생됐을까? 위스키와 같은 증류주는 기원전 약 3000년경,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시작됐다. 이때 당시 증류라는 기술이 연금술사들에 의해 개발돼 음용 목적이 아닌 알코올을 증류해 향료나 화장품 제조에 사용됐다. 알코올(alcohol) 어원은 아랍어로 알-코올(aI-kohl)에서 비롯됐다.

코올(kohl)은 안티모니(antimony) 분말의 검은색 파우더로 당시 아라비아 여인들이 언저리를 검게 칠하는 화장먹으로, 일종의 여성 눈 화장품인 아이섀도의 일종이다. 그리고 알(al)은 아랍어의 접두사다. 이렇게 증류된 원액은 주로 화장품이나 향수를 만드는 데 사용됐으며, 이것이 오늘날까지 여성의 눈썹 화장을 하는 화장품으로 사용되고 있다.




십자군 전쟁의 기여

그 후 12세기 십자군 전쟁에 참여했던 가톨릭 수도사들이 연금술사로부터 전수받은 알코올 증류 기법을 순식간에 유럽 각지로 전파했다. 십자군 전쟁은 서유럽의 그리스도교들이 이슬람교도에게 점령당한 성지 예루살렘을 탈환하기 위해 여덟 차례 계속 감행한 대원정이었다. 이 전쟁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지만 부수적으로 동·서 간의 문물 교환에 큰 기여를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전쟁이 끝난 직후 중동에서 돌아온 가톨릭 수사들에 의해 보리로 만드는 위스키뿐만 아니라 과일로 만든 브랜디(brandy), 곡물로 만든 보드카(vodka), 진(gin) 등 오늘날 고급 증류주가 탄생하는 계기가 됐다.


갓 증류한 위스키는 무색투명해 향과 맛이 자극적이었지만, 사람들이 그대로 혹은 약초 등을 우려내어 마시게 되면서 그 뒤 위스키는 각 가정에서 자신들만의 고유 비법으로 만들게 됐다.

위스키는 아일랜드에서 유래

위스키의 유래는 스코틀랜드가 아닌 아일랜드(Ireland)라고 많은 학자들은 얘기한다. 5세기경 스코틀랜드 출신인 성직자 성 패트릭(St. Patrick)이 아일랜드에 가서 기독교를 처음 전파하면서 중동으로부터 받은 증류 기술을 보급했기 때문이다. 그 후 성 패트릭이 아일랜드에서 스코틀랜드로 들여온 것으로 추정된다.


수도사들에 의해 증류 기법 전파

15세기에는 수도원이 해체되면서 갈 곳이 없던 수도생들은 생존을 위해 그동안 습득했던 증류 기법을 활용할 수밖에 없었다. 수도생들에 의해 위스키가 ‘치유 목적’인 약으로 제조되면서 삶을 연장하고, 배앓이, 중풍 심지어 천연두를 낳게 한다고 했다. 이처럼 위스키가 생명의 물이란 뜻을 갖게 된 것은 당시의 시대 상황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16세기 후반에는 스코틀랜드의 모든 농장이나 저택에 자체적으로 증류기를 갖추면서 술로 음용되기에 이르렀다. 갓 증류한 위스키는 무색투명해 향과 맛이 자극적이었지만, 사람들이 그대로 혹은 약초 등을 우려내어 마시게 되면서 그 뒤 위스키는 각 가정에서 자신들만의 고유 비법으로 만들게 됐다. 이때부터 위스키의 생산이 보편화됐다.

스코틀랜드 재무부의 기록에 따르면 1494년에 수도사인 존 코어(John Cor)가 약 508kg의 몰트(malt: 싹을 틔운 보리)로 증류주 즉 아쿠아 비타(생명의 물)를 만들었다고 적혀 있다. 그는 당시 1500병 정도 되는 양을 만들었다. 비록 그가 최초의 몰트위스키 증류자가 아닐지라도 오늘날 그는 우리에게 위스키 증류에 관한 첫 증거를 남겼다.

위스키는 삶의 일부

스카치위스키는 점차 스코틀랜드인들에게는 삶의 일부가 됐다. 여분의 곡물을 활용해 위스키를 만들기 시작했고, 만든 위스키로 집세를 지불하거나 음식과 바꾸기도 했다. 때로는 사교 생활의 윤활유가 됐으며, 집에 귀한 손님이 오면 내놓기도 했다. 특히 스코틀랜드의 춥고 긴 겨울날에는 고단했던 삶의 안식이 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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