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ORTALS] 한국의 대표 어모털족, 내 사전에 ‘은퇴’란 없다

기존 세대에 비해 진보적이면서 젊은 세대만큼 에너지가 넘치는 삶을 추구하는 한국의 어모털족에는 누가 있을까. 젊은 시절 한국의 성장과 발전에 원동력으로 활약하던 기세를 고령이 돼서도 정계, 재계, 문화계에서 폭넓은 활동으로 이어가고 있는 이들을 모아봤다.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

재계 총수 가운데 최고령을 자랑하는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은 여전히 직접 현장을 누비며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호적상으로는 1922년생이지만 실제로는 1921년생인 신 총괄회장은 국내 10대 그룹 총수 가운데 유일한 창업 1세대다. 올해 92세로 고령임에도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매장을 둘러보고 왕성한 현장 활동을 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그는 홀수 달은 한국, 짝수 달은 일본에 머무는 셔틀 경영으로 양국 사업을 챙긴다. 2011년 아들인 신동빈 회장에게 회장직을 넘겨주며 총괄회장으로 경영 일선에는 한발 물러섰지만, 그룹의 명운이 걸린 현장만큼은 직접 챙기겠다는 강한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평소 신 총괄회장은 아무런 사전 통보 없이 롯데백화점, 롯데마트, 아울렛 등 자사 매장들을 깜짝 방문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한국에 머무는 동안 롯데호텔 34층 집무실 겸 숙소에서 지내며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로부터 경영 현안을 보고받는 일도 빼먹지 않고 있다. 일본 롯데로부터도 업무 보고를 계속 받고 있으며 주요 현안이 있을 때는 일본의 경영진이 서울로 날아와 직접 보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상 123층 규모의 제2롯데월드 건설은 신 총괄회장의 숙원 사업으로 포기를 모르는 그의 도전 의식을 엿볼 수 있다.



손경식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손경식 대한상의 회장은 1939년생으로 올해 74세다. CJ그룹 회장으로 경영 일선을 지키는 한편 8년째 대한상의를 이끌며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경제 4단체 가운데 하나인 대한상의의 수장으로서 전국 지방상공회의소를 총괄하고 대표하며, 국내외 경제 단체와 상호 협조함으로써 국내 상공업 진흥을 도모하고 있다.

미국 국무부 차관 등 세계 각국의 경제대사를 만나 경제 협력 증진 방안에 대해 논의하는 일은 그의 최근 주요 업무다. 손 회장은 1962년 한일은행, 삼성전자를 거쳐 1977년 38세에 안국화재(현 삼성화재) 사장을 맡았으며, 52세 때인 1991년 부회장에 올랐다. 1993년 CJ로 옮겨 대표이사 부회장을 맡았고 이듬해 55세 때 회장 직함을 단 뒤 줄곧 경영 일선을 지켜왔다.

2005년에는 대한상의 회장에 선출됐다. 올해 제21대 서울상의 회장으로 재선출돼 2014년까지 대한상의 회장직을 수행하게 된다. 2011년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에 위촉됐고 세제발전심의위원장, 환경보전협회 회장,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위원 등 대외 직함만 70여 개다.




나오연 한국조세발전연구원장·전 국회의원

나오연 한국조세발전연구원장은 1932년생으로 올해 81세다. 재무 관료 출신의 3선 국회의원으로 당시 지역구 의원 중 최고령이었다. 하지만 그를 설명할 때는 언제나 ‘매사에 열의가 넘치는 정열적 스타일’이란 단어가 따라붙는다. 공무원 재직 시절 서울지방국세청장 등 주로 세무 분야에서 일했으며 국내 대표적인 세제 전문가로 통한다.

국회의원으로서 12년 동안 재정경제위원회에서 위원장으로서 세제 개혁을 주도했고 조세 구조를 저세율 적정구조로 낮추는 데 기여했다. 경제학 박사로 미국 하버드대 초빙교수를 지내는 등 경제 이론에도 밝다. 지난 2004년 의정 활동을 마치고 한국조세발전연구원과 세무사 사무실을 개원했다.

오랜 공직 생활과 학계, 정계, 재계 등 각 분야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경제 발전과 국가의 조세 발전, 심사·심판청구 대행을 통한 납세자 권익 보호에 열정을 쏟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만들었다. 그리고 전직 국회의원들이 모인 국가원로단체인 헌정회 정책위 의장으로 있으면서 각종 언론을 통해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평가와 재정 운용 방향 등에 대해 조언을 쏟아내는 등 의원 시절 못지않은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철승 서울평화상 문화재단 이사장·전 신민당 대표

1922년생 이철승 서울평화상 문화재단 이사장은 전 신민당 대표로서 김영삼·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을 정치적 동지이자 라이벌로 둔 한국 현대 정치의 주역 가운데 한 사람이다. 3·4·5·8·9·10·12대 국회의원을 거쳐 1988년 정계 일선에서는 은퇴했다.

이후에도 대한체육회장, 대한역도연맹 회장, 1988년 서울올림픽 조직위원, 2002년 월드컵조직위원회 조직위원 등 인생 2막을 다양하게 펼쳤고, 90세가 넘은 지금 인생 3막으로 헌정회, 대한민국건국기념사업회, 한국노년유권자연맹 등 각종 사회기관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아직 아흔밖에 안됐으니 할 수 있는 한 많이 해야지”라고 말하는 이 이사장은 왕성한 에너지와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힐링과 충전을 각별히 챙긴다. 지금도 일주일에 네 번씩 헬스클럽에 나가 보통 1시간에서 2시간 정도 운동을 하는데 스트레칭으로 시작해서 바벨, 벤치 프레스, 레그 프레스 머신 같은 웨이트 트레이닝까지 섭렵한다.




송해 방송인

매주 일요일 아침 12시면 어김없이 얼굴을 볼 수 있는 전국노래자랑의 진행자 송해는 33년간 이 프로그램을 이끌고 있다. ‘국내 최장수, 최고령 진행자’로 해마다 자신의 기록을 새로 쓰고 있다. 1927년생인 그의 나이는 86세지만 최근 한 금융사 광고의 모델로 CF 스타로서도 전성기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에는 CF퀸으로 불렸던 김연아, 인기 스타 장동건과 이승기를 모두 제치고 최고 광고모델상을 받기도 했다.

광고주인 금융사도 ‘송해 효과’로 지난 한 해 1200억 원의 신규 예금을 유치하며 ‘2012 대한민국광고대상’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았다. 송해는 올해 영화로 제작 중인 ‘전국노래자랑’에 직접 출연도 하는 등 나이를 무색할 정도로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지난해 연말부터는 후배 가수와 코미디언들과 함께 ‘송해 빅쇼’를 서울, 대구, 부산, 전주, 대전 등 전국을 돌며 이어가는 등 인생 최고의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심심해서 죽는다는 말이 있잖아요. 할 일이 없으면 죽는대요. 저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내 건강의 소중한 체력 유지 비법이에요”라고 말한다.




이한우 서양화가

우리나라 화가로는 최초로 프랑스 정부로부터 문화훈장을 받은 이한우 화백은 1928년생이다. 올해 85세지만 여전히 작품 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이 화백은 보통 1000만~7000만 원에 작품이 낙찰돼 명실상부 국내 최고 인기 화가다.

그는 75세의 나이에도 파리 유학을 감행했다. 파리로 유학가기 전까지는 주로 정물 위주의 사실적 그림과 몽환적인 풍경화를 그렸다. 하지만 그는 ‘자신만의 독창성이 있는 그림을 그려야 되고, 가장 창작적인 그림이 나와야 된다’는 일념으로 낯선 이국땅에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75세에 창작 활동의 방향을 바꿔 현재 그는 세계적인 명성을 쌓아가고 있다. 최근 이러한 열정을 담아 밤잠을 설치며 500호와 250호짜리 대작을 완성했다. 아름다운 우리 강산을 주제로 한 이 작품은 미국 스미소니언 자연사 박물관의 의뢰를 받아 그린 것이다.

프랑스 평론가 파트리스 드 라 페리에르는 “이 화백의 화풍은 동양의 아름다운 시를 염색해 놓은 것 같고 인상파의 대가, 반 고흐의 영감을 거울처럼 반영하고 있다”고 극찬했다. 85세에 세계 진출을 성공적으로 이뤄낸 이 화백의 이야기에 많은 이들이 희망과 용기를 얻고 있다.



이진원 기자 zinon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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