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가들은 지금
세법 개정안으로 새롭게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에 포함되는 상위 중산층은 약 15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이들은 금융 자산 5억 원 안팎을 가진 이들이 대부분이다. 만일 지금 금융 자산을 분산해 놓지 않는다면 내년 5월경 세금 폭탄을 맞을 것이 예상된다. 과세 대상에 포함되지 않기 위해 지난 1, 2월 동안 자산가들이 프라이빗뱅킹(PB)센터 등을 통해 ‘자산 재구성’을 어떻게 했는지 알아봤다.
김정현(가명·53) 씨는 현금 5억 원을 2년 정기예금에 넣어 둔 탄탄한 중산층이다. 2년 주기로 예금 사이클을 만들어 만기가 되면 이자 소득을 올리고 있었다. 하지만 올해부터 금융소득에 대한 과세 기준이 강화된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상담을 하기 위해 PB센터를 찾았다. 그가 들고 있는 예금의 경우 3.4% 금리로 2년 만기가 됐을 때 이자는 3400만 원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으나, 올해부터는 이자 소득 3400만 원 중 기준 금액인 2000만 원을 넘어선 1400만 원에 대해 사업소득, 근로소득 등 다른 소득과 합산해 6∼38%의 종합소득 세율로 누진 과세가 되기 때문이었다.
지난해 말 여야는 세법 개정안에 전격 합의하고 올해 2월 15일 세법 시행령이 공포됐다. 금융 상품에 대한 비과세 혜택을 대폭 줄이는 등 금융소득에 대한 과세 강화가 개정안의 큰 방향이었다. 금융계와 자산가들은 금융소득종합과세 기준 금액이 기존 4000만 원에서 3000만 원 정도로 낮아질 것이라 예상했다. 이 정도 충격은 다소 흡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하지만 실제 개정안이 기준 금액 2000만 원으로 결정되면서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금융소득 과세 대상이 기존 5만 명에서 20만 명 이상으로 큰 폭 확대되기 때문이었다.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지난 1, 2월 동안 PB센터 등 금융사에 문의와 상담이 폭주했다. 일부 증권사의 경우 한시적으로 야간 세금 상담 서비스도 개설하며 몰려드는 상담 수요를 감당해야 했었다.
상위 중산층, 대대적 ‘머니 무브’
PB센터에 따르면 주로 상담을 요청한 이들은 대부분 금융 자산 5억 원 정도를 운용하는 상위 중산층이었다. 이들이 바로 신규로 금융소득 과세 대상에 포함되는 이들로 약 15만~17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20억~30억 원대 금융 자산을 가진 고액자산가의 경우 대부분 과세 대상에 이미 포함돼 있었고, 이에 대응해 이미 예금, 국채, 주식, 장기 채권 등 다양하게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분리과세 상품으로 분산해 놓고 있었다. 하지만 5억 원대 안팎의 자산가들의 경우 많은 부분을 장기 예금 상품에 돈을 넣어두고 있었고, 3년 정도 만기가 됐을 때 웬만하면 이자 소득이 2000만 원이 넘어 과세 대상에 포함되는 상황이다.
세법 개정안이 시행되고 큰 변화를 요약하자면 ‘상위 중산층의 탈예금화’다. 대대적인 ‘머니 무브(money move·자금 이동)’로 업계에서는 일컫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만 9조여 원의 정기예금이 이탈해 수시입출금식예금(MMDA)과 머니마켓펀드(MMF) 등 투자 대기성 자금으로 유입되거나 즉시연금, 물가연동국채 등 비과세 상품에 몰리며 절세를 위한 대규모 ‘머니 무브’도 가시화하고 있다. 새로 과세 대상에 포함되는 자산가 15만~17만 명이 종합과세를 피하기 위해 최대 44조 원의 자금을 비과세와 분리과세 상품 등으로 옮길 것이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이들의 탈예금화에는 낮은 금리 기조도 한 몫 거들고 있다. 기준금리가 지난해 10월 연 3.0%에서 2.75%로 내린 이후 5개월째 동결돼 있기 때문이다. 정기예금의 경우 세전 금리가 3.1~3.2%까지 떨어지면서 실효 수익이 줄고 있는 데다가 세금 부담은 더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계속 예금에 자금을 묶어두는 경우 실효 수익이 세후 2% 정도까지 떨어질 수 있다. 따라서 자산가들은 급격히 예금에서 자금을 빼고 있는 것이다.
금융 자산 50%를 절세 상품으로
윤상설 미래에셋증권 수석 웰스매니저는 “현금 3억~5억을 가진 50~60대 자산가들의 경우 대부분 공격적인 투자 상품보다는 예금 위주로 갖고 있었다. 보수적으로 자산을 운용하기 때문에 주식이나 투자 상품으로 자산을 나누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낮은 금리와 세금 부과를 피하기 위해 자산을 분산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의 자산은 분리과세 상품인 인프라펀드, 유전펀드, 세금우대저축, 10년 이상 장기 채권이나 비과세 상품인 물가채, 브라질 국채, 즉시연금 등으로 빠지거나 가족 간 증여를 통해 이동하고 있다. 지난 1, 2월 동안 즉시연금에 수천억 원이 들어오고 물가채 거래량이 급증하는 등 활발한 자금 이동이 일어나고 있다.
올 들어 지난 2달간 예금에서 빠져나온 자금 이동을 살펴보면 보험에 6조 원, 은행·증권·상호금융 등에 4조 원가량이 유입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대부분 절세, 비과세 상품으로 흘러들었는데, 금융권에 따르면 상품별로 성적표는 즉시 연금 4조 원, 일시납 저축성 보험 2조 원, 월지급식 주식연계증권(ELS) 2조 원, 유전펀드·브라질 국채 1조5000억 원, 신용협동조합·새마을금고 예탁금 5000억 원 순이었다.
세법 개정안이 적용된 2013년 소득에 대한 종합소득세 신고가 이뤄지는 내년 5월이면 한 차례 혼란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소득 과세 대상에 신규로 포함될 것이 예상됨에도 자산을 분산하거나 절세 상품으로 이동하는 등 조치를 취해놓지 않을 경우 세금 폭탄을 맞을 수 있다.
더불어 과세 기준인 2000만 원이 넘는 금융소득을 번 건강보험 지역가입자들은 2014년 11월부터 금융소득에 대해서도 연간 최대 50만 원 이상의 건강보험료를 추가로 내게 된다. 과세 대상자들은 2013년 5월에 국세청에 금융소득종합과세로 신고하면 이 자료를 기준으로 건강보험공단에서 인상된 건강보험을 부과하는 시기는 내년 11월부터다.
금융 자산 5억 원가량을 갖고 있는 자산가라면, 자산 중 절반을 절세 상품으로 옮겨 과세 대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렇다면 최근 자의반, 타의반으로 자산 포트폴리오를 재구성하는 자산가라면 어떻게 분산하는 것이 좋을까. 절세도 중요하지만 수익률을 확보하는 것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5억 원 자산을 가진 자산가의 이상적인 자산 배분에 대해 윤 웰스매니저는 “예금에 1억 원을 남겨두고 브라질 국채에 1억 원, 물가채·국고채·토지채 등에 1억 원, 주식형 펀드 자산에 1억 원, 해외 주식 랩에 1억 원으로 나누는 것이 좋다”고 추천했다.
그에 따르면 각 포트폴리오의 수익률이 예금 3%, 브라질 국채 장기(10년)로 5~6% 등으로 구성돼 평균 4~5%의 수익률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금융 자산의 60%를 안정적으로 분류되는 투자 상품에, 그리고 40%를 다소 공격적인 장기 투자 상품에 넣는 것이 좋다”고 덧붙였다.
올해 절세 금융 상품이 봇물 터진 듯 쏟아질 것으로 보인다. 은행, 증권사, 보험사들은 최근 절세와 관련한 상품 기획에 열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절세 투자 상품 중 중요한 트렌드는 금융소득의 분산·배분형이 인기를 끌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ELS뿐 아니라 각종 펀드와 국내외 채권도 장기간에 걸친 월지급식으로 개발돼 절세가 가능할 뿐 아니라 저금리 시대에 안정적인 수익을 선호하는 경향도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이진원 기자 zino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