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PO 활동으로 보람찬 후반 인생을

Retirement plan


인생 100세 시대를 맞아 ‘퇴직 후 30~50년 동안 무슨 일을 하면서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 직장인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건강과 노후 생활비 때문에도 그렇지만 보람 있는 후반 인생을 위해서라도 퇴직 후에 할 일을 찾는 것이 다른 어떤 것보다도 중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돼 가고 있는 것이다.


퇴직 후에 할 수 있는 일로는 크게 세 가지 유형을 생각해볼 수 있다. 재취업을 해서 수입을 얻는 일, 사회공헌 활동, 그리고 자기실현을 위한 일, 즉 취미 활동이 그것이다. 이상 세 가지 유형의 일 중에서도 대부분의 퇴직자들이 하고 싶어 하는 일은 재취업을 해서 수입을 얻는 일일 것이다. 자녀교육비와 결혼 자금, 조기 퇴직, 금리 하락 등의 영향으로 충분한 노후 자금을 마련하지 못한 채 퇴직하는 직장인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에 들어서는 주로 노후생활비에 큰 걱정이 없는 퇴직자들 가운데서, 사회공헌 활동을 하며 약간의 소득을 얻을 수 있는 일에 대한 관심도 점차 높아가고 있다. 그중 하나가 NPO 활동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NPO란 Non-Profit Organization의 머리글자를 딴 것으로 ‘민간 비영리 조직’ 또는 ‘비영리 활동’ 등으로 번역한다. NPO에는 ‘비영리’의 의미뿐만 아니라 ‘비정부(nongovernment)’의 의미도 포함돼 있다. 따라서 정부로부터의 독립을 강조할 경우에는 NGO(Non-Governmental Organization)라는 용어를 쓰기도 한다.

그렇다면 NPO 활동과 단순한 자원봉사(volunteer) 활동은 어떻게 다른가. 일반적으로 자원봉사 활동은 100% 무보수 활동을 원칙으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NPO 활동은 약간의 보수를 받는 경우까지 포함시킨다. 예를 들어 시간당 적정 임금 수준이 5000원인데 2000원을 받고 일을 한다면, 그 차액에 해당하는 3000원만큼은 자원봉사로 본다는 것이다.

아무리 자원봉사라 하더라도 100% 무보수로는 오래 지속하기 어렵기 때문에 교통비와 점심값 정도에 해당하는 보수를 지급해서 능력 있는 자원봉사자들이 장기간 활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에서는 NPO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취업 인구에 포함시킨다. 현재 미국에는 200만 개 정도의 NPO가 활동하고 있다. 여기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전체 취업 인구의 10% 정도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다. 그 정도로 미국에서는 NPO 활동이 일반화 돼있는 것이다.



앞으로 우리나라에서도 NPO 활동이 더욱 왕성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기본생활비 정도는 걱정 없는 정년퇴직자들이 약간의 수입을 얻으면서
사회공헌 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가 그만큼 늘어난다는 뜻이다.




사회공헌도 하고, 소득도 얻고

미국 미시간대에서 실시한 ‘미국 베이비부머 세대의 퇴직 후 자원봉사 활동 현황 조사’에 따르면 전체의 70% 정도에 이르는 퇴직자들이 공식·비공식 자원봉사 활동에 참여하고 있고, 퇴직 이전에 자원봉사 활동 경험이 있는 사람이 퇴직 이후에도 더 적극적으로 자원봉사 활동에 참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NPO는 원래 정부의 손이 닿지 않거나 민간 기업이 채산성 관계로 손을 대지 못한 분야를 무대로 해서 시작됐다. 1990년대 이후 NPO 혁명이라고 할 정도로 민간 기업으로부터 경영기법을 도입하고, 단순한 자원봉사의 영역에서 벗어나 어떻게 하면 수입을 올릴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단계로까지 바뀌었다.

기업은 제1의 경영 목표를 이익 추구에 두고 그다음으로 고용 확대, 사회공헌 등을 실현하려고 한다. 반면에 NPO는 제1의 목표를 사회공헌에 두면서 고용 창출과 이익 확보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미국에서는 NPO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져 정부, 민간과 더불어 제3의 경제주체로 자리 잡고 있다. 정년퇴직자뿐 아니라 대학 졸업자들의 NPO 진출도 늘고 있다. 미국의 주요 직업란에 보면 NPO라는 직업이 있을 정도다.

이웃나라 일본도 1995년에 발생한 고베(神戶) 지역의 대지진 피해를 계기로 NPO의 활성화를 위해 많은 정책적 노력을 해왔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1998년에 ‘특정비영리활동촉진법(NPO법)’을 제정·시행한 것이다. NPO법은 민법의 특별법으로 의료·복지·교육·환경·문화·재난구호 등 20개 분야에서 비영리 활동을 하고자 할 경우 10명 이상의 참가자만 있으면 기본 재산이 없더라도 간단한 수속을 거쳐 특정 비영리 활동 법인의 자격을 취득할 수 있도록 한 법이다.

물론 NPO법이 제정되기 전에도 일본에는 재단법인, 사단법인, 사회복지법인 등과 같이 법인격을 갖고 비영리 활동을 하는 단체들이 많았다. 다만 이들 법인은 설립 절차가 복잡할 뿐 아니라, 설립 시 상당한 금액의 기본 재산이 있어야 하고, 정부의 규제로 인해 활동하는 데 많은 제약을 받는 등의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이런 문제점들이 사회적 이슈로 크게 부각된 계기가 바로 앞에 소개한 고베 지역에서 발생한 대지진이었다. 대지진 발생 후 재해 복구 작업을 하는 데 정부와 전통적인 공익 법인들은 이렇다 할 공헌을 하지 못한 데 비해 이른바 ‘풀뿌리 NPO’ 또는 자원봉사 단체들이 눈부신 활약을 했기 때문이다. 당시 그런 상황이 계기가 돼 일본의 정책 당국, 학자, 정당, NPO 관계자들이 의견을 모아 만들어낸 것이 바로 NPO법이다.



뜻있는 퇴직자들에게 일자리 제공 역할

NPO가 법인격을 취득하게 되면 계약의 주체가 될 수 있고, 사회적 신용도도 높아진다. 수탁사업, 정부보조금, 기부금 등을 받거나 공적 시설을 이용하는 것도 쉬워진다. 이런 이유로 2012년 3월 말 현재 법인 인증을 받은 NPO가 4만5000개에 이를 정도로 설립이 붐을 이루어 왔다. 정년퇴직을 한 베이비부머 세대들뿐 아니라 20~40대의 젊은 세대들까지도 설립 주체가 되거나 NPO 활동에 참여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활동 분야를 보면 보건·의료·복지 관련이 36%, 환경 보전 11%, 문화예술 11%, 지역 발전 10%, 아동 건전 육성 9%, 사회교육 6%, 국제협력 4% 등으로 돼있다. NPO 법인에 대한 지원을 사업으로 하는 NPO도 전국에 322개나 있으며, 금융NPO의 설립도 늘고 있다. 환경, 사회적 사업, 지역 진흥 등의 비영리 분야에 자금을 공급하는 비영리 금융기구(NPO Bank)가 바로 그런 사례다. NPO의 기본 재산은 500만 엔(약 6500만 원) 미만이 전체의 60% 정도를 차지하고 있어서 설립에 따른 자금 부담은 그리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NPO 법인의 수지 상황 또한 호전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정책금융공고(日本政策金融公庫)가 2011년 가을에 실시한 NPO 법인 실태조사 결과에 의하면, 3500개 조사 대상 법인 중 70%가 흑자를 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입내역을 보면 간병 서비스료 등의 사업성 수입이 평균적으로 90% 정도를 차지하고 있으며 기부금과 회비 수입의 비율은 8%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NPO법은 대부분 기부금에 의해 운영되고 있을 것이라는 일반의 통념과는 다르게 나타난 것이다. 연간 평균 수입은 3300만 엔(약 4억6000만 원)으로 1억 엔(약 14억 원)을 넘는 NPO도 7%에 달했다.

또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유급 직원을 고용해도 문제가 없을 만큼 충분한 자금을 보유하고 있는 NPO 법인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유스비전이 2009년에 실시한 전국 조사 결과에 의하면 유급 직원의 60% 정도가 20~30대인 것으로 나타났다. NPO 법인이 젊은 세대에게 일자리까지 제공하고 있다는 뜻이다. 대기업에 들어갈 실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NPO 법인에 들어오는 젊은이들도 늘고 있다. NPO 법인에서 실력을 쌓은 뒤 벤처기업을 창업하는 등 다양한 인생 설계가 가능하다는 생각에서다.

저출산·고령화 시대가 되면서 수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공기관이나 일반 기업에서는 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아지고 있다. 이 때문에 이런 수요에 대응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해줄 수 있는 NPO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NPO 활동이 활성화됨에 따라 이제 NPO는 단순한 자원봉사 활동 차원을 넘어 사회공헌에 뜻이 있는 퇴직자들과 젊은 세대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몇 년 전부터 현역에서 물러난 전문가들이 NPO를 설립하거나 이미 설립된 단체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예를 들어 어려운 이웃을 위해 새로 집을 지어주거나 수리를 해주는 한 NPO의 경우는 본부 상근 직원 50명 중 10명이 정년퇴직자다. 전직 또한 건축설계사무소장, 건설시행사 임원, 대기업 계열사의 홍보 담당 간부, 은행 준법 감시인 등으로 매우 다양하다.

이 NPO 법인의 관계자에 의하면 정년퇴직자들을 고용하면 좋은 점이 많다고 한다. 우선 일을 하는 데 전문성이 있을 뿐 아니라 젊은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고용도 안정적이라고 한다. 30, 40대는 구하기도 어렵지만 들어왔다가도 금방 떠나는 경우가 많은데 퇴직자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책임감 또한 매우 강하다고 한다.

무엇보다 은퇴자들은 NPO 활동을 생업으로 여기지 않기 때문에 적은 비용으로 전문가를 활용할 수 있다. 이 NPO 법인은 일주일에 3일 정도 일하는 봉사자들에게는 교통비로 월 100만 원 정도를 지급한다고 한다.

선진국의 예를 보지 않더라도, 앞으로 우리나라에서도 NPO 활동이 더욱 왕성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경제력이 커지고 사회가 성숙하면 NPO의 역할이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기본생활비 정도는 걱정 없는 정년퇴직자들이 약간의 수입을 얻으면서 사회공헌 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가 그만큼 늘어난다는 뜻이다.

직장인들이 현역시절에 쌓은 전문성을 후반 인생에서는 사회공헌 활동으로 활용할 수 있는, 문자 그대로 ‘평생 현역’ 시대가 오고 있는 것이다.



일러스트 추덕영
강창희 미래에셋 퇴직연금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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