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KET LEADER] “주요국 새 정부 경기 부양 예상…철강 등 산업재 종목 수혜”
입력 2012-12-27 11:09:51
수정 2012-12-27 11:09:51
허남권 신영자산운용 자산운용본부장
허남권 신영자산운용 자산운용본부장은 “세계적으로 돈이 엄청나게 풀려 인플레이션이 안 일어날 수 없다”며 “가장 쉽게 인플레에 대처하는 방법은 우량 기업의 주식을 싸게 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허남권 신영자산운용 자산운용본부장은 국내 증권업계에서 대표적인 가치투자자로 통한다. 장기 투자 펀드로 유명한 ‘신영마라톤펀드’,‘신영밸류고배당펀드’ 등이 허 본부장의 가치투자 철학에 따라 운용되는 펀드들이다. 하반기 들어 중소형주 장세가 펼쳐지면서 이들 펀드의 수익률도 고공비행을 하고 있다.
그는 11월 8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내년에 글로벌 경기가 회복세로 돌아서면 철강, 석유화학, 기계 등 산업재 종목들이 제일 먼저 수혜를 볼 것”이라며 “업종 대표주는 업황이 최악일 때 싸게 사야 한다”고 말했다.
허 본부장은 하반기 들어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중소형주와 내수주에 대해서는 “주가가 8부 능선쯤에 도달했기 때문에 하차 시점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엔터주와 게임에 대해서는 기업의 지속성을 확신할 수 없고 기업 가치를 평가하기도 어렵다며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그는 이어 “한국 경제가 유례없는 저성장 시대에 접어든 만큼 어떤 상황에서도 안정적인 이익을 낼 수 있는 가치주들이 주목받는 장세가 펼쳐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향후 주식시장을 어떻게 전망하나
“상당히 좋게 보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정치적인 요인이다. 미국과 중국 모두 신정부가 출범한다. 정권 초기에는 경기 부양이 1차 목표다. 정부가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펼치면 기업들도 그동안 미뤄왔던 투자를 실행에 옮길 것이다. 연말로 갈수록 경제의 불확실성이 해소될 것이다.”
국내 경기는 여전히 좋지 않다. 내년에도 2%대 성장에 그칠 것으로 예상되는데.
“국고채 5년물 금리가 2%대로 떨어지면서 주식의 상대가치가 높아졌다. 그런데 아직까지 이런 부분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거시경제의 불확실성으로 주가가 눌려 있는 것이다. 하지만 국내 경기선행지수가 4분기 중에 바닥을 찍고 돌아설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주식시장도 살아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어떤 종목에 투자해야 하나.
“글로벌 경기가 회복되면 철강, 석유화학, 기계 등 산업재 업종이 1차적으로 수혜를 볼 가능성이 높다. 이들 업종은 작년 4월이 ‘상투’였다. 그때와 비교하면 주가도 50~60%가량 하락한 상태라 싼 편이다.”
산업재 업종은 당분간 회복이 불가능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은데.
“공급 과잉 문제가 심각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경기와 마찬가지로 업황도 순환하기 마련이다. 업황이 안 좋을 때 살아남은 기업들은 호황기에 그 과실을 독점한다. 따라서 각 업종의 1등 기업들은 업황이 최악일 때 관심을 가져야 싸게 살 수 있다. 다만 업종 2, 3등 기업들은 업황이 호황일 때 사는 게 맞다.”
올해 중소형주 중에서 모바일·중국 소비·엔터테인먼트 관련주들이 좋았다.
“엔터주는 기업의 지속성을 확신할 수 없어 투자하지 않았다. 기업 가치를 평가하기도 어렵다. 게임주도 같은 이유에서 투자하지 않는다. 중국 소비 관련주들은 애널리스트들이 계속 목표 주가를 높이고 있는데, 우리는 꾸준히 분할 매도하고 있다. 파라다이스, 호텔신라 등은 5년 전에 투자했다. 8부 능선쯤에서 분할 매도하는 게 현명하다.”
신영자산운용의 종목 선택 기준은 무엇인가.
“배당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기업이 1차 투자 대상이다. 그러려면 수익성이 좋고, 자산 가치도 높아야 한다. 단기간의 시세차익은 중요하지 않다. 배당수익률이 좋은 기업에 4~5년 정도 장기 투자하면 시세차익과 배당수익 둘 다 먹을 수 있다.
우리는 보통 투자를 할 때 현재 가치를 70%, 미래 가치를 30% 정도 보고 결정한다. 현재 가치로 따져도 주가가 싸고, 미래에 계속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기업들을 골라내는 것이다.
과거 중소형주에는 그런 종목들이 많았다. 그러나 올해 들어서는 중소형주가 많이 올랐다. 올 들어 우리 펀드들의 수익률이 좋은 것도 우리의 투자 스타일에 맞는 장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모든 것을 백지상태에 놓고 어떤 주식에 투자하겠냐고 물어보면 망설여질 수밖에 없다. 신규로 사기엔 가격 부담이 있는 종목들이 많다.”
그럼 중소형주에 대한 가치투자는 이제 힘들어진 것인가.
“그렇진 않다. 사람들이 눈여겨보지 않는 쪽에서 ‘보물’을 찾아야 한다. 현재 각광받고 있는 업종이나 종목이 아니라 반대쪽으로 가야 한다. 지금 중요한 건 우리 경제가 이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했던 ‘저성장·저금리’ 시대에 진입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일찍이 이런 저성장 국면에서 주식투자를 해 본 경험이 없다.”
현재 시점에서 중장기적으로 유망한 종목은 어떤 종목인가.
“장기적으로 유망한 종목은 ‘순수 가치주’다. 이제 가치주가 각광받을 시대가 됐다. 채권 금리가 2%대인데, 이런 상황에서 금리 이상의 수익을 낼 수 있는 자산이 뭐가 있을까를 고민해봐야 한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안정적으로 높은 배당을 주는 기업들이다. 이제 국내에서도 시세차익을 보고 부동산에 투자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졌다.
주식도 조만간 그런 시대가 올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회사가 앞으로 5년간 장사를 잘 해서 나한테 배당을 줄 수 있을까’를 기준으로 종목 선택을 하게 될 것이다. 결국 사람들은 장기 투자를 강요당하게 될 것이다. 이런 상황을 뚫고 나갈 수 있는 기업은 진짜 경쟁력 있는 기업밖에 없다.
그런 기업의 주주가 돼야만 내 자산을 지키거나 늘릴 수 있다. 다행스러운 건 인플레가 없다는 거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돈을 엄청나게 풀었기 때문에 경기가 회복세로 돌아서면 인플레가 안 일어날 수가 없다. 인플레에 대비할 수 있는 건 결국 실물자산밖에 없다. 그중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우량 기업의 주식을 싸게 사는 것이다.”
장기 투자하기에 좋은 기업은 어떤 기업인가.
“좋은 기업은 여러분들이 생각하기에 내가 오너라도 충분히 경영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야 한다. 무슨 말인고 하니 비즈니스 구조가 아주 단순하고 경쟁력과 독점력이 있어야 한다. 가치투자자들이 정보기술(IT) 업종이나 바이오 업종에 잘 투자 안 하는 이유도 사업구조가 너무 복잡하고 기술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빠르기 때문이다. 이런 기업들은 아무나 경영해서는 안 된다.”
국내 증시가 장기 박스권에 진입했다는 시각에 동의하나.
“장기 박스권은 아닌 것 같다. 국내 유동성이 계속 유입될 것이기 때문이다. 주식시장 외에 돈이 갈 데가 없다. 다만 지금 당장은 아니다. 불확실성이 너무 많다. 지금은 미래에 대한 기대가 없는 시기다. 이럴 때는 밸류에이션을 믿고 투자해야 한다.”
개인투자자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나.
“주식의 변동성을 시간으로 헤지하라고 얘기하고 싶다. 좋은 종목을 골라서 분할 매수, 분할 매도를 해야 한다. 또 목표에 의한 관리를 해야 한다. 1년 목표수익률을 20%로 정했으면, 그 목표치를 달성하는 순간 차익을 실현해야 한다.”
글 김동윤 한국경제 기자oasis93@hankyung.com 사진 정동헌 한국경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