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SPI] 증시 최대 변수로 떠오른 환율, 원화강세 시대의 투자 전략

환율은 외국인의 국내 주식 매매 방향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투자자들이 환율 흐름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주식시장 전문가들이 내년 국내 증시의 주요 변수로 꼽는 것 중 하나가 환율이다. 미국 달러에 대한 원화 환율은 지난 5월 25일 1185원50전에서 연중 최고점을 찍은 후 꾸준히 하락했다. 10월 들어서는 1100원을 깨고 내려서면서 이후 연중 최저치를 거듭 경신했다.

환율이 하락한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원화 가치가 상승한다는 것으로 한국의 경제 상황이 다른 나라보다 좋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환율이 하락할 때는 주가가 상승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환율이 지나치게 하락하면 수출품의 가격경쟁력이 약해지고 원화로 환산한 기업 이익이 줄어 수출 기업의 채산성이 악화할 수 있다. 환율은 외국인의 국내 주식 매매 방향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투자자들이 환율 흐름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환율, 중장기 하락 전망

환율은 중장기적으로 하락세를 이어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무엇보다도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 중앙은행이 자국 통화 공급을 늘리는 양적완화(QE) 정책을 펼쳐 원화의 상대적 가치가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 한국은행도 기준금리를 인하하는 등 완화적 통화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선진국 중앙은행에 비해서는 통화 공급에 적극적이지 않다.

한국 경제의 기초 여건도 나쁘지 않은 편이다. 내년 경제성장률이 3%에도 못 미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지만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이 내년 마이너스 성장을 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것에 비하면 한국 경제 사정이 그나마 낫다.

새 정부의 경제정책 역시 환율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유력 대선후보들은 모두 경제민주화를 내세우는 등 서민과 중소기업에 우호적인 방향으로 경제정책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환율이 하락해야 서민의 실질 구매력을 높이고 원자재 수입 의존도가 높은 중소기업의 부담을 덜어 줄 수 있다.

미국 재정절벽(fiscal cliff) 우려는 환율 하락을 제한할 수 있는 변수다. 재정절벽은 세금 감면 혜택과 재정 지출이 새해 들어 갑자기 줄어 경제에 충격을 주는 것을 말한다. 유럽 재정 위기가 수면으로 떠오르는 경우에도 환율은 일시적으로 상승세로 돌아설 수 있다.


최근 환율 하락은 엔·달러 환율 상승(엔화 약세)과 함께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우려스럽다. 국내 주력 업종 기업들이 해외 시장에서 주로 일본 업체와 경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나친 환율 하락은 주가에 부담

국내 주가와 환율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주가가 상승할 때 환율은 하락하고 주가가 하락할 때 환율은 상승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처럼 환율이 하락하는 국면에서는 주가 상승을 기대해 볼 수 있다. 문제는 환율이 일정 수준 아래로 떨어지면 국내 기업의 수출 채산성이 악화돼 주가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환율이 장기간 하락을 지속하다가도 어느 순간 상승세로 돌아서 급등하곤 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환율이 수출 기업의 가격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수준까지 떨어지면 수출이 줄고 경상수지가 적자로 전환, 환율을 끌어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한 것이다.

환율은 국내 증시의 주요 수급 주체인 외국인 매매 동향과도 연관성이 높다. 통상 외국인은 환율이 하락하는 국면에서 국내 주식을 순매수한다. 환율이 하락한다는 것은 한국 경제가 좋아지는 것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환율이 하락하는 만큼 외화로 환산한 국내 주식의 가격이 상승, 환차익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은 그러나 환율이 일정 수준 아래로 떨어지면 오히려 국내 주식을 순매도하는 경향을 보였다. 분기점은 원·달러 환율 1100원이다. 한국은행과 동양증권의 분석에 따르면 2007년 11월부터 올 10월까지 5년간 외국인은 원·달러 환율이 1100~1150원일 때 유가증권 시장에서 30조6810억 원어치를 순매수했다.

반면 원·달러 환율이 1050~1100원인 시기에는 3조3868억 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원·달러 환율이 1000원 미만이었을 때 외국인 순매도 규모는 22조5874억 원에 이른다. 환율이 지나치게 하락해 수출 기업의 채산성을 악화시키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판단되면 외국인은 국내 주식을 팔고 나간 것으로 분석된다.

이재훈 미래에셋증권 시황분석팀장은 “1100원 이하에서는 원·달러 환율이 하락할수록 외국인의 주식 매수세가 약해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항공·여행업계 환율 하락 수혜

환율이 주가에 미치는 영향은 업종 및 종목별로 다르게 나타난다. 환율 하락세가 지속된다면 항공, 여행, 음식료 등의 업종이 수혜를 입을 전망이다. 항공 업종은 연료 구입비용이 감소하고 해외여행 수요가 증가한다는 점에서 환율 하락이 호재다. 여행업계 역시 해외여행 수요 증가에 따라 실적이 좋아질 전망이다. 음식료 업종은 원재료 수입 의존도가 높아 환율이 하락하면 비용 부담을 줄일 수 있다.

미국 투자은행(IB) 모건스탠리는 원·달러 환율이 1% 하락할 경우 대한항공의 내년 주당순이익(EPS)이 8.3% 증가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아시아나항공의 내년 EPS도 2.5% 증가할 것으로 추정됐다. 이 밖에 한국전력(6.2%), 현대제철(4.0%), CJ제일제당(2.8%), 한국가스공사(2.5%), 포스코(2.0%) 등이 환율 하락 시 이익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됐다.

강현철 우리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원·달러 환율이 비교적 낮았던 노무현 정부(2003~2007) 시절을 돌이켜보면 수출 기업의 이익 증가세는 둔해지고 내수주는 안정적인 이익을 냈다”며 “환율 하락이 지속되면 내수주가 강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강현기 아이엠투자증권 연구원은 “금속 및 광물, 은행, 에너지 관련 종목도 환율 하락 수혜주”라고 말했다.



자동차·IT 업종엔 부정적

수출 비중이 높은 자동차와 정보기술(IT)은 환율 하락 시 피해를 입는 업종으로 분류된다. 국내 기업이 해외 생산 비중을 높이고 수출 지역을 다변화해 환율이 실적에 미치는 영향이 과거보다 줄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지만 환율 하락이 수출 기업의 채산성에 일정 부분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다.

모건스탠리는 원·달러 환율이 1% 하락하면 현대미포조선의 내년 EPS가 3.6% 감소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기아차(-1.6%), 고려아연(-1.5%), 현대모비스(-1.2%), 현대차(-1.2%)도 환율 하락 시 이익이 감소할 것으로 추정됐다. 최근 환율 하락은 엔·달러 환율 상승(엔화 약세)과 함께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우려스럽다. 국내 주력 업종 기업들이 해외 시장에서 주로 일본 업체와 경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원화 강세와 엔화 약세가 동시에 진행되면 일본 기업과 비교해 한국 기업의 가격경쟁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동양증권이 원·엔 환율과 업종별 주가 등락을 분석한 결과 원·엔 환율이 1% 하락하면 화학 업종 주가는 0.31%, 자동차 등 운송장비 업종 주가는 0.22%, 전기전자 업종은 0.21%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차와 기아차가 지난 10월 이후 하락세를 보인 배경 중 하나가 환율 하락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유승호 한국경제 기자 usho@hankyung.com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