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일본 경제의 교훈] 법무법인 광장 다마키 타다시 고문이 겪은 1990년 이후 일본 경제
입력 2012-11-28 11:29:53
수정 2012-11-28 11:29:53
다마키 타다시 법무법인 광장 고문은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 기자 출신으로 미국과 한국 특파원을 지냈다. 일본과 미국, 한국의 경제 상황에 누구보다 밝은 그가 1980년대 이후 경험한 일본의 경제 상황을 들려주었다.
다마키 타다시 법무법인 광장 고문은 평소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의 가장 큰 원인으로 고령화를 들었다. 고령화는 최근 한국 경제의 가장 큰 화두이기도 하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일본 내에서는 장기 불황을 원인을 엔고에서 찾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지금은 고령화에 근본 원인이 있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돌아보면 고령화를 너무 쉽게 생각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는 일본뿐 아니라 현재 스페인 등 세계 경제의 위기도 그 원인이 고령화에 있다고 본다. 나라에 따라 다양한 원인들이 있겠지만 공통점은 고령화 문제라는 것이다.”
일본은 1990년 이후 잃어버린 20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당시에는 지금 같은 위기가 올 거라고 짐작하지 못했나.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일본은 전후 꾸준히 경제가 성장했기 때문에 지금의 상황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개인적으로 부동산으로 적잖은 손해를 봤다고 들었다.
“그렇다. 1980년대 일본은 자동차, 가전 등에서 벌어들인 돈이 풍부했다. 당시는 단카이 세대(團塊世代·1947~50년생)가 40대에 접어든 시기로 그들이 내 집 마련에 나서면서 부동산 가격이 치솟았다. 개인적으로 1980년대 후반 결혼했는데 정작 내 집 마련은 1990년이 돼서야 했다. 1980년대 중반 이후 부동산이 지속적으로 올랐기 때문이다. 부동산 가격이 계속 오르는 것을 보고 1990년, 도심에서 40분 거리에 있는 아파트를 5400만 엔에 구입했다.”
그 뒤 아파트 가격이 어떻게 됐나.
“아파트를 구입한 후 1992년 미국 특파원으로 파견됐다. 1995년 특파원 생활을 마치고 귀국해보니 아파트 가격이 2800만 엔으로 떨어져 있었다. 이후 아파트 가격이 계속 떨어져서 1998년 2100만 엔에 매각했다.”
1990년에 아파트 가격이 지속적으로 오를 거라고 예상했나.
“떨어질 거라고 생각했으면 샀겠는가. 당시는 누구도 부동산 가격이 떨어질 거라는 예상을 하지 못했다. 한국의 ‘강남 불패신화’처럼 당시 일본에서는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다마키 고문과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이 많나.
“직장 동료 대부분이 비슷한 경험을 했다. 내 경우는 매각 금액이 은행 대출금보다 많아서 그나마 새로 시작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고 매각금으로 은행 대출을 다 못 갚는 이들도 많았다.”
한국에서는 주거용 부동산 시장이 침체되면서 일정한 수익을 안겨주는 수익형 부동산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일본에서도 그런 현상이 있었나.
“싱글들 사이에 안정적으로 임대 수익을 보려고 투자하는 경향이 있다. 당연히 도심에서 가깝고, 지하철역에서 가까운 곳이 인기가 있다.”
은퇴한 이들은 어떤 주택을 선호하는가.
“도심의 아파트는 임대를 주고, 교외 단독주택으로 이주하는 은퇴자들이 늘고 있다. 붐을 이룰 정도로 요즘은 그런 사람들이 많다.”
고령화와 함께 한국 경제의 또 다른 이슈가 저성장이다.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겨우 2%대다. 1990년 중반 6%대 성장을 한 데 비하면 절반도 안 되는 수준이다.
“아마 그런 상황이 지속된다고 봐야 한다. 한국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2만 달러가 넘고, 인구도 5000만 명이 넘는 경제대국이다. 이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세계적으로 1인당 GDP가 2만 달러 이상인 나라 중에서 한국과 같은 경제성장률을 유지하는 곳이 있나. 한국도 저성장과 저금리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본다.”
경제성장률과 함께 금리도 떨어져 현재는 시중은행의 예금금리가 3%대다. 저금리 상황이 지속되면서 투자자들이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일본은 1990년대 초반 이후 금리가 지속적으로 하락해 제로금리가 된 지 오래다. 한국에 와서 놀란 것 중 하나가, 통장 정리를 하는데 이자가 붙어있었던 것이다. 제로금리에 익숙한 나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한국도 지금의 상황을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는가.”
재테크도 3% 경제성장에 맞게 생각해야 한다는 말로 들린다.
“한국인들은 재테크를 할 때 리스크보다 리턴을 중시하는 듯하다. 어떤 나라에서 무엇을 하는 기업인지도 모르고 투자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과연 그게 합리적일까.”
부동산 시장은 20년간 침체기를 거쳤는데, 주식시장은 어떤가. 투자 성향이 한국과 일본이 다르기는 하지만 주식투자를 하는 이들도 있을 텐데.
“1985년에 일본전신전화공사(지금의 NTT) 민영화가 발표되고, 국민주 방식으로 개인 공모를 받았는데 당시에 투자 붐이 일었다. 4만 엔까지 올랐던 주가가 현재는 8000~9000엔 수준이다.”
다른 기업들은 어떤가. 기업에 따라 상황이 다를 텐데.
“알다시피 최고 기업이던 소니나 파나소닉은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반면 시대에 맞게 변한 기업들, 이를테면 에너지 기업으로 변신한 미쓰비시 상사나 정보기술(IT)과 스마트 인프라 사업에 치중한 히타치 등은 지금도 건재하다.”
결과적으로 지난 20년, 가장 안정적인 수익을 낸 상품은 어떤 것을 꼽을 수 있나.
“금이다. 다른 상품들은 부침이 있었지만 금은 꾸준히 가격이 올랐다. 또 하나 꼽자면 엔화를 들 수 있다. 1980년대 중반 1달러에 200엔이던 환율이 지금은 1달러에 80엔으로 올랐다.”
고령화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나눴으면 한다. 한국의 고령화와 일본의 고령화는 닮은 점이 많다.
“연령대별 인구 피라미드가 시간에 따라 변하는 모습을 보면 일본과 한국은 너무도 비슷하다. 그만큼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한국은 압축 성장을 하는 과정에서 사회안전망이 부족하다.”
한국은 베이비붐 세대가 이제 은퇴를 시작한다. 일본의 단카이 세대는 이미 은퇴를 했다. 그들의 생활은 어떤가.
“앞에서 말했지만 일본은 한국보다 사회안전망이 튼튼하다. 직장에서도 정년이 보장된다. 중소기업에 다닌 직장인이 은퇴를 한다면 공적연금과 기업연금 등을 합해 적어도 20만 엔 정도의 연금을 받는다. 대기업에 다녔다면 40만 엔 정도를 받는다. 그 정도면 은퇴생활이 위험한 수준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는 의식주를 해결하지 못하는 노인을 가리키는 ‘노후난민’이라는 단어가 생겼다.
“일본에서 간혹 아사자(餓死者)가 생겼다는 뉴스를 접하고 나도 놀란다. 21세기 일본에서 이런 일이 가능한가 하고. 한국인들은 현재 일자리에 대한 불안감이 너무 커서 10년, 20년 후를 준비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러나 10년, 20년은 금방 지난다. 노후 준비는 지금의 가치관이나 막연한 생각으로 대해서는 안 된다. 냉정하게 자기 자신의 현재를 직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음식을 먹고 어떤 운동을 하느냐보다 아침에 체중계에 올라가는 게 가장 좋은 다이어트법이라는 말도 있지 않는가. 노후 준비도 현실 인식이 중요하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요즘 일본인들이 노후 준비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야기해 줬으면 한다.
“일본에서는 전체 인생을 교육 30년, 직장생활 30년, 나머지 30년으로 본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이 나머지 30년이다. 어릴 때 공부를 얼마나 잘하고, 직장에서 전무, 사장을 하더라도 나머지 30년이 불행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나머지 30년에 전체 인생의 행복과 불행이 정해진다.”
신규섭 기자
일러스트 허라미
다마키 타다시 법무법인 광장 고문은 평소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의 가장 큰 원인으로 고령화를 들었다. 고령화는 최근 한국 경제의 가장 큰 화두이기도 하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일본 내에서는 장기 불황을 원인을 엔고에서 찾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지금은 고령화에 근본 원인이 있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돌아보면 고령화를 너무 쉽게 생각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는 일본뿐 아니라 현재 스페인 등 세계 경제의 위기도 그 원인이 고령화에 있다고 본다. 나라에 따라 다양한 원인들이 있겠지만 공통점은 고령화 문제라는 것이다.”
일본은 1990년 이후 잃어버린 20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당시에는 지금 같은 위기가 올 거라고 짐작하지 못했나.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일본은 전후 꾸준히 경제가 성장했기 때문에 지금의 상황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개인적으로 부동산으로 적잖은 손해를 봤다고 들었다.
“그렇다. 1980년대 일본은 자동차, 가전 등에서 벌어들인 돈이 풍부했다. 당시는 단카이 세대(團塊世代·1947~50년생)가 40대에 접어든 시기로 그들이 내 집 마련에 나서면서 부동산 가격이 치솟았다. 개인적으로 1980년대 후반 결혼했는데 정작 내 집 마련은 1990년이 돼서야 했다. 1980년대 중반 이후 부동산이 지속적으로 올랐기 때문이다. 부동산 가격이 계속 오르는 것을 보고 1990년, 도심에서 40분 거리에 있는 아파트를 5400만 엔에 구입했다.”
그 뒤 아파트 가격이 어떻게 됐나.
“아파트를 구입한 후 1992년 미국 특파원으로 파견됐다. 1995년 특파원 생활을 마치고 귀국해보니 아파트 가격이 2800만 엔으로 떨어져 있었다. 이후 아파트 가격이 계속 떨어져서 1998년 2100만 엔에 매각했다.”
1990년에 아파트 가격이 지속적으로 오를 거라고 예상했나.
“떨어질 거라고 생각했으면 샀겠는가. 당시는 누구도 부동산 가격이 떨어질 거라는 예상을 하지 못했다. 한국의 ‘강남 불패신화’처럼 당시 일본에서는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다마키 고문과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이 많나.
“직장 동료 대부분이 비슷한 경험을 했다. 내 경우는 매각 금액이 은행 대출금보다 많아서 그나마 새로 시작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고 매각금으로 은행 대출을 다 못 갚는 이들도 많았다.”
한국에서는 주거용 부동산 시장이 침체되면서 일정한 수익을 안겨주는 수익형 부동산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일본에서도 그런 현상이 있었나.
“싱글들 사이에 안정적으로 임대 수익을 보려고 투자하는 경향이 있다. 당연히 도심에서 가깝고, 지하철역에서 가까운 곳이 인기가 있다.”
은퇴한 이들은 어떤 주택을 선호하는가.
“도심의 아파트는 임대를 주고, 교외 단독주택으로 이주하는 은퇴자들이 늘고 있다. 붐을 이룰 정도로 요즘은 그런 사람들이 많다.”
고령화와 함께 한국 경제의 또 다른 이슈가 저성장이다.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겨우 2%대다. 1990년 중반 6%대 성장을 한 데 비하면 절반도 안 되는 수준이다.
“아마 그런 상황이 지속된다고 봐야 한다. 한국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2만 달러가 넘고, 인구도 5000만 명이 넘는 경제대국이다. 이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세계적으로 1인당 GDP가 2만 달러 이상인 나라 중에서 한국과 같은 경제성장률을 유지하는 곳이 있나. 한국도 저성장과 저금리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본다.”
경제성장률과 함께 금리도 떨어져 현재는 시중은행의 예금금리가 3%대다. 저금리 상황이 지속되면서 투자자들이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일본은 1990년대 초반 이후 금리가 지속적으로 하락해 제로금리가 된 지 오래다. 한국에 와서 놀란 것 중 하나가, 통장 정리를 하는데 이자가 붙어있었던 것이다. 제로금리에 익숙한 나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한국도 지금의 상황을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는가.”
재테크도 3% 경제성장에 맞게 생각해야 한다는 말로 들린다.
“한국인들은 재테크를 할 때 리스크보다 리턴을 중시하는 듯하다. 어떤 나라에서 무엇을 하는 기업인지도 모르고 투자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과연 그게 합리적일까.”
부동산 시장은 20년간 침체기를 거쳤는데, 주식시장은 어떤가. 투자 성향이 한국과 일본이 다르기는 하지만 주식투자를 하는 이들도 있을 텐데.
“1985년에 일본전신전화공사(지금의 NTT) 민영화가 발표되고, 국민주 방식으로 개인 공모를 받았는데 당시에 투자 붐이 일었다. 4만 엔까지 올랐던 주가가 현재는 8000~9000엔 수준이다.”
다른 기업들은 어떤가. 기업에 따라 상황이 다를 텐데.
“알다시피 최고 기업이던 소니나 파나소닉은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반면 시대에 맞게 변한 기업들, 이를테면 에너지 기업으로 변신한 미쓰비시 상사나 정보기술(IT)과 스마트 인프라 사업에 치중한 히타치 등은 지금도 건재하다.”
결과적으로 지난 20년, 가장 안정적인 수익을 낸 상품은 어떤 것을 꼽을 수 있나.
“금이다. 다른 상품들은 부침이 있었지만 금은 꾸준히 가격이 올랐다. 또 하나 꼽자면 엔화를 들 수 있다. 1980년대 중반 1달러에 200엔이던 환율이 지금은 1달러에 80엔으로 올랐다.”
고령화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나눴으면 한다. 한국의 고령화와 일본의 고령화는 닮은 점이 많다.
“연령대별 인구 피라미드가 시간에 따라 변하는 모습을 보면 일본과 한국은 너무도 비슷하다. 그만큼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한국은 압축 성장을 하는 과정에서 사회안전망이 부족하다.”
한국은 베이비붐 세대가 이제 은퇴를 시작한다. 일본의 단카이 세대는 이미 은퇴를 했다. 그들의 생활은 어떤가.
“앞에서 말했지만 일본은 한국보다 사회안전망이 튼튼하다. 직장에서도 정년이 보장된다. 중소기업에 다닌 직장인이 은퇴를 한다면 공적연금과 기업연금 등을 합해 적어도 20만 엔 정도의 연금을 받는다. 대기업에 다녔다면 40만 엔 정도를 받는다. 그 정도면 은퇴생활이 위험한 수준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는 의식주를 해결하지 못하는 노인을 가리키는 ‘노후난민’이라는 단어가 생겼다.
“일본에서 간혹 아사자(餓死者)가 생겼다는 뉴스를 접하고 나도 놀란다. 21세기 일본에서 이런 일이 가능한가 하고. 한국인들은 현재 일자리에 대한 불안감이 너무 커서 10년, 20년 후를 준비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러나 10년, 20년은 금방 지난다. 노후 준비는 지금의 가치관이나 막연한 생각으로 대해서는 안 된다. 냉정하게 자기 자신의 현재를 직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음식을 먹고 어떤 운동을 하느냐보다 아침에 체중계에 올라가는 게 가장 좋은 다이어트법이라는 말도 있지 않는가. 노후 준비도 현실 인식이 중요하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요즘 일본인들이 노후 준비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야기해 줬으면 한다.
“일본에서는 전체 인생을 교육 30년, 직장생활 30년, 나머지 30년으로 본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이 나머지 30년이다. 어릴 때 공부를 얼마나 잘하고, 직장에서 전무, 사장을 하더라도 나머지 30년이 불행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나머지 30년에 전체 인생의 행복과 불행이 정해진다.”
신규섭 기자
일러스트 허라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