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Interview] “세상을 바꾸는 건 상상력이 담긴 질문,3D 솔루션이 그답을 찾아주죠”
입력 2012-11-28 14:00:59
수정 2012-11-28 14:00:59
조영빈 다쏘시스템코리아 대표
북극의 얼음을 물이 필요한 사막까지 옮길 수 있을까? 해저 몇 미터에 프로펠러를 설치하면 에너지를 만들 수 있을까?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어떻게 만들었을까? 황당하지만 인간의 상상력이 담겨있는 질문들. 상상이 가상현실을 거쳐 현실이 될 수 있도록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업체가 있다. 3D솔루션 업체 다쏘시스템이다.프랑스에 본사를 두고 있는 다쏘시스템은 전투기 ‘미라지’, ‘라팔’ 등으로 잘 알려진 항공기회사 다쏘항공의 자회사다. 3D 설계 소프트웨어인 ‘솔리드웍스’, 설계·분석·조립 등 제품의 전 제조 과정을 가상으로 해볼 수 있는 솔루션 ‘카티아’, 가상 테스트용 프로그램 ‘시뮬리아’ 등이 주요 제품이다. 1981년 설립돼 38개국에 107개 지사를 두고 있다. 다쏘시스템의 한국지사를 맡고 있는 조영빈 대표를 만났다.
1967년생
영국 에섹스대 경제학과 졸업
일본 인터내셔널대 MBA
경희대 경제학 박사
1997년 다쏘시스템 국내 재무팀 매니저
2006년 다쏘시스템 중국 PLM 채널 총괄 상무
2007년 다쏘시스템코리아 지사장
2010년 다쏘시스템코리아 대표이사(현)
본사 로비에 있는 홍보 포스터를 보니 사업이 자원, 제조업, 제품관리 등 방대한 영역에 걸쳐 있습니다. 다쏘시스템은 어떤 일을 하는 회사입니까.
“다쏘시스템은 3D솔루션을 제공하는 회사입니다. 처음에는 항공기회사였어요. 비행기 설계에 쓰인 3D 설계 노하우를 보잉이나 록히드마틴 같은 항공사가 상용화하자고 요구해서 1981년 다쏘시스템을 설립했고 이후 이 소프트웨어가 항공기, 자동차를 비롯한 제조업 전반으로 확산됐습니다.
그러다가 3D를 제조뿐 아니라 일상에도 적용하기 시작했고, 이제는 더 나아가 빅데이터를 이용해 과거, 현재,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요금제를 바꿨을 때 통신회사의 고객이 어떻게 움직일지, 보험회사의 직원을 교육했을 때 어떤 퍼포먼스가 나올지 등이죠.”
처음에는 3D를 이용한 설계를 했고, 그것이 제조 분야를 넘어서 이제 지식산업 분야에 적용한다는 건데요. 그 변화 과정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십시오.
“10년 단위로 전략을 나눌 수 있습니다. 1980년대에는 단순히 3D 설계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었어요. 그러다 1990년대 ‘DMU(Digital Mock Up)’를 시작했죠. 만약 컵을 만든다 치면, 예전에는 하나하나 깎아서 만들어보고, 직접 사용해본 다음에 좋다 싶으면 대량 생산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걸 디지털로 제품을 만들어보고 테스트한 다음에 실제 생산에 들어가는 거예요. 일종의 가상 샘플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2000년대에는 제품을 관리하는 것까지 개념을 확장했어요. 그게 ‘PLM(Product Lifecycle Management)’입니다.
제품의 아이디어 단계부터 개발, 생산, 소비, 폐기까지 일련의 과정을 시뮬레이팅 하는 거예요. 2010년에 설정한 전략은 ‘3D 익스피리언스’입니다.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일상영역에서 과거를 분석하고 현재 상황을 보고 미래를 예측하는 거죠.”
3D 익스피리언스는 어떤 분야에 쓰입니까.
“산업별로 요구하는 분야가 다양하지만 저희가 생각하는 중심축은 제품, 자연, 사람입니다. 특히 최근에는 자연환경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하고 있어요. 태풍이 왔을 때 배가 어떤 속도로 지나가야 파도를 이기는지, 지진이 났을 때 건물이 어느 강도까지 견디는지 같은 거죠.
최근에는 지질학 시뮬레이션회사인 ‘젬콤’을 인수했어요. 광산, 석유, 천연가스를 탐사하기 전에 미리 3D로 확인하고 어디를 어떻게 탐사하는 게 빠르고 효율적인지 프로젝트를 관리하고 있습니다. 또 신약 실험도 가능하죠. 미토콘드리아와 같은 세포기관까지 3D로 시뮬레이션해 임상실험에 활용하고 있습니다.”
현실에서 하기 힘든 것을 가상으로 한다면 비용절감 효과가 크겠군요.
“물론입니다. 동대문 플라자 건물을 저희 시스템으로 설계했는데요, 보시면 알겠지만 건물이 독특하게 생겼어요. 이것이 가능할지 여부를 세우고 부수는 작업 없이 알아볼 수 있는 거죠. 자동차 충돌실험이나 휴대전화 파손 테스트도 마찬가지고요. 수백 대를 실제로 부술 필요 없으니 들어가는 비용은 컴퓨터 전기세밖에 없는 셈이죠. 또 저는 이것이 녹색성장의 근본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원과 에너지 낭비를 줄이니까요.”
하지만 컴퓨터로 시뮬레이션 하는 것과 실제로 하는 것이 차이가 있지 않을까요.
“99% 같습니다. 보잉777기가 나왔을 때 처음 사람들이 직접 만들지 말고 3D로 테스트 해보자고 했어요. 후문으로는 3D 테스트가 끝나고 진짜 비행기가 나왔을 때 아무도 안 타려고 했다는데, 막상 첫 비행은 테스트와 똑같이 성공적이었어요.
베트남 댐 건설 프로젝트도 있었죠. 댐을 만들 때 어디에다 해야 할지, 어느 지역까지 수몰되는지 예측하는 게 힘들다고 해요. 그걸 저희 시스템으로 구현했는데 실제와 90% 정도 일치했다고 합니다.”
결국 상상력의 싸움입니다. ‘누가 먼저 상상해서 융합을 빨리 할 수 있는가’라는 거죠.
3D 솔루션을 활용하는 국내외 기업은 어디가 있습니까.
“국내에서는 현대자동차가 가장 큽니다. 자동차 설계에 1981년부터 사용하고 있고요. 그 외에는 LG전자,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대한항공 등에서 활용하고 있습니다. 해외 기업 중에는 도요타와 보잉이 대표적이고요. 피앤지(P&G)도 있어요. 피앤지는 기저귀 성능을 3D로 구현해서 소변이 어떻게 스며드는지를 보는 거죠. 까르푸에서는 3개월마다 매장 진열을 바꾸는데 회의하면서 3D로 시뮬레이션 해보는 방식으로 소요시간을 단축시키고 있습니다.”
3D의 응용 분야가 다양하군요.
“결국은 상상력의 싸움입니다. 다쏘시스템의 구호 중에 ‘제대로 된 질문을 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가 있어요. 지금은 ‘누가 먼저 상상해서 융합을 빨리 할 수 있는가’라는 거죠. 그런 부분 때문에 본사에서도 한국에 기대가 커요. 새로운 것에 대한 접목이 빠른 곳이기 때문에 많은 일이 벌어지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본사와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처음에는 안 좋았어요. 고객이 워낙 터프하니까요. 그리고 한국 사람의 장점이자 단점이 본인 얘기를 잘 하지 않아요. 잘 듣긴 하는데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겠고 그러다 보니 외국에서는 이해를 못하더라고요. 그래서 처음 2~3년간 한국을 이해시키고 가르쳐야 했어요. 이제는 회장님도 한국을 믿어요.
‘한국이 말을 하지 않을 뿐이지 기본 재능이 있으니 거꾸로 한국의 얘기를 들어봐라’ 하면서요. 한국지사에 대해서도 ‘뭘 해라’가 아니라, ‘뭘 하고 싶냐, 도와주겠다’는 식으로 얘기하고요. 미국·일본·유럽지사에서도 한국의 창의성을 배우는 입장이죠.”
일반적으로 창의성은 미국이나 일본이 뛰어나다는 인식이 있는데요.
“그게 어떻게 보면 제 캐릭터의 영향이 있어요. 외국인한테 무시당하기 싫어하거든요. 제 생각에는 우리나라 사람이 똑똑한데 배려가 너무 많아요. 가끔은 공격적이고 근본적인 질문을 해야 합니다. ‘왜 꼭 이렇게 해야 하는가. 저렇게 하면 더 좋은 거 아닌가’ 하는 것들이요.”
매출은 어떻습니까.
“작년 기준으로 850억입니다. 매년 20%대 성장을 하고 있기 때문에 올해는 1000억 정도의 매출을 예상합니다. 한국 외국계 정보기술(IT) 기업이 보통 본사 전체 매출의 1.5% 정도 된다고 하는데 저희는 3% 정도로 높은 편이죠.”
비결이 있습니까.
“운이 좋았죠. 전 해서 실패하는 건 좋아하지만, 안 해서 아무것도 안 생기는 것을 싫어해요. 실패, 뭐 어때요. 같은 실패는 반복하지 말아야 하지만 새로운 실패는 계속해야죠. 그렇게 도전이 쌓이다 보니까 좋은 운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의 목표를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외국계 기업이다 보니 한국에서 돈 벌어서 외국으로 보낸다는 인식이 있어요. 그래서 일자리를 중심으로 한국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지금 일자리 문제가 ‘일자리’가 없다기보다는 ‘원하는 일자리’가 없는 거잖아요. 저희 같은 IT업체가 그런 문제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재활복지대학의 청각장애인과 대구 소년원생들에게 IT 기술을 가르치고 있는 것도 그 일환이고요.”
글 함승민 기자 sham@hankyung.com 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