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 Life] 이름은 숨기고 호는 밝힌다

우리에게 이름은 무엇인가

중국과 우리나라에서는 옛날부터 한 사람이 많은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양반이라면 본명(本名)과 함께 어린아이 때 부르던 아명(兒名), 장가든 뒤에 성인으로서 본이름 대신 부르는 자(字)가 있는가 하면, 학자·문인·화가 등이 본명이나 자 이 외에 쓰는 또 하나의 이름인 아호(雅號)가 있다.

호는 어린아이에서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편하게 부를 수 있는 이름이다. 최근에는 디제이(DJ)니 엠비(MB)니 하며 영문 이니셜로 호를 대신해 부르기도 하고, 글로벌 시대인 요즘 연예인들은 투애니원(2NE1), 투피엠(2PM)과 같이 팀 이름을 암호처럼 짓기도 한다.

호는 본래 중국에서 정자, 별장, 주거, 출생지 등에 연유해서 붙인 것으로 시문이나 서화 등 작품의 서명(署名)에 많이 썼던 것인데, 송대(宋代)부터 그 사용이 보편화되면서 누구나 거리낌 없이 부르는 칭호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름을 드높이고 죽으면 나라에서 또 하나의 이름인 시호(諡號)를 내린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김춘수의 시 ‘꽃’을 보면 이름의 중요성은 너무나도 선명히 드러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그렇다. 이 시를 거꾸로 읽어보면,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은 것이다. 즉, 나는 너에게, 그리고 너는 나에게 잊히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은 것이다. 이렇게 ‘의미’가 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이름을 붙여주는 일이 필요하다.

이름은 또 한 사람의 의지의 표상일 수도 있다. 일제강점기 질곡의 시대에 우리 민족의 큰 지도자였던 백범 김구 선생은 실제로 이름을 여러 번 바꾸었다. 김구 선생의 어릴 때 이름은 창암(昌岩)이었다가 뒤에 동학에 입도하면서 창수(昌洙)로 바꾸었다.

그러다 일본 육군 중위 쓰지타(土田)를 때려 죽이고 도망 다니면서 다시 두래(斗來)로 행세했으며, 그 뒤 사대부 양반과 교유하면서 이름을 구(龜)로 지었고, 1912년 그의 나이 37세 때 감옥에 복역하면서 스스로 이름 구(龜)를 구(九)로 바꾸고 호를 백범(白凡)으로 했다.

김구의 자서전 ‘백범일지’에 보면 감옥 속에서 백범은 밤낮으로 ‘세상에 나가서 무슨 사업을 할까’ 생각하면서 이렇게 적고 있다.

“나는 결심의 표로 이름을 ‘구(九)’라 하고 호를 ‘백범(白凡)’이라 고쳐 가지고 동지들에게 알렸다. 구(九)로 한(限)함은 왜놈 민적에서 떨어져 나감이요, 호를 연하(蓮下)에서 백범(白凡)으로 고침은 감옥에서 다년 연구에 의해 우리나라 하등사회, 곧 백정(白丁)·범부(凡夫)들이라도 애국심이 지금의 나 정도는 돼 완전한 독립 국민이 되겠다는 바람을 가지자는 뜻에서였다.”

백범 김구 선생은 이렇게 깊은 뜻을 품으며 이름과 호를 바꿨던 것이다. 그는 이름을 바꿀 때마다 조국 사랑에 대한 각오를 새롭게 다지며 변신에 변신을 거듭했던 것이다.



이름은 숨기고 호는 밝힌다

전통적으로 우리 사회에서는 이름은 가급적 숨긴다. 누가 아버님의 이름을 물으면 “무슨 자 무슨 자 쓰십니다” 하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한다. 이렇듯 이름(名)이나 자(字)는 경명(敬名)사상으로 인해 존귀하게 여기고 함부로 부르지 않았다.

여기에 비해 호는 부모가 지어줄 수도 있지만 스승이나 선배, 동료나 후배 혹은 본인이 직접 지을 수 있어서 훨씬 만만하게 부를 수 있다. 그리고 이름은 숨기지만 호는 밝힌다. 그래서 낙관(落款: 서화 등에 찍는 이름과 호를 새긴 도장)에서 이름은 음각(陰刻: 글씨가 패어져 희게 드러나도록 조각)으로 하고 호는 양각(陽刻: 글씨를 도드라지게 해 붉은 인주가 묻도록 조각)으로 하는 것도 ‘이름은 숨기고 호는 밝힌다’는 의미가 숨어 있다.

서양에서는 처음부터 이름을 밝힌다. 그들은 실생활 속에서 위대한 선인들의 이름을 당당하게 내건다. 존경하는 선조의 이름을 그대로 가져와 자기 이름으로 쓰기도 하고 혹시나 혼돈할까 봐 1세, 2세를 뒤에 덧붙이기도 했다.

그리고 지명이나 건물 등에도 사람 이름 붙이기를 좋아한다. 미국의 곳곳에 있는 콜럼버스나 워싱턴, 링컨 등의 지명과 도로 이름, 존 하버드의 이름을 딴 하버드대 등과 같이 이름을 딴 대학 등은 너무나 많이 있으며, 대학의 도서관 이름, 오솔길 하나에도 유명한 사람의 이름을 자랑스럽게 붙인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에서는 이름은 뒤로 숨기고 호(시호 포함)는 밝힌다. 소극적으로 보이는 면이 없지 않으나 겸양을 중시하는 동양의 미덕이기도 하다. 이에 비해 북한에서는 ‘김일성대학’이나 ‘김책공대’와 같이 노골적으로 이름을 붙이는 경우가 있다.



부르기 좋고 아름다운 호를 짓는 방법

친구 사이 혹은 선후배 간에 호를 정답게 부르는 모습은 참으로 보기에 좋다. 이것은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이가 마흔 정도가 넘으면 호를 하나씩 가질 것을 권하고 싶다.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아름다운 호로는 ‘월탄(月灘)’을 들고 싶다. 달 월(月), 여울 탄(灘) 해서 ‘달 여울’이라. 소설가 박종화(朴鍾和)의 이 호는 예술가답게 얼마나 멋있고 아름다운가.

부르기 좋고 아름다운 호를 짓는 방법에는 의미에 따라 여러 가지가 있다.

첫째, 호는 그 사람의 고향이나 지명에서 따올 수 있다. 예로서 율곡(栗谷) 이이는 호로 미루어 ‘밤골(경기도 파주 율곡촌)’ 사람임을 알 수 있어서 호를 지을 때 먼저 그 사람이 태어난 고향 이름을 살핀다.

둘째, 좋아하는 자연 즉, 산과 들, 언덕과 바위, 돌 등의 무생물과 달과 구름, 가옥과 초목 등을 소재로 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산(山), 봉(峰), 곡(谷), 강(岡), 악(嶽) 등의 산과 현(峴), 애(厓), 파(坡), 제(堤), 암(巖), 석(石) 등이 있다. 그 예로는 고산(孤山) 윤선도, 다산(茶山) 정약용, 석파(石坡) 이하응 등이 있다.

셋째, 호는 어떤 사람의 특징을 나타낼 수 있다. 그 사람의 겉모습이나 특성, 예를 들면 우보(牛步) 민태원의 경우는 실제로 걸음걸이가 소처럼 느릿느릿했다고 한다. 이와 함께 호는 그 사람의 약점을 보완하는 방편으로 짓기도 한다. 호를 자신의 장점이나 특징을 나타내는 방법으로 쓰기도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거꾸로 자신의 특징과 반대되는 이름을 붙임으로써 약점을 보완하는 방편으로 짓기도 한다.

넷째, 본명은 하나이지만 호는 여러 개를 쓸 수 있다. 추사(秋史) 김정희의 경우 완당(阮堂), 예당(禮堂), 시암(詩庵), 과파(果坡), 노과(老果) 등 많은 호를 가지고 있어서 그 사람의 여러 면모를 나타냈다.

다섯째, 호는 그 사람의 이상, 마음 자세, 의지 등을 나타내는 방법으로 쓰기도 한다. 앞에서 예로 든 백범(白凡) 김구의 경우나 벼슬에서 물러난 이황은 ‘토계 위쪽에 물러나 거처한다’는 뜻으로 자신의 아호를 퇴계(退溪)로 했다.

이와 함께 자신의 이름과 유사하되 한자만 다르게 지어 성과 함께 부르되 뜻을 다르게 하는 경우도 있다. 석정(夕汀) 신석정, 상화(尙火) 이상화 등이 그렇다.

여섯째, 최근에는 순수 한글로 호를 짓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한글학자 주시경은 한흰샘이라 했고, 소설가 전영택은 늘봄, 국어학자 김윤경은 한결, 이 외에도 가람 이병기 등이 그렇다.



일러스트 추덕영
전진문 영남대 경영학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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