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th Interview] "암은 새 인생의 시작"

직장암 이겨낸 가정의학과 전문의 김선규

가정의학과 전문의 김선규 씨는 한국암환자협회장이자 암을 이긴 의사다. 수술 후 생활습관을 고쳐 암을 극복했다. 그가 의사로서, 또 암 경험자로서 말하는 암 극복 비결을 들어본다.


1998년 한 대학병원 진찰실. 대장내시경 모니터에 비친 시뻘건 덩어리를 보고 가정의학과 전문의 김선규 씨는 할 말을 잃었다. 그가 보고 있는 것은 환자가 아닌 자신의 대장이었다. 그리고 덩어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의사인 본인이 누구보다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암이었다.

어려서부터 이렇다 할 병치레 한번 없었기에 ‘그것’이 모니터에 등장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더구나 생명과 건강관리에 대해서는 철저할 것만 같은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아닌가. 오히려 이런 자만이 병을 불러온 셈이 됐다.



과도한 음주와 스트레스가 불러온 암

가장 큰 원인은 과도한 음주와 스트레스였다. 술을 워낙 좋아해 낮 동안 진료로 쌓인 스트레스를 매일 저녁 술자리에서 풀었다. 일주일에 7회, 마셨다 하면 새벽까지 과음하는 일이 예사여서 친구들의 아내들에게 ‘공공의 적’으로 미운털이 박힐 정도였다.

“그렇게 술만 마시다 보니 당연히 운동할 시간은 없었어요. 안주도 곱창, 삼겹살, 튀김 같은 기름진 것이 대부분이었고요. 조금씩 배가 나오기 시작하더니 체중이 105kg까지 올라가더라고요.”

몸에서 이상한 조짐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설사가 일주일 넘게 멈추지 않으면서부터다. 약을 먹으면 괜찮아졌다가도 금방 다시 나타났다. 처음엔 ‘술병이겠거니’ 생각했다. 바쁜 진료 일정을 핑계로 검사도 받지 않다가, 가족들의 성화에 떠밀려 방사선과에 부탁해 진료 시작 전에 검사를 받았다.

“방사선 의사가 ‘뭔가 이상하다’고 하면서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겁니다. 몇 번 다시 촬영을 하더니 대학병원 가서 정밀검사를 해보는 게 좋겠다고 하더군요. 내시경 검사를 하고 나서 암 덩어리를 제 눈으로 확인하게 됐죠.”

직장암 3기 선고를 받았다. 암 3기는 암세포가 발생 조직 외에 다른 조직에도 퍼졌을 가능성을 가늠하는 기준이다. 김 씨의 설명을 빌리자면 서울에서 포착된 현상수배범이 아직도 서울에만 머물고 있다는 게 확인되는 것이 암 1~2기다. 그런데 만약 범인이 검문을 빠져나가 톨게이트를 지났다는 것이 확인되면 암 3기다.

신체에서 ‘톨게이트’ 역할을 하는 것이 림프절이다. 이 경우 암세포가 다른 곳에 전이됐을 가능성이 있지만,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어 치료가 어려워진다. 다른 조직에서 암세포가 발견되는 말기 암은 톨게이트를 지난 범인이 다른 지방에서 범행을 일으키고 있는 것과 같다.

이에 따라 치료 방법이 달라진다. 암 치료에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수술, 항암제, 방사선 치료다. 수술은 암세포가 발견된 조직을 떼어내는 것이다. 다른 치료에 비해 부작용이 적다. 그러나 3기 이상 암이 진행됐을 때는 톨게이트를 지난 암세포가 신체 어느 곳으로 갔는지 행방이 묘연해지기 때문에 수술만으로는 소용이 없다.

결국 전국을 대상으로 수색을 벌이게 되는데, 이것이 온몸을 도는 혈관에 항암제를 투여하는 항암 치료다. 다만 불특정 지역을 공격하게 되면 민간인 피해, 즉 정상세포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 때문에 머리카락이 빠진다거나 구토 등의 부작용이 발생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방사선 치료는 떼어낼 조직의 범위가 뚜렷하지 않아 수술이 어려울 때 방사선으로 암세포를 녹이는 치료 방법이다. 방사선 역시 투과되는 피부 및 정상 장기세포에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산 속 생활이 정말 좋았어요. 만약 병에 안 걸렸으면 맛보지 못할 것들인데, ‘암 덕분에’ 이런 경험을 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자연으로 들어가 생활습관을 바꾸다

김 씨는 일단 수술부터 받았다. 5~8cm 정도 되는 암세포를 떼어내기 위해 장을 20cm가량 잘라냈다. 3기 암으로 밝혀진 그의 경우 항암 치료도 이어져야 했다. 하지만 그는 여기서 남다른 결심을 내렸다.

“암에 걸린 이유를 잘 고민해봤어요. 제 생각엔 불규칙적인 생활이랑 술, 스트레스가 문제였죠. 우선 이것부터 바로 잡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항암 치료를 보류한 채 산으로 들어간 거예요. 한편으로는 이 기회에 바쁜 생활 속에서 미뤄둬야만 했던 일을 실행해야겠다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장소는 고향 근처 지리산 자락으로 선택했다. 마침 비어있는 옛날식 흙집을 발견해 둥지를 틀었다. 아침이면 일어나서 태극권, 단전호흡, 명상 등의 운동을 했다. 아침식사 뒤에는 도시락을 들고 산을 돌아다니며 나무를 하고, 물을 길어왔다. 식재료는 산나물과 텃밭에서 기른 채소가 전부였다.

이런 식으로 3년을 지내자 몸이 건강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수술 후 하루에 수십 번 나오던 설사가 줄었다. CEA (Carcinoembryonic Antigen: 종양표지자로 암의 재발 판정에 이용된다. 수치가 높을수록 암 재발 확률이 높다) 수치도 낮아졌다. 산 속 생활을 하면서 암을 대하는 마음이 긍정적으로 바뀐 것이 주효하게 작용했다.

“산 속 생활이 정말 좋았어요. 만약 병에 안 걸렸으면 맛보지 못할 것들인데, ‘암 덕분에’ 이런 경험을 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암은 제게 제2의 인생의 시작이었던 셈입니다. 암 환자는 이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게 중요해요.

대부분이 불안에 휩싸여서 암에게 지는 겁니다. 치료는 잘 됐는데도 불안 때문에 회복이 안 되는 거죠. 암에 걸린 사람들은 100%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내가 나쁜 짓도 별로 안 했고 열심히 살았는데, 나보다 나쁜 놈도 많은데 왜 나한테 이 병이 걸렸나.’ 암을 인생의 끝이라고 보는 거죠. 그러면서 더 스트레스를 받는데, 그러기보다는 암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는 자세가 필요해요.”

다만 그는 의사인 자신이 항암 치료를 받지 않았다는 것이 잘못된 방향으로 해석될까 우려한다. 자신과 같은 산 속에서의 요양을 모든 환자들에게 똑같이 추천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외롭고 불편한 생활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도시에서만 생활한 사람들은 견디기 어렵다는 것. 따라서 자신의 상황과 성격에 맞춰 적절한 결정을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암에 좋은 음식’은 없다

산 속에서의 요양을 끝내고 도시로 돌아온 그의 생활 패턴은 암 이전과는 전혀 달라졌다. 과식, 과음은 절대 하지 않고 식단은 현미밥, 나물, 청국장 등으로 바꿨다. 산에서처럼 자연산 나물을 찾을 수는 없지만, 차선책으로 유기농 전문 매장을 통해 최대한 신선한 제철 음식을 상에 올린다. 생산지에서 소비자까지의 거리를 의미하는 ‘음식 마일리지’가 짧은 음식을 고른다. 음식 마일리지가 길수록 방부제 등 화학적 처리가 많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김 씨의 암 발병 원인이 술이라 수술 이후 술은 거의 끊었지만 막걸리 등 발효주 한두 잔은 권한다. 많이 마시면 탈이 나지만 적당량의 발효주는 몸에 약이 된다는 것이다. 스스로의 경험을 통해 식이요법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발효식품공학과 대학원에서 박사 코스를 밟기도 한 그는 김치, 된장, 청국장 등 한국에 많은 발효식품을 두루 공부하고 이제는 발효주인 막걸리를 집에서 만들어 마시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리 청국장이 좋다고 해도 그것만 먹으면 안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물어보지만 절대적으로 ‘암 환자에게 좋은 음식’이란 건 없어요. 모든 식품에는 각자 다른 항산화제가 있고, 다양한 종류의 항산화제를 섭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는 2000년부터 암환자협회장을 맡고 있다. 현재 많은 암 관련 커뮤니티가 있지만, 수익사업으로 인해 말썽이 많고, 비전문가의 잘못된 정보가 도는 경우도 있다. 김 씨는 의료인으로서, 또 직접 암을 앓았던 경험자로서 환자들에게 객관적인 정보와 상담을 제공하는 순수 봉사단체로 협회를 운영 중이다.



글 함승민 기자 sham@hankyung.com 사진 이승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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