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ey in Movie
이번 호에는 지난 6월호에 이어 ‘세 얼간이(3 Idiots·2009)’에서 얻을 수 있는 협상의 지혜를 살펴본다.어느 날 라주로부터 평소 전신마비로 와병 중이시던 아버지가 위독하니 급히 집으로 와 달라는 전화를 받고, 라주의 아버지를 응급실로 모셔다 드리고 밤새 병상을 함께 지키다 그만 곯아떨어진 세 얼간이.
공공의 적, 바이러스(비루 사하스트라부떼) 교수의 딸이자 란초의 연인이기도 한 피아가 흔들어 잠에서 깨어나 보니, 아뿔싸 30분 후면 시험 시작이 아닌가. 피아의 낡은 스쿠터에 함께 타고 부랴부랴 학교에 도착, 교실로 들어섰지만 시험시간은 이미 30분이나 경과한 시각. 정신없이 답안지를 채워나가는데 벌써 감독교수는 시험 종료를 알린다.
란초: 5분만 더 주세요. 30분이나 늦게 시작했잖아요. 응급상황이었어요. 제발. (잠시 세 얼간이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던 교수는 교탁 위의 제출된 답지를 정리하기 시작한다. 얼마 후, 마침내 시험을 마친 란초가 답안지를 교탁에 내려놓는다.)
란초: 다했습니다. (파라한과 라주도 답안지를 들고 나온다.)
교수: 늦어서 받아 줄 수 없네.
란초: 교수님, 제발요. (교수는 대꾸도 않고 조롱하듯 웃으며 답안지만 정리하고 있다.)
란초: (교수를 매섭게 노려본다) 제가 누군지 모르시나요?
교수: (답안지 정리를 잠시 멈추고 란초를 노려보며) 자네가 대통령 아들이라도 받아 줄 수 없네.
란초: (파라한과 라주의 답지와 자기의 답지를 손에 한데 모아 쥐며) 저희들 이름이랑 학번도 모른다구요?
교수: (어리둥절해하며) 모르지. 너희들이 누군데?
란초: (자신들의 답지를 교탁 위의 답지들과 마구 뒤섞어버리며) 우리를 모른단다. 튀어!
교수: (신나서 달아나는 얼간이들의 뒤통수에 대고) 너희들 학번이 뭐야? 이런 저놈들 답지가 도대체 어느 거야? 신이여, 자비를 베푸소서.
1.란초의 협상 커뮤니케이션 전략: 질문하라! 질문하라! 질문하라!
1962년부터 1986년까지 20여 년간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장관으로서 재임 기간 중 ‘석유의 황제’, ‘OPEC의 실세’로 불리며 천재적인 지략과 협상으로 천혜의 자원인 석유를 서방 메이저 석유회사의 손아귀에서 빼내 중동국가들이 오늘의 석유부국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한 사람은 바로 셰이크 아메드 자키 야마니(Sheik Ahmed Zaki Yamani)다. 미국 석유회사의 고위임원이었던 한 사람은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며 야마니의 독특한 협상기술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야마니는 언성을 높이지 않고 항상 속삭이는 스타일이었지요. 그가 가진 비장의 책략은 상대방의 논리에서 함정을 발견하기 위해 유사한 질문을 다각적인 방식으로 계속함으로써 상대방을 기진맥진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에게 유리한 논리 개발에는 탁월한 면이 있었어요.” -제프리 로빈슨의 ‘석유황제 야마니’ 중에서
당초의 예상과는 달리, 상대를 주눅들게 하지 않는 온화하고 격의 없이 친근한 태도에다 다정한 목소리로 다가오는 사람들에게 대부분의 사람들은 차츰차츰 적개심이나 경계를 내려놓게 마련이다. 그렇게 좋은 첫인상으로 호감을 형성, 상대의 방호벽을 허문 다음 이런저런 질문을 툭툭 던져 내가 원하는 정보를 하나씩 하나씩 낚시하듯 건져 올리란 얘기다.
그럴듯하다. 그리고 그다지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협상의 제1요소인 정보를, 그것도 핵심 정보를 호감 가는 상대가 묻는다고 기다렸다는 듯 줄줄 답해주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내가 원하는 정보를 별 경계심 없이 혹은 이 정도는 괜찮겠지라고 무심결에 내뱉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2. 란초의 협상 정보 획득 전략: 상대의 말꼬를 터‘실언’을 유도하라
정보가 부족하면 부족할수록 나보다 상대로 하여금 더 많은 말을 내뱉게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말이 많아지다 보면, 부지불식간에 할 말 안 할 말 다하게 되는 상황에 도달한다. 즉,‘실언’을 하기에 이른다. 상대의 부질없는 실언은, 그것이 치밀하게 준비된 역정보 전략이라면 모를까 소중한 정보다. 즉, 상대의 실언을 통해서 새로운 정보를 얻거나, 잘못된 정보를 바로 잡거나, 또는 상대가 파악하고 있는 우리 측에 대한 정보를 역으로 추론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것이다.
왜 이번 거래를 하려고 하는지, 내부에 무슨 상황 변화가 있는지, 실제 목표 가격은 얼마인지, 우리를 어디까지 파악하고 있는지, 우리 말고 다른 대안이 있는지 등 성공 협상에 필수적인 정보들을 획득하고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수회 신부이자 스페인의 대표적 모럴리스트 작가였던 발타사르 그라시안 이 모랄레스(Baltasar Graciany Morales·1601~1658)의 얘기처럼 “진실을 말할 때는 그것을 숨길 때만큼이나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을 망각하도록 유도하는 전략인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상대가 애써 숨기려는 진실을 제대로 콕 짚어 낼 수 있는 능력, 즉 탁월한 ‘경청’의 능력이 요구된다.
3. 란초의 협상 커뮤니케이션 전략: 온몸과 마음을 기울여 ‘경청’하라
상대의 얘기를 건성으로 듣다 보면 상대의 진의나 계략을 파악하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정보는 부족하거나 왜곡되기 십상이고, 그러한 정보를 근거로 한 부적절한 협상 전략을 수립, 시행할 수밖에 없다.
1941년 7월 2일 일황의 어전회의에서는 두 가지 주장이 팽팽히 대립하고 있었다. 하나는 독일과의 동맹을 지키기 위해 ‘대소참전을 위한 북진’을 해야 한다는 주장과 다른 하나는, 영·미 접전이 불가피하지만 석유 등 자원 확보를 위해 ‘동남아를 향해 남진’ 해야 한다는 주장이 엇갈리고 있었다.
그때 리하르트 조르게(Richard Sorge)란 희대의 스파이가 도쿄에 언론사 특파원으로 암약하고 있었는데, 그는 당시 수상이었던 고노에 후미마로 등 일본 최고위층과의 돈독한 사적 친분관계를 바탕으로 일본이 ‘북진’할 것인지‘남진’할 것인지를 알아내려고 혈안이 돼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친한 사이라 하더라도 국운이 걸린 정보를 쉽사리 흘려주진 않았다.
결국 그가 택한 방법은 넌지시 물어 보는 것이었다고 한다.‘남’이냐‘북’이냐? 그의 질문에 대한 답은 ‘북’은 아니라는 뜻의 약하게 고개를 가로젓는 것뿐이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는 그날 밤 모스크바로 짧은 전문을 날렸다.‘일본은 남향하고 있다. 소련을 도발할 마음은 없다.’
결국 이 한 장의 짧은 전문이 스탈린에겐 독·소 전쟁에서의 역전승을, 히틀러에게는 대유럽 통일 대업의 좌절, 그리고 종국엔 제2차 세계대전에서의 패전을 가져왔으니, 역사가들의 평가대로 20세기 최고의 스파이라 아니 할 수 없다.
협상의 시작은 상대의 말을 듣는 것으로부터 시작되고 상대가 내 제안을 수락하는 말로 끝이 난다. 상대의 얘기를 건성으로 듣고 자기 말만 하다간 상대의 진의나 계략을 파악하지 못하게 되고 결국 자기 무덤을 파는 꼴이 되고 만다.
3 Idiots(세 얼간이)
감독: 라지쿠마르 히라니
출연: 아미르 칸(란초 역), 마드하반(파르한 역)
셔먼 조시(라주 역), 카리나 카푸르(피아 역)
보만 이라니(비루 사하스트라부떼 역)
오미 베이디아(차투르 역)
박상기 _ 글로벌협상컨설팅 대표, 연세대 겸임교수. 국제협상전문가, CJ미디어 국제협상전담 상무 역임. 협상칼럼니스트 www.bneconsulting.co.kr “Center for Business Negotiat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