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트러스톤자산운용 대표
김영호 트러스톤자산운용 대표는 “유럽 재정 위기, 미국과 중국의 경기 둔화 우려로 미래 성장에 대한 기대수준이 하향 조정되면서 위험 회피도가 극에 달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동시에 더 이상 나올 악재도 없다는 긍정적 시각도 점차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대표는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유동성이 넘쳐나고 기대수익률이 낮아졌을 때 주가는 반등했다”며“유럽발 불확실성이 완화되고 각국의 경기부양책이 가시화되면 주가 반등은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김영호
현 트러스톤자산운용 대표이사 부사장
고려대 대학원 경제학과
대우경제연구소
대우증권 투자전략부
트러스톤자산운용은 임직원이 지분의 70% 이상을 보유한 독립계 운용사다. 그만큼 임직원 스스로 운용 철학을 지킬 수 있는 환경을 갖고 있다. 김 대표는 “어떤 운용 철학을 가지고 있는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일관성을 가지고 철학을 고수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운용사들은 흔히 주가의 변동을 위험으로 정의하지만 트러스톤자산운용은 단순한 가격 변동이 아니라 투자한 기업의 펀더멘털의 변화를 위험으로 간주한다. 김 대표는 펀드를 운용할 때 “수급에 의한 단기적인 가격 등락보다는 기업이익의 성장성과 가시성이 있는 종목의 내재가치에 집중한다”고 밝혔다.
이러한 운용 덕분에 변동성이 극심한 장세에서 많은 국내 주식형 펀드들이 코스피를 밑도는 성과를 내는 가운데 트러스톤자산운용의 대표 펀드인 제갈공명 펀드와 칭기스칸 펀드는 우수한 성과로 어려운 시장 환경에서도 믿을 만한 펀드라는 인식이 투자자들에게 자리 잡고 있다. 제갈공명 펀드와 칭기스칸 펀드는 연초 이후 각각 상위 1%와 7%를 기록하고 있다(국내 일반 주식형 퍼센트와 순위·7월 27일 종가 기준).
유로존 위기가 2008년 금융 위기보다 심각한가.
“위기 해결 과정만 보면 유로존 위기가 2008년 금융 위기보다 심각하다. 독일은 인플레이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남유럽 국가들은 재정건전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해관계가 서로 다른 국가들 간 합의점 도출이 쉽지 않다.
그러나 위기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2008년보다 심각하지는 않다. 2008년 위기 직후 미국의 물가연동채권(TIPS) 스프레드가 45bp(basis point·100분의 1%)까지 축소됐으나 지난해 유럽 위기 직후 가장 낮은 수준은 172bp였다.
물가연동채권 금리와 지표 금리의 차이인 TIPS 스프레드는 경기 침체와 디플레이션에 대한 시장의 기대치를 대변하는 것으로 축소될수록 디플레이션에 대한 기대가 크다는 것이다. 2008년 위기 직후 주식시장이 느끼는 공포지수(VIX)는 80에 육박했지만 지난 하반기 유럽 위기 이후 VIX의 고점은 43 수준이었다.”
유럽 위기가 독일 결정에 달렸다는 의견도 있다.
“유럽 위기 해결의 열쇠를 독일이 쥐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열쇠는 단기 처방책에 불과하다. 그리스나 스페인은 경제 여건에 비해 높은 유로화, 재정 긴축, 산업경쟁력 약화 등의 구조적 문제를 여전히 안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 사태는 중장기적으로 해결 가능성이 크지 않다.
독일도 금융기관 부실 확산, 마르크화 복귀 과정에서의 혼란 등 유로존 붕괴 리스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유럽 위기는 단기적으로 봉합하더라도 중장기적으로 재차 문제가 불거져 나올 것이다. 중장기적·구조적 문제는 나중에 생각하더라도 당장 단기 처방책을 통해 위기를 봉합해야 하는데 이마저 독일의 미온적 태도가 발목을 잡고 있다.”
미국 경제의 회복은 안정적인가. 미국 주택 시장 전망은.
“미국 경제는 미약한 회복세에 있다. 여전히 국내총생산(GDP)의 70% 이상을 점하고 있는 민간소비가 관건인데 소득(노동 시장)과 자산(부동산 시장) 효과가 상반된 시그널을 보내고 있다.
가격과 거래량을 보면 미국 부동산 시장이 바닥을 형성하고 있다. 적어도 부동산발 역자산효과(negative wealth effect)를 우려하지 않아도 될 것으로 보인다. 시장은 고용 시장 개선이 일시적인 것인지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2008년 위기 직후 66만 건에 달했던 실업수당 청구건수가 36만 건까지 하락했고, 실업률은 10%에서 6월 현재 8.2%까지 하락했다.
1990년대 초 경기 침체 때 실업률이 가장 높았을 때가 7.8%였다는 점을 보면 지금의 8.2%는 여전히 높다. 게다가 오쿤의 법칙(Okun’s law)에 따르면 미국의 실업률이 1% 하락하기 위해서는 GDP가 2~3% 성장해야 한다. 성장률 전망이 조금씩 하향 조정되고 있다는 부담이 있다.”
중국 경제의 고도 성장세가 꺾이는 조짐이 확연해졌다. 앞으로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 것으로 보나.
“중국 성장률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어야 한다. 중국이 투자와 수출에서 소비와 내수로 성장 드라이버를 전환하려는 정책을 추진 중이다. 이 과정에서 성장률은 떨어질 것이고 전환 속도는 느릴 것이다. 한 국가의 경제가 투자에서 소비로, 수출에서 내수로 전환하는 것은 매우 긴 시간을 요한다.
다만 여전히 중국은 통제되고 계획 하에 움직이는 사회주의 경제로 올해와 내년 상반기까지만 보면 정권 교체를 전후해 목표성장률(7.5%)을 달성하려는 정책 시도는 계속될 것이다. 중국 경제의 경착륙을 우려할 단계는 아닌 듯하다.”
글로벌 경제에 다른 위협 요인이 있다면 무엇인가.
“얼음이 가장자리부터 녹듯이 세계 경제 위기가 발생하면 경제구조가 취약한 신흥 시장에서 먼저 문제가 터져 나왔다. 최근에는 오히려 미국, 유럽 등에서 먼저 위기가 발생했지만 신흥 시장이 이 여파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브라질, 인도, 러시아 등은 수출과 원자재 가격 부진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당장은 아니겠지만 급등한 곡물 가격이 시차를 두고 부담을 줄 수 있다. 식료품 가격에 민감한 중국 소비자물가도 6개월 후부터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수요 증가가 아닌 공급 부족에 따른 곡물가 상승이어서 날씨가 중요한 요소라 예측하기 쉬운 변수는 아니다.”
3분기 한국의 주식시장 특징은 무엇인가. 4분기 및 내년 상반기는 어떻게 전망하나.
“글로벌 투자 자금의 위험 선호도에 좌우되는 외국인 수급이 한국 주식시장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현상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내수 부진, 국내 자본의 투자 심리 위축으로 글로벌 시장 대비 한국 주가의 상승 탄력이 상대적으로 약하다.
3분기 중반 이후 연말까지 시장은 중기 반등장세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외국인의 위험 회피 성향이 다소 완화되고 있고 한국 주식에 대한 비중이 과거 평균에 비해 낮기 때문이다.
2013년 시장은 올해의 고점을 넘지 못하고 횡보할 것으로 예상된다. 올 하반기 상승에 따른 주식의 저평가 해소, 제한적인 기업이익 증가, 유럽 위기의 재연, 미국 저성장 기조의 재확인, 경기 확장에 따른 금리의 반등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상승장 전환에 대비해 어떤 업종에 주목해야 하는가.
“업종보다는 개별 종목 중심으로 접근하는 것이 좋다. 과거와 달리 시장을 주도하는 업종이 매우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에는 동일 섹터 내에서도 종목들의 주가 추이가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이 발견되고 있다. 전자, 자동차, 화학, 조선 등 베타(β)가 큰 종목 일변도의 투자보다는 매크로 변화에 큰 부침 없이 내수주 가운데 상승 잠재력이 큰 종목을 동시에 가지고 가는 바벨 형태의 전략이 바람직할 것으로 보인다.”
종목 선택을 할 때 어떤 기준을 중요하게 보나.
“펀드의 경우 장기 안정적 수익률이 선택 기준이 돼야 한다. 기업의 장기적인 가치는 결국 기업이익에 의해 결정되고 기업이익을 감안한 내재가치가 주가에 비해 높다면 투자 대상이다.”
글 김석 한국경제 기자 skim@hankyung.com 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