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ne Story] 시대와 공간을 초월한 미국 컬트 와인 '할란 이스테이트'

컬트 와인 할란 이스테이트
컬트 와인은 마니아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는 와인이다. 할란 이스테이트(Harlan Estate)는 이 컬트 와인 리스트에서 항상 빠지지 않는 와인이다. 컬트 와인의 대명사 할란 이스테이트와 창업자 윌리엄 할란 회장의 숨은 이야기다.

할란 이스테이트의 창업자 윌리엄 할란 회장은 미국 UC버클리대에서 인문학을 전공한 엘리트였다. 대학 졸업 후 그는 퍼시픽 유니온(Pacific Union)이라는 부동산개발회사에 출자를 했고, 부동산 개발로 큰돈을 모았다.

부동산 개발로 성공한 후 와이너리 설립

부동산 개발업으로 큰돈을 손에 쥔 그는 학창시절 꿈이던 와이너리로 눈을 돌렸다. 1978년에 나파밸리 세인트헬레나(Saint Helena) 지역의 한 양조장을 구입한 것이다.

그러나 포도밭의 토양은 고품질의 와인을 생산하기엔 너무 서늘하고 비옥했다. 고심 끝에 그는 기존의 와이너리를 메도우드 리조트(Meadowood Resort)라는 초호화 리조트로 탈바꿈시켰고, 리조트 개발로 다시 한 번 큰돈을 벌었다.

초호화 리조트 메도우드 리조트는 1981년부터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와인 행사 중 하나인 나파밸리 와인 경매를 주최하게 된다. 할란 회장은 와인 자선 경매에 참여하면서 자연스럽게 로버트 몬다비 등 나파밸리 성공 신화의 주역들과 가까워질 수 있었고, 행사 준비를 위해 몬다비와 함께 프랑스 보르도와 부르고뉴의 1등급 와이너리들을 둘러보는 기회를 갖게 됐다. 할란 회장은 방문한 모든 와이너리를 관찰하며 각각의 정보를 꼼꼼하게 모았다. 훗날 그는 당시 프랑스 와이너리 방문을 통해 위대한 와인 생산지에 대한 큰 줄기를 보았다고 회상한다.

프랑스 여행 이후 그는 나파밸리에서 프랑스 1등급 와인의 품질을 낼 수 있는 포도밭을 찾아나섰고, 마침내 나파밸리의 오크빌(Oakville)에 발길이 멈추었다. 그곳은 보르도나 부르고뉴의 1등급 포도밭에서 봤던 것처럼 거칠고 배수가 좋은 화산암 토양을 갖고 있었다. 1984년 그는 드디어 오크빌 서쪽 언덕의 경사진 면에 있는 93헥타르의 포도밭을 구입해 와이너리 조성에 나섰다.


나파밸리 오크빌의 빈야드 풍경.

와이너리 설립 후 12년 만에 첫선을 보인 할란

할란 이스테이트의 양조 철학은 가능한 가장 자연스럽게 와인을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포도의 재배 및 양조 전 과정을 매우 섬세하게 진행한다. 수확기에는 적은 용량의 바구니에 포도를 담아 으깨지 않고 줄기를 제거하고, 줄기를 제거하기 전과 후에 엄격한 선별 작업을 두 차례 실시한다. 포도를 옮길 때도 펌프를 이용하지 않고, 가능한 가장 부드러운 침출 방식을 사용한다. 발효는 뚜껑이 열린 소형 발효조에서 이루어지는데,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해 최대한 조화롭게 타닌 성분을 얻는다. 발효가 끝나면 100% 프랑스산 소형 오크통으로 옮겨 유산발효를 진행하고 앙금과 함께 23~26개월 동안 오크통에서 숙성한 후 여과나 청징 과정을 거치지 않고 병입한다.

생산 방식에서도 할란 이스테이트의 고집스러움을 엿볼 수 있다. 할란 이스테이트는 1985년 설립됐지만 첫 번째 와인은 1996년에야 세상에 나왔다. 그 이유는 포도나무에서 쓸 만한 포도가 나오는 데 걸리는 시간이 6년, 이렇게 얻은 1990년 빈티지를 와인 저장고에서 6년을 두었다가 선보였기 때문이다. 무려 12년의 세월을 견뎌낸 할란 이스테이트는 1996년 시장에 나오자마자 와인업계의 스타가 됐다.

많은 호평이 이어졌다. 로버트 파커(Robert Parker)는 “할란 이스테이트는 캘리포니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통틀어 가장 깊은 맛의 레드 와인 중 하나”라고 평하며 다섯 차례나 할란 이스테이트 와인에 100점 만점을 부여했다. 세계적인 와인 평론가인 스티븐 탠저(Stephen Tanzer)는 “이것이 바로 캘리포니아 그랑 크뤼라는 것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영국의 와인 평론가 잰시스 로빈슨(Jancis Robinson) 역시 “20세기 가장 훌륭한 10개 와인 중에 꼽히는 와인”이라며 극찬했다.



판매가 500달러 와인이 경매에선 3000달러 이상 거래

할란 이스테이트는 구매 고객 중 95%가 남성일 정도로 남자들이 좋아하는 와인이다. 이는 할란 이스테이트가 가진 묵직하면서도 깊은 맛에 기인한다. 남자 중에서도 선택받은 극소수만이 할란 이스테이트를 경험할 수 있다. 생산량도 적을 뿐 아니라 소매로 판매하지 않기 때문에 일반 애호가들은 할란 이스테이트를 접하기가 어렵다.

할란 이스테이트는 매년 1만8000병의 와인을 만들어낸다. 그 빼어난 진귀함이 높게 칭송받는 이 와인의 빈티지별 기복이 적고 매년 놀랍게 농축되고 풍부하며, 복합적인 캐릭터에 우아함과 섬세함을 잃지 않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부동산 개발 사업으로 성공한 윌리엄 할란 회장은 그 재력을 바탕으로 할란 이스테이트를 탄생시켰다.

생산량이 적다 보니 판매 방식도 소매가 아닌 우편 예약, 경매, 레스토랑 등을 통해 팔린다. 판매가가 500달러인 할란 이스테이트 와인이 경매에서는 3000달러로 가격이 훌쩍 뛴다. 정해진 고객 리스트 안에 들어가지 못하면 할란 이스테이트 와인을 받으려고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기존 회원이 탈퇴하거나 사망해 자연 결원(缺員)이 생기지 않으면 기회가 오지 않는다. 현재 할란 이스테이트는 스칸디나비아를 비롯해 러시아, 두바이, 중국, 일본 등 35개국에 팔려나간다. 최대 소비국은 일본(3600병)이며 한국에 공급되는 물량은 최대 120병에서 최소 60병에 불과하다.

할란 이스테이트는 독특한 레이블로도 유명하다. 빈티지 우표 수집가이기도 한 할란 회장은 19세기 음각 지폐 느낌의 레이블을 원했다. 1984년 그가 와이너리 사업을 결심했을 때, 그는 19세기 방식으로 미국 지폐를 만드는 인쇄 기술자를 섭외해 레이블을 제작하고자 했으나 남은 기술자를 찾을 수 없었다. 몇 년이 지나서야 수소문 끝에 그는 지폐를 만든 인쇄 기술자 중 마지막 생존자를 찾아 지폐 색상의 음각 회화 그림을 레이블로 사용할 수 있었다.


글 신규섭 기자 wawoo@hankyung.com 사진 제공 나라셀라(www.naracella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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