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멋’ 한다는 옷쟁이·한량들의 축제, 피렌체 PITTI UOMO 현장을 가다

이영원의 남자 옷 이야기

거대한 패션쇼 장으로 변한 작은 도시 피렌체는 남자들로 물결친다. 매년 1월과 6월에 열리는 세계 최대의 남성복 전시회인 ‘피티 우오모(Pitti Uomo)’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전시회 기간 동안 넘쳐나는 패션 피플들로 피렌체에서 숙소를 잡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이기도 하지만, 아름다운 피렌체 하늘의 밤 풍경을 망쳐버리는 오버룩의 느끼한 아저씨들을 피하려고 아펜니니(Appennini) 산맥 너머 미식의 부자 도시 볼로냐(Bologna)에 숙소를 잡았다(사실 브루노말리와 아.테스토니가 기대됐기 때문이기도 하다). 볼로냐는 중세부터 교황 직할도시이자 세계 최초의 대학이 설립된 전통적인 부자 도시로 센트로(centro)에는 명품 매장이 즐비한 곳이다.
매년 1월과 6월에 세계 최대의 남성복 전시회인 ‘피티 우오모’가 열리는 이탈리아 피렌체 전경.

‘폼생폼사’의 천태만상 피티 우오모

그중 나는 아.테스토니(a.testoni) 매장 방문을 즐겨서 호텔도 테스토니 메인 스토어 근처로 잡곤 한다. 테스토니의 최고가 라인으로 장인의 손으로 한 땀 한 땀 제작되는 아마데오 테스토니 시리즈는 절대 놓칠 수 없는 쇼핑 아이템이다. 창립자의 이름을 딴 라인이니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의 공을 들이지 않겠는가.

아.테스토니의 최고가 라인으로 장인의 손으로 한 땀 한 땀 제작되는 아마데오 테스토니 시리즈는 절대 놓칠 수 없는 쇼핑 아이템이다.
전통 공법인 수제 스티치의 매력적인 라인이 아름다움을 대변한다면, 장중한 토 라인은 시크한 멋을 준다. 온갖 구실을 대며 볼로냐를 자주 찾는 것도 사실은 항상 새로운 아마데오를 갖고자 하는 욕망 때문이다(물론 그만큼 실패도 많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아마데오 네 켤레를 낚아왔다. 그 뿌듯함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으랴! 가죽과 가죽을 겹겹이 덧댄 이 고급스러운 네 켤레의 무게는 결코 만만치 않지만 그게 대수인가. 아마데오를 가졌는데!

피렌체 아펜니니 산맥 너머에 위치한 미식의 부자 도시 볼로냐. 볼로냐는 중세부터 교황 직할도시이자 세계 최초의 대학이 설립된 전통적인 부자 도시로 중심부에는 명품 매장이 즐비하다.

볼로냐가 애피타이저라면 ‘메인 요리’랄 수 있는 피티 우오모가 열리는 피렌체의 포르테차 다 바소(Fortezza da basso)는 첫날부터 전 세계에서 모인 옷쟁이들, 칼럼니스트, 옷을 좋아하는 마니아, 그리고 지역 장날인양 출몰하는 한량들로 북적인다. 세계적인 불경기에도 불구하고 철없이(?) 붐비기는 이전 해들과 매한가지다. 오직 멋을 위해서 그 뜨거운 뙤약볕 아래 패딩 점퍼를 입고 나타나는 사람도 있다.

과연 폼생폼사의 천태만상을 보여주는 피티 우오모다운 풍경이다. 햇빛 알레르기가 있어 본의 아니게 검은 우산을 쓰고 다니다 보니 필자 역시 엄청난 플래시 세례를 받았다. 그들에게 혹시 나도 패딩을 입은 남자같이 보인 것일까. 이 공간에서는 각지에서 모여든 전시업체 관계자들, 바이어들, 기자들, 패션인들 서로 서로가 구경거리인 셈이다. 여기서는 기본, 원칙, 어느 나라의 스타일이고 이런 것은 의미가 없다. 오직 ‘나만 멋있으면 된다’는 자기 환상에 빠진 멋의 자유인들로 넘쳐난다.




장날마다 괜히 볼 일 있는 사람들처럼 상담도 미팅도 없이 온갖 폼을 내고 방문해 하릴없이 바쁜 체하는 그들은 이곳에서나 볼 수 있는 진풍경이다. 최근 들어 중국인이 일본인을 밀어낼 만큼 많아졌다는 것도 놀라운 점이다.


화려한 파스텔 색조·프린트가 강세

20년 가까이 거의 매년 빠짐없이 찾아온 나에게 이번 피티 우오모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내년 SS 트렌드를 미리 보는 기대감과 남자들의 멋 내기가 과연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는 즐거움을 선사했지만, 한편으로는 친숙한 얼굴들이 점점 사라져간다는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그래도 역시 부스마다 콘셉트별로 선보이는 다양한 제품들, 트렌드 이미지 홀, 무엇보다도 전시업체 담당자들과 바이어, 방문객 등 패션업계의 프로페셔널리스트들의 뽐내기는 이곳이 아니면 볼 수가 없다. 이래서 매년 피티 우오모가 기다려지고, 매년 방문해도 지겹지 않은가 보다.
피티 우오모가 열리는 피렌체의 포르테차 다 바소는 전시 첫날부터 전 세계에서 모인 옷쟁이들, 칼럼니스트, 옷을 좋아하는 마니아, 그리고 지역 장날인양 출몰하는 한량들로 북적인다. 세계에서 몰려든 이 패셔니스타들은 전시장 사이의 미팅 장소에서 각자 폼을 내며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는데, 이 광경은 가히 콘테스트를 방불케 한다.



전시회를 관람하며 사람들을 면밀히 관찰해 보니 물론 출신 지역마다 조금의 차이는 있겠지만 원색과 화이트 팬츠가 눈에 띄게 줄어들고 화려한 파스텔 색조로 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여성복 시장을 넘어 남성복에도 그야말로 꽃무늬 등의 프린트가 더욱 화려해진 것도 특징이다. 캐주얼과 시티웨어도 한층 부드러운 곡선을 띠며 중성화되고 있는데, 더 이상 남성과 여성의 시장을 구분하는 일이 의미가 없을 만큼 패션 트렌드는 하나가 돼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슈트류는 브리티시 룩을 기반으로 이탈리안의 감각을 믹싱한 스타일이 눈에 많이 띄었다. 영국 스타일답게 절제되고 절도 있는 어깨에 약간 높은 허리선, 균형감 있는 2분의 1 재킷 길이(총장의 반 사이즈)를 이탈리안 스타일의 특징인 부드러운 곡선으로 감싸 신사적이면서 부드러움도 놓치지 않는 스타일로 변하고 있다.

팬츠는 노 벨트 위주의 앞이 짧고 뒤가 높아 경사진 허리라인으로 바지 길이는 조금 길어졌다(물론 우리나라보다는 짧다). 전반적으로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 지난해보다는 조금 클래식해진 이 스타일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활용하기에 좋다. 동양에서 그동안 자리 잡고 있던 일본풍은 다소 가벼운 맛이 있었고 딱히 영국과 이탈리아 어느 한 방향을 잡기에 부담스러웠다면 영국과 이탈리아 스타일을 잘 조합한 이번 스타일에 도전해 보는 것도 좋겠다.

소재는 계절이 계절이니만큼 서머 울(summer wool)이 주종이었으나 서머 울과 리넨 혼방이 대세로 떠오르고 있다. ‘남자의 깔끔함’에 대한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약간의 구김도 자연스러운 멋으로 소화해 내는 진정한 멋쟁이들이 많아지고 있음이리라. 색상은 블루 계열과 미디엄 그레이가, 패턴은 작년에 윈도페인이 유행이었던 것에 반해 윈도페인에 글렌 체크가 결합된 멀티 윈도체크가 많이 눈에 띈다. 조금 멀리서 봐도 도드라지는 초크스트라이프도 트렌드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남성 액세서리 중에서 백이 다양한 스타일로 선보인 것도 하나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나이가 들수록 더욱 화려해지는 남자들, 보이기 위해 일부러 시간을 내서 돌아다니는 사람들. 멋 내기가 여성의 전유물이라는 말은 옛날 얘기다. 남자도 할 수 있다. 그것도 매우 잘. 이 성(城)에 와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글쓴이 이영원은…

대한민국 핸드메이드 남성복의 아이콘 ‘장미라사’의 대표. 옷이 좋아 옷을 맞추고, 입고, 즐기고, 선물하는 재미에 365일 빠져 있는 사르토리알이다. 내 집 드나들 듯 한 덕에 유럽은 눈감고도 다닐 수 있다는 그는 옷이 곧 문화라는 철학으로 한국 수제 남성복의 자존심을 지켜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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