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PBS ‘아메리카 리빌드’ 진행자 권율, ‘서바이버’ 우승자에서 최초의 코리안 아메리칸 방송인으로
입력 2012-08-28 09:12:01
수정 2012-08-28 09:12:01
미국 이민 1세대인 부모 슬하 2남 중 차남으로 태어난 아이는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백인 아이들에게 놀림을 당했고, 결국 공황장애를 앓았다. 부모로부터도 숨어 나약함을 숨기던 아이는 성장해 5만 대 1의 경쟁을 뚫고 CBS 리얼리티 쇼 ‘서바이버(Survivor)’의 우승자가 됐고 멋지고 쿨한 미국 사회 내 코리안 아메리칸으로 당당히 부상했다. ‘공부벌레’로 족했던 동양계 남자의 이미지를 벗어던진 그는 오바마 정부를 거쳐 현재 PBS 쇼 ‘아메리카 리빌드(America Revealed)’ 진행자로 활약 중이다.
두어 달 전 한 대형 서점에서 발견한 신간 표지에 반가운 얼굴이 있었다. 지난 2006년 미국 TV 드라마 열풍과 함께 한국에도 알려지기 시작했던 CBS 리얼리티 쇼 ‘서바이버’에 출연했던 한국계 미국인 권율 씨였다. ‘서바이버’는 당시 15만 명의 시청자를 확보할 만큼 인기리에 방송된 프로그램이다. 동양인 최초의 서바이버 최종 우승자였던 그는 훤칠하고 잘생긴 외모에 전직 변호사로 구글에서 근무 중이라는 배경, 쇼를 통해 보여준 리더십으로 미국 내에서도 화제가 됐을 뿐만 아니라 국내 언론을 통해서도 몇 차례 소개가 될 정도로 이목을 끌었다.
쇼 출연 후 인기는 급상승했고, 여기저기서 러브콜을 보내오는 곳이 많아진 그는 하버드, 스탠퍼드, 골드만삭스, 야후, IBM, AT&T, 매킨지 등 미국 최고의 대학과 굴지의 기업을 대상으로 100여 곳 이상에서 강연회를 열며 미국 사회에서 소수 인종이 리더로 거듭날 수 있는 사회적 환경 개선에 대한 이야기를 피력했다. 2008년에는 버락 오바마 민주당 대선 후보 캠프에 합류해 소수계 젊은 층 유권자들에게 오바마를 미래 미국의 리더로 어필하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반가운 마음에 펼쳐 든 그의 책 ‘나는 매일 진화한다(중앙북스)’ 에필로그에 그의 현주소는 놀랍게도 PBS 방송 ‘아메리카 리빌드’의 진행자였다. 오바마 정부 출범 후 연방통신위원회(Federal Communications Commission·FCC) 소비자보호국 부국장이라는 안정적인 공무원 생활을 포기하고 선택했다는 방송 진행자 자리는 그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나서 자라는 동안 미국에서 본 TV 방송에서 단 한 번도 동양계 미국인이 진행자로 출연한 것을 본 적이 없었던 그는 PBS의 제안을 받아들이며 또 한 번 동양계·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최초’라는 기록을 남겼다.
스탠퍼드대, 예일대 로스쿨, 매킨지, 구글, 오바마 정부를 거친, 한국식 표현으로 하자면 ‘훌륭한 스펙’의 소유자인 그가 지금 책을 내며 전하려고 한 메시지는 무엇일까. 출판사와 그의 미국 에이전트, 권율 본인과의 잔잔한 커뮤니케이션에 한 달여의 기간이 걸렸다. 결국 그는 머니와 e메일 인터뷰를 허락했고 조심스럽게 그의 이야기를 전해왔다.
현재 PBS 방송의 ‘아메리카 리빌드’ 쇼 진행자로 활약하시는 것으로 압니다. 방송인으로서의 삶은 이전과 어떻게 다른가요.
“TV 쇼 진행자가 솔직히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어요. 원래 타고난 성격이 적극적이지 않은 탓에 개인적으로 방송에 익숙해지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송은 제가 상당히 즐기고 있는 일임에는 분명해요. 미디어만큼 사람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생각을 바꿔놓을 수 있는 강력한 도구는 없으니까요.”
‘아메리카 리빌드’ 외에 출연했거나 출연 중인 프로그램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각 쇼에서 권율 씨의 역할도 궁금합니다.
“현재 ‘아메리카 리빌드’와 함께 주간 뉴스 쇼인 ‘링크아시아(LinkAsia)’라는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고 있습니다. 아시아에 관한 이야기와 이벤트를 다루는 쇼예요. 아시아 국가 보도방송국과 파트너십을 맺고 기사를 제공받고 있는데, 한국에서는 MBC, MBN 등으로부터 (한국어) 뉴스를 제공받아 영어 더빙을 하죠. 한때 CNN 스페셜 특파원으로 일하기도 했고, 스미스소니언(Smithsonian) 채널, 디스커버리(Discovery) 채널의 진행을 본 적이 있어요. 최초의 TV 출연은 아시다시피 2006년도 ‘서바이버’ 쇼였고요.”
동양계 미국인의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공무원의 길(FCC)을 포기하고 방송 진행자의 길을 선택했다고 들었습니다. 그것이 동양인의 이미지를 바꾸는 데 기여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입니까.
“FCC를 떠나 ‘아메리카 리빌드’ 진행자를 택했던 이유는 미국인들이 가진 한국계 미국인 또는 동양계 미국인에 대한 시각을 바꾸고 싶었기 때문이었어요. 미국 사회 내에는 동양계 미국인에 대해 팽배한 인식이 있는데, 바로 ‘영원한 외국인’이라는 겁니다. 우리(동양계)가 미국에서 태어났거나 자랐다 하더라도 미국인들에게는 진짜 미국인이 아닌 외국인으로 비춰진다는 말이죠. 제가 ‘아메리카 리빌드’ 진행을 맡기 전에 한국계나 동양계 미국인이 미국에 대해 얘기하는 쇼의 진행자로 나온 것을 본 적이 없어요. 제가 진행자로 나서는 것이 한국계 미국인의 이미지를 개선하는 데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고, 또한 그것이 다른 젊은 한국계 미국인들에게 포문을 열어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2008년 오바마 대선 캠페인에서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에 기여했다고 들었습니다. 당시 권율 씨의 역할이 무엇이었으며, 어떤 전략이 주효했다고 생각하십니까.
“젊은 층과 아시안 아메리칸을 대변하는 역할을 했는데, 정당집회 등에서 오바마의 입장을 대변해 그를 피력하는 것이었죠. 처음 오바마를 지지하겠다고 결심했을 때는 솔직히 그에게 승산이 크게 있다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또 유색인종이 미국의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았었죠. 하지만 그의 지적인 면과 젊은 층과 동양계를 포함한 소수계 유권자들에게 어필하는 그만의 능력에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당시 그가 승산 없는 경주마 같았지만 돕고 싶었어요. 오바마가 소수계 미국인들의 정치적 참여를 독려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사람들은 그를 대통령으로 선출하는 것이 미국 역사를 바꿀 수 있는 길이라 믿었고, 그렇기 때문에 오바마가 승리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가까이서 본 오바마는 어떤 정치인입니까. 또한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적이고, 사려가 깊으며 원칙주의자입니다. 유머감각도 넘치는데, ‘서바이버’ 쇼에 우승한 후 처음 만났을 때 제게 누구 복근이 더 훌륭한지 비교해보자고 제안했을 정도죠. 많은 부분에서 오바마는 전형적인 정치인의 모습에 부합되는 사람은 아니라고 봅니다. 바로 그 점이 그의 인간적 매력이기도 하죠. 엄청난 대중적 카리스마의 소유자이며 탁월한 연설가이지만, 내성적인 사람이기도 해요. 애석하게도, 그가 원했던 것만큼 워싱턴에서 당파 문화를 바꾸지는 못했지만, 저는 그의 노력이 부족했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한국계 미국인으로 ‘성공’이란 단어가 어울리는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권율 씨의 삶에서 이룬 가장 큰 성공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현재까지는 미국 내 코리안 아메리칸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는 데 일조를 한 것이 가장 의미 있는 성과가 아닐까 싶습니다. 미국 사회에는 아직도 아시안 아메리칸과 코리안 아메리칸들은 스마트하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지만 리더십 스킬과 카리스마가 부족하다는 인식이 강해요. 동양계나 한국계 미국인 남성의 경우, 공부벌레라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죠. 저의 방송 활동이 정치적 상황이나 미디어 속에서의 한국계 미국인들의 고정관념을 변화시키고, 또한 그들에게 기회를 줄 수 있는 작은 발걸음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제 삶에서 더 중요한 일들을 많이 일구고 싶지만 제 인생의 궁극적인 성공 척도는 행복한 가족을 영위하는 것이라 생각해요.”
권율 씨는 한 인터뷰에서 “미국에서 아시안계는 3% 정도만이 회사 임원으로 올라갈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아시안은 하드워커(hard worker·열심히 일하는 사람)이긴 하지만 리더가 될 수 없다는 선입견, 국적이 미국임에도 불구하고 백인을 만날 때마다 “어디서 왔냐(Where are you from)”는 뜬금없는 질문을 수도 없이 들어야 했다. 그의 대답은 언제나 “나는 미국인이다(I’m American)”였지만 그를 보는 그들의 눈빛은 긍정의 그것은 아니었다고. 그는 그런 미국인들에게 반기를 들었고, 동양계도, 특히 한국계 남자도 얼마든지 리더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서바이버’란 프로그램 이름만 듣고 “죽으려고 나가냐”며 안 된다던 아버지를 설득했고, 그는 10만 명이 보는 TV 쇼에서 결국 미국 시청자들을 ‘설득’했다.
미래형 지도자에 대해 ‘르네상스 리더(Renaissance Leader)’를 언급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지도자를 말하며 그 지도자 유형에 부합되는 권율 씨의 면모가 있다면요.
“‘르네상스 리더’란 광범위한 기술적 역량과 경험을 갖춘 사람으로 그러한 스킬을 다양한 도전적 상황에서 빠른 속도로 적용할 수 있는 리더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 사회는 매우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으며 사회 조직들도 대형화되고 있어 어떤 사람도 혼자 힘으로 모든 현안이나 시장 상황하에서 전문가가 되기는 어렵습니다. 모든 조직은 직면한 사안에 대한 전문가를 원하지만, 그 조직의 리더 자신이 전문가가 될 필요는 없어요. 대신 다양한 전문지식에 대한 폭 넓은 이해가 필요하며, 다양한 소스로부터 필요한 정보를 적합화하고 흡수할 수 있는 능력은 필요합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리더는 다양한 타입의 조직원과 퍼스낼러티를 어떻게 고무시키고 이끌어 갈 것인지 알 필요가 있어요. 제 경우에는 다양한 분야에서 가능한 많은 경험을 얻고자 의도적으로 노력했는데 제 스스로 정립한 커리어 모델을 저는 ‘딥 컨설팅(deep consulting) 모델’이라고 부릅니다. 다양한 조직과 산업분야에서 마치 컨설턴트처럼 일하려고 노력하는 것이죠. 하지만 고용인으로 조직에 실제로 가담하기 때문에 컨설턴트보다는 훨씬 심도 깊은 경험을 하게 될 것이며, 결과적으로 일반적인 컨설턴트보다 조직 문화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게 되겠죠.”
어릴 적 별명은 무엇이었습니까. 여러 심리적 이유로 혼자 있었다고 했는데, 부모님과 보내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었나요.
“가족이나 친구들이 지어준 별명은 없고 대신 나를 놀렸던 아이들이 ‘칭크(chink)’ 또는 ‘구크(gouk)’라고(동양인을 폄하할 때 쓰는 속어) 불렀죠. 문제가 생겨도 부모님을 실망시켜 드릴까 두려워 항상 문제들을 숨겼어요. 무엇보다도 그때는 부모님께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고 싶었거든요. 제가 약하거나 겁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부모님이 저를 부끄러워하실까 봐 염려됐어요. 이와 같은 상황은 (미국에 있는) 많은 청소년들이 지금도 같은 방식으로 겪고 있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어릴 적 공황장애를 앓았다고 했는데, 어떻게 극복했나요.
“중학교 때 형의 친한 친구가 자살한 일이 있었는데, 이사를 간 후 외로움을 이기지 못해 선택한 것 같았어요. 그때 저도 변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조금씩 변화를 시도했고 모르는 사람한테도 먼저 인사하기 시작했죠. 집 밖으로 나가서 혼자서 영화관에도 가보고 하면서 스스로 변하려는 시도를 했어요. 솔직히 저의 이러한 문제들은 20~30대까지 계속됐는데 특히 사람들 앞에 나가면 진땀을 흘리고 말을 제대로 못했어요. 저는 그때도, 지금 이 순간도 진화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미국 사회에 인종차별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만약 그렇다면 그것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일까요.
“지난 20년에 비하면 동양계 미국인 또는 다른 소수계에 대한 차별은 아주 많이 줄었습니다. 요즘은 노골적인 인종차별 상황을 보는 것이 상대적으로 극히 드물죠. 하지만 아직도 인종에 대한 고정관념과 인식이 있고, 그것이 한국계와 동양계 미국인이 미국 사회 내에서 리더가 되는 것을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극복을 위한 최선의 방법은 더 많은 한국계 미국인들이 사업, 정치, 미디어 분야에서 리더가 될 수 있도록 장려하고 지원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방송 활동 이외에 갖고 있는 꿈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공공 서비스나 정부에서 다시 한 번 일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 제 스스로 정치 공직을 오래할 것 같진 않지만, 개인적으로 갖고 있는 원대한 꿈은 미국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는 한국계 미국인을 만나는 것, 그리고 그의 참모가 돼보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질은 르네상스 리더의 자질과 일치한다고 생각해요.”
‘서바이버’에 출연하신 지도 시간이 꽤 지났습니다. 막강한 체력이 필요한 방송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혹시 비슷한 프로그램에 출연 제안이 들어온다면 지금 다시 도전할 의향이 있으신지요.
“하하…. 두고 볼 일이죠. ‘서바이버’ 쇼 우승자들을 모아 최종 우승자를 가린다는 소문이 있기는 하더라고요.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물론 참가하고 싶은데, 아내가 2개월 동안 제가 집을 떠나도 괜찮다고 허락해 줘야 할 것 같은데요.”
서바이버 상금이 100만 달러였다고 들었습니다. 어디에 썼나요.
“우선 세금으로 절반을 냈고 나머지는 기부도 하고 투자도 했어요.”
권율 씨의 진화는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요.
“진화는 남은 인생 동안 계속되겠죠. 만약 멈춘다면 그것은 제가 현실에 너무 안주했거나 죽는 순간이겠죠.”
글 장헌주 기자 chj@hankyung.com 사진 제공 중앙북스 ‘나는 매일 진화한다’
두어 달 전 한 대형 서점에서 발견한 신간 표지에 반가운 얼굴이 있었다. 지난 2006년 미국 TV 드라마 열풍과 함께 한국에도 알려지기 시작했던 CBS 리얼리티 쇼 ‘서바이버’에 출연했던 한국계 미국인 권율 씨였다. ‘서바이버’는 당시 15만 명의 시청자를 확보할 만큼 인기리에 방송된 프로그램이다. 동양인 최초의 서바이버 최종 우승자였던 그는 훤칠하고 잘생긴 외모에 전직 변호사로 구글에서 근무 중이라는 배경, 쇼를 통해 보여준 리더십으로 미국 내에서도 화제가 됐을 뿐만 아니라 국내 언론을 통해서도 몇 차례 소개가 될 정도로 이목을 끌었다.
쇼 출연 후 인기는 급상승했고, 여기저기서 러브콜을 보내오는 곳이 많아진 그는 하버드, 스탠퍼드, 골드만삭스, 야후, IBM, AT&T, 매킨지 등 미국 최고의 대학과 굴지의 기업을 대상으로 100여 곳 이상에서 강연회를 열며 미국 사회에서 소수 인종이 리더로 거듭날 수 있는 사회적 환경 개선에 대한 이야기를 피력했다. 2008년에는 버락 오바마 민주당 대선 후보 캠프에 합류해 소수계 젊은 층 유권자들에게 오바마를 미래 미국의 리더로 어필하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반가운 마음에 펼쳐 든 그의 책 ‘나는 매일 진화한다(중앙북스)’ 에필로그에 그의 현주소는 놀랍게도 PBS 방송 ‘아메리카 리빌드’의 진행자였다. 오바마 정부 출범 후 연방통신위원회(Federal Communications Commission·FCC) 소비자보호국 부국장이라는 안정적인 공무원 생활을 포기하고 선택했다는 방송 진행자 자리는 그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나서 자라는 동안 미국에서 본 TV 방송에서 단 한 번도 동양계 미국인이 진행자로 출연한 것을 본 적이 없었던 그는 PBS의 제안을 받아들이며 또 한 번 동양계·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최초’라는 기록을 남겼다.
스탠퍼드대, 예일대 로스쿨, 매킨지, 구글, 오바마 정부를 거친, 한국식 표현으로 하자면 ‘훌륭한 스펙’의 소유자인 그가 지금 책을 내며 전하려고 한 메시지는 무엇일까. 출판사와 그의 미국 에이전트, 권율 본인과의 잔잔한 커뮤니케이션에 한 달여의 기간이 걸렸다. 결국 그는 머니와 e메일 인터뷰를 허락했고 조심스럽게 그의 이야기를 전해왔다.
현재 PBS 방송의 ‘아메리카 리빌드’ 쇼 진행자로 활약하시는 것으로 압니다. 방송인으로서의 삶은 이전과 어떻게 다른가요.
“TV 쇼 진행자가 솔직히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어요. 원래 타고난 성격이 적극적이지 않은 탓에 개인적으로 방송에 익숙해지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송은 제가 상당히 즐기고 있는 일임에는 분명해요. 미디어만큼 사람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생각을 바꿔놓을 수 있는 강력한 도구는 없으니까요.”
‘아메리카 리빌드’ 외에 출연했거나 출연 중인 프로그램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각 쇼에서 권율 씨의 역할도 궁금합니다.
“현재 ‘아메리카 리빌드’와 함께 주간 뉴스 쇼인 ‘링크아시아(LinkAsia)’라는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고 있습니다. 아시아에 관한 이야기와 이벤트를 다루는 쇼예요. 아시아 국가 보도방송국과 파트너십을 맺고 기사를 제공받고 있는데, 한국에서는 MBC, MBN 등으로부터 (한국어) 뉴스를 제공받아 영어 더빙을 하죠. 한때 CNN 스페셜 특파원으로 일하기도 했고, 스미스소니언(Smithsonian) 채널, 디스커버리(Discovery) 채널의 진행을 본 적이 있어요. 최초의 TV 출연은 아시다시피 2006년도 ‘서바이버’ 쇼였고요.”
동양계 미국인의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공무원의 길(FCC)을 포기하고 방송 진행자의 길을 선택했다고 들었습니다. 그것이 동양인의 이미지를 바꾸는 데 기여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입니까.
“FCC를 떠나 ‘아메리카 리빌드’ 진행자를 택했던 이유는 미국인들이 가진 한국계 미국인 또는 동양계 미국인에 대한 시각을 바꾸고 싶었기 때문이었어요. 미국 사회 내에는 동양계 미국인에 대해 팽배한 인식이 있는데, 바로 ‘영원한 외국인’이라는 겁니다. 우리(동양계)가 미국에서 태어났거나 자랐다 하더라도 미국인들에게는 진짜 미국인이 아닌 외국인으로 비춰진다는 말이죠. 제가 ‘아메리카 리빌드’ 진행을 맡기 전에 한국계나 동양계 미국인이 미국에 대해 얘기하는 쇼의 진행자로 나온 것을 본 적이 없어요. 제가 진행자로 나서는 것이 한국계 미국인의 이미지를 개선하는 데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고, 또한 그것이 다른 젊은 한국계 미국인들에게 포문을 열어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2008년 오바마 대선 캠페인에서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에 기여했다고 들었습니다. 당시 권율 씨의 역할이 무엇이었으며, 어떤 전략이 주효했다고 생각하십니까.
“젊은 층과 아시안 아메리칸을 대변하는 역할을 했는데, 정당집회 등에서 오바마의 입장을 대변해 그를 피력하는 것이었죠. 처음 오바마를 지지하겠다고 결심했을 때는 솔직히 그에게 승산이 크게 있다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또 유색인종이 미국의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았었죠. 하지만 그의 지적인 면과 젊은 층과 동양계를 포함한 소수계 유권자들에게 어필하는 그만의 능력에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당시 그가 승산 없는 경주마 같았지만 돕고 싶었어요. 오바마가 소수계 미국인들의 정치적 참여를 독려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사람들은 그를 대통령으로 선출하는 것이 미국 역사를 바꿀 수 있는 길이라 믿었고, 그렇기 때문에 오바마가 승리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가까이서 본 오바마는 어떤 정치인입니까. 또한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적이고, 사려가 깊으며 원칙주의자입니다. 유머감각도 넘치는데, ‘서바이버’ 쇼에 우승한 후 처음 만났을 때 제게 누구 복근이 더 훌륭한지 비교해보자고 제안했을 정도죠. 많은 부분에서 오바마는 전형적인 정치인의 모습에 부합되는 사람은 아니라고 봅니다. 바로 그 점이 그의 인간적 매력이기도 하죠. 엄청난 대중적 카리스마의 소유자이며 탁월한 연설가이지만, 내성적인 사람이기도 해요. 애석하게도, 그가 원했던 것만큼 워싱턴에서 당파 문화를 바꾸지는 못했지만, 저는 그의 노력이 부족했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한국계 미국인으로 ‘성공’이란 단어가 어울리는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권율 씨의 삶에서 이룬 가장 큰 성공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현재까지는 미국 내 코리안 아메리칸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는 데 일조를 한 것이 가장 의미 있는 성과가 아닐까 싶습니다. 미국 사회에는 아직도 아시안 아메리칸과 코리안 아메리칸들은 스마트하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지만 리더십 스킬과 카리스마가 부족하다는 인식이 강해요. 동양계나 한국계 미국인 남성의 경우, 공부벌레라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죠. 저의 방송 활동이 정치적 상황이나 미디어 속에서의 한국계 미국인들의 고정관념을 변화시키고, 또한 그들에게 기회를 줄 수 있는 작은 발걸음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제 삶에서 더 중요한 일들을 많이 일구고 싶지만 제 인생의 궁극적인 성공 척도는 행복한 가족을 영위하는 것이라 생각해요.”
권율 씨는 한 인터뷰에서 “미국에서 아시안계는 3% 정도만이 회사 임원으로 올라갈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아시안은 하드워커(hard worker·열심히 일하는 사람)이긴 하지만 리더가 될 수 없다는 선입견, 국적이 미국임에도 불구하고 백인을 만날 때마다 “어디서 왔냐(Where are you from)”는 뜬금없는 질문을 수도 없이 들어야 했다. 그의 대답은 언제나 “나는 미국인이다(I’m American)”였지만 그를 보는 그들의 눈빛은 긍정의 그것은 아니었다고. 그는 그런 미국인들에게 반기를 들었고, 동양계도, 특히 한국계 남자도 얼마든지 리더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서바이버’란 프로그램 이름만 듣고 “죽으려고 나가냐”며 안 된다던 아버지를 설득했고, 그는 10만 명이 보는 TV 쇼에서 결국 미국 시청자들을 ‘설득’했다.
미래형 지도자에 대해 ‘르네상스 리더(Renaissance Leader)’를 언급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지도자를 말하며 그 지도자 유형에 부합되는 권율 씨의 면모가 있다면요.
“‘르네상스 리더’란 광범위한 기술적 역량과 경험을 갖춘 사람으로 그러한 스킬을 다양한 도전적 상황에서 빠른 속도로 적용할 수 있는 리더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 사회는 매우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으며 사회 조직들도 대형화되고 있어 어떤 사람도 혼자 힘으로 모든 현안이나 시장 상황하에서 전문가가 되기는 어렵습니다. 모든 조직은 직면한 사안에 대한 전문가를 원하지만, 그 조직의 리더 자신이 전문가가 될 필요는 없어요. 대신 다양한 전문지식에 대한 폭 넓은 이해가 필요하며, 다양한 소스로부터 필요한 정보를 적합화하고 흡수할 수 있는 능력은 필요합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리더는 다양한 타입의 조직원과 퍼스낼러티를 어떻게 고무시키고 이끌어 갈 것인지 알 필요가 있어요. 제 경우에는 다양한 분야에서 가능한 많은 경험을 얻고자 의도적으로 노력했는데 제 스스로 정립한 커리어 모델을 저는 ‘딥 컨설팅(deep consulting) 모델’이라고 부릅니다. 다양한 조직과 산업분야에서 마치 컨설턴트처럼 일하려고 노력하는 것이죠. 하지만 고용인으로 조직에 실제로 가담하기 때문에 컨설턴트보다는 훨씬 심도 깊은 경험을 하게 될 것이며, 결과적으로 일반적인 컨설턴트보다 조직 문화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게 되겠죠.”
어릴 적 별명은 무엇이었습니까. 여러 심리적 이유로 혼자 있었다고 했는데, 부모님과 보내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었나요.
“가족이나 친구들이 지어준 별명은 없고 대신 나를 놀렸던 아이들이 ‘칭크(chink)’ 또는 ‘구크(gouk)’라고(동양인을 폄하할 때 쓰는 속어) 불렀죠. 문제가 생겨도 부모님을 실망시켜 드릴까 두려워 항상 문제들을 숨겼어요. 무엇보다도 그때는 부모님께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고 싶었거든요. 제가 약하거나 겁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부모님이 저를 부끄러워하실까 봐 염려됐어요. 이와 같은 상황은 (미국에 있는) 많은 청소년들이 지금도 같은 방식으로 겪고 있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어릴 적 공황장애를 앓았다고 했는데, 어떻게 극복했나요.
“중학교 때 형의 친한 친구가 자살한 일이 있었는데, 이사를 간 후 외로움을 이기지 못해 선택한 것 같았어요. 그때 저도 변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조금씩 변화를 시도했고 모르는 사람한테도 먼저 인사하기 시작했죠. 집 밖으로 나가서 혼자서 영화관에도 가보고 하면서 스스로 변하려는 시도를 했어요. 솔직히 저의 이러한 문제들은 20~30대까지 계속됐는데 특히 사람들 앞에 나가면 진땀을 흘리고 말을 제대로 못했어요. 저는 그때도, 지금 이 순간도 진화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미국 사회에 인종차별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만약 그렇다면 그것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일까요.
“지난 20년에 비하면 동양계 미국인 또는 다른 소수계에 대한 차별은 아주 많이 줄었습니다. 요즘은 노골적인 인종차별 상황을 보는 것이 상대적으로 극히 드물죠. 하지만 아직도 인종에 대한 고정관념과 인식이 있고, 그것이 한국계와 동양계 미국인이 미국 사회 내에서 리더가 되는 것을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극복을 위한 최선의 방법은 더 많은 한국계 미국인들이 사업, 정치, 미디어 분야에서 리더가 될 수 있도록 장려하고 지원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방송 활동 이외에 갖고 있는 꿈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공공 서비스나 정부에서 다시 한 번 일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 제 스스로 정치 공직을 오래할 것 같진 않지만, 개인적으로 갖고 있는 원대한 꿈은 미국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는 한국계 미국인을 만나는 것, 그리고 그의 참모가 돼보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질은 르네상스 리더의 자질과 일치한다고 생각해요.”
‘서바이버’에 출연하신 지도 시간이 꽤 지났습니다. 막강한 체력이 필요한 방송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혹시 비슷한 프로그램에 출연 제안이 들어온다면 지금 다시 도전할 의향이 있으신지요.
“하하…. 두고 볼 일이죠. ‘서바이버’ 쇼 우승자들을 모아 최종 우승자를 가린다는 소문이 있기는 하더라고요.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물론 참가하고 싶은데, 아내가 2개월 동안 제가 집을 떠나도 괜찮다고 허락해 줘야 할 것 같은데요.”
서바이버 상금이 100만 달러였다고 들었습니다. 어디에 썼나요.
“우선 세금으로 절반을 냈고 나머지는 기부도 하고 투자도 했어요.”
권율 씨의 진화는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요.
“진화는 남은 인생 동안 계속되겠죠. 만약 멈춘다면 그것은 제가 현실에 너무 안주했거나 죽는 순간이겠죠.”
글 장헌주 기자 chj@hankyung.com 사진 제공 중앙북스 ‘나는 매일 진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