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th Interview] 최석구 인제대 서울백병원장의 진료·경영 철학
입력 2012-08-28 09:11:52
수정 2012-08-28 09:11:52
올해로 설립 80주년이 된 인제대 백병원은 한국 사립병원의 산 역사다. 특히 서울백병원은 다섯 개 형제 병원들의 모태로서 그 역사를 고스란히 이어가는 곳이다. 지난해부터 이곳을 책임지고 있는 최석구 인제대 서울백병원장을 만나 의사로서 그가 갖고 있는 진료 철학, 병원장으로서의 경영철학을 들었다.
지난 7월 9일 인제대 서울백병원 별관. 704호 연구실에서 최석구 인제대 서울백병원장을 만났다. 원장실이 아닌 그저 ‘교수 연구실’이라는 간판이 붙은 작은 사무실이었다. 서울백병원에는 원장실이 따로 없다. 환자를 위한 공간을 늘리다 보니 가장 비효율적인 공간인 원장실이 희생 1순위가 됐다는 것. 10년 넘게 써온 연구실이 더 편하다며 최 원장은 웃었다.
원장실이 필요하지 않으세요.
“원래 있었는데 원장실에 있는 시간이 길지 않았어요. 진료도 해야 하고, 그 외 대부분의 시간도 돌아다니거나 연구실에 있거든요. 하루에 두세 번 정도나 들어갔을까요. 그런 데에 큰 공간을 낭비할 필요는 없는 거죠.”
의사일 때랑 원장이라는 직책이 있을 때 많은 부분이 다르지요.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재미없는 자리긴 해요. 다만 누군가는 해야 하는 자리고, 또 잘 해야 하는 자리죠. 서울백병원만 해도 1000명 가까운 직원이 있어요. 직원들 각각의 이해관계를 맞추고 설득하는 것을 고민해야 합니다.”
의사로만 계실 때는 그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그렇죠. 오전에 환자를 보고 점심 후에 휴식도 필요하고 연구도 해야 하는데, 원장이 되니까 하다못해 식당 쌀값 지출문서까지 결재를 해야 돼요. 사실 내과의사가 그거 알아 뭐하겠어요. ‘내가 집에서도 쌀값을 모르는데’ 하면서 새로운 공부를 많이 하는구나 생각하죠.”
원장의 자리에 있으면 병원의 재무적 책임과 동시에 의사로서 사회적 책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셔야 하는데, 방침이나 원칙이 있습니까.
“그건 개인적인 것보다 재단의 의지가 뚜렷해요. 설립자이신 백인제 박사님도 그렇고 백낙환 이사장님도 의사 출신이라 그런지 ‘병원을 돈 벌려고 하느냐, 봉사고 일자리 창출이다’라는 설립 때부터 이어오는 정신이 있어요. 근무하는 입장에서는 수익성에 대한 압박이 비교적 적은 편인 것 같아요.”
하지만 병원이 영리적인 면을 무시할 수도 없죠.
“맞아요. 우리나라에서는 병원이 돈을 굉장히 많이 남기는 기관이라고 생각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아요. 몇 배의 진료비를 받는 미국도 흑자 병원이 많지 않고 항상 적자입니다. 미국은 다만 부호들에게서 기부를 받는 식으로 맞춰서 운영을 하는 거죠. 한국에선 ‘왜 돈 많은 병원에 돈을 주냐’고 하겠지만, 실제로 한국의 병원들도 진료만으로는 적자고, 부대수입으로 충당하는 식이에요. 우리 보험제도에서는 보험에 해당하지 않는 부분은 비정상적으로 크고 윤기가 나지만요.”
성형외과나 치과, 전문 병원 말씀이시죠.
“그렇습니다. 제 친구도 얼마 전에 허리 때문에 큰돈을 내고 전문 병원에 갔다고 하더라고요. 왜 비싸게 그런 데 가냐고 했더니 대학병원이었으면 사진 찍고 판독하고 결과 보는 데 일주일 걸리고 수술 잡으면 또 2주일 기다리고 할 텐데 거기선 진료 받고 그날 바로 치료에 들어가자고 해서 좋다더군요.”
그 말 듣고 대학병원장으로서 많은 생각이 들었겠습니다.
“병원의 특수성이 있는 거니까요. 그런 게 편하고 맞는 환자가 있을 거예요. 그렇지만 거기서 해결 못하는 것도 있잖아요. 그 경우 대학병원을 찾든지 해야 하니까. 환자분들이 현명하니까 시행하다 보면 자리를 잡아갈 겁니다.”
진료는 하루에 몇 명이나 보십니까.
“오전에만 60명 정도 봅니다. 3시간에 60명이면 3분에 한 명씩이죠. 초진 환자가 있으면 더 밀리겠죠. 사실 이게 우리 의료 현실의 문제입니다. 환자들이 가장 불편해 하는 것은 의사와 얘기하는 시간이 짧다는 건데, 제한된 시간에 많은 환자를 봐야 하는 현 의료보험제도 구조상 그럴 수밖에 없는 거죠. 미국은 의사가 하루에 20명 정도 보면 힘들다고 난리인데, 한국 의사들은 20명만 보면 휘파람을 분다고 하더군요.”
미국도 오바마 케어(건강보험개혁법)가 시행되면 달라지지 않을까요.
“아무래도 바뀌긴 하겠지만 우리처럼 되진 않을 것 같아요. 이미 정착한 진료 문화가 있으니까요.”
최근 포괄수가제(DRG) 때문에 의료계가 시끄러웠는데요.
“동료 의사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규제받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 것 같아요. 정부 발표를 보니 이미 상당수 병원에서 시행 중이었다고 하는데, 그걸 굳이 강제적으로 한다고 하니까 간섭받는다는 생각에 예민해지는 거죠. 70%가 시행한다면 나머지 30%는 자율에 맡겨서 환자들이 선택할 수 있게 해도 되지 않았나 싶어요. 시행하다 보면 문제점을 보완해 나가겠죠. 법으로 그렇게 하자고 하면 국민 입장에서는 따라가야 하지 않겠어요. 의사들이 협조하면 좋겠지만 껄끄러워한다는 게 걱정스럽네요.”
병원 행정에도 신경을 많이 쓰실 텐데, 가장 초점을 두는 부문은 무엇입니까.
“서울백병원은 1980년 인제대 의료원 전체의 모태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인구 분포가 많이 달라져서 주위에 유동인구는 많은데 거주 인구는 많지 않아서 환자가 줄고 있어요. 밤이 되면 이 골목에는 택시도 안 들어온다니까요. 백병원 이름으로 찾아오는 분이 있어 유지는 하지만 예전만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 경영자립도를 높이려고 노력 중이에요.”
묘책이 있을까요.
“우선 남아 있는 지역주민 대상으로 홍보를 많이 하려고요. 백병원이 주민들에게 비싼 병원으로 소문이 나있어요. 옛날 이미지 때문이죠. 그래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렇지 않다, 중구민을 위한 이웃병원이다’라고 알리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는 주위에 많은 직장인을 위해서 저녁 진료를 하고 있어요. 고정적으로 평일 9시까지 진료를 받을 수 있게 했는데, 아직 활성화가 되지 않아서 솔직히 경영 면에서는 큰 도움이 되진 않습니다. 저녁 근무 수당 때문에 오히려 손해지만, 해야 한다는 재단 의지가 워낙 강해요. 직장인이 관심 갖는 스트레스 관리, 통증, 근골격계 질환, 스포츠메디컬 센터, 남성건강의학 치료시설도 마련하고 있죠. 마지막으로 외국 관광객들이 있어요. 특히 명동을 찾는 외국인이 많아지면서 우리 병원을 찾는 외국인 수도 늘고 있어요. 본국에서부터 계획을 갖고 온다기보다 여기서 다쳤거나 아파서 오는 분들이죠. 때로는 한국에 머무르는 동안 정기적으로 혈액 투석을 받아야 하는 외국인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이 부분을 확장시킬 수 있는 방법을 생각 중이에요.”
백낙환 이사장님은 병원 운영에 어떤 주문을 하십니까.
“서울백병원에는 많은 부담 안 주고 유지만 해줬으면 좋겠다고 많이 말씀하세요. 힘들더라도 여기서 계속 하고 싶어 하시기 때문에. 지금 형제 병원들이 있고 서로 지원도 많이 하고 있지만 백병원의 모태로서 자부심을 지켜야 하니까요.”
최 원장의 이력은 지극히 간단하다. 서울대 의학과, 서울대 대학원을 나와 바로 백병원 전공의가 됐다. 이후 35년간 쭉 백병원에 적을 두고 있다. 최 원장은 심장내과 전문의다.
너무 경영 얘기만 한 것 같네요. 본래 취지로 돌아가서 심장전문의로서 여쭤보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것 중 하나가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도 예방이 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갑작스러운 죽음 가운데 대부분이 심장질환 때문일 겁니다. 부정맥, 심실세동, 심실빈맥, 뭐 이런 게 있는데 대부분 관동맥이라고 심장을 싸고 있는 동맥, 즉 심장에 산소와 영양을 주는 혈관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아요. 갑작스럽다곤 하지만 미리 이쪽 원인 질환을 발견해서 치료하면 예방이 되겠죠. 물론 멀쩡한 사람에게도 생기긴 합니다. 운동선수들이 갑자기 쓰러지는 사례가 있잖아요.”
그런 경우를 위한 대비책은 없나요.
“요새는 그걸 대비해서 일반인들도 응급심폐소생술을 많이 익히도록 하고 있어요. 공항이나 터미널, 사람들이 많이 거주하는 곳에는 전기충격기도 준비돼 있고요. 옆 사람에게 그런 일이 있을 경우 일차적으로 시간을 벌 수 있죠.”
고혈압은 어떻게 대비해야 합니까.
“대표적인 것이 정부에서 주도하고 있는 싱겁게 먹기입니다. 한국인이 소금을 평균 15g 정도 먹어요. 정부 목표는 5g이고요. 5g이면 지금 사람들 아마 밥 먹기 힘들 걸요. 입원한 분들께 10g 정도의 식사를 드려도 처음엔 다들 밀어내세요. 입맛이 워낙 짜게 길들여져 있어서 그래요. 혈압이 높으신 분들은 약을 드시면 근본적으로 고혈압을 없던 것으로 할 수는 없지만 안정 범위 내에서 살 수는 있어요.”
일반적으로 심장질환에 대해 가장 많이 하는 오해는 무엇입니까.
“대개 환자분들이 ‘목 뒤가 뻐근하다, 혈압이 오르는 것 같다’ 하면서 오시는데 사실 둘은 별 상관이 없어요. 직장인들이 오후에 어깨나 목이 뭉쳐서 뻐근하고 아플 수 있어요. 그때 되면 피곤하니까 혈압도 오르고요. 그런데 그건 혈압도 오르고 목도 뻐근한 거지, 혈압이 높아서 목이 뻐근한 게 아니에요. 그런 오해가 있다 보니까 반대로 그런 증세가 없으면 혈압이 높지 않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혈압은 증세가 없고 재보기 전에는 모르는 겁니다. 마라톤 하다가 쓰러지는 분들도 자신은 건강하다고 생각하셨겠죠. 그런 큰 운동을 하기 전에는 병원에서 체크를 받는 게 좋아요.”
주요 검사에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우선 혈압은 재는 수밖에 없습니다. 혈압에 문제가 있으면 안저검사를 할 수 있어요. 눈 속을 보면 혈관이 보여요. 그걸로 검사를 하는 거죠. 협심증은 운동부하검사로 알 수 있어요. 심전도측정기를 가슴에 붙이고 달리는 거 보셨죠. 심장에 스트레스를 줘서 심장이 따라오는 심전도 변화를 보고 운동해도 좋은지 체크하는 거죠. 부정맥 환자는 24시간 심전도측정기를 부착해서 기록을 분석합니다.”
좀 더 기본적인 검사에는 어떤 것들인가요.
“혈액검사, 소변검사, 혈압체크 등 건강검진이죠. 제가 환자분들에게 늘 하는 말이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하는 검진을 받으라는 거예요. 그걸 많이 안 받더라고요. 거기에 에센스는 다 있거든요. 가끔은 반대로 그걸 기다린다고 이상이 있어도 병원에 안 가는 분이 있어요. 그것도 위험하죠. 이상이 있으면 빨리 병원에 가세요. 검진은 이상이 없는 사람이 받는 거고, 불편한 사람은 검진이 아니라 진료를 받아야죠.”
술이랑 담배는 안 하십니까.
“종교적인 이유 때문에 하지 않습니다. 병원장이 되고 술은 피하기 힘들어졌지만 최대한 현명하게 대처하는 중이에요.”
운동은 하시고요.
“주위에서 권한 것들 이것저것 해보다가 힘에 부쳐서 지금은 피트니스클럽에서 러닝머신을 달리고 웨이트트레이닝을 조금 합니다. 일주일에 2~3번 1시간 조금 못 미치게 해요. 일과 후에 가니까 그 이상은 힘들더라고요.”
음식은 가려서 드시는 편이신가요.
“가리는 것 없이 다 먹습니다. 부모님께서 잘 낳아주셔서 그렇게 먹어도 콜레스테롤이 높지 않아요. 동료들하고 검사해보면 아주 낮은 편이에요. 싱겁게는 먹습니다. 그건 의식해서도 그렇고 습관이 됐는지 짠 음식을 좋아하지 않아요. 그래도 정부 기준 5g보다는 높을 거예요.(웃음)”
의사로서 진료 철학은 무엇입니까.
“환자들한테 감사해야 한다는 것이에요. 전 임상의니까 30년 넘게 진료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절 믿고 찾아와 준 환자분들이 있었기 때문이잖아요. 그렇지 않고서야 임상 경험을 어디서 쌓겠어요. 저한테는 굉장히 고마운 분들이죠. 친구들이 가끔 저에게 자신이 다른 의사한테 받은 진단에 대한 소견을 묻곤 해요. 대부분이 그럴 거예요. 세컨드 오피니언을 듣고 싶어 하거든요. 그럼 저는 ‘그 의사가 제일 잘 알 거다. 내가 너한테 몇 마디 전해 듣고 어떻게 판단하느냐. 처음부터 보고, 검사하고, 고민한 의사가 가장 정확한 결론을 냈을 거고, 나야 말만 듣고 무책임하게 일반적인 얘기만 할 거니까 믿지 마라’고 말해요. 의사와 환자의 신뢰는 서로가 쌓아야 한다고 봐요. 저는 저한테 오는 분들 고맙게 생각하죠. ‘오늘도 저를 믿고 오셨군요’ 하면서.”
앞으로의 목표는.
“앞으로 정년이 5년 남았어요. 이 길로 오다 보니 하고 싶은 것을 많이 못했어요. 정년 후에 그동안 하지 못했던 것, 버킷리스트 비슷하게 모으고 있어요. 우선은 그동안 내 가족들, 소수 사람들을 위해서만 살아온 것 같아서 내 이웃의 경계를 크게 해보고 싶어요. 내 혈연이 아닌 사람들을 챙기고 가고 싶달까요.”
좀 더 개인적인 리스트는 없습니까.
“스킨스쿠버를 하고 싶어서 얼마 전에 배웠어요. 환자 중에 하는 분이 있어서 쉽게 기회가 생겼죠. 패러글라이딩도 해보고 싶은데 가족들이 다 말리네요. 스키도 배우려고 했는데 원장이 되면서 자리를 비울 수가 없어서 못했고요. 보직이 끝나면 다시 시도해야죠.”
글 함승민 기자 sham@hankyung.com 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