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interview] 열정과 패기로 세계 시장에서 ‘껑충껑충’
입력 2012-07-03 13:35:03
수정 2012-07-03 13:35:03
곽미나 라비또 대표
누가 생각해도 선뜻 내키지 않는 길. 6년 차 직장인이 안정적인 대기업의 울타리를 벗어나 창업을 한다는 것이 그랬다.시선을 끌고 마음을 빼앗은 토끼 한 마리로 휴대전화 액세서리에 강한 바람을 일으킨 디자이너가 있으니 곽미나 라비또 대표다.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토끼는 지금 이 순간도 젊은 최고경영자(CEO)의 심장박동처럼 활기찬 뜀박질을 멈추지 않는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라비또(rabito)’란 이름이 얼마나 익숙할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기다란 토끼 귀가 달린 휴대전화 케이스’라고 설명한다면 “아하, 그거!”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지 않을까 싶다.
토끼해를 앞둔 2010년 말부터 시쳇말로 불티나게 팔렸던 쫑긋한 토끼 귀가 달린 휴대전화 케이스는 올해 나이 서른둘의 젊은 CEO 곽미나 대표의 작품이다. 상품을 두고 ‘작품’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곽 대표 자신이 디자이너로서 직접 고안한 창의적인 디자인이기 때문. 그렇다. 그는 사업가 이전에 아이디어로 ‘먹고 살았던’ 디자이너였다.
세계 여심 사로잡은 토끼 휴대전화 케이스
“창업이 좀 이르긴 했죠. 삼성을 그만둔 것을 두고 ‘박차고 나왔다’ 등의 표현을 하는 분들이 계신데 좀 당황스러워요. 삼성이 좋은 직장인 것은 분명하죠. 하지만 박차고 나온 게 아니라 사실 유학을 가려고 회사를 정리했었습니다. 영국 UCL(University College London)에 입학 허가까지 받아 놓은 때에 런던 디자인 전시회에 라비또 디자인을 출품했던 것이 일을 크게 만들었죠.(웃음)”
2010년 9월의 일이다. 삼성전자 모바일사업부에서 6여 년간 비주얼 디자인을 담당했던 그는 재직 중일 때도 휴가를 이용해 해외 전시회에 디자인을 출품하며 활발한 활동을 벌였던 터다. 2008년 지구 온난화를 주제로 한 논문을 읽고 영감을 얻어 발표했던 일명 ‘지구 온난화 티셔츠’와 컵은 해외에서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며 판매에서도 꽤 좋은 성적을 냈다.
뉴욕현대미술관(MoMA)에 전시하며 화제를 모았던 단추로 만든 에코 반지 역시 하루 판매량이 몇백만 원에 이를 정도로 해외 고객들에게 판매가 많이 됐던 아이템. 구글 검색창에 ‘미나 곽(Mina Kwag)’이란 키워드로 검색하면 그의 전시회 소식을 많이 접할 수 있는 이유다. 서울대 시각디자인학과를 졸업하고 삼성전자 모바일사업부 비주얼 디자이너로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는 중이었지만 그는 액세서리, 의류 등 다른 분야에서도 창의적이고도 메시지가 있는 작품으로 참신한 디자인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었던 것. 유학을 앞뒀던 사람이 갑자기 창업을 하게 된 것 역시 해외 전시회와 그의 감각을 알아봐준 해외 고객들 덕분이었다.
“영국에서 인지공학을 공부하고 싶었거든요. 가을 학기부터 시작할 예정이었죠. 학기 전에 시간이 좀 남는 것 같아 전시회 출품을 하게 됐는데, 라비또에 대한 반응이 너무 뜨거웠어요. 양산도 하지 않았던 제품인데 주문이 들어왔고, 주문 받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 학교 입학을 미루고 한국으로 다시 왔죠. 밀려드는 주문으로 정신없이 일하다 보니 학교 입학을 1년이나 미루게 됐는데, 허용되는 입학 연기 기간이 최대 1년이거든요. 하는 수 없이 입학을 포기했어요.”
하지만 그가 단 한 번의 전시회에서 확인한 반응으로 제품을 양산했던 것은 아니다. 프로페셔널 디자이너로서 시장분석에 익숙했던 그는 2010년 9월 런던에서 토끼 모양 휴대전화 케이스의 시장성을 확인한 후 2차로 다음 달인 10월 스페인 발렌시아에서 개최된 국제 디자인 전시회에 출품해 유사한 반응을 확인했다. 그래도 한 번 더 하는 심정으로 11월 일본 전시회에 출품했는데 그때 역시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세 번의 전시회를 통해 주문은 이미 몇천 개로 쌓여 있었고, 양산을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다음 해가 토끼해였던 당시 크리스마스 성수기는 그의 24시간을 앗아가고도 남을 지경이었다. 국내는 물론 중국, 유럽 등에서 밀려오는 주문으로 납품까지 2개월씩 걸리기도 했다.
“눈만 뜨면 주문이 들어왔었죠. 회사 다닐 때는 디자인만 했지 생산에 관여한 적은 없었는데, 공장에서 아저씨들이랑 밤도 많이 샜죠. 하지만 너무 확 일어나니까 무섭기도 했어요. 제품을 빨리 받지 못하니까 닦달하는 경우도 있었고요. 중국에서 주문이 많았는데, 중국 거래처들이 좀 무섭더라고요.(웃음) 재고가 없는데 돈을 들고 저희 집까지 찾아온 적도 있어요. 그래서 이사까지 갔어요.”
센세이셔널 디자인·재미있는 기업으로
지난해 2월 미국의 CNN 인터넷판(CNNGo.com)에 게재된 곽 대표의 인터뷰 기사에는 ‘2010년 12월에 출시한 라비또 케이스는 하루 평균 판매량이 1000개’라고 소개돼 있다. 애초에 집에서 시작한 회사는 직원 4명과 함께 서울 독립문 사무실로 나갔고, 지금은 충정로로 옮겨 9명의 직원을 고용할 만큼 규모가 커졌다. 준비 없이 시작한 사업은 그의 표현대로라면 예상치도 못했던 사건들이 ‘펑펑’ 터지기 일쑤였고, 곽 대표는 하나부터 열까지 혼자서 해결하는 데 한계를 느끼고 조직의 진용을 갖추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가장 절실했던 것이 지식재산권 보호였다.
“처음 출시한 제품이 ‘라비또 블링블링’인데 카피 제품들이 기승을 부렸어요. 저희 회사로 주문한 업체들이 납품이 빨리 안 되니까 카피 제품을 구입하는 경우도 있었고, 저희 회사 사이트를 100% 그대로 모방한 사이트까지 나왔어요. 그 사이트를 보고 주문한 업체가 왜 제품을 안 보내주느냐고 컴플레인을 해오는 바람에 알게 됐죠. 그때 동남아, 중국 등에서 연락이 많이 왔는데, 그 업체들 피해액이 억대에 달할 정도였어요. 황당한 해프닝이 많았죠.”
국내외 할 것 없이 앞 다퉈 출시되는 카피 제품으로 골머리를 앓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카피 제품이 많다는 것은 제품의 인기를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금액으로 따져본다면 사실상 라비또의 피해 수준이 상당하다는 얘기다. 여러 차례의 소송과 경험으로 곽 대표는 대응책을 마련했다. 관련 보험에 가입함은 물론 한국지적재산권보호협회 등 전문기관을 통해 디자인 등록과 출원 등 지식재산에 대한 안전장치를 해 둔 것이 그것. 디자이너로서, 경영자로서의 1인2역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라비또의 인기가 치솟으며 투자 제의나 사업 제의를 해 온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곽 대표는 달콤한 유혹을 모두 뿌리쳤다. 그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시작한 것이므로 다른 사람의 입장을 반영하고 요구를 들어주고 싶지 않았던 이유와, 지금보다 더 신선하고 창의적인 디자인을 선보이고 싶은 경영자이자 디자이너로서의 바람에서다.
“지금은 매출이 주춤한 상태예요. 아이폰 4와 갤럭시 S2가 저물고 새로운 모델이 나오는 시점이거든요. 라비또는 휴대전화 시장과 함께 가는 사업이라 새로운 휴대전화 모델에 대비해 디자인을 개발하는 중입니다. 올해는 해외 전시회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가해 브랜드를 알리는 데 주력할 예정입니다. 또한 해외 시장에서 꾸준히 믿고 거래할 수 있는 파트너(총판)를 만나고 싶어요. 너무 일찍 창업한 것 아닌가 했었는데 돌이켜보면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하기 잘했다 싶어요. 같은 일을 마흔 살 즈음에 겪었다면 과연 체력적으로 감당할 수 있었을까 싶거든요.(웃음) 센세이셔널한 디자인, 재미있는 기업으로 성장하고 싶습니다.”
아직도, 여전히 젊은 CEO는 7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릴 전자기구(gadget) 전시회인 ‘브레드 앤드 버터(Bread and Butter)’를 비롯해 8월 영국, 9월 영국과 일본, 프랑스 등지서 국제 디자인 페어에 참가할 스케줄을 줄줄 꿴다. 훔칠 수 없는 젊음의 특권, 열정이 세계 시장을 가만히 놔두지 않을 것 같다.
글 장헌주 기자 chj@hankyung.com 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