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ALTH CARE] 은퇴 후 행복한 부부관계 만들기


은퇴 이후 삶이 길어졌다는 것은 부부가 함께 살아야 할 시간도 그만큼 길어졌다는 얘기다. 따라서 원만한 부부관계야말로 행복한 노후의 첫째 조건인지도 모른다.


수명이 늘면서 부부가 함께 할 시간도 30~40년 정도로 길어졌다. 회사와 일을 중심으로 살다가 퇴직해서 가정으로 돌아오면 달라진 생활환경에 적응해야 하고, 배우자와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면 뜻하지 않은 갈등을 겪을 수 있다.

해결점을 찾지 못하고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 심지어 황혼이혼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통계청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 65세 이상 남성의 황혼이혼 건수가 2000년 1321건에서 2010년 4346건으로 크게 증가했다. 은퇴 후 부부가 변화에 적응하고 인생 2막을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실천할 수 있는 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함께 생각해 보자.



역지사지의 자세 필요

남편들은 은퇴 시기를 전후해서 신체적·정서적·환경적 변화를 동시에 겪는다. 신체 기능은 예전 같지 않고, 남성 호르몬이 감소하면서 점점 감성적으로 변하는 ‘아담증후군(adam syndrome)’을 경험한다. 회사가 인생의 우선 순위였다가 퇴직하면서 삶의 전부를 잃은 것 같은 상실감을 느끼기도 하는데, 이러한 심리적 증상은 ‘퇴직증후군(layoff syndrome)’이라고 한다. 집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면서 자녀와 아내에 대한 간섭이 늘고 서운한 일이 자주 생긴다.

반대로 아내는 퇴직한 남편을 돌보는 일이 부담스럽다. 젊은 시절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을 때는 일을 핑계로 외면하더니 이제는 어디 가서 무엇을 하는지 일일이 간섭하고 하루 세 끼도 챙겨달라고 한다. 남편이 회사 일에만 몰두하던 시절 혼자 지내야 했던 아내는 이웃, 친구들과 어울려 지내는 법을 익히고 취미생활도 열심히 해 왔다. 그런데 이제는 외출할 때마다 남편의 눈치를 봐야 하니 마음이 불편하다.

게다가 갱년기가 시작되면서 몸도 마음도 힘들어졌는데 남편한테 위로를 받기는커녕 집안일만 두 배로 늘었다. 이처럼 은퇴와 더불어 중년기 부부는 많은 변화를 겪는다. 따라서 역지사지(易地思之), 즉 서로 입장을 바꾸어 이해하고 배려하지 않으면 갈등관계가 될 가능성이 크다.

상처 주는 언행은 피하고 상대방의 노고를 칭찬하며 자존감을 높여주는 표현을 자주 하자. 아내는 퇴직한 남편이 자녀와의 소통, 이웃과의 관계, 가정에서의 역할에 대처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줘야 한다.

반대로 남편은 그동안 회사형 인간으로 살면서 가정에 소홀했음을 인정하고 아내와 상의해서 집안일을 분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매일 30분이라도 같이 앉아서 각자 느끼는 변화와 생각을 얘기하고 서로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의논해 보는 것이 어떨까.



은퇴 후 부부가 변화에 적응하고 인생 2막을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역지사지의 자세가 필요하다.



부부관계 2막을 여는 법

미국의 소설가 어슐러 르귄(Ursula Le Guin)은 “사랑이란 돌처럼 한번 놓인 자리에 그냥 있는 게 아니라 빵처럼 항상 다시 새로 구워져야 한다”고 했다. 처음 그 사람과 만나 설레던 마음이 돌처럼 굳어버린 것은 서로에 대한 무관심과 지루한 감정을 방치했기 때문이다.

부부간에 적당한 긴장감은 설렘으로 이어진다. 집 안에 있더라도 옷차림이나 머리 모양을 깔끔하게 정돈하자. 일주일에 한두 번은 멋지게 차려 입고 부부만의 로맨틱한 데이트를 즐기는 것도 좋겠다. 자주 아내의 손을 잡아주거나 남편의 등을 쓰다듬어 주고, 외출하거나 집에 돌아왔을 때 꼭 안아주면서 “사랑해”라고 말해 보자. 설렘은 내가 여자로서, 남자로서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선물이다.

일상생활을 잠시 떠나 고요한 장소에서 명상과 기도, 자기성찰을 할 수 있는 휴식 같은 여행도 좋다. 자연휴양림, 사찰, 시골집 등 분주하던 일상을 떠나 조용히 묵상하며 마음의 창을 맑게 해 주는 장소라면 어디든 좋다.

깊은 내면적 성찰을 통해 나의 존재가치와 삶의 목적에 대한 답을 찾아보자. 그러면 나와 인생을 함께 걸어와 준 배우자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다. 서로에게 상처가 있다면 치유해 주고 지쳤던 몸과 마음을 충전시켜 줄 수 있는 기회로 삼는 것이다.

인생은 앞만 보고 달리는 경기가 아니라 한걸음 한걸음을 음미하며 같이 걸어가는 여정이 아닐까. 내 옆에 누가 있는지 챙겨 보고 어느 정도 왔는지 한 번씩 뒤돌아보는 여유조차 없이 혼자 목적지에 도착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은퇴 후 여생을 행복하게 보내려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지금까지 걸어온 흔적을 돌이켜보고 쉬어 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부부관계 2막을 열며 고요한 장소에서 명상과 기도, 자기성찰을 할 수 있는 휴식 같은 여행을 떠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부부가 주인공인 삶을 살기

이탈리아 사람들은 ‘만자레, 칸타레, 아모레(mangiare, cantare, amore: 먹고 노래하고 사랑하자)’를 인생의 3대 모토로 여기며 살아간다. 듣기만 해도 흥이 돋고 마음이 즐거워지지 않는가. 앞으로 2~3년 이내에 본격적인 은퇴를 앞두고 있는 우리나라의 베이비붐 세대(1955~63년생)는 평생 일하며 살아 왔지만 부모 부양과 자식 교육의 부담을 동시에 짊어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정작 자신은 제대로 노후 준비를 못해 불안한 마음으로 퇴직하는 경우가 많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인생을 후회 없이 즐기며 유산을 남기지 않고 죽는 것을 멋진 인생으로 생각한다. 자식을 위해 사교육비, 유학 자금, 결혼 자금을 무리하게 마련하거나 자산을 물려주려 하지 말고, ‘지금 여기(here and now)’ 부부의 즐거운 인생을 위해 먹고, 노래하고, 사랑하자. 부부가 함께 할 수 있는 취미를 계발하는 것도 좋다. 이때 취미 활동은 단순히 시간을 때우거나 호기심에서 시작하기보다는 할수록 재미있고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게 하는 것이 좋다.

은퇴 후 행복한 부부관계는 은퇴라는 인생의 한 사건(event)을 두 사람이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는가에 달렸다. 살면서 꼭 한 번 해보고 싶었지만 포기했던 것들, 접었던 꿈이 있다면 이때 이루어보자.




박지숭 삼성생명 은퇴연구소 수석연구원 사회복지학 박사 jisung.park@sams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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