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IREMENT PENSION]야구를 통해 본 3층 연금의 중요성

야구 시즌이 돌아왔다. 1982년에 출범한 한국 프로 야구는 국민이 가장 사랑하는 스포츠다.
홈(집)을 두고 양 팀이 공격과 수비를 번갈아 하는 야구는 일견 우리네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에서 태동한 야구에 우리나라 국민이 이처럼 열광하는 이유는 뭘까. 모든 종목이 그렇겠지만 야구 역시 점수를 더 많이 내는 팀이 이기는 스포츠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야구는 다른 구기종목과는 큰 차이가 있다.

축구와 농구는 상대방 골대에 더 많은 골을 넣어야 이기는 스포츠이며, 배구나 테니스 등은 상대편 코트에 더 많은 공을 내리꽂아야 이긴다. 그러나 야구는 상대방 골대도, 상대편 코트도 없다. 야구에서 점수를 내려면 오로지 홈으로 들어오는 길밖에 없다. 아무리 많은 안타를 치더라도 홈으로 들어오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야구에서 홈런에 열광하는 이유는 바로 한 방에 점수를 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바로 여기에 야구의 매력이 있는 것 같다.



야구의 본질은 귀소본능(?)

홈, 즉 집으로 들어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선수들의 모습은 우리들 마음속에 있는 귀소본능과 다를 바 없다. 우리가 밖에서 일하는 시간은 하루에 10시간 남짓에 불과하지만, 그 속에는 수많은 애환이 녹아 있다. 이런 애환을 포근히 감싸주며 녹여주는 곳이 다름 아닌 가족이 있는 집이다.

야구는 바로 이런 우리네 삶과 가장 닮은 스포츠이지 않을까. 1루에 진출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 타자의 모습은 비가 오든 눈이 오든 혼잡한 출근길을 기꺼이 감수하는 샐러리맨의 일상을 연상시킨다. 1루에서 2루와 3루로 진출하기 위해 부상의 위험을 무릅쓰며 도루를 감행하는 주자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더 나은 성과를 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현대인의 삶이 떠오른다.

반면, 공격 팀이 홈으로 들어오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는 동안 수비 팀은 집, 즉 홈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전력을 다한다. 우리 집을 훔치기 위해 전력을 다하는 공격 팀의 모습은 가계의 안정을 위협하는 각종 위험요인을 연상케 한다. 한편 공격 팀의 이런 집요한 공격을 막는 첨병 역할을 하는 것은 단연 투수다.

상대방에게 점수를 내주지 않기 위해, 즉 내 집을 지키기 위해 투수는 빠른 공과 정교한 제구력, 그리고 다양한 변화구를 연마한다. 이런 투수의 공을 뒤로 빠트리지 않기 위해 육탄방어도 마다하지 않는 포수의 모습은 안쓰러움을 유발한다. 투수와 포수의 절묘한 호흡은 야구 경기에서 승부를 가름하는 중요한 포인트 중 하나다. 투수와 포수의 환상적인 어울림은 가계를 지키고 부흥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부부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방어율은 승리 못지않게 투수의 자질을 가늠하는 중요한 잣대다. 방어율은 야수의 실책과 같은 이유로 점수를 내어준 경우를 제외한 오롯이 투수의 책임으로 내어준 점수를 투수가 책임진 이닝으로 나누어 계산된다. 따라서 방어율이 좋은 투수는 상대방에게 점수를 적게 주는 선수를 의미한다. 투수 본연의 역할에 가장 충실한 것이다. 방어율 외에 투수의 덕목으로 중요한 게 많은 이닝을 소화하는 것이다. 선발 투수가 많은 이닝을 버텨내면 그만큼 한 경기에 투입하는 투수의 수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투수를 흔히 이닝 이터(inning eater)라고 한다. 이닝을 잡아먹는 투수라는 뜻이다.

방어율이 뛰어난 투수는 외부 위협으로부터 가정을 안전하게 지키는 가장을, 이닝 이터는 다소 부침이 있더라도 끝까지 가정을 책임지는 가장의 모습과 흡사하다. 방어율이 뛰어나면서 이닝 이터인 투수는 이 세상 모든 사람이 꿈꾸는 가장의 모델이다. 하지만 야구에서 선발투수가 9이닝을 책임지는 것은 매우 어렵다. 타자들의 체격은 커지고, 타격 기술이 발달했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다. 야구공의 반발력이 커지는 반면에 야구 배트의 성능은 좋아졌다.

이런 환경에서 팀의 방어율을 높이기 위해 도입된 것이 바로 라루사이즘(rarussaism)이다. 라루사이즘은 2011년 미국 프로 야구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에서 우승을 차지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감독이었던 토니 라루사의 이름을 따 만든 신조어다. 라루사는 오늘날 야구에서 보편화돼 있는 ‘선발-중간 계투-마무리’라는 투수의 역할분담론을 정립한 감독이다. 라루사 감독 덕분에 도입된 1이닝 마무리와 좌타자 전용 투수인 좌완 원포인트 릴리프는 이른바 쓸모없는 투수들을 쓸모 있게 만들었으며, 선발 투수 외 불펜투수들의 처우를 개선시켰다. 야구의 패러다임이 바뀐 것이다.



노후 불안에 딱 맞는 해결책은 단연 연금이다. 우리 삶의 다양한 불안 요소에 대한 대응책으로 3층 연금제도만한 게 없다.



인생의 라루사이즘

야구계에 혁신을 가져온 라루사이즘은 평균 수명은 늘어나기만 하는데 주변 환경은 요동을 치는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공격 팀의 역량이 크게 개선되고 있는 환경 변화에 대응하는 라루사이즘의 핵심은 간단하다. 바로 수비 팀의 핵심인 투수의 역할을 분담하는 것이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주변의 환경 변화를 탓한들 개선될 것은 하나도 없다. 불평불만만 늘어날 뿐이다. 라루사 감독처럼 하면 어떨까. 급변하는 주변 환경에 대응하는 우리의 대응책을 시스템화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머리를 아프게 하는 것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단연 으뜸은 노후 불안이다. 근래의 복권 열풍도 노후 불안에 힘입은 바 크다. 그러나 이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야구의 만루 홈런처럼 복권 당첨에 의지하다가는 오히려 불안을 키울 수 있다. 매주 복권을 산다 하더라도 평생에 한 번 당첨되기도 힘들 만큼 확률이 낮기 때문이다. 복권 당첨 기다리다 인생을 마감할 확률이 훨씬 높다.

노후 불안에 딱 맞는 해결책은 단연 연금이다. 야구에서 공격 팀이 점수를 뽑기 위해 다양한 전술을 전개하는 것처럼 우리의 노후를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도 다양하다. 이런 다양한 불안요소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대응책에서도 다양성을 필요로 한다. 이른바 3층 연금제도가 바로 그것이다. 국민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으로 구성되는 3층 연금제도는 우리의 인생과 가계를 위협하는 다양한 위험요인에 대한 방패막이로는 제격이다.

먼저 국민연금은 야구의 선발 투수처럼 노후를 불안에 빠트리는 위험요인을 제일 앞에서 방어하는 중차대한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선발 투수처럼 방어율도 낮고 긴 이닝을 담당해주면 금상첨화겠다. 하지만 우리의 국민연금은 사망할 때까지 연금을 보장한다는 점에서 긴 이닝을 소화하는 투수는 될 수 있을지언정 방어율 좋은 투수가 되기는 힘들다. 국민연금의 급여 수준이 매우 낮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요한 게 중간 계투진에 해당하는 퇴직연금과 개인연금이다. 오늘날 야구 경기에서 이기기 위해선 중간 계투진의 역할이 중요하듯 노후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퇴직연금과 개인연금이 필수다. 선발 투수에게만 의지하는 팀이 우승을 차지하기 힘들 듯 국민연금에만 의지하는 인생은 노후 불안에서 벗어날 수 없다.

사회보장제도가 잘 갖춰진 유럽에서는 축구가 인기를 끄는 반면에 자유시장경제가 발달한 미국과 동아시아에서는 야구가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은 우연의 일치일까. 한번 생각해볼 일이다. 마찬가지로 사회보장제도가 미흡한 우리나라에서 노후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도 따져봐야 할 요즘이다.


손성동 미래에셋 퇴직연금연구소 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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