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로망] 40년 만에 이뤄낸 비행의 꿈

김정섭 한국산업기술시험원 기업지원본부장


남자라면 누구나 그려봤음직한, 창공을 가르는 상상. 50년 전 여섯 살의 김정섭 본부장 역시 하늘을 나는 비행사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의 꿈은 40년이 지난 2002년, 먼 길을 돌아 경량 항공기로 완성돼 지금까지 인생의 활력소가 되고 있다.



한국산업기술시험원(KTL)은 지식경제부 산하 정부출연 기관이다. 각종 산업기술 시험·인증·검증 과정을 통해 기업 활동을 지원한다. 2010년 KTL은 항공 부품 기술 인증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KTL 입장에서는 전혀 새로운 분야였다. 경험 없이 새로운 채널을 구축해야만 했으니 그 과정이 쉽지 않은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김정섭 KTL 기업지원본부장은 수월하게 이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었다. 어려운 항공 용어나 기술 이해에도 걸림돌이 없었고, 전문가와의 자리에서도 인정받았다. 이미 10년 넘게 경량 항공기를 조종해온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항공레저 발전을 고려하면 비교적 일찍 비행을 시작했다. 김 본부장에게 그 까닭을 묻자 “내 인생과 비행을 얘기하려면 5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我) 날(生) 때부터 나는(飛) 게 좋았다”

“여섯 살 때였습니다. 학교도 들어가기 전인데 아버지가 크레파스를 하나 사오셨어요. 거기 무슨 그림이 있었냐면, 우주비행사가 우주비행복을 입고 있는 거였어요. 우습게도 전 그게 비행기 조종사인 줄만 알았죠. 조종사를 직접 본 적이 없으니까. 아무튼 그 모습에 반해서 그때부터 어른들이 ‘뭐 될래’ 물어보면 비행사가 될 거라고 말하고 다녔어요.”

그러다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당시에는 흔하지 않은 일이지만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시면서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때부터 시작한 것이 플라스틱 모형 비행기 조립이었다.

“그게 정말 재밌더라고요. 어린 마음에 ‘난 비행사가 될 거니까 앞으로 내가 탈 비행기를 직접 만드는 연습이다’라고 생각하면서 만들었던 것 같아요. 그걸 만들면서 저를 완전히 그 속에 넣는 거예요. 조종석을 조립하면서 ‘내가 지금 조종석에 타서 조종석을 만들고 있다’, 밑을 조립할 땐 ‘내가 바퀴 밑으로 들어가서 점검 중이다’라고 상상을 하면서요.”

그래서인지 비행기 외에 다른 걸 조립하는 건 관심이 없었다. 구색을 맞추기 위해 탱크, 배, 잠수함도 만들어봤지만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오로지 비행기만이 그의 관심사였다. 그렇게 6년간 100대의 비행기를 조립했다.

중학교에 진학할 무렵부터 ‘비행사’라는 꿈을 현실적으로 생각하게 됐다. 어디로 진학해야 할지, 어떻게 준비할지를 고민했다. 민간 항공이 열악했던 당시 비행사가 될 수 있는 길은 공군사관학교밖에 없겠다 싶었다. 본격적으로 공군사관학교를 가기 위해 좋아하는 비행기 조립도 자제해 가며 공부에 열중했다.

“여기서 제 인생에 청천벽력이 떨어져요. 중학교 2학년 때 조금씩 칠판이 안 보이기 시작하는 거예요. 시력이 0.5로 떨어졌는데 공군사관학교 조건이 시력 1.0 이상이었어요. 절망이었죠. 비행사가 될 수 있는 길이 없어졌으니까요. 뛰어내릴까 하고 한강다리까지 올라갔다니까요.”



“첫 솔로비행 때 ‘이 큰 비행기를 나 혼자 힘으로 하늘에 띄웠구나’라는 생각에 희열을 느꼈어요. 정말 비행사가 된 느낌이었고, 여섯 살 때부터 꾸던 제 꿈이 이뤄지는 순간이었죠.”



2002년 경량 항공기 자격증 따 10년째 비행

그렇게 꿈이 끝나는가 싶었다.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서 자리 잡을 때까지 행글라이딩, 패러글라이딩, 모형 비행기 조립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그러던 중 1999년 우연히 들른 에어쇼에서 꿈의 불씨를 발견했다.

“초경량 엔진 부착 비행기(ULM)라고 행글라이더에 엔진을 단 것 같은 초경량 기체가 있어요. 그게 에어쇼에 전시돼 있었습니다. 비행기라고 하기도 힘든 것이긴 한데 모양이 예쁘더라고요. ‘그래, 내가 비행사가 되지는 못했지만 이제라도 저걸 타보자’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김 본부장은 바로 비행 교육을 받고 1인승 초경량 항공기 자격증을 땄다. 경비행기 쪽으로 추세가 흘러가면서 전환 교육을 받아 2인승 경량 항공기 자격증 기종 변경에도 성공했다. 위험하다고 반대할까 봐 자격증을 딸 때까지 아내에게는 비밀로 했다. 자격증까지 들고 온 김 본부장의 하늘에 대한 고집을 아내는 꺾지 못했다. 그는 첫 솔로 비행의 짜릿함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아마 첫 솔로 비행에서 첫 비행의 짜릿함을 느꼈던 것 같아요. 바깥 경치는 볼 새도 없이 긴장해서 조종했는데 무사히 착륙하고 나니 정말 황홀하더라고요. ‘이 큰 비행기를 나 혼자 힘으로 하늘에 띄웠구나’라는 생각에 희열을 느꼈죠. 정말 비행사가 된 느낌이었고, 여섯 살 때부터 꾸던 제 꿈이 이뤄지는 순간이었죠.”
올해로 10년째 김정섭 본부장은 경비행기로 하늘을 날고 있다. 지금도 주말에 날씨가 좋으면 안산에 위치한 비행장을 찾아 기체를 손보고 비행하는 것이 그의 일과다.

좀 더 편한 비행을 위해 2005년 김 본부장은 동료 비행사 8명과 함께 8000만 원짜리 경비행기 한 대를 장만했다. 그는 “개인 기체는 갖고 싶지만 가격이 부담되는 만큼 여럿이 모여서 사게 됐는데, 워낙 비행을 많이 해 거의 개인 비행기처럼 썼으니 본전은 뽑았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고도 요새 새 비행기 욕심이 난단다.

올해로 10년째 그는 경비행기로 하늘을 날고 있다. 지금도 주말에 날씨가 좋으면 안산에 위치한 비행장을 찾아 기체를 손보고 비행하는 것이 그의 일과다. 어릴 적 꿈을 좇아 시작한 일이 이제는 어느새 고단한 삶의 피난처가 됐다.

“땅에 있으면 크고 자세하게 볼 수는 있겠지만 그만큼 보기 싫은 것도 봐야 하잖아요. 비행기를 타고 고도가 높아지면 시야가 넓어지고 아름다운 것만 보여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머리와 마음이 정리되죠. 이륙해서 엊그제 바이어랑 싸운 일도 잊어버리고, 착륙할 때는 좋은 것만 머릿속에 남겨놓고요. 절에 가서 불경 드리고 교회 가서 기도하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렇게 평화를 얻고 오는 거예요. 이러니 비행을 그만둘 수가 없죠.”



함승민 기자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