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Policonomy] 정치 테마주의 빛과 그림자

정치의 해다. 정치 이슈가 경제에 영향을 미치리란 것은 자명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투기 조장’이라는 방식으로 정치가 경제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정치테마주’ 얘기다. 실적과 관련된 직접적인 재료가 없음에도 주가가 출렁이면서 작전주에 대한 의심과 함께 개미투자자들의 피해도 예상된다. 정치 테마주가 급등락을 반복하며 증시를 혼란스럽게 하자 금융당국도 테마주가 활개 치지 못하도록 철저히 감시, 조사하겠다며 칼을 빼들었다.

안철수 한마디에 울고 웃고

현재 증권가에 떠도는 ‘테마주’의 종류는 140~250여 개에 이른다. 이 중 2012년을 흔들고 있는 테마주는 ‘정치 테마주’다. 정치 테마주 중 가장 주목받는 것은 안철수 테마주다. 특히 안철수연구소 주식은 지난해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안철수 서울대융합기술대학원장이 정치에 발을 담그면서 강력한 정치 테마주로 변모했다. 안철수연구소는 안 원장이 창업자이고 현재 대주주로 있다.

안철수연구소 주가는 안 원장의 정치 행보에 따라 널뛰는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안철수연구소의 주가 변동을 딱 잘라 표현하면 ‘안 원장이 정치와 가까워질수록 오르고, 멀어질수록 떨어진다’는 것.

안철수연구소 주가는 2011년 7월 1일만 해도 1만9000원대에 머물렀다. 그러던 것이 2011년 9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안 원장이 출마 가능성을 시사하고 10월 박원순 당시 서울시장 후보를 지지하면서,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이틀 앞둔 10월 24일 10만 원으로 급등했다. 안 원장의 본격적인 정치 행보로 해석됐던 주식 기부 발표가 있었던 2011년 11월 중순 역시 주가가 폭등했고, 신년 언론사들의 여론조사에서 안 원장의 지지율이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을 앞선 것으로 발표된 2012년 1월 초에도 주가가 급등하면서 15만9900원으로 고점을 찍었다.

반대로 안 원장이 총선 불출마 선언을 한 2011년 12월 1일, 또 “저 같은 사람까지 정치할 필요가 있을까 생각한다”고 말하며 정치 불참 쪽으로 기운 듯한 인상을 준 2012년 1월 말에는 주가가 급락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안철수연구소와 안 원장과의 관계가 가지는 상징성이 다른 테마주보다 비교적 강하다”며 “안 원장이 강력한 대선 후보로 거론되는 한 안철수연구소 주가의 널뛰기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안철수연구소는 급등락하는 주가 상황에 대해 2011년 12월 9일 발표한 “기업 실적과 가치 이외의 기준으로 투자하는 것은 주주들의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는 공식 입장 외에는 별다른 언급을 자제하고 있다. 한편 안철수연구소는 2월 14일 회사 이름을 안 원장의 이름을 뺀 ‘안랩’으로 변경한다고 전했다. 안철수연구소 관계자는 “이번 사명 변경은 지난해 판교 사옥으로 이전할 때부터 논의됐던 사항”이라며 “안 원장의 정치 행보에 따라 생기는 후유증 때문에 사명 변경을 결정했다는 소문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다른 안철수 테마주로는 솔고바이오, 케이씨피드 등이 있다. 솔고바이오는 이 회사의 사외이사와 안 원장이 함께 사진을 찍었다는 소문이 돌면서 안철수주가 됐다. 케이씨피드는 창업자의 사위인 황창규 연구·개발(R&D) 단장이 안 원장과 친분이 있다고 알려지면서 안철수 테마주로 분류됐다. 이들의 주가 역시 안철수연구소와 마찬가지로 안 원장의 정치와의 거리에 따라 급등락을 반복하고 있다.


안철수연구소 주가는 안 원장의 정치 행보에 따라 널뛰는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안철수연구소 주가의 변동을 딱 잘라 표현하면 ‘안 원장이 정치와 가까워질수록 오르고, 멀어질수록 떨어진다’는 것이다.




박(朴)·문(文), 대선주자 테마주

안철수주와 함께 대표적인 현재진행형 정치 테마주가 박근혜주다. 금융감독원에서 테마주로 파악 중이라고 알려진 78개 종목 중 34개가 박근혜 테마주다. 증권가에서는 박근혜주의 개수가 200개가 넘는다는 말도 나온다.

박 위원장의 동생 박지만 씨가 회장으로 있는 EG는 산화철 전문 업체다. EG테크, EG포텍, EG메탈, EG에이치티를 계열사로 가지고 있다.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의 측근이었던 고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의 도움을 받아 빠르게 성장했다. 2010년 매출액은 210억, 2011년 3분기 누적 매출액은 280억 정도지만 2012년 2월 8일 시가총액은 5200억 원을 기록하기도 했다.
EG의 주가는 박 위원장이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선출되고 당 운영 전면에 나선 2011년 12월부터 급등했다. 2012년 들어서는 대권후보 지지율 여론조사에 따라 등락을 반복했다. 특히 대선 라이벌로 부각된 안철수주가 오르면 약세, 하락하면 반대로 상승세를 보이는 특징이 있다.
이 점은 다른 박근혜 테마주인 아가방컴퍼니와 보령메디앙스도 비슷하다. 아가방컴퍼니와 보령메디앙스는 박 위원장이 저출산 대책을 강조하면서 ‘박근혜 복지’의 수혜주가 됐다. 정치 테마주를 인맥을 중심으로 한 ‘인맥형 테마주’와 추진하는 정책이 중심이 된 ‘정책형 테마주’로 나눈다면 이들은 비교적 정책형 테마주에 가깝다.

박 위원장의 사촌인 박설자 씨 남편이 대표로 있는 ‘동양물산’, 과거 박정희 정권 시절 실세였던 고 윤필용 장군의 아들 윤해관 씨가 대표로 있다는 미주제강, 비앤비성원은 인맥형 박근혜 테마의 대표주다. 능률교육, 야쿠르트 역시 박정희 정권 시절 실세였던 윤병덕 한국야쿠르트 회장이 최대 주주라는 이유로 박근혜주로 불린다.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야권의 대선 후보로 등장하며 문재인 테마주도 생겨났다. 문재인주의 경우 전형적인 인맥형 테마주다. 안철수 테마주나 문재인 테마주의 대부분이 인맥형 테마주인 것은 안 원장과 문 이사장이 정치인으로서 노출한 정견이 적기 때문이다.

문재인 테마주에는 바른손, 피에스엠씨 등이 있다. 바른손과 피에스엠씨는 문 이사장이 소속됐던 법무법인의 고객사라는 이유로 문재인주가 됐다. 여성복 제조업체인 대현은 이 회사 신현균 대표가 문 이사장과 함께 찍었다는 사진이 유포되면서 주가가 1000원대에서 4000원대로 4배 가까이 올랐으나, 사진 속 인물이 신 씨가 아닌 것으로 밝혀지면서 다시 1000원대로 폭락해 비교적 ‘죽은’ 테마주로 분류된다.

조광페인트도 ‘상상력’이 만든 정치 테마주 중 하나다. 이 회사는 문 이사장이 출마를 선언한 지역구에 본사가 위치해 있고, 최대주주인 양성민 회장과 문 이사장이 동문이라는 점에서 테마주로 떴다. 야권 후보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는 안 원장이 정치와 거리를 두는 발언을 한 2012년 1월 주가가 폭등하기도 했다. 조광페인트 측은 “양 회장과 문 이사장은 어떤 관계도 없다”며 회사와 문 이사장과의 관계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스치지도 않은 옷깃으로 테마주가 된 셈이다.



정치 테마주가 조만간 몰락할 운명이란 것은 누구나 안다. 그러나 그 운명을 나는 피해갈 수 있다는게 사람의 심리다.

어떤 정치 테마주가 있었나

과거에 정치 테마주라고 할 수 있었던 것은 선거철 특수를 노린 제지와 광고주였다. 하지만 이들은 지금 개념의 정치 테마주라기보다는 시즌형 테마주에 가깝다. 지금과 같은 형태의 정치 테마주의 원조는 1997년 대선에 나왔던 ‘대북지원 수혜주’다. 당시 김대중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커지면서 대북지원 품목인 사료와 비료업체의 주식이 한때 강세를 보였다.

인맥형 정치 테마주가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2007년이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때 지금의 정치 테마주인 EG가 박근혜 테마주로 불을 붙였다. EG의 주가는 박 위원장이 당시 경선에서 패배하면서 급락했다가, 당시 이명박 후보와 이회창 후보가 ‘박근혜 모시기’ 경쟁을 하면서 다시 상승하기도 했다.

이명박 대세론이 커지면서 ‘대운하 테마주’도 등장했다. 한나라당 경선 시기 아트라스BX, 삼호개발 등이 대운하주로 부각되면서 2007년 연초 대비 10배 이상 주가가 상승했고, 이후 대선 시기에는 이화공영, 홈센타, 동신건설, 삼목정공 등이 새로운 대운하주로 추가되기도 했다. 정동영 당시 후보의 ‘대륙철도주’도 정치 테마주로 이름을 올렸다.

2007년 대선 테마주의 주가는 하나같이 대선이 끝난 연말 거품을 걷어내면서 곤두박질쳤다. 기업 실적과 직결되지 않은 테마주의 주가는 결국 원위치로 돌아온다. 주가가 미래가치를 판단하는 것이긴 하지만 태생이 기업 펀더멘털보다는 정치인에 기대는 정치 테마주는 무섭게 급등한 만큼 영향력이 소진되면 급락하는 것이 보통이다.

정치 테마주가 조만간 몰락할 운명이란 것은 누구나 안다. 그러나 그 운명을 나는 피해갈 수 있다는 게 사람의 심리다. 박근혜 테마주인 아가방컴퍼니 주식을 보유한 한 개인투자자는 “폭탄 돌리기라는 것을 알지만 그 폭탄이 내 손에서 터지기 전에만 빠진다면 큰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매력을 지나칠 수 없다”고 털어놨다.

정치 테마주는 작전주의 위험에 노출되기 쉽다. ‘소문’ 하나만으로도 주가를 인위적으로 만들기 쉽기 때문이다. 작전세력은 미리 주식을 매집한 후 그럴듯한 루머로 주가를 올린다. 추종매매에 나선 개미투자자들이 피해보기 십상이다.

정치 테마주가 활개 치자 금융당국이 집중 단속이라는 칼을 빼든 것도 이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2012년 1월 8일 테마주 및 악성루머에 대한 대응 방안을 발표했다. 테마주 특별조사반을 만들고 테마를 생성하는 세력과 관련자들의 부정 거래를 신속히 조사해 조치하겠다는 것이다. 금융당국의 엄포에 정치 테마주는 주춤하는 듯 했으나, 비웃기라도 하듯 다시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현재 증권사와 투자정보업체의 자료를 취합해 작전세력의 개입 여부를 집중적으로 조사 중”이라며 “2월 말경에는 1차 조사 결과가 발표될 예정”이라고 전했다.


2007년 대선 테마주의 주가는 하나같이 대선이 끝난 연말 거품을 걷어내면서 곤두박질쳤다. 기업 실적과 직결되지 않은 테마주의 주가는 결국 원위치로 돌아온다.

함승민 기자 hamquixot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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