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단면을 이용한 회화, 작가 이승오
이승오 작가는 종이 단면을 이용한 회화로 화단의 주목을 받는 작가다. 한 땀 한 땀 수를 놓듯 썰기와 붙이기를 반복해 탄생하는 그의 작품에서는 예술가의 깊은 손맛이 우러난다.용의 해가 시작된 1월 말, 예술의 전당에서는 현대 미술가들의 환상과 트릭을 보여주는‘해외 작가 초대전-놀이의 순간, Aha! Moment’전이 열리고 있었다. 이번 전시는 해외 젊은 작가와 국내 작가 11명이 참여해 회화에서부터 사진, 조각, 설치 등 50여 점 작품을 선보였다.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자 참여 작가인 이승오의 최근 작품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종이를 겹겹이 쌓아 단면으로 이미지를 형상화한 그의 작품은 현대적이면서 동시에 한국적 미감을 느끼게 한다.
이 작가가 종이 단면을 이용한 회화를 시작한 지도 벌써 10년이 넘었다. 오랫동안 실험적인 작품을 하던 그가 2000년, 뉴밀레니엄을 맞아 새롭게 선보인 작품이 페이퍼 스택(paper stack)이라는 기술을 이용한 작업이었다.
유화·설치작업 등 젊은 시절의 다양한 시도
지금의 작업을 하기까지 그는 정말 다양한 작업을 거쳤다. 미대를 졸업할 때까지는 그도 다른 친구들처럼 유화를 했다. 그런데 스스로 판단하기에 유화로는 좋은 작업을 하기에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가 가진 장점 중에 하나가 제 그림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인데, 스스로 생각해도 오일작업으로는 다른 작가들을 이길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내 그림이 최고야’하고 자기 작품에 빠지기도 해야 하는데, 그게 안 되는 겁니다. 고민이 많을 수밖에요.”
대학을 졸업하고 늦깎이 군인 생활을 하면서도 작가로서의 근원적인 고민은 해결하지 못했다. 제대 이후에는 고민의 깊이가 더 깊어졌다. 군 생활을 하는 사이 국내 화단의 작품 경향이 확 바뀌어 있었다.
대학을 다니던 1980년대 초반만 해도 국내 화단은 하이퍼와 민중미술이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1980년대 중반 이후 설치미술로 무게중심이 옮겨간 것이다. 군대에서 나와 보니 회화를 하던 작가들 중 많은 수가 설치미술로 방향을 전환했다.
그도 설치미술로 방향을 잡았다. 그만큼 설치미술이 한국 화단의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당시 그가 한 주요 작업이 경기도 연천 전곡리 구석기 유물지역에서 한 야외 설치작업이다. 버려진 물건이나 자연물이 주재료였다.
“나뭇가지 같은 자연물이 물감으로 보이던 때였습니다. 설치작업을 하면서 작품에 대한 이론을 정립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때가 지금 하는 작업의 자양분이 된 것은 물론이고요. 종이 작업은 어떤 부분에서는 설치작업과 유사한 면이 있거든요. 더구나 버려진 물건을 재료로 활용하면서 정크아트를 시작했으니까요.”
유년의 놀이 기억이 불 지핀 창작 의욕
대학원을 졸업하던 1999년까지 설치작업은 계속됐다. 그즈음 그는 우연히 켜켜이 쌓인 종이의 단면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게 됐다. 1980년대 종이를 쌓아 만든 하종현 선생의 설치작품에서 받은 신선한 충격이 되살아났다.
거기에 유년의 기억이 보태졌다. 아버지가 달력 공장을 한 덕에 그는 어려서부터 종이 더미와 친숙했다. 종이 더미 위에서 놀던 유년의 기억이 스멀스멀 되살아났다. 놀이감의 재발견이라고 해야 할까. 어릴 때 놀이의 소재가 커서 작품의 소재로 되살아난 것이다.
어찌 보면 미술도 일종의 재발견의 연속이다.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거나 소홀한 재료가 작가에게는 새로운 영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에게는 종이가 그랬다. 남들은 소홀하게 지나치는 종이가 그에게는 무의식 한편에 쌓여있던 기억을 되살려 창작 의욕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오브제는 이 작가의 성격과 닮은 면이 많다. 그는 계산을 잘 하거나 완벽한 사람은 아니다. 종이 단면도 그의 성격과 비슷하다. 촘촘한 듯 보이지만 그 속에 빈틈이 많다. 빈 공간이 주는 여유랄까. 그 부분에서 그는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보았다.
“가장 한국적이라는 달항아리를 보십시오. 일본이나 중국의 항아리는 좌우가 완벽하게 대칭이지만 달항아리는 그렇지 않거든요. 좌우대칭이 완벽한 듯하지만, 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달항아리 만드는 걸 보면 마지막에 만든 장인이 살포시 달항아리를 안아서 대칭을 깨버립니다. 그게 한국의 아름다움이거든요.”
세상과 만나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작가
단면이 주는 정감도 흥미를 자극했다. 오랫동안 간직한 책의 단면에는 그 사람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 노력과 흔적을 살리기 위해 초기에는 버려진 종이만 사용했다. 조금씩 생에 대한 욕심이 생기면서 지금은 폐지와 함께 장지, 닥종이, 색도화지, 한지, 화선지, 켄트지, 색종이 등 다양한 종이를 사용한다.
“다양한 종이를 쓴다고는 해도 정크아트에 대한 고집은 변함이 없습니다. 2010년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로버트 라우센버그 특별전을 봤습니다. 함석판, 자전거 페달, 자동차 번호판 등 버려진 폐품으로 절묘하게 미니멀한 작품을 만들었더라고요. 저는 그게 선진적인 생각이자 작업이라고 봅니다.”
종이작업을 오래하면서 우연도 작업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한몫 거들었다. 2006년 연천 대홍수로 작업실이 물에 잠긴 일이 있었다. 흙탕물에 젖은 작품을 버리기 아까워 한쪽에 뒀더니 물기가 마르면서 독특한 느낌을 줬다. 그걸 철선솔로 문질렀더니 전혀 새로운, 날것의 느낌으로 다시 태어났다. 흙을 도입한 민화 버전 작업의 시작이었다. 민화를 비롯해 정물, 풍경, 팝아트 등 다양한 작업을 해왔다. 익숙한 그림을 자신의 화폭으로 끌어와 그림과 그림의 충돌, 시대와 시대의 융합을 시각화시키는 것이다. 작품에 대해 그는 “학습된 익숙한 그림을 통해 관람객의 시선을 끈 다음, 거기에 슬쩍 자신의 생각을 얹는다”고 이야기한다.
작업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듯이 혼자 하지는 않는다. 작업실에 있는 어시스턴트들이 도움을 준다. 그는 작품의 디자인과 전체적인 디렉터 역할을 담당한다. 서양의 많은 유명 작가들은 이런 협업 형태의 작업을 한 지 이미 오래다.
“저는 작업실에 팩토리 개념을 도입했다는 점에서 앤디 워홀을 존경합니다. 산업화시대에는 거기에 맞게 작가상도 변해야겠죠. 어두운 골방에서 실존적인 고민을 하는 화가들도 있어야 하겠죠. 하지만 저처럼 골방에서 나와 세상과 만나고 사람들과 호흡하려는 작가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글 신규섭 기자 wawoo@hankyung.com 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