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국민연금의 최초 수급연령은 60세다. 1988년 처음 국민연금제도가 도입될 때부터 60세였다. 국민연금제도를 도입할 당시 수급연령을 그 많은 나이 중에서 60세로 정한 까닭은 무엇일까.
60세이던 국민연금 수급연령이 내년부터는 5년마다 1년씩 늦춰져 1969년생이 만 65세가 되는 2033년부터는 65세가 돼야 국민연금을 수령할 수 있다. 국민연금제도를 도입할 당시 수급연령을 그 많은 나이 중에서 60세로 정한 까닭은 무엇일까.
세계 최초로 국민연금을 실시한 독일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지구상에서 국민연금제도를 처음 도입한 국가는 19세기 말 독일이다. 당시 독일은 후발 자본주의 국가로서 1970년대의 우리나라처럼 공업 발전에 많은 힘을 쏟고 있었다. 노동 환경은 열악하기 짝이 없었는데, 이에 노동자들은 조합을 만들어 투쟁에 나섰다.
독일은 과학적 사회주의를 건설하고자 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모국이다. 당연히 독일에서는 자본주의 체제를 위협할 정도로 사회적 소요가 극심했다. 뭔가 특단의 대책이 필요함을 느낀 비스마르크는 열심히 일을 하면 노후는 국가에서 책임진다는 새로운 개념을 창조하기에 이르렀다.
이때 몇 세부터 연금을 주어야 하는지가 고민거리였다. 처음 시도하는 것인 만큼, 그리고 정치적 필요에 의해 도입하는 것인 만큼 합리적 근거가 필요했다. 처음 선택한 연령은 70세였다. 왜 70세였을까. 고민 끝에 비스마르크 정부가 찾아낸 논거는 <성경> 시편에 나오는 ‘우리의 일생이 70세이고, 혹시 힘이 남아 더 살아 봤자 80인데’라는 구절을 찾아냈다. 기독교 국가인 독일에서 <성경>만큼 강력한 설득력을 지닌 것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나 <성경>에 그런 구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얼마 되지 않아 연금 수급연령을 65세로 낮추었다. 당시 독일의 평균 수명이 49세임을 감안하면 연금 수급연령 70세는 지나치게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이 있었기 때문이다. 평균 수명 49세 시대의 연금 수급연령 70세를 평균 수명 80세 시대인 오늘날에 적용하면, 96세가 돼야 연금을 준다는 뜻이다. 그야말로 극히 운 좋은 몇몇만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신기루 같은 수급연령이었던 것이다. 사정이야 어찌됐든 낮춘 65세를 오늘날 많은 국가들이 국민연금 수급연령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는 점은 역사적 아이러니다.
그럼, <성경>에서는 왜 인간의 수명을 70세라고 했을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동화의 세계로 들어갈 필요가 있다. 언어학자이면서 신화와 전설, 동화 등에 관심이 많았던 독일의 야코프 그림과 빌헬름 그림형제가 19세기에 펴낸 <그림형제 동화집>(김열규 역·현대지성사) 속의 ‘수명’이라는 짧은 동화 속으로 잠시 들어가 보자.
그림형제에 의하면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들에게 30년의 수명을 주기로 하고, 각 피조물들과 인터뷰를 실시했다고 한다. 매우 재미있고 교훈적이기까지 한 그 인터뷰 장면을 한 번 보도록 하자.
먼저 나귀가 찾아와 “하나님, 전 얼마나 살게 되나요?”라고 물었다. “30년이다. 마음에 드느냐?” “아이구! 하나님, 너무 길어요. 저의 고달픈 삶을 생각해 보세요. 저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등에다 무거운 짐을 실어 날라야 해요. 그 덕에 사람들은 빵을 먹을 수 있지만, 제게 돌아오는 것은 정신 차리고 기운을 내라는 욕설과 발길질뿐인 걸요.” 나귀를 불쌍히 여긴 하나님은 18년을 깎아주었다.
다음은 개의 차례였다. “넌 얼마나 살고 싶으냐? 나귀는 30년이 길다고 했다만 내 생각에 너에게는 적당하다고 보는데.” 개의 대답은 이랬다. “하나님은 그러길 바라세요. 짖지도 못하고 물어뜯을 이빨도 없어진 다음에는 이 구석 저 구석을 옮겨 다니며 불평 속에서 살아야 해요.” 하나님은 개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 12년을 줄여주었다.
다음으로 원숭이가 찾아왔다. “너는 개나 나귀처럼 일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항상 즐겁게 사니까 분명 30년을 살고 싶어 할 거야.” “아이구! 하나님, 그렇지 않아요. 사람들은 내게 늘 재미있는 장난과 우스운 표정을 기대해요. 그러면서도 그들은 내게 시어서 먹을 수도 없는 사과 한 쪼가리만 던져 줄 뿐이죠. 내 기쁜 얼굴 뒤에는 슬픔이 감추어져 있다고요. 난 그런 일들을 30년이나 견뎌 내긴 싫어요.” 하나님은 원숭이에게도 10년을 빼주었다.
마침내 사람이 나타났다. “네 수명은 30년이야. 충분하겠지.” 사람이 말했다. “너무 짧아요. 생각을 해보세요. 집을 지어 불을 지피고, 제가 심은 나무에서 열매가 맺어 이제 막 인생을 즐기려 할 때 죽어야 하다니요. 오! 하느님, 제게 좀 더 시간을 주세요.” “그렇다면 나귀의 수명이었던 18년을 네게 주마.” “그래도 충분치 않아요.” “그럼 개의 12년도 주지.” “아직도 너무 적어요.” “좋다. 그렇다면 원숭이의 10년도 더 주겠다만 그 이상은 안 돼.” 사람은 썩 만족스럽지 못한 얼굴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자칫하다간 하나님의 분노를 초래해 그간 확보한 수명까지 잃을까 봐 무서웠던 것이다.
그림형제의 동화 ‘수명’이 던지는 삶의 화두
수명을 둘러싼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실랑이가 참으로 아슬아슬하다. 여기에 대한 그림형제의 해석은 더욱 그럴싸하다. 다소 길지만 원문을 그대로 옮겨본다.
그래서 사람의 수명은 70년이 됐습니다. 처음 30년은 사람 자신의 수명으로, 그 기간은 참으로 빨리 지나가 버립니다. 이 기간 동안에는 건강하고 즐겁고, 일도 즐거운 마음으로 하며 사는 것 자체가 즐겁습니다. 이 기간이 지나고 오는 18년은 나귀의 수명이었던 기간으로, 하나의 짐이 덜어지면 그 다음 짐이 그에게 얹히는 식입니다. 그는 다른 사람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곡식을 실어 날라야 하지만 그의 충성스런 봉사의 대가로 돌아오는 것은 욕설과 발길질뿐입니다. 그러고 나서 오는 개의 12년 동안 사람은 물어뜯을 이빨도 없이 구석에 앉아 불평만 늘어놓습니다. 이 기간이 지나면 원숭이의 10년이 그의 삶을 마무리 짓지요. 그때 사람의 머리는 아주 물렁물렁해져서 바보가 됩니다. 하는 짓마다 어리석어 아이들의 웃음거리가 되지요.
경제학에서는 인간의 욕망이야말로 세상의 발전을 이끄는 동력이라고 묘사한다. 반면에 그림형제의 해석에 의하면 인간의 욕망은 힘겨운 삶을 살아가도록 하는 인생의 굴레에 다름 아니다. 인간의 수명에 대한 그림형제의 해석을 연금의 수급연령에 적용하면, 아이들의 웃음거리가 되는 원숭이의 나이에 연금을 받게 된다. 그 돈으로 아이들의 웃음거리에서 벗어나라는 말인가. 그렇다면 이는 수명에 대한 인간의 욕망이 빚어낸 서글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비록 동화 속이긴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당당했던 인간이 요즘 들어서는 그림형제의 해석을 무색케 하는 데에도 성공하고 있는 듯하다. 오늘날에는 의학 기술의 발달과 체계적인 은퇴 준비 덕택으로 보다 편안한 노후 생활을 보낼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듯이 인간의 노력을 하나님도 인정하는 듯하다. 하지만 여기에는 ‘젊은 시절부터의 체계적 은퇴 준비’라는 전제조건이 따른다. 오늘날 우리는 전제조건만 실천하면 하나님을 감동시켜 나귀의 수명도, 개의 수명도, 원숭이의 수명도 사람의 수명으로 바꿀 수 있는 행복한 시대에 살고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인생 100세 시대의 도래를 감안하면 그림형제의 동화에는 없지만, 다른 동물들의 수명까지 더 얻어왔음도 틀림없어 보인다.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절제를 기반으로 한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은퇴 설계라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손성동 미래에셋 퇴직연금연구소 연구실장
60세이던 국민연금 수급연령이 내년부터는 5년마다 1년씩 늦춰져 1969년생이 만 65세가 되는 2033년부터는 65세가 돼야 국민연금을 수령할 수 있다. 국민연금제도를 도입할 당시 수급연령을 그 많은 나이 중에서 60세로 정한 까닭은 무엇일까.
세계 최초로 국민연금을 실시한 독일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지구상에서 국민연금제도를 처음 도입한 국가는 19세기 말 독일이다. 당시 독일은 후발 자본주의 국가로서 1970년대의 우리나라처럼 공업 발전에 많은 힘을 쏟고 있었다. 노동 환경은 열악하기 짝이 없었는데, 이에 노동자들은 조합을 만들어 투쟁에 나섰다.
독일은 과학적 사회주의를 건설하고자 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모국이다. 당연히 독일에서는 자본주의 체제를 위협할 정도로 사회적 소요가 극심했다. 뭔가 특단의 대책이 필요함을 느낀 비스마르크는 열심히 일을 하면 노후는 국가에서 책임진다는 새로운 개념을 창조하기에 이르렀다.
이때 몇 세부터 연금을 주어야 하는지가 고민거리였다. 처음 시도하는 것인 만큼, 그리고 정치적 필요에 의해 도입하는 것인 만큼 합리적 근거가 필요했다. 처음 선택한 연령은 70세였다. 왜 70세였을까. 고민 끝에 비스마르크 정부가 찾아낸 논거는 <성경> 시편에 나오는 ‘우리의 일생이 70세이고, 혹시 힘이 남아 더 살아 봤자 80인데’라는 구절을 찾아냈다. 기독교 국가인 독일에서 <성경>만큼 강력한 설득력을 지닌 것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나 <성경>에 그런 구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얼마 되지 않아 연금 수급연령을 65세로 낮추었다. 당시 독일의 평균 수명이 49세임을 감안하면 연금 수급연령 70세는 지나치게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이 있었기 때문이다. 평균 수명 49세 시대의 연금 수급연령 70세를 평균 수명 80세 시대인 오늘날에 적용하면, 96세가 돼야 연금을 준다는 뜻이다. 그야말로 극히 운 좋은 몇몇만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신기루 같은 수급연령이었던 것이다. 사정이야 어찌됐든 낮춘 65세를 오늘날 많은 국가들이 국민연금 수급연령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는 점은 역사적 아이러니다.
그럼, <성경>에서는 왜 인간의 수명을 70세라고 했을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동화의 세계로 들어갈 필요가 있다. 언어학자이면서 신화와 전설, 동화 등에 관심이 많았던 독일의 야코프 그림과 빌헬름 그림형제가 19세기에 펴낸 <그림형제 동화집>(김열규 역·현대지성사) 속의 ‘수명’이라는 짧은 동화 속으로 잠시 들어가 보자.
그림형제에 의하면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들에게 30년의 수명을 주기로 하고, 각 피조물들과 인터뷰를 실시했다고 한다. 매우 재미있고 교훈적이기까지 한 그 인터뷰 장면을 한 번 보도록 하자.
먼저 나귀가 찾아와 “하나님, 전 얼마나 살게 되나요?”라고 물었다. “30년이다. 마음에 드느냐?” “아이구! 하나님, 너무 길어요. 저의 고달픈 삶을 생각해 보세요. 저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등에다 무거운 짐을 실어 날라야 해요. 그 덕에 사람들은 빵을 먹을 수 있지만, 제게 돌아오는 것은 정신 차리고 기운을 내라는 욕설과 발길질뿐인 걸요.” 나귀를 불쌍히 여긴 하나님은 18년을 깎아주었다.
다음은 개의 차례였다. “넌 얼마나 살고 싶으냐? 나귀는 30년이 길다고 했다만 내 생각에 너에게는 적당하다고 보는데.” 개의 대답은 이랬다. “하나님은 그러길 바라세요. 짖지도 못하고 물어뜯을 이빨도 없어진 다음에는 이 구석 저 구석을 옮겨 다니며 불평 속에서 살아야 해요.” 하나님은 개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 12년을 줄여주었다.
다음으로 원숭이가 찾아왔다. “너는 개나 나귀처럼 일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항상 즐겁게 사니까 분명 30년을 살고 싶어 할 거야.” “아이구! 하나님, 그렇지 않아요. 사람들은 내게 늘 재미있는 장난과 우스운 표정을 기대해요. 그러면서도 그들은 내게 시어서 먹을 수도 없는 사과 한 쪼가리만 던져 줄 뿐이죠. 내 기쁜 얼굴 뒤에는 슬픔이 감추어져 있다고요. 난 그런 일들을 30년이나 견뎌 내긴 싫어요.” 하나님은 원숭이에게도 10년을 빼주었다.
마침내 사람이 나타났다. “네 수명은 30년이야. 충분하겠지.” 사람이 말했다. “너무 짧아요. 생각을 해보세요. 집을 지어 불을 지피고, 제가 심은 나무에서 열매가 맺어 이제 막 인생을 즐기려 할 때 죽어야 하다니요. 오! 하느님, 제게 좀 더 시간을 주세요.” “그렇다면 나귀의 수명이었던 18년을 네게 주마.” “그래도 충분치 않아요.” “그럼 개의 12년도 주지.” “아직도 너무 적어요.” “좋다. 그렇다면 원숭이의 10년도 더 주겠다만 그 이상은 안 돼.” 사람은 썩 만족스럽지 못한 얼굴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자칫하다간 하나님의 분노를 초래해 그간 확보한 수명까지 잃을까 봐 무서웠던 것이다.
그림형제의 동화 ‘수명’이 던지는 삶의 화두
수명을 둘러싼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실랑이가 참으로 아슬아슬하다. 여기에 대한 그림형제의 해석은 더욱 그럴싸하다. 다소 길지만 원문을 그대로 옮겨본다.
그래서 사람의 수명은 70년이 됐습니다. 처음 30년은 사람 자신의 수명으로, 그 기간은 참으로 빨리 지나가 버립니다. 이 기간 동안에는 건강하고 즐겁고, 일도 즐거운 마음으로 하며 사는 것 자체가 즐겁습니다. 이 기간이 지나고 오는 18년은 나귀의 수명이었던 기간으로, 하나의 짐이 덜어지면 그 다음 짐이 그에게 얹히는 식입니다. 그는 다른 사람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곡식을 실어 날라야 하지만 그의 충성스런 봉사의 대가로 돌아오는 것은 욕설과 발길질뿐입니다. 그러고 나서 오는 개의 12년 동안 사람은 물어뜯을 이빨도 없이 구석에 앉아 불평만 늘어놓습니다. 이 기간이 지나면 원숭이의 10년이 그의 삶을 마무리 짓지요. 그때 사람의 머리는 아주 물렁물렁해져서 바보가 됩니다. 하는 짓마다 어리석어 아이들의 웃음거리가 되지요.
경제학에서는 인간의 욕망이야말로 세상의 발전을 이끄는 동력이라고 묘사한다. 반면에 그림형제의 해석에 의하면 인간의 욕망은 힘겨운 삶을 살아가도록 하는 인생의 굴레에 다름 아니다. 인간의 수명에 대한 그림형제의 해석을 연금의 수급연령에 적용하면, 아이들의 웃음거리가 되는 원숭이의 나이에 연금을 받게 된다. 그 돈으로 아이들의 웃음거리에서 벗어나라는 말인가. 그렇다면 이는 수명에 대한 인간의 욕망이 빚어낸 서글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비록 동화 속이긴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당당했던 인간이 요즘 들어서는 그림형제의 해석을 무색케 하는 데에도 성공하고 있는 듯하다. 오늘날에는 의학 기술의 발달과 체계적인 은퇴 준비 덕택으로 보다 편안한 노후 생활을 보낼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듯이 인간의 노력을 하나님도 인정하는 듯하다. 하지만 여기에는 ‘젊은 시절부터의 체계적 은퇴 준비’라는 전제조건이 따른다. 오늘날 우리는 전제조건만 실천하면 하나님을 감동시켜 나귀의 수명도, 개의 수명도, 원숭이의 수명도 사람의 수명으로 바꿀 수 있는 행복한 시대에 살고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인생 100세 시대의 도래를 감안하면 그림형제의 동화에는 없지만, 다른 동물들의 수명까지 더 얻어왔음도 틀림없어 보인다.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절제를 기반으로 한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은퇴 설계라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손성동 미래에셋 퇴직연금연구소 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