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양조 과정에서 숙성에 사용하는 통은 여러 가지가 있다. 일반적으로 와인은 오크통에서만 숙성시키는 줄 알고 있는데, 사실 오크통은 매우 비싸기 때문에 경제적인 이유로 모든 와인을 다 오크통에 숙성시킬 수는 없다.
일반적으로 와인을 숙성시키는 데 비싼 오크통을 대신해 그보다 훨씬 큰 나무로 만든 탱크나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든 탱크, 시멘트로 만든 탱크 등이 사용된다. 오크통은 주로 고급 와인을 만드는 데 많이 사용되는데 처음부터 오크통이 숙성을 목적으로 사용된 것은 아니다. 고대의 와인 운반 용기였던 암포라(amphora)를 대체할 목적으로 사용된 오크통은 프랑스의 옛 선조인 골(Gaul)족 시대부터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몇몇 샤토(포도원)에서는 이 같은 오크통을 직접 만들어 사용한다. 샤토의 오크통 제작실에 찾아가 보면 아직도 장인들이 손으로 직접 오크통을 만드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와인을 운반하는 것과 보관하는 데 쓰던 오크통이 숙성용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오크통에서 우러나오는 특별한 성분 때문이다. 보통 오크통에서 숙성된 와인에서는 바닐라향이 나서 이것으로 오크통에서 숙성된 와인인지를 구별하기도 하는데, 사실 오크통에는 바닐라향이 나는 폴리페놀 성분인 바닐린뿐만 아니라 타닌도 있다. 실제로는 모두 60여 가지의 폴리페놀 성분이 우러나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크통의 타닌은 와인의 골격을 더 강화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와인의 질을 결정짓는 새 오크통 사용 비율
오크통의 크기는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른데 대표적인 것이 보르도의 바릭(barrique)과 부르고뉴의 피에스(piece)다. 크기는 약간 다른데 보르도의 바릭은 225리터(300병)이며, 부르고뉴의 피에스는 228리터(308병)로 바릭보다 약간 크다. 그런데 이 오크통의 크기는 처음 만들어졌던 시대에 한 사람이 하루 동안 만들 수 있는 와인 작업량에 해당되는 것이었다고 한다.
오크통 만드는 단계를 보면 우선 만들려고 하는 오크통의 크기에 맞게 건조된 오크나무 널판을 알맞은 길이로 잘라, 강철 밴드 안에 차곡차곡 끼워 넣어 기본 모양을 만든다. 그 다음 강철 밴드 안에 오크나무 조각으로 불을 피워 그 열기로 널판을 부드럽게 해서 잘 구부러지게 만든다. 다시 여러 겹의 강철 밴드로 널판을 조이고, 아래 위 통판을 덮으면 오크통이 완성된다.
이때 사용되는 강철 밴드의 수와 널판의 수는 지역마다, 그리고 제조자마다 다른데 가장 보편적인 것이 앞의 두 종류다. 오크통 내부에 불을 그을리는 정도도 다 다른데, 이는 통 안에 넣어 숙성시킬 와인에 따라 그 정도를 달리한다. 풀 보디 와인일수록 강하게(heavy) 그을리고, 라이트 보디 와인은 약하게(light) 그을린다.
사실 오크통은 꽤 비싼 편이고 한번 사면 계속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와인 제조업자들 사이에서는 새 오크통의 비율을 얼마로 하느냐가 관심사이기도 하다. 매년 새로운 오크통을 사서 한 해만 쓰고 마는 경우 새 오크통의 사용 비율은 100%가 되겠지만 이런 샤토는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유명 샤토들이다. 샤토 슈발 블랑(Chateau Cheval Blance), 샤토 오존(Ch. Ausone), 샤토 페트뤼스(Ch. Petrus), 샤토 라피트 로트칠드(Ch. Lafite Rothschild), 샤토 무통 로트칠드(Ch. Mouton Rothschild), 샤토 라투르(Ch. Latour), 샤토 마고(Ch. Margaux), 샤토 오브리옹(Ch. Haut-Brion)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 외 대부분의 샤토에서는 33~ 66%에 이르는 새 오크통 사용 비율을 보이고 있다.
새 오크통에서 숙성시킨 와인과 1년 묵은 오크통에서 숙성시킨 와인은 당연히 맛이 다르다. 그렇다면 양조장에서는 어떻게 그해 생산되는 와인의 맛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걸까. 비밀은 오크통 숙성 이후 모든 와인을 한데 넣어 섞고 나서 병입하는 데 있다.
해마다 3분의 1의 오크통을 새것으로 바꾸는 샤토라면 새 오크통 사용 비율이 33%이다. 이는 나머지 3분의 1은 1년 된 것, 그리고 또 나머지 3분의 1은 2년 된 것을 사용한다는 의미다. 이렇게 다양한 연수의 오크통에서 숙성시킨 와인은 병입 전에 한데 섞어 평균적인 맛을 내게 해 새 오크통 사용 비율 33%의 와인이 탄생하는 것이다.
위스키와 브랜디 숙성에 사용하는 오크통
그러면 다 쓴 오크통은 어떻게 될까. 그냥 버려져서 오크통 만들 때 내부를 그을리는 데 사용될까. 그렇지는 않다. 와인 숙성에 사용된 오크통은 스코틀랜드로 수출돼 위스키를 숙성시키는 데 사용된다. 스코틀랜드의 위스키는 새 오크통을 사용하지 않고 와인을 몇 년씩 숙성시킨 오크통을 사용한다. 스코틀랜드의 위스키 제조업자들은 새 오크통보다는 와인 숙성에 사용된 오크통이 위스키의 향과 맛을 더 좋게 한다는 사실을 오랜 경험을 통해 안다.
브랜디 즉, 코냑이나 알마냑을 숙성시킬 때는 어떨까. 위스키와는 달리 새 오크통을 사용하는데 와인 숙성용 오크통과 브랜디 숙성용 오크통은 선호하는 지역이 좀 다르다.
그러면 오크통은 몇 년 정도나 사용할 수 있을까. 보통 3년 정도로 보고 있다. 물론 첫해가 가장 효과적이고 해가 지날수록 오크통의 영향이 줄어들게 되며, 4년째부터는 오크 향은 별로 배어나지 않고, 오랫동안 사용한 와인 찌꺼기가 나무에 배어 오히려 향을 해칠 수있다. 오크통에서는 바닐라향만 나는 것이 아니라 과일향, 나무향, 타닌 등이 있는데 첫해에는 바닐라향이 두드러지지만 해가 지날수록 옅어져서 4년 차가 되면 거의 사라지고 만다.
오크통에 사용되는 참나무는 오크통 제작에 요구되는 물리적 압력에 견디는 힘과 특질 즉, 둥글고 긴 배불뚝이 모양의 통 제작에 필요한 유연성과 탄성을 지니고 있다. 또한 온도 전달에 민감하지 않고, 방수성과 밀봉성 역시 뛰어나다. 이 오크의 특성은 오크나무의 품종과 생산지에 따라 차이가 있다. 일반적으로 사계절이 뚜렷하고 겨울철 온도가 낮은 곳에서 자라는 오크나무가 조직이 탄탄하며, 와인 숙성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지역별 오크 산지를 살펴보면 와인 숙성용 오크는 프랑스 중부 트롱세(Troncais) 지역의 오크나무를 최상급으로 치는데, 전체 생산의 약 2%에 해당하는 귀한 오크나무 산지다. 브랜디 숙성용 오크는 리무쟁(Limousin) 지역의 오크나무를 최고로 친다.
프랑스 이외에 미국과 러시아에서도 오크나무가 생산되는데 신세계 와인의 경우 미국산 오크를 선호하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프랑스 와인에 맞는 오크는 프랑스산을 더 선호하는 것 같다. 물론 오크통의 가격은 프랑스산이 가장 비싸다.
김재현 하나은행 WM센터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