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들의 자산관리] “상품 분산이 다가 아니다. 복합적 분산으로 자산관리”
입력 2012-03-19 16:09:02
수정 2012-03-19 16:09:02
외환은행 영업부 WM센터 양재혁 팀장
강남과 강북의 PB센터를 두루 경험한 양재혁 외환은행 영업부 WM센터 팀장은 부자들 역시 지역별, 연령별로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공통된 부자들만의 특징이 있는 법. 그가 말하는 고액자산가들의 절세와 자산관리법에 대한 생각을 들어본다.몇 년 전만 하더라도 연 10% 수익률이면 고객이 코웃음을 쳤다. 그러나 위기관리에 신경을 많이 쓰게 된 지금은 10% 이내의 방어적인 자세로 돌아서는 것에 대부분의 고객이 동의하고 있다. 경기 침체 속에서 달라진 부자들의 모습이다.
수입에 대한 눈높이가 낮아지면서 달라진 부자들의 특징은 ‘절세’에 부쩍 신경을 많이 쓰기 시작했다는 것. 양재혁 외환은행 영업부 WM센터 팀장은 “‘많이 벌고 많이 내지’라고 생각했던 시기에 비해 아무래도 수익률이 내려간 만큼, 지출을 줄이려는 심리가 작용하는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부자들이 절세에 민감해짐에 따라 최근에는 비과세 상품의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자산 이전 준비는 빠르게
절세와 맞물려 부자들의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 ‘자산 이전’이다. 증여세나 상속세의 경우 성격상 이미 부자 대상의 세금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재 상속세는 거칠게 계산하면 절반 정도를 세금으로 낸다고 보면 된다. 양 팀장의 고객 A 씨는 상속받는 300억 원 중 여러 가지 공제를 하고도 130억 원을 세금으로 냈다. 보통 사람에겐 상속받는 170억이 보이겠지만, 상속하고 받는 입장에서는 130억 원이 보일 수밖에 없다. 이런 식으로 간혹 한 집안의 상속이 빠른 속도로 진행된다면 재산이 삼대를 가기 힘들다. 따라서 부자들에게는 자산을 얼마나 손실 없이 증여 또는 상속하느냐가 중요 관심사다.
부자들이 사용하는 증여세 절세 방안 중 가장 기본적인 것은 10년마다 꼬박꼬박 증여하는 방법이다. 현행법상 3000만 원 한도의 증여는 세금 공제를 받을 수 있다.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최근에는 부자들도 증여한도 경신 일정을 계산해가며 자산 이전을 준비하는 추세다. 또한 이를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증여 시기도 빨라지고 있다. 양 팀장의 30대 중반 고객 중 한 명은 1500만 원 한도의 미성년자 증여부터 시작해 꾸준히 증여 일정을 체크하고 있다. 빠르게 시작할수록 절세효과는 크다. 이 외에도 손실을 보고 있는 금융 상품이나 현금을 적극적으로 증여에 활용하고 있다.
“증여 시기가 빨라진 것에는 부자들의 상속 경험과 교육효과도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예전 부자들은 부모가 자식에게 돈을 숨기는 경향이 있었어요. 그래서 갑작스럽게 상속을 받아 당황하는 경우가 비일비재 했죠. 그런데 요즘은 자녀에게 부의 내역을 공개하고 자산관리의 노하우를 전수하려는 의지가 강해진 것이 보입니다. 중고생 자녀를 대상으로 하는 금융교육 프로그램에 많은 부모들이 지원한 것만 보더라도 알 수 있죠. 또 이미 한 번 피상속 경험이 있는 부자들은 자신의 시행착오를 대물림하지 않으려는 의지도 있어요. 한 고객 분도 ‘남편한테 상속받을 때 아무것도 몰랐다. 자식들은 그런 실수를 하도록 하지 않겠다’며 적극적으로 자녀에게 자산관리 교육을 시키고 있습니다.”
부동산 불패신화가 깨지면서 부동산보다는 현금화해서 자산 이전을 하려는 변화도 포착된다. 기존 부자들의 경우 현금보다는 부동산 형태의 상속을 선호했다. 자신의 부를 유지하지 못 할까 봐 비교적 처분이 어려운 부동산을 넘겨주려 했던 것. 하지만 부동산 시장이 침체되면서 부동산 값이 떨어져 자칫 상속세 납부조차 할 수 없는 경우가 발생할 우려가 있어 오히려 현금을 넘겨주는 것이 자식을 위한 길이라는 인식이 증가했다. 양 팀장은 “지금은 부동산을 처분해 현금화해서 상속하려는 요구가 늘었다”고 전했다.
다양한 통화 보유로 리스크 관리
부자들의 자산관리 특징 중 하나는 좀 더 다양한 형태로 자산을 유지하려 한다는 것이다. 양 팀장은 “부자들은 투자든 자산 유지든 돈에 구분을 지어놓고 분할로 접근하는 습관이 있다”며 “보통 생각하는 것처럼 상품만 나누는 것이 아니라 시차 분산, 금액 분산, 통화 분산, 상품 분산, 국내외 분산, 인적 분산 등 복합적으로 구분한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는 자산별 주식·예금·펀드·채권, 지역별 국내·해외, 통화별 원화·달러화·엔화, 기간별 장기·중기·단기 등으로 나눠 상호 보완한다.
부가 축적될수록 다양한 통화에 대한 욕구 역시 강해진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해외 이슈가 한국 시장에 영향을 크게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체득했고, 경기와 환율에 따른 일종의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다양한 통화로 자산을 관리하려는 것이다. 특히 최근에는 호주달러를 많이 찾고 있다. 일반적으로 경제 선진국으로 갈수록 금리가 낮다. 그런데 선진국이면서 금리가 높은 나라가 호주다. 호주는 현재 정책적으로 고금리 정책을 유지하고 있어, 고금리와 환율 수혜를 보기 위해 호주달러를 선호하는 것이 최근의 트렌드다.
양 팀장은 생활 속에서도 부자들의 남다름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부자는 생활에서 나오는 소스를 흘려버리지 않는다. 양 팀장은 ‘이래서 부자구나’ 싶었던 경험을 전했다.
“얼마 전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뉴스가 나올 때였습니다. 당시 세 분의 고액자산 고객과 식사를 하던 중이었어요. 뉴스가 나오자마자 하나같이 스마트폰으로 체크하시고는 주식을 더 사라는 지시를 내리시고는 분석을 시작하시더라고요.‘미사일, 핵 실험, 천안함 사태 등 지금까지 북한의 이슈는 하루 이틀 정도의 일시적인 현상이었고 펀더멘털 문제가 아니었다. 그래서 항상 그날 주가가 떨어졌을 때 사야 했다. 지금도 김 위원장이 죽었을 뿐 우리 경제에는 큰 영향이 없다. 지금 사야 한다’고 세 분 다 일치를 보시더군요. 그분들은 과거 상황을 놓치지 않고 돈이 될 정보를 머리에 쌓아놓습니다. 일반인들은 놓치고 있는 것들이죠. 북한뿐 아니라 얼마 전 국제사회의 대(對) 이란 제재에 관한 뉴스가 나왔을 때도 마찬가지였고, 2009년 명동에 일본 관광객이 많아지는 것을 보고도 재테크로 연결시더군요. 확실히 돈에 대한 감각과 사고방식이 다르다고 봅니다.”
함승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