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석 진글라이더 대표
현대인의 건강관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스트레스 관리다. 인류의 영원한 염원인 창공에서 자연을 느끼는 것만큼 스트레스 해소에 좋은 것이 있을까. 세계가 인정하는 ‘하늘의 사나이’송진석 진글라이더 대표를 만나 패러글라이딩 예찬을 들어본다.항공스포츠 불모지인 한국에 의외의 세계 1등 기업이 있다. 패러글라이더 전문 디자인·제작업체 진글라이더. 현재 66개국에 수출하고 있고, 패러글라이더 제작업체 중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다. 본사 직원은 50명, 중국과 개성공단에 위치한 공장에 각각 200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패러글라이더 제작은 연구·개발(R&D)로 승부하는 고부가가치 사업이다. 1998년 설립된 진글라이더는 2008년부터 꾸준히 100억 원대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세계 최고의 명품 패러글라이더 브랜드 진글라이더의 디자인과 개발, 제작까지 진두지휘하고 있는 이가 송진석 대표다. 송 대표는 패러글라이더 디자이너 겸 테스트 파일럿이다. 모든 제품은 그의 테스트를 거쳐 완성된다. 날씨만 좋으면 회사가 내려다보이는 용인 정광산 활공장에 올라가 몇 시간씩 비행하는 것이 그의 일과다. 35년을 매일같이 하늘에서 보내다 보니 그는 디자이너로서, 동시에 파일럿으로서 어느덧 항공스포츠계의 대부와 같은 존재가 됐다. 세계 어느 활공장을 가더라도 ‘송진석’이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송 대표는 2006년부터 한국활공협회장으로 재임 중이다.
35년 경력의 베테랑 파일럿
송 대표는 대학 3학년이던 1977년 행글라이딩으로 항공스포츠를 시작했다. 이때만 해도 취미에 불과했다.
그가 항공스포츠와 본격적으로 인연을 맺기 시작한 것은 1985년 현대중공업에서 퇴사하고 독일로 떠나면서부터다. 항공스포츠 선진국 독일에서 낙하산 제작을 하던 지인의 초청을 받고는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무작정 떠난 독일행이었다. 그의 나이 29세 때다.
독일의 행글라이더 공장에서 일하면서 항공스포츠를 배울 무렵, 행글라이딩에 비해 넓은 착륙장이 필요 없고 비행도 쉬운 패러글라이딩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송 대표도 이때 패러글라이딩을 처음 접했다.
“활공장에서 행글라이더를 조립하고 적당한 기상 조건을 기다리는데, 친구가 웬 낙하산 같은 것을 갖고 와서 타더라고요. 호기심이 생겨서 타보고는 ‘이건 한국 하늘을 날기에 딱이구나’ 싶었어요. 1987년 귀국 후에 바로 한국에 패러글라이딩을 보급하기 시작했죠.”
한국에서 패러글라이딩 보급에 전념하다 보니 ‘취미’는 ‘직업’이 됐다. 처음에는 업체에 제작을 의뢰했던 패러글라이더가 맘에 들지 않아 직접 고치기 시작했고, 고치다 보니 어느새 제작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 와중에 국내 업체 ‘에델’의 제의를 받았고, 본격적인 패러글라이더 제작 사업에 뛰어들었다.
직접 비행하면서 느꼈던 요구사항을 적용시켜 만든 그의 패러글라이더는 국제대회를 휩쓸었고, 파일럿들의 입소문을 타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승승장구하던 사업이 1997년 외환위기로 길바닥에 나앉을 정도의 시련을 겪기도 했지만,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송진석표 패러글라이더’의 성능과 안전성을 무기로 1998년 ‘진글라이더’를 설립하면서 재기에 성공했다. 진글라이더는 현재 세계 패러글라이더 시장의 20%를 점유하고 있다.
신비한 자연과 새로운 인생 체험
진글라이더의 매출은 대부분 수출로부터 발생한다. 패러글라이딩이 주로 소득수준이 높고, 비행 여건이 좋은 알프스산맥을 끼고 있는 유럽 국가에 많이 보급돼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동구권과 동남아시아에도 보급되고 있어요. 가까운 일본은 이미 활성화가 많이 돼 있는 편이지만 경기 침체 탓에 다소 주춤하는 추세고, 미국은 보험 문제가 까다로워 의외로 보급이 더딘 편입니다.”
한국의 패러글라이딩 활동 인구는 약 3만 명이다. 선진국형 레저인 만큼 소득수준이 높아지면서 패러글라이딩 인구도 늘어나는 추세다. 주로 40대 중반이 많이 즐기지만, 최근에는 60~70대까지 연령층이 넓어지고 있다. 송 대표는 “패러글라이딩은 알려진 인식과는 달리 체력 부담이 거의 없는 스포츠”라며 “요새는 70대 어르신이나 아이들도 활공장을 많이 찾는다”고 전했다.
직종으로 보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사업가와 변호사, 의사, 수술실 간호사 등 전문직 종사자가 많다. 창공에서 피부로 자연을 그대로 느끼면서 스트레스를 풀다 보면 금방 하늘에 중독된다는 것이 송 대표의 설명이다.
“요새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 세계 활공장의 날씨를 바로 확인할 수 있어요. 아침에 확인하고 비행하기 좋은 날씨라는 것을 알면 벌써 엉덩이가 들썩들썩하게 되죠. 하늘을 나는 것은 굉장히 신비로운 체험입니다. 단순히 떠 있는 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열기류, 바람의 흐름을 느끼고 따라 다니거든요. 그렇게 몇 시간 동안 자연을 피부로 느끼고 땅에 두 발을 디디는 순간 ‘이거다’ 싶은 짜릿함이 와요. 세상을 다 거머쥔 느낌이죠.”
새로운 인생 체험은 송 대표가 말하는 패러글라이딩의 또 다른 매력이다. 비행을 하려면 구름, 온도, 바람을 생각하다 보니 평소에 접하지 못했던 자연에 대한 공부를 하게 된다는 것. 또 패러글라이딩 커뮤니티를 통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자연스레 여행도 많아지는 것 역시 단순한 ‘비행의 느낌’ 외에 누릴 수 있는 패러글라이딩 효과다.
“활공장에서 알게 된 사람 중에 방앗간 김 사장님이라고 계세요. 40년간 지방에서 방앗간만 하신 분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패러글라이딩을 하러 세계 여행을 다니세요. 다음 주에도 비행하러 네덜란드에 가세요. 패러글라이딩 덕분에 새로운 인생을 체험하시는 경우죠. 패러글라이딩에는 단순히 날 때의 느낌을 떠나 새로운 인생을 체험하는 매력도 있다고 봐요.”
배우기 쉬워, 오전에 교육받고 오후에 비행 가능
최근 항공스포츠 수요 증가로 국내에도 패러글라이딩을 즐길 수 있는 활공장이 많이 늘었다. 수도권에서는 양평 용문산, 용인 정광산이 패러글라이딩 명소다. 자동차로 1~2시간 소요되는 문경 활공장도 수도권 인구가 많이 찾는다. 패러글라이딩을 시작하려면 ‘패러글라이딩 스쿨’을 통해 간단한 기초 교육을 받아야 한다.
“교육이 어렵지 않기 때문에 오전에 나와 지상 교육을 받고 오후에 바로 완만한 슬로프에서 비행할 수 있다”는 것이 송 대표의 설명이다. 그는 대신 안전이 결부된 만큼 한국활공협회에서 공인한 스쿨의 전문가한테 배울 것을 권했다. 현재 전국에 40여 개의 공인 스쿨이 운영 중이며, 교육비는 50만~70만 원 정도다.
패러글라이딩을 시작하려는 이들이 가장 염려하는 부분은 역시 안전 문제다. 하지만 ‘바람 냄새만 맡아가면서 비행하던 시절’에 비하면 안전사고는 거의 없다는 것이 송 대표의 말이다.
“특히 기상예보의 정확성이 많이 좋아졌어요. 바람을 잘못 예측하고 비행하다가 나는 사고가 많았는데 지금은 그런 일이 거의 없죠. 프로텍터나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등 안전장비도 개발이 워낙 잘 돼서 전문가 조언에 따라 비행한다면 안전사고는 거의 발생하지 않아요.”
패러글라이딩 장비 구입에는 대략 300만~500만 원 정도가 든다. 초기 비용이 비교적 많은 편이지만 장비 수명이 10년 이상으로 이후 추가 비용이 들지는 않는다.
패러글라이딩은 스쿨 중심으로 동호회가 구성돼 있다. 패러글라이딩은 혼자 하는 스포츠이지만, 스쿨을 수료하고 처음 1~2년 동안은 장기 비행 경력자의 지도에 따라 비행, 이착륙하는 것이 안전하므로 동호회 활동이 좋다.
글 함승민 기자 hamquixote@hankyung.com 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