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lebrity] 이제는 코리안 드림의 시대”

이만열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이만열 경희대 교수’라는 이름과 직함을 처음 들었을 때 기자는 평범한 교수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그는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Emanuel Pastreich)’라는 다른 이름, 파란 눈, 하얀 피부를 가진 외국인이었고, 일본 도쿄대, 미국 예일대와 하버드대에서 공부한 석학이었으며, 아시아 문제와 인문학 전문가이자, 연암과 다산의 책을 영어로 번역한 ‘한국통’ 임과 동시에 한국인 아내의 남편이었다. 이 교수를 만나 한국과의 인연과 그의 벽안(碧眼)에 비친 한국, 한국인의 모습을 들어봤다.

‘한국 대학’에서 ‘외국인’이 ‘한국 고전문학’을 ‘영어’로 가르친다.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경희대 후미나티스 칼리지(Humanitas College) 교수의 얘기다. 그가 하는 일만큼이나 이력도 이채롭다. 미국 테네시주 내슈빌에서 태어난 미국인으로 1983년 예일대 중문학과에 입학했다. 당시만 해도 비인기 학문이었던 중국 문학을 선택한 것은 중국의 성장을 예견하고 당시만 해도 많지 않은 ‘중국 전문가’로서 자기 차별화를 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이후 그는 도쿄대에서 일본과 중국의 고전문학 비교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하버드대에서 동아시아 언어문명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대만국립대와 서울대도 거쳤다. 동북아 국립대를 섭렵한 셈이다. 그 덕분에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 2004년에는 연암 박지원에 빠져들어 그의 한문 소설 10편을 영어로 번역하기까지 했다.



스칠 줄만 알았던 한국 인연, 평생 인연 되다

그가 한국과 인연을 맺기 시작한 것은 1995년 서울대에서 유학하면서부터다. 이때만 해도 한국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을 때였다. 중국과 일본의 비교문학을 할 때였기 때문에 그에게 한국은 막연하게 중국과 일본 사이에 있는 나라 정도였다. 중국과 일본 문학을 이해하기 위한 징검다리로 한국을 1년 반 정도만 공부하고 돌아갈 생각이었다. 이만큼 인연이 있을 거라 전혀 생각하지 못했고, 한국인과 결혼한다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는 1996년 서울대에서 공부하던 시절 아내 이승은 씨를 만났다. 또래에 비해 한국 전통문화에 관심이 많은 아내의 모습에 끌렸단다. 이듬해 결혼식을 올렸고, 장인으로부터 본명 ‘임마누엘’의 소리를 딴 ‘이만열(李漫烈)’이라는 한국 이름도 받아 ‘이 서방’이 됐다. 지금은 두 아이를 낳아 기르고 있다. 한국이 처가의 나라가 됐지만 그는 한국에 대해 솔직하다.
이만열현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미국 예일대 중문학과 졸업일본 도쿄대 비교문화학 석사미 하버드대 동아시아 언어문명학 박사미 일리노이대 동아시아 언어문화학과 교수

“한국은 경제력이나 문화적 영향력으로 봤을 때 이미 선진국입니다. 다만 일류 국가라는 이미지의 마지막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한국이 파라다이스처럼 처음부터 대단히 매력 있는 나라는 아니었습니다. 김치를 특별히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태권도도 안 배웠고요.(웃음) 처음 올 때만 해도 오히려 어떤 면에서 다른 나라보다 불편한 점도 있었죠. 그런데 각국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니 내 사고방식이 굉장히 한국적이란 사실을 알았어요. 오래 살아서이거나, 한국 사람과 결혼해서가 아니고 그냥 그렇게 타고난 것 같습니다.”

처가 나라라는 점과 본인의 성격 말고, 달리 한국이 매력적인 점이 있다면요.

“아시아 인문학 학자로서 연구하기 좋은 환경이라고 생각해요. 서울만 해도 이만큼 전문가가 많이 모일 수 있는 도시가 없죠. 사실 한국의 대학도 지나치게 저평가 됐다고 봅니다. 좋은 연구도 있고 학생도 열심이에요. 이제는 세계의 학생들이 한국 대학으로 많이 오고 있고요. 한국은 발전이 빠릅니다. 경제뿐 아니라 문화도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지금 속도로 보면 5~10년이 지나면 한국은 상당한 위치를 잡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렇게 되면 개인적으로 ‘한국 전문가’로서 국제무대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역할도 커질 수 있을 거라 기대하고 있어요.”

한·중·일을 모두 경험했는데, 많이 다르지 않던가요.

“머물던 시기가 워낙 달라서 직접 비교하기는 힘듭니다. 다만 전통을 보면 형이상학적인 차이가 있죠. 일본은 형이상학이 없습니다. 현실과 현상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원칙이나 추상적인 얘기보다는 귀납적인 학문이나 연구가 일본에 정착했죠. 중국의 경우는 전체주의적인 힘이 있습니다. 원나라 이후 몽골과 만주의 영향을 받아서 권력의식이 강하고 진실과 권력을 혼선하는 경우가 있지요. 오히려 한국에 송나라의 유교 전통이 남아 있습니다. 워낙 압도적이었던 유교의 힘 때문에 원칙이나 원리, 보편적인 이치(理)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편이죠.”




“‘최근 아시아 인스티튜트에서 진행 중인 '코리안 드림(The Korean Dream)' 이라는 프로젝트는 국제무대에서 영향력이 커진 한국의 역할에 대한 논의죠. 1950~60년대에 아메리칸 드림이 있었고 세계에 많은 영감을 줬어요. 이제는 한국이 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문화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영향력은 상당히 커졌어요. 하지만 아직 사람들은 이에 대한 의식이 부족해요. 그저 TV 드라마와 영화가 팔려나가고 있는 데 주목하죠. 문화적 경제적 영향력을 갖춘 만큼 사명과 책임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해요.”



“한국, 외국인 사업 파트너로 받아들이지 않아”

다산 정약용에 대해 조예가 깊으시고, 연암 박지원의 글을 번역하기도 하셨어요. 어떤 계기로 다산과 연암에게 관심을 가지셨습니까.

“박사 학위가 한국과 일본에서의 중국 통속소설의 수용 방식을 비교한 연구였어요. 이 과정에서 다산과 연암을 알게 됐습니다.”

연암의 글은 해학과 풍자가 많아서 영어로 번역이 쉽지 않았을 텐데요.

“어려웠어요. 한문본을 읽고 번역했는데, 현대어 번역을 봐도 끝까지 이해 못하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오히려 한국어 현대어 번역이 잘못 된 것도 많고 고민 없이 번역한 것도 많더군요. 영어 번역본으로 지금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이제 한국으로 유학 온 학생도 많고, 한국을 알리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작업입니다.”

한국에서 살고, 공부하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무엇입니까.

“전통문화와 현대문화의 격차가 큰 것이 아주 신기했어요. 원래 옛날 한국인들은 천천히, 100년 단위로 길게 생각했습니다. 내향적인 성격이고, 변화도 많지 않았고요. 그런데 지금은 무역을 중심으로 빠르게 나라가 바뀝니다. 5~6년 해외에 나갔다 오면 다른 나라가 돼있죠. 천천히 가는 전통문화와 빠른 현대문화의 격차가 커서 매우 흥미롭습니다.”

한국에서 일하는 외국인으로서 한국에 아쉬운 점도 있을 텐데요.

“교육 문제죠. 아이를 국제학교에 보내는 것도 생각보다 쉽지 않더라고요. 한국 학교에서는 지난 2년 동안 ‘다문화가정’이라는 개념이 생기면서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도 아이들이 외국인을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한국의 대학들은 외국의 석학들을 초빙할 수준이지만 자녀 교육이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있죠. 또 저는 사업을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가끔씩 컨설팅을 하거나 주위 말을 들어보면 한국 사람들이 외국인을 비즈니스 파트너로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고용하거나 도움을 받을 수는 있지만 사업은 우리끼리 따로 하겠다는 일종의 폐쇄성이 남아 있어요. 이런 부분의 해결 방법이 필요합니다. 한국이 앞으로 성공하려면 외국인 고급 인력이 중요해질 테니까요.”

교육 문제를 말씀하셨는데, 교수님께서 한글로 쓰신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라는 책을 보니 교육에도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극찬한 한국 교육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한국 교육은 좋은 점이 많아요. 큰아이가 한국 학교에 다녔었고, 작은아이는 지금도 다니고 있기 때문에 잘 알죠. 제 생각에 한국 교육은 몇 부분만 고치면 세계에서 가장 좋은 교육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교과서도 정리가 잘 돼있고 선생님 수준도 비교적 높아요. 교육의 중요성도 온 국민이 공감하죠. 그 덕분에 노동자부터 최고경영자(CEO)까지 전체적인 교육 수준이 높아요. 다만 학원이라는 시스템 때문에 효율이 떨어져요. 세금은 학교에 내고, 학원에 따로 투자하는 굉장히 이상한 구조입니다.”

교수님 자녀들은 학원에 안 보내시나요.

“안 다녀요. 큰아이는 지금 국제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한국 학원과 배우는 방식에 혼선이 와서 어려워하더라고요.”



코리안 드림

요새는 어떤 연구를 하고 계십니까.

“한국이 일류 국가인가에 대한 질문을 고민하고 있어요. 사실 한국은 경제력이나 문화적 영향력으로 봤을 때 이미 선진국입니다. 다만 일류 국가라는 이미지의 마지막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몇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분단 상황입니다. 일상적으로는 사람들이 북한에 대한 생각도 많지 않고 듣는 정보도 많지 않을지 몰라요. 하지만 분단 자체는 알게 모르게 사람들이 좋은 조건의 문화와 기술을 놓고도 자신감을 가지는 데 한계를 만들어요. 일제강점기와 급속한 성장의 경험도 원인이죠. 한국은 늘 선진국을 목표로 설정하고 그 목표에 도달해야 한다는 식으로 달렸지만, 이제 더 이상 한국이 생각하는 ‘선진국’은 없어요. 다른 개념의 선진국을 생각해야 해요. 한국의 조직에서 창의력이 매몰되는 것도 안타까워요. 스티브 잡스처럼 뛰어난 상상력이나 리더십, 창의력이 있는 사람이 한국에 없지 않아요. 그런데 결재 과정에서 상상력이 견디질 못합니다.”

‘아시아 인스티튜트(Asia Institute)’라는 싱크탱크의 소장도 맡고 계신데요. 다른 싱크탱크와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우선 한국 소재인데 소장이 외국인이라는 거죠(웃음). 한국, 핀란드, 인도, 중국 등 다양한 나라의 석학들이 참여하고 있어요. 2007년에 설립했고 주로 과학기술과 사회, 그리고 국제관계를 연구합니다. 아직 규모는 크지 않지만 원자력안전기술원, 서울대 차세대기술과학연구원, 생명과학연구소 등 다양한 기관과 환경문제나 국제관계에 관련해서 연구 성과를 올렸어요.”

인문학 전문가이신데, 어떻게 과학기술에 관련한 연구를 하시나요.

“고등학교 때부터 과학기술에도 관심이 있었어요. 교수로 재직했던 일리노이대나 한국 와서 머물렀던 대전시에서 과학기술 전문가를 만나기도 쉬웠고요. 일종의 융·복합인데 이것이 한국의 흐름인 것 같습니다. 지식인은 당연히 사회에 맞춰야 하고, 실제로 이런 연구가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최근 아시아 인스티튜트에서 진행 중인 프로젝트는 무엇입니까.

“‘코리안 드림(The Korean Dream)’이라는 프로젝트예요. 국제무대에서 영향력이 커진 한국의 역할에 대한 논의죠. 1950~60년대에 아메리칸 드림이 있었고 세계에 많은 영감을 줬어요. 이제는 한국이 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문화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영향력은 상당히 커졌어요. 하지만 아직 사람들은 이에 대한 의식이 부족해요. 그저 TV 드라마와 영화가 팔려나가고 있는 데 주목하죠. 문화적·경제적 영향력을 갖춘 만큼 사명과 책임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해요.”



글 함승민 기자 hamquixote@hankyung.com 사진 이승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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