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note] 주역에 나타난 노블레스 오블리주


연초에 고등학교 동창이 자신이 지난해 감명 깊게 읽은 책이라며 한 권의 책을 선물로 보내줬습니다. 초아 서대원 선생이라는 분이 쓴 <주역강의>였습니다. 제목으로 보아 역술에 관한 책이겠거니 했는데 정작 내용을 보니 처세에 관한 철학 서적에 가까웠습니다.

책은 모두 64장으로 구성돼 각 장마다 <주역>의 64괘를 알기 쉽게 풀이하는 형식으로 꾸며졌습니다. 그중 두 번째 괘인 곤(坤) 괘에 실려 있는 구절이 특히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괄낭무구무예(括囊无咎无譽)’라는 구절입니다. 저자는 이를 ‘주머니를 묶는 행위(括囊), 즉 지나친 인색함은 그 자체로 허물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명예를 얻을 수도 없다’는 뜻이라고 풀이했습니다. 이는 곧 서양의 덕목인 ‘노블레스 오블리주’와도 같은 맥락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부자로 죽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는 철강 왕 앤드루 카네기(Andrew Carnegie)의 명언도 상기됐습니다. 필자가 이 구절에 ‘꽂힌’ 것은 때마침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벌어진 기부에 대한 토론을 지켜본 뒤였기 때문입니다. 김동호 목사라는 분이 ‘빈곤의 문제 해결에는 제도 개혁보다 설득을 통한 기부가 더 효과적’이라는 글을 올렸는데 적잖은 이들이 반론을 제기했습니다. ‘분배의 문제를 기부로 해소하자는 주장은 세제 개혁을 막으려는 보수층의 음모’라는 주장이 반론의 골자였습니다. 심지어 ‘부자들의 기부 행위는 합법적인 절세 수단일 뿐’이라는 주장도 있었습니다.

이런 반론에도 불구하고 필자의 견해는 김 목사 쪽에 기울었습니다. 빈부 격차의 문제는 인류가 경제 활동을 시작할 때부터 비롯된 것으로 생각됩니다. 2500여 년 전에 쓰인 <주역>에 ‘괄낭’을 경계하는 구절이 들어간 것만 봐도 그런 추정이 가능합니다. 역사는 그동안 여러 형태의 경제 시스템을 거쳐 왔으나 제도를 통해 분배의 문제를 해결한 선례는 없습니다. 사유재산을 부정하는 공산주의 체제조차도 결국은 시스템 자체의 붕괴로 종말을 고했습니다. 아마도 김 목사가 ‘제도 개혁보다 기부가 효율적’이라는 생각하게 된 것도 이런 연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250여 년 전에 시작된 자본주의 체제는 최근 여러 가지 피로증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중에도 ‘99%의 분노’로 대변되는 양극화가 가장 심각한 증상일 것입니다. 이런 피로증상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부 문화의 확산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새해를 맞아 <주역>이 일깨워 주는 ‘괄낭무구무예’의 지혜를 실천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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