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책] 떠난 영웅들이 남긴 삶과 정신의 유산


기업이나 대중에게 ‘사회적 공헌’이라는 단어는 이제 일상이 됐다. 경영 활동을 통해 얻은 이익을 고객에게 환원하는 일은 바람직한 사회적 책무다. 그러나 필자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기업의 사회적 공헌을 주장하는데 새로운 시대의 주역인 청소년, 대학생들을 위해 ‘창업주’ 및 ‘경영자’들이 그동안 쌓은 지식과 경험을 책으로 엮어 내는 것이다. 미국, 영국 등 주요 서양 국가에서는 저서를 통한 명사들의 사회적 공헌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이번 호에서는 현세에서는 만날 수 없지만 크고 작은 영웅들이 인류에게 남긴 삶의 자취와 정신의 유산에 대해 소개코자 한다. 고(故) 이병철 삼성 회장이 타계하기 전 남긴 인생의 근원적 질문에 차동엽 신부가 울림의 답을 전한다. 외국 유학 후 모국에서 교수와 활발한 활동을 하던 서른 살 나이에 말기 암 진단을 받은 후 남겨진 이들을 위해 마지막 열정으로 살아온 인생을 정리해 글로 남겼다. 청바지의 원조 리바이스의 창업주 리바이 스트라우스의 성공 여정과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담았다. 세계 경제대공황을 극복한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미국 대통령의 리더십과 인생철학을 실었다. ‘가장 위대한 영국인’ 윈스턴 처칠의 철학적 성찰과 미래의 고뇌에 대한 조망을 소개한다.

대통령의 리더십을 배우다

2009년 6월 미국을 공식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에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증정한 선물이 화제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대통령의 저서인 <온 아워 웨이>(On Our Way)와 <루킹 포워드> (Looking Forward) 초판 두 권을 선물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온 아워 웨이>(프랭클린 D. 루스벨트 지음·에쎄)는 루스벨트가 미국의 32대 대통령에 취임한 후 1년 동안 진행된 세계 경제대공황의 극복 과정을, 최고통치자로서의 국정 운영과 통치 행위에 관한 철학과 개인적 일상을 담아 서술한 수기다. 루스벨트는 강력한 리더십과 뛰어난 설득력을 통해 수많은 입법 행위, 국가의 철학적 재탄생을 포함한 험난한 과정을 국민적인 지지기반 위에서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이 책은 경제공황 극복을 넘어 루스벨트의 도덕적 리더십의 심원을 보여준다. 노동력의 4분의 1이 실업인 극단적 결핍의 상태에서 그는 “우리는 단순히 금전적 이익보다 더 숭고한 사회적 가치를 추구해야 합니다”라고 호소한다. 그의 글에 등장하는 ‘성실, 이타적 행위, 명예’와 같은 덕성은 오늘날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에도 잘 스며들어 있다.

루스벨트의 도덕적 리더십은 단지 도덕적 덕성에 대한 호소는 아니다. 오히려 국가에 대한 가치와 경제학적 효율성이 어우러진 ‘행복경제학’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가 전국산업부흥법을 통해 노동자들에게 최저 임금을 확보하고, 단체교섭을 할 수 있게 만든 것은 계급과 집단 간 대립을 넘어 모든 시민이 상생하는 공화국을 만들고자 하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것임을 잘 보여준다.

우리가 이 책에서 숙지해야 할 부분은 구체적으로 집행된 세세한 정책 자체가 아니다.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장면을 연출했던 뛰어난 리더로서의 현실 인식 방식과 현실 상황에 대처하는 결의와 의지, 그리고 결정된 정책에 대한 확고한 실천과 책임의식 등 철학적이고 개인적인 대통령의 내면세계다. 루스벨트가 취임할 당시 미국이 직면하고 있던 개국 이래 최악의 경제 상황은 얼핏 우리의 현 상황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미래의 전망을 갖는 것은 모든 일에 필수적이다. 그것은 눈앞의 목표를 달성하고 그 다음 목표를 이루기 위해 매진하게 만든다. 결국 훌륭한 지도자는 인류를 위해 더 나은 무언가를 꾸준히 찾는 사람이다.

영국 최고 영웅의 삶과 철학

2002년 10월 BBC 방송은 영국인 100만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 ‘위대한 영국인’ 100명을 선정했다. 그 결과 셰익스피어, 뉴턴 등 유수의 인물들을 제치고 윈스턴 처칠이 전체의 28.1%를 얻어 당당히 ‘가장 위대한 영국인’의 자리에 올랐다.

<폭풍의 한가운데>(윈스턴 S. 처칠 지음·아침이슬)는 처칠의 젊은 날에 대한 기록이다. 처칠이 제2차 세계대전의 영웅이 되기 전에 쓴 글들을 모은 이 수상록은 준비된 영웅의 소박하면서도 품격 있는 인간적 모습, 뛰어난 역사 기록자로서의 면모를 가감 없이 드러낸다. 특히 처칠은 서문에서 ‘인류는 이대로 파멸할 수 없다’ 및 ‘오십년 후의 세계’에서 다룬 내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라고 권고하는데, 이는 그의 충언이 없더라도 오늘을 사는 독자들이 더 절실하게 느끼고 있는 주제들이다.

우리가 과거를 회상하면서 실수가 득이 되기도 하고, 반대로 똑똑하다고 한 일이 큰 손해를 초래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처칠은 담배에 대한 일상의 단상에서도 큰 깨달음을 전해준다. “언젠가 아버지께서 담배연기를 기분 좋게 뿜어내시며 하시던 말씀이 생각난다. 담배를 왜 배우냐? 맑은 눈을 유지하고 싶고, 손 떨리는 것이 싫다면, 그리고 골머리 썩을 일을 할 생각이 아니라면 아예 담배 필 생각은 하지도 마라.”

이어서 담배에 대한 그의 소신을 전해준다. “한번 따져보자. 담배가 나의 신경계통을 진정시키는 역할을 해주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그 숱한 껄끄러운 개인적인 만남이나 협상 테이블에서 침착하고 예의 바르게 처신할 수 있었겠으며, 극도로 초조하고 긴장됐던 순간들을 차분히 넘길 수 있었겠는가? 지금 와서 얘기지만 플랑드르에서 방공호에 두고 나온 성냥갑을 가지러 다시 돌아가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됐을 것인가? 100m 전방에 정확히 내리꽂힌 폭탄 생각을 하면 지금도 등골이 오싹해진다.”

우리는 인생이 우연이나 환경에 의해 좌우되지 않도록 항상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다짐하지만, 어쩌면 스스로의 운명을 의식적으로 개척해 나갈 수 있다고 믿는 그 지점에서 인간의 진정한 위대함이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처칠은 “어둠이 없이 어찌 빛의 영광이 있을쏘냐? 삶의 여로는 즐거웠고 인생은 살아볼 만한 것이었다”고 전하면서 인생의 가치에 대해 소회한다.



청바지의 신화를 남긴 남자

미국 광산 도시 네바다에서 120년 전의 색 바랜 작업복 바지가 발견됐고 인터넷 경매에 올려졌다. 이 바지는 4만6542달러의 낙찰가에 리바이 스트라우스 회사에 매입됐다. 이로써 리바이스는 ‘원조 리바이스 바지’를 손에 넣게 됐다.

(카트야 두벡 지음·모색)는 미국 서부개척 시대 청바지 신화를 만든 리바이 스트라우스(1829~1902)의 일생을 담은 책으로, 그가 성공하기까지의 과정과 ‘철저히 준비하는 사람이 되라, 돈을 벌기 위해서만 일하지 마라, 관습과 편견을 깨라, 신념을 끝까지 버리지 마라’ 등 17가지 교훈을 전해준다. 독일 부텐하임 지방에서 태어난 리바이 스트라우스는 어린 나이에 미국으로 건너가 당대에 가장 성공적이면서도 사랑받는 사업가가 됐다.

어느 날 오후 말을 탄 네 명의 남자가 리바이에게 다가왔다. 그중 한 남자가 천장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천을 팔았다며 환불해 달라면서 옷감 두루마리를 그의 발 앞에 던졌다. 다른 남자 셋은 권총을 만지작거리며 위협적인 표정을 지었다. 천 값을 모두 돌려 줄 수 없다고 생각한 리바이는 시간을 벌어보려고 다른 천보다 옷감이 질기다고 강조하면서 남은 천으로 다음 날 저녁까지 바지를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했다.

리바이는 동네를 돌아다니다가 간신히 늙은 재단사를 만나 도와달라고 부탁했고 재단사는 능숙하게 바지 네 벌을 만들었다. 약속한 시간에 바지를 받고 입어 본 패거리들은 만족감을 표시하면서 리바이를 풀어 주었다. 그는 다시 재단사를 만나 바지를 더 만들어 달라고 요구했고 이것이 ‘리바이스 바지’의 시작이 됐다.

리바이는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침착했고, 상대방의 심리와 요구를 정확하게 판단하고 새로운 바지를 만드는 일에 도전했다. 마차 덮개로 바지를 만드는 것이 평소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위기의 순간에 섬광처럼 번득이는 아이디어로 새로운 기회를 만들었다. 리바이는 항상 미래를 내다보며 현재 처해 있는 문제의 원인을 찾아내었다.

그는 이미 십대 시절에 아버지를 따라 행상에 나서면서 자신의 미래가 차별받는 유대인이라는 사회적 구조 속에 갇혀 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원인과 해결책이 무엇인지도 예리하게 간파했다. 리바이가 전 세계 사람들이 즐겨 입는 청바지를 만들어 성공한 이후 막대한 부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 또한 이처럼 미래의 변화를 내다볼 수 있는 능력 덕분이었다.



고 이병철 회장의 ‘잊힌 질문’에 답하다

“2년 전쯤이었을 것이다. 지인을 통해 다섯 쪽짜리 프린트물이 건네졌다. ‘이병철 삼성 회장이 1987년 타계하기 전 절두산성당 박희봉 신부께 보낸 질문지’라는 제목이었다. 자세히 읽어보니 몇몇 물음은 예사롭지 않은 질문이었다. ‘사실 나도 이런 질문을 곧잘 받곤 했는데, 답을 시원스레 주지 못해 찝찝한 적이 많습니다. 누군가가 한 번쯤은 꼭 통쾌하게 답변해줄 필요가 있습니다’고 답하니, 지인이 ‘말이 나온 김에 신부님께서 해보시는 것은 어떨지요’라고 물었다. 뒤로 빼자니 위선이요, 생각 없이 나서자니 교만이 될 판이었다. 이렇게 질문 보따리는 나와 인연을 맺었다.”

<잊혀진 질문>(차동엽 지음·명진출판)은 24년 전 삼성의 창업자 고 이병철 회장이 가깝게 지내던 신부에게 남긴 ‘인생에 관한 절실한 질문 24가지’를 바탕으로 저자인 차동엽 신부가 완성한 책이다.

이 회장의 24가지 질문 중에서 몇 가지를 살펴보면 ‘신(하나님)의 존재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나? 신이 인간을 사랑했다면 왜 고통과 불행과 죽음을 주었는가? 영혼이란 무엇인가? 신앙이 없어도 부귀를 누리고 악인 중에도 부귀와 안락을 누리는 사람이 많은데 신의 교훈은 무엇인가?’ 등이다. 저자는 이 회장의 질문을 다시 ‘근본적 물음’ 15가지와 거기서 파생된 ‘절실한 물음’ 11가지로 나눴다.

먼저 ‘한번 태어난 인생, 왜 이렇게 아프고 힘들고 고통스러워야 하나?’라는 질문에는 ‘지진, 해일로 인한 엄청난 인명 피해, 재산 손실 및 이혼, 이별, 상처’로 인한 고통은 신의 조화가 아니라 철저히 자연 및 사회현상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고통은 피하고 싶다면 피해지지 않으니 최선의 선택은 고통의 피해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감내하는 주체가 되라고 답변한다.

‘선한 부와 악한 부가 따로 있다면 재테크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에 대해서는 여론조사 결과 한국인은 ‘돈=행복’이라는 공식의 포로가 돼 옴짝달싹 못하고 있다고 전하면서, 이제는 “손바닥 안에 주어진 것에서 풍요를 만끽할 줄 모르면, 우주를 소유한들 배고픔은 여전하다”라는 진실을 수용하는 대범한 역발상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삶의 끝에 와서야 알게 된 것들

2011년 4월 19일 중국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한 여성의 추모식에 줄을 이어 참석했다. 그것은 단순한 슬픔의 표시가 아니라 그녀가 남기고 간 큰 가르침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었다.

<오늘 내가 살아갈 이유>(위지안 지음·예담)는 서른 살에 세계 100대 명문대 교수가 돼 다양한 활동을 벌이던 저자가 갑작스럽게 말기 암 판정을 받고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며 깨달은 것을 글로 모아 엮은 책이다. 저자는 유학을 다녀와 푸단대 교수로 첫발을 내딛었다. 아들을 낳았고, 정부에 제안했던 ‘에너지 숲’ 관련 프로젝트들이 줄줄이 승인됐다. 인생 최고의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힘들여 쌓은 성공들이 어이없게도 하루아침에 날아가고 말았다.

그녀는 객관적, 과학적으로 ‘왜 암에 걸렸는가?’를 분석하고 정리해보기로 했다. “가르치는 것을 직업으로 삼았던 내게는, 여전히 젊은이들에게 진실을 알려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글을 보는 사람 중에서 몇 명만이라도 생활을 바꿀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내가 지금 글을 쓰는 게 헛수고는 아닐 것이다.”

먼저 식습관을 돌아보니 폭식과 폭음이 문제였다. 말기 암 판정을 받은 후 그녀의 남편은 건강 서적을 두루 섭렵했다. “지안, 당신의 식사가 문제였어. 동물성 식품 위주의 식생활은 비만이나 동맥경화, 종양 같은 만성 질병을 일으키는 반면, 식물성 식품 위주의 식생활은 만성 질병을 예방하는 데 효과적이라고 나와 있어. 당신은 지금까지 이것과는 거꾸로만 살았지. 곡물이나 채소, 과일이 몸에 진짜 좋은 건데 거들떠보지도 않았으니.”

생활습관도 문제가 있었다. 지난 10년을 돌아보니 새벽 2시 이전에 자본 적이 거의 없었다. “간은 인체에서 가장 큰 대사기관으로, 간이 손상되면 온몸이 조금씩 파괴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걸핏하면 밤을 새는 것은 날마다 조금씩 목을 조르는 자살 행위와 같았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직선과 광속의 삶에 대한 회한을 남기고 눈을 감는다. “우리는 뭔가를 잡기 위해서는 아주 먼 곳까지 전속력으로 달려가야 한다고 믿으며, 십중팔구 그런 믿음이라는 것이 신기루에 불과하다는 진실을 끝내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서야, 혹은 모든 게 끝난 뒤에야 그보다 훨씬 값진 일을 지나쳐 버렸음을 후회하곤 한다.”



강경태 한국CEO연구소장 ktkang21@hannmail.net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