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urmet Report] 사람, 이야기, 그리고 바르셀로나의 아로마

Casa Espana


음식도 음식이지만 분위기가 좋아 즐겨 찾는 레스토랑이 있다. 때론 그 공간에 모이는 사람들 각자가 뿜어내는 이야기보따리가 주방장의 손맛을 제치고 가장 좋은 안줏거리가 되기도 한다. ‘스토리텔링’이 화두인 시대, 그냥 지나치기 아쉬운 맛집을 찾았다.‘스페인의 집’,‘카사 에스파냐(Casa Espana)’가 그곳이다.
40여 시간의 저온 숙성으로 안심만큼 부드러워진 수비드 흑돼지 스테이크. 간이 깊숙이 밴 고깃살과 비계를 함께 먹으면 비계가 느끼하다는 고정관념은 일순간 사라진다.

서울 강남역 CGV 극장 뒤편 비탈진 언덕길을 오르다 보면 일종의 ‘공간 이동’을 경험하게 된다. 대로변에서 시작되는 각종 레스토랑과 커피숍의 행렬이 언덕을 즈음해 일순간 드물어지며 주택가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북적북적한 언덕 아래 인파를 내려다보는 느낌은 살짝 묘하기까지 하다.

‘스페인의 집’이란 의미의 ‘카사 에스파냐’는 바로 그 경계선 언저리에 있다. 주택가와 가까운 언덕길을 무심히 내려오다 보이는 시원한 통창과 빨강의 강렬한 간판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새우와 채소, 바지락살 등 해산물을 넣고 팬(파에야)에 끓여내는 해산물 파에야. 살짝 된 듯한 쌀알이 씹힐 때 코끝으로 느껴지는 샤프란 향이 부담스럽지 않다.

스페인 중에서도 ‘바르셀로나’

카사 에스파냐 실내에는 그야말로 스페인에 있을 법한 집 한 채를 들여놨다. 건축법 때문에 실제로 2층을 사용할 순 없지만 2층짜리 스페인 가정집을 구경할 수 있다. 실내 곳곳에 스페인에서도 오래전에 볼 수 있었던 광고판까지 있어 센스 있는 주인장이 누구일까 궁금해지는데, 알고 보니 건축가 김태섭 씨다. 홍익대 앞 ‘상상마당’을 기획한 실력가답게 스페인하고도 바르셀로나의 느낌을 살리는 데 전문가의 감각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스페인의 오래된 잡지를 공수해 잡지 속 광고를 벽화로 재현하는가 하면, 아예 잡지를 찢어 바닥에 심어(?)두기까지 했다. 카사 에스파냐를 방문한 스페인 고객 가운데는 화장실에 있는 광고에 나오는 약국이 실제로 어린 시절 단골 약국이었다며 스페인으로 돌아가 그곳 신문에 한국의 카사 에스파냐를 소개했을 정도. 스페인 사람들, 스페인에서 특별한 추억이 있는 사람들에게 카사 에스파냐는 오래된 사진첩 속 ‘그때 그 시절’이 되고 있다.

우리식으로 따지자면 밑반찬이랄 수 있는 스페인 타파스 문화를 보급하고 싶었던 주인장은 길을 가다 부담 없이 타파스 하나에 맥주 한 잔 걸치며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땅 덩어리가 넓어 지역마다 음식 문화가 조금씩 다른 스페인에서 사장이 ‘점찍은’ 지역은 ‘스페인의 전라도’라고 불리는 바르셀로나.

해산물과 육류, 채소 등 식재료가 풍성한 바르셀로나 음식을 ‘제대로’ 구현하기 위해 주인장 내외와 주방장은 실제로 스페인에서 3대째 식당을 운영 중인 집안의 딸(요리사)에게 3개월간 하드 트레이닝을 받았다고. 하지만 혀는 물론 속을 찌를 듯 맵고 소금 간이 강한 오리지널 바르셀로나 요리를 송두리째 받아들이기엔 무리가 따랐다. 현재 카사 에스파냐의 요리는 매운맛과 짠맛의 수위 조절을 한 결과. 하지만 마늘과 세계 최고 품질의 올리브오일을 아낌없이 쓰는 요리 스타일은 한국인들에게는 건강식으로 어필하기에 충분하다.

음식과 문화, 사람들의 향기로

17가지가 넘는 타파스 메뉴를 보며 행복한 고민에 빠져 있을 때 주방장은 여성들에게 인기 만점이라는 새우 크로케타를 권했다. 일본 ‘고로케’의 원조가 스페인의 크로케타라는 설명이 이어졌다. 크리미한 속이 바싹바싹한 튀김옷과 어우러지는 식감, 코끝을 은은하게 달래 오는 향신료 향이 시원한 생맥주 한 잔을 부르는 맛이다.
겉은 바삭바삭하게, 속은 부드럽게 익힌 새우 크로케타. 일명 ‘고로케’라 불리는 튀김 요리의 본국이 스페인이라며 주방장이 추천한 타파스 메뉴다.

주방장과 주인장이 약속이나 한 듯 추천한 메뉴는 수비드 흑돼지 스테이크. 온열탕기에서 섭씨 40~60도의 저온으로 60시간 동안 숙성시킨 흑돼지 고깃살에는 양념이 깊숙이 배어 담백한 것이 메인 디시로 손색이 없다. 비린내 제거 과정을 철저히 거쳤기 때문인지 잡내 하나 없이 깔끔한 고깃살은 안심만큼 야들야들하다. 입에 넣으면 바로 녹을 만큼 부드러워진 비계는 다이어트 중이라 할지라도 포기하지 말기를 바란다. 고기와 비계를 한번에 씹는 식감과 맛은 혼자 먹기에 아까울 정도다.
2 손톱만한 양송이 홈에 갖은 고기와 빵가루 버터, 피망을 섞은 ‘소’를 얹어 구워내는 양송이 타파스. 한 입에 쏙 들어가니 전채로 그만이다.

이국적인 분위기와 음식이 있는 카사 에스파냐에는 이색적인 예술가 모임도 공존한다. 건축과 색채 디자이너로 일하는 주인장 부부가 60여 명의 작가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해 ‘아트 잼(Art Jam)’ 전시회를 마련하고 있다. 아마추어라도 도전할 수 있는 이곳에서의 전시회는 손님들에게도 반응이 좋다. 이야기와 예술, 바르셀로나의 아로마가 함께 하는 공간, 누구와 동행하든 그날의 스토리텔링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카사 에스파냐의 주인장인 건축가 김태섭 씨. 그는 아트 잼을 통해 신진 작가들에게 작품 전시의 기회를 마련하고 있다.

글 장헌주 기자 chj@hankyung.com 사진 이승재 기자



Information
위치 서울시 강남구 역삼동 616-14
영업시간 오전 12시~오후 11시 30분(월요일 휴무)
가격 샐러드 9500~1만8000원, 타파스 6000~1만8500원,
파에야 1만5500~2만9500원, 파스타 1만6500~2만3500원,
메인 디시 2만5000~3만9000원, 런치 파에야 6500~7500원,
런치 세트 1만3000~1만9500원, 브런치 플레이트 8000원
기타 주차장 있음. 와인 40여 종
문의 02-563-4567, www.casaespa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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