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plorer] 세상에서 가장 높고 아름다운 길, 카라코람 하이웨이

Karakoram Highway

Karakoram Highway

중국과 파키스탄을 잇는 ‘카라코람 하이웨이’. 당나라 현장도 신라 혜초도 ‘죽은 이의 뼈를 이정표 삼아’ 넘었다는 쿤제랍 패스(해발 4693m)를 지나는 포장도로. ‘세계의 지붕’ 파미르 고원을 넘는 이 길을 만드는 데만 10여 년, 그동안 수백 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단다. 세상에서 가장 높고 위험한 도로 중 하나인 이 길은, 또한 가장 아름다운 길이기도 하다.
타시쿠르간의 요새. 저 멀리 설산까지 이어진 푸른 초장에 유르트 몇과 점점이 흩어진 가축들이 평화를 이루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길은 중국의 서쪽 끝, 신장의 카시가르에서 시작된다. 얼굴도 종교도 언어도 중국 한족과는 판이하게 다른 신장의 위구르인들이 ‘카슈’라 부르는 곳. 사실 카시가르라는 말은 이미 신장의 수도 우루무치 인구 과반수를 넘긴 한족이 붙인 이름일 따름이다.

지금도 일요일이면 1000년 전과 다름없이 실크로드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시장이 선다. 도시 전체가 거대한 시장으로 바뀌는 카슈에서 시작한 길은 카라코람 산맥을 넘어 파키스탄으로 이어진다.
매주 일요일이 되면 도시는 거대한 시장으로 변한다. 카슈의 일요 시장은 실크로드에서도 몇 손가락 안에 드는 큰 시장이다.

중국과 파키스탄 양국 정부가 합작해 1966년 첫 삽을 뜨고 10여 년이 흐른 1978년에야 아스팔트 도로가 완성됐다. 카라코람 하이웨이는 고속도로(highway)가 아니라 높은 길(high way)이다. 쏟아지는 눈 탓에 겨울이면 차들이 다니지 못하게 통제하는데,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면서 눈과 얼음, 물과 흙으로 만신창이가 된 아스팔트를 고속으로 달리는 일은 애초에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카슈에서 파키스탄의 아보타바드까지 1200km의 카라코람 하이웨이는 꼬박 2박 3일의 여행 일정이 된다.
카라쿨 숫양들의 싸움. 피가 터질 때까지 박치기 대결이 이어진다.

카슈에서 탄 버스가 출발하고 얼마 안돼 벌써 사방이 설산(雪山)이다. 사막을 병풍처럼 둘러싼 화염산 너머로 구름을 거느린 눈부신 설산의 장벽. 아, 사막도시 카슈의 시원한 바람은 이곳에서 불어오는 것이었구나. 땅거죽을 뚫고 오른 저 칼산을 넘고 설산을 지나는 가녀린 도로가 눈앞에 끊어질 듯 이어진다. 여행자 몇 명과 함께 파키스탄 보따리 장수들을 가득 태우고 덜컹거리는 고물버스가 이 길을 무사히 건너갈 수 있을까.

다행히 첫날은 가벼운(?) 타이어 수리 외에는 별다른 고장이 없었다. 물론 사방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허허벌판에서 이루어진 타이어 수리는 1시간 정도 걸렸지만. 그리고 나서 버스는 여러 시간을 달려, 오늘의 목적지인 카라쿨 호수에 도착했다.

고지 적응이 덜 돼 몇 발짝만 떼어도 숨이 찰 지경인데, 둥근 달빛을 받은 설산과 호수는 숨이 멎을 만큼 아름다웠다.
카라쿨 호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로, 카라코람 하이웨이에서도 손꼽히는 풍광을 자랑한다. 해발 3600m에 자리 잡은 넓은 호수는, 고원지대의 파란 하늘색을 고스란히 간직한 물빛을 띠고 있었다.

색깔만으로는 구별하기 힘든 하늘과 물 사이를, 만년설을 뒤집어쓴 봉우리들이 갈라주었다. 카라쿨 호수에서의 하룻밤은 허름한 몽골식 천막, 유르트(yurt)에서 보냈다.

차를 타고 올라온 탓에 고지 적응이 덜 돼 몇 발짝만 떼어도 숨이 찰 지경인데, 둥근 달빛을 받은 설산과 호수는 숨이 멎을 만큼 아름다웠다. 그 아름다움에 취해 정신 없이 카메라 셔터를 누르다 거의 얼어 죽을 뻔할 정도로. 다음날 아침, 눈부신 아침 햇살을 받은 카라쿨 호수는 세상의 모든 평화를 담고 있었다.

카슈의 일요 시장에서 만난 무슬림 여성. 마치 미이라처럼 완벽하게 무장(?)을 했다.

혜초가 넘었던 해골 고개 쿤제랍

카라쿨에 아쉬운 작별을 고하고 다음 목적지인 타시쿠르간으로 향했다. 이 유서 깊은 실크로드의 도시는 중국의 서쪽 끝 국경 도시다. 7월의 카라코람 주위에 한창인 들꽃을 보며 여러 시간을 달리니, 600년도 더 이전에 지어졌다는 요새와 그 옆의 중국인민해방군 부대가 보였다.
600년도 더 이전에 지어졌다는 요새는 아직도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지금은 앙상한 뼈만 남았지만 요새는 여전히 요새다운 전망을 보여주었다. 저 멀리 설산까지 이어진 푸른 초장에 유르트 몇과 점점이 흩어진 가축들이 평화를 이루고 있었다. 하루에 한 번, 아침에 있는 파키스탄행 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여기서 하룻밤을 묵어야 한다.

중국과 파키스탄을 오가는 ‘국제버스’는 애초에 폐차시켰어야 할 쌍팔년도 식 고물처럼 보였다. 이런 버스로 쿤제랍을 넘을 수 있을까. 버스가 출발하고 잠시 뒤 녹은 눈이 아스팔트를 가르며 만든 개울 앞에 대형 트럭들이 멈춰 서 있는 것을 보고 이런 의문은 더해 갔다. 하지만 버스기사는 부릉부릉 액셀러레이터 페달을 밟더니 도로 위 작은 개울을 지그재그로 넘어버렸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국경선, 중국과 파키스탄을 가르는 쿤제랍 국경 초소
그리고 이어지는 승객들의 박수 갈채.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수백 m마다 길을 막아서는 개울과 유실된 아스팔트들이 줄줄이 나타났다.

초행길의 여행자는 불안한 마음에 의자 손잡이를 꼭 잡고 있는데, 파키스탄 아저씨들은 버스 통로에 왁자지껄 카드판을 벌였다.

해발 4693m 쿤제랍 고개를 비틀비틀 올라감에 따라 창 밖 풍경은 극적으로 변했다. 해발 4000m가 넘도록 봄날의 풀밭이 이어지더니, 4500m부터는 풀 한 포기 없는 검은 흙 너머 설산이 바로 눈앞으로 다가섰다(카라코람은 ‘검은 흙’이란 뜻이다). 4660m에서 드디어 눈이 내리기 시작, 쿤제랍 정상에서는 흰 눈이 펑펑 내렸다.

이곳이 바로 세상에서 가장 높은 국경선, 중국과 파키스탄을 가르는 쿤제랍 국경 초소다. 마치 이런 곳을 불법으로 넘어갈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듯, 넓은 고갯길에 허름한 임시 건물 하나에 초병도 서넛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옛날 당나라의 현장도 신라의 혜초도 ‘불법적으로’ 이곳을 넘어 천축으로 갔다. 당시 중국에서는 승려가 당국의 허락 없이 먼 길을 여행하는 것이 금지돼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앞서 이곳을 넘다 죽어간 사람들이 남긴 흰 뼈를 이정표 삼아 쿤제랍을 넘었단다. 그래서일까. 쿤제랍은 ‘해골’을 뜻한다.

국경을 넘어 파키스탄 땅에 이르니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중국 쪽은 평평한 고원이 많고 설산이 멀리 병풍을 쳤는데, 파키스탄은 깊은 계곡에 깎아지른 설산이 지척이다.

그 때문인지 도로 상태가 훨씬 안 좋았다. 심지어 깎아지른 벼랑 아래 굴러 떨어져 있는 트럭이 보였다. 몇 번이나 도로 위로 흘러내린 토사에 버스 바퀴가 빠져 고생을 했는데, 그때마다 승객들은 익숙한 듯 내려 버스를 밀었다. 멀리서 온 여행자도 예외는 아니었다. 고생스럽게 버스를 밀고 다시 들어와 앉은 차창 밖 풍경은 모든 불편함과 고생을 보상하고도 남았다. 세상에서 가장 높고 아름다운 국경길, 카라코람은 마지막 절경으로 여행자를 환송했다.

해발 3600m에 자리 잡은 넓은 카라쿨 호수는 고원지대의 파란 하늘색을 고스란히 간직한 물빛을 띠고 있었다. 색깔만으로는 구별하기 힘든 하늘과 물 사이를, 만년설을 뒤집어쓴 봉우리들이 갈라주었다.



>>Karakoram Tip

How to Get There

카라코람 하이웨이는 중국의 카시가르에서 파키스탄의 아보타바드를 잇는 1200km의 도로다. 중국에서 출발해 파키스탄으로 넘어가는 것이 일반적인 루트인데, 카시가르가 속한 신장의 수도인 우루무치까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직항이 있다. 일정에 여유가 있다면 시안(옛 장안)에서 시작하는 실크로드를 따라 움직이는 것도 좋다.


Where to Stay

카라쿨에서의 1박은 대부분 몽골식 천막 집인 유르트에서 이루어진다. 별도의 난방시설이 없는 유르트는 생각보다 따뜻하지만, 해발 3600m의 고원 바람은 이가 시릴 정도로 매섭다. 가능하면 에어시트나 겨울용 침낭을 따로 준비하는 것이 좋다. 타시쿠르간은 작지만 국경 도시답게 호텔이 여럿 있다. 물론 아주 허름하다.


Another Site

중국에서 파키스탄으로 넘었다면, 길은 자연스레 파수와 훈자로 이어진다. 빙하와 ‘인디애나존스 다리’로 유명한 파수에서 트레킹을, 세계적인 장수 마을이자 일본 만화 영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모델이 된 멋진 풍광의 훈자에서 아침저녁 설산을 보며 한가로운 산책을 즐기는 것도 좋다.


글·사진 구완회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