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irement Plan] 직장에서 노후설계 교육을

기업입장에서 종업원의 노후설계 지원이 경영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미국과 일본 기업의 노후설계 지원 사례를 통해 기업의 역할을 살펴본다.

연초 이후 거의 매일이라고 해야 할 정도로 ‘인생 100세 축복인가 재앙인가’, ‘100세 쇼크’ 등과 같은 제목의 은퇴 관련 특집기사가 매스컴에 등장하고 있다. 평균 수명이 늘어나면서 직장인들 앞에 과거에 경험치 못한 긴 은퇴기간이 놓여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직장인들이 현역 시절부터 시간을 두고 은퇴 준비를 하지 않으면 개인의 고통은 물론 국가적으로도 크나큰 어려움에 직면하지 않을까 하는 위기의식이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직장인이 자신들의 후반인생을 불안하게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생각보다 훨씬 더 오래 사는 리스크 즉, 장수 리스크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금년 초 발표된 박유성 고려대 교수의 ‘연령대별 100세 도달 가능성에 대한 연구 결과’에 의하면, 현재 생존해 있는 1945년 출생자 중 남자는 23.4%, 여자는 32.3%가 100세까지, 1958년생은 남성 중 43.6%가, 여성은 48%가 97세까지 살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자 그대로 인생 100세 시대를 맞고 있는 것이다.

수명이 이렇게 늘어난 것은 좋은데 문제는 퇴직 연령은 이전보다 더 빨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50대 초반이면 명예퇴직 등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퇴직 후 30~40년, 길게는 40~50년 동안 무슨 일을 하며 보내야 할지, 노후자금 마련은 어떻게 해야 할지, 건강문제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자녀 뒷바라지는 또 어떻게 해야 할지 등 대응해야 할 과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런 복잡한 문제들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인생 100세는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직장인들을 초조하게 만들고 있다. 그런데 직장인 개인 차원에서 이런 문제들에 대한 대응 하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우선 대응방법 자체가 복잡하게 얽혀 있을 뿐 아니라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퇴직 직전 몇 개월이나 몇 년 정도의 준비로는 대응이 어렵다. 극단적으로 말한다면 회사 입사와 동시에 장기 계획을 세워서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게다가 직장인이 처해 있는 경쟁 환경 또한 만만치 않다. 노후 대비를 한다고 한 눈을 팔았다가는 언제 낙오될지 모르는 살벌한 상황이다.


따라서 종업원의 노후설계 지원은 기업경영상의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기업이 불안한 노후를 걱정하는 종업원들의 근심을 덜어주지 못한다면 근로의욕이 저하되고, 이는 생산성 향상의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해외 선진 기업들이 오래전부터 퇴직연금 제도를 도입하고, 다양한 방식의 노후설계 교육을 통해 종업원들의 안정적인 노후생활을 지원해오고 있는 것도 모두 그런 이유 때문이다.

예를 들어, 미국 최대의 목재 제조회사인 ‘와이어하우저’는 1980년대부터 모든 종업원들에 대해 재무설계를 비롯해 생애설계, 건강관리 등에 대한 교육을 실시해오고 있다. 이 교육을 통해 종업원들이 불안한 노후에 대한 걱정을 떨치고 업무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다.

와이어 하우저의 노후설계 교육의 특징을 살펴보면, 첫째로, 연령별·직제별 맞춤형 교육으로 돼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은퇴가 가까운 50대 이상의 근로자에게는 2박 3일간의 심화된 은퇴교육 프로그램을 제시한다. 이에 반해 젊은 층의 경우에는 은퇴 준비만을 주제로 하지 않고 이들의 주요 관심사인 자가용 구입, 주택 마련 등에 수반되는 월급(돈) 관리의 기초, 부채·신용관리 등과 같은 내용도 담고 있다. 참석자의 행동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노력인 것이다.

둘째는 생애설계(life planning) 교육과 자산운용설계 교육을 병행한다는 점이다. 먼저 생애설계를 통해 자신의 미래에 대해 긍정적이고 즐거운 비전을 갖도록 한 다음에 그에 맞는 재무설계를 하도록 하는 것이다.

셋째는 노후설계 교육을 배우자와 함께 받도록 하고 있다는 점이다. 노후설계와 관련된 의사결정은 반드시 부부가 함께 해야 하기 때문에 부부가 같이 교육을 받아, 공통된 인식을 갖도록 한다는 취지에서다.

넷째는 대면교육으로 즐거운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다. 노후설계 교육이 콘텐츠 면에서는 차별화가 어려울 정도로 발전해 있기 때문에 즐거운 교육 분위기를 연출해 업무의 연장선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시간이라는 메시지를 주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노력이 효과를 나타내 이제 와이어하우저의 노후설계 교육은 이 회사 종업원뿐 아니라 미국 내의 다른 기업에도 ‘따뜻한 배려가 담겨 있는 교육’이라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노동조합에서 노후설계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기업도 있다. 일본 굴지의 제조업체인 세이코엡슨 노조의 라이프 서포트 활동이 그 사례다. 조합원이 1만2000명 정도인 세이코엡슨 노조는 노조의 슬로건을 ‘Life up union’ 즉, 조합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충실한 인생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서포터 역할을 한다는 데에 두고 있다.

‘라이프’에는 생명, 생활, 인생이라는 세 가지 의미가 있다. 노조는 근로자의 각 라이프를 지원하고, 이를 통해 생활에서 안정을 얻은 근로자가 일에 전념함으로써 회사의 성장과 사회에 공헌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라이프 서포트 활동’은 이 같은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방법이다. 그 핵심은 ‘인생설계’와 ‘생활설계’로 구성된다. 인생설계란 이상적인 인생목표를 구상하는 것이고, 생활설계는 인생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 계획을 수립하는 것을 말한다.

특히 생활설계에서 노조가 신경을 쓰고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부분은 재무설계다. 다만, 재무설계 지원은 하되 돈이 인생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라는 점은 특별히 강조하고 있다.

세이코엡슨 노조의 ‘라이프 서포트 활동’은 1990년대 중반부터 시작됐다. 이 무렵부터 노조가 종래의 스트라이크 등을 통한 ‘임금인상 투쟁’과 ‘노동환경개선 투쟁’ 중심에서 ‘라이프 서포트 활동’ 중심으로 역할을 바꾸기 시작한 것이다.

그 배경에는 임금 인상이나 노동조건 개선만이 근로자의 가처분소득을 늘리는 수단이 아니고, 제대로 된 재무교육을 통해 불필요한 가계지출을 줄이고 가계 자산운용의 효율을 높이는 것 또한 가처분소득을 늘리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는 깨달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는 노조에 ‘라이프 서포트국’이라는 조직도 갖추고 노조가 출자한 자산운용사까지 설립하기에 이르렀으며 경영지원 활동, 사회공헌 활동과 더불어 세이코엡슨 노조의 3대 활동부문의 하나로 정착됐다.

노조 상근자 40명의 절반 이상인 26명이 금융상담 전문가 즉 FP(Financial Planner·재정설계사) 자격을 갖고 있을 정도로 지원체제를 갖추고 있으며 세미나 참가자의 80% 이상이 자신의 생애설계와 자산운용설계에 도움을 받았다고 답할 정도로 조합원의 지지를 얻고 있다. 회사 내부뿐 아니라 일본 내의 다른 기업에도 이 활동이 전파되고 있다.

국내 기업의 경우에는, 아직 근로자에게 노후설계 교육을 실시하는 기업이 많지 않다. 지난해 미래에셋 퇴직연금연구소가 은퇴자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노후설계 교육을 받아본 적이 있다’는 대답은 3.2%에 불과했다.

교육받은 경험이 있다는 사람도 대부분이 교사와 공무원이었다.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면 민간 기업에서는 거의 노후설계 교육을 실시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오는 인생 100세 시대에는 해외 선진 기업의 사례에서 보는 것처럼, 기업의 경영층도 노동조합도 ‘근로자의 노후설계 교육은 시대의 요구’라는 인식을 갖고 접근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강창희 < 미래에셋 퇴직연금연구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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