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lace] 만나보셨습니까? ‘나’

심리카페 ‘홀가분’

서울 압구정동 번화가 속에 둥지처럼 자리 잡고 있는 카페 문을 열었다. 빼곡히 책이 꽂힌 서가 옆으로 글과 그에 관련된 그림이 한 액자 안에 담긴 작품들이 벽면에 전시돼 있었다.

‘홀가분’에서는 자신의 기분지수를 고르는 것에서 시작해 다양한 심리치유 프로그램을 만날 수 있다. 지하 공간에서는 가족, 연인, 부부 등이 찾아와 서로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편안한 카페 분위기로 꾸몄다.


북카페일까, 아님 요즘 흔한 갤러리 카페? 이곳을 찾은 손님들은 한번 들어오면 기본적으로 2시간은 머문다고 한다. 심리카페 ‘홀가분’에서 ‘나’를 들여다보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이다.

의사가 카페를 운영한다. 바로 정신과 전문의이자 칼럼니스트인 정혜신 박사의 이야기다. 병원이나 클리닉이 아닌 생소한 개념의 심리카페를 열 생각은 어떻게 착안했을까.

정신건강컨설팅 기업 ‘마인드프리즘’의 대표로 활동 중인 그는 지난 7년간 대기업의 임원, 최고경영자(CEO)들을 대상으로 1 대 1 심층 심리분석 과정을 거치며 ‘나 들여다보기’를 함께 해왔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하나같이 “우리 회사 직원들이 이 같은 경험을 저렴하게 체험할 수는 없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생애 처음 ‘나 자신’과 마주하고 가까우면서도 먼 듯한 ‘관계’를 한 꺼풀 벗겨보는 이 같은 과정은 현대인 누구나 갖고 있는 ‘갈증’이기 때문이었을까.

사회적으로 성공한 이들에게도 마음의 병은 비껴가지 않는다. 기업 안에 이 같은 프로그램을 갖춘 클리닉을 만들까 하는 구상도 했지만 정신과 병원이라는 ‘문턱’을 낮추고 누구나 쉽게 문을 열고 드나들 수 있는 ‘카페’를 떠올렸다.

홀가분 카페는 통 유리창으로 마감돼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지상 1층과 지하 1층 구조다. 음료를 포함한 카페 이용료 1만 원으로 손님 모두 그날의 심리 상태를 체크해 볼 수 있다. ‘오늘의 기분지수’를 체크하고 나면 활기, 행복, 평온, 분노, 불안, 우울, 혼란 등 7가지 기분 아이콘 가운데 하나를 받게 된다.

지하로 내려가 기분에 맞는 음료를 마시면서 본격적으로 다양한 심리 치유 프로그램을 만날 수 있다. 테이블마다 올려져 있는 메뉴판에서 입맛에 맞는 ‘메뉴’를 고를 수 있다.

상대방과 나의 심리 특성을 체크하는 ‘심리궁합’은 연인들에게 인기가 많다. 전문적인 심층심리분석 결과를 알 수 있는 면대면 프리미엄 서비스인 ‘특별분석 프로그램’은 3시간 이상이 소요되니 반나절을 고스란히 반납해야 할 각오를 하고 찾아야 한다. 더불어 이곳에서 회사 동료들과 회포도 풀 수 있다.


동호회나 직장 동료들이 단체로 참여할 수 있는 ‘심리회식’프로그램이 그것. 모든 프로그램은 전문적인 ‘심리 도우미’가 함께한다. 일방향적으로 프로그램을 주도하지 않고 손님이 스스로 치유 단계를 밟을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이곳은 의사를 찾아가 상담하고 약 처방을 받는 병원이 아니라 손님 스스로 내면을 들여다보고 치유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는 환경의 ‘놀이터’에 가깝다.


마음의 난장을 풀 수 있는 이 놀이터에서 한 달에 한 차례 열리는 ‘홀가분한 초대’는 심리카페 홀가분의 특별한 이벤트다. 그간 개그맨 김제동, 아나운서 이금희, 두산 회장 박용만 등이 초대돼 70여 명 정도의 참가자들과 함께 대화를 했다.

‘강의’형식을 떠올리기 쉽지만 주로 청중과 질문과 대답이 양방향으로 오가는 대화의 시간이다. 이런 홀가분한 기운은 인터넷 방송을 통해 실시간 생중계도 한다.

현미경을 통해 환부를 들여다보며 핀셋으로 집어내는 의사의 예리함 대신, 말없이 두덕두덕 등을 도닥여주는 큰누이의 따스함이 기다리고 있을 듯한 심리카페 홀가분. 오늘도 러닝머신 위를 달리듯 숨 가쁘게 살아가는 당신, ‘홀가분’해지고 싶다면 이곳에 가기를 권한다. 문의 02-3445-8557




Mini interview

“내·외적 기준 밸런스가 자기 발전의 원동력”
정혜신 (주)마인드프리즘 CCO, 정신과 전문의

직장과 가정 내에서 남자들의 스트레스가 크다. 어떻게 해소할 수 있나.

“사람을 병들게 하는 제도가 구조적으로 개선돼야 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개인 안에 내재돼 있는 나 자신과의 대면이 항상 필요하다. 내적인 콤플렉스, 관계의 갈등이 무엇인지 맞닥뜨릴 용기가 있어야 한다.”

성공한 사람들은 늘 고도의 스트레스에 노출돼 있다. 벗어날 수 있는 해결책이 있나.

“대부분의 경우 타인의 시선을 늘 의식해야 한다는 것이 엄청난 중압감으로 작용한다. 내 안의 기준과 외부의 기준, 이 두 가지의 접점을 찾아 황금분할 할 수 있는 절제력을 가져야 한다. 내가 스스로 정한 나만의 만족도나 가치를 세우지 않다 보니 밖으로 보이는 평가와 외부 시선에만 끌려 다니고 휘둘리게 되는 것이다. 두 가지 밸런스를 찾으면 그 원동력으로 자기 발전을 할 수 있게 된다.”

‘가족’, ‘관계’는 심리 치유의 화두다.

“사람은 어떠한 처지에 있더라도, 예상치 못한 변수에도 늘 그 자리에 있어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가족은 결국 한 인간의 ‘베이스캠프’ 역할과도 같다. 높은 고지에 오르기 위해 에너지를 얻고 힘을 비축할 수 있는 곳이 베이스캠프다.

밖으로 나가 어떠한 시련이나 어려움을 겪더라도 견디게 해 줄 원천인 것이다. 이러한 심리적인 건강 상태를 유지해 줄 관계가 결혼이라는 제도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개인이 일생에서 필요한 최소한의 관계에서 충분히 얻을 수 있다. 그것을 찾아야 한다.”


글 이지혜·사진 김기남 기자 wisdom@hankyung.com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