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는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다. 6만여 명이 사는, 다닥다닥 붙은 성냥갑 같은 돌집의 작은 섬을 보려고 매년 약 2000만 명의 관광객들이 베네치아로 몰려든다. 최초의 베네치아인 토르첼로와 베네치아의 와인 역사를 다시 쓰는 마초르보로 떠난다.
베네치아를 제대로 살피려면 베네치아를 떠나야 한다. 116개의 섬으로 된 이 수상도시는 근처에 흩뿌려진 유서 깊은 섬을 관광해야 베네치아의 진면목을 이해할 수 있다. 와인 여행자 역시 노선버스와도 같은 바포레토(Vaporetto·관광선이자 통근선)를 타고 때로는 수상 택시도 타고 섬에 올랐다.
베네치아 타운에 사는 사람들은 아침에 바포레토를 타고 근처 섬으로 가고, 섬사람들은 바포레토를 타고 타운으로 출근한다. 좁은 도로에서 매연을 맡으며 엉금엉금 기다시피 자동차를 굴리다가 배를 타보면 말도 못하게 편해진다. 수면 위에 포진한 맑은 바다 공기를 마시면 가슴이 시원해지고 절로 낭만에 빠져든다.
토르첼로 섬, 최초의 베네치아
찬란한 중세의 해양 역사가 살아있는 베네치아에서 죽음을 떠올리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베네치아의 매력은 지난날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것이다. 최초의 베네치아인 토르첼로(Torcello) 섬으로 가면 왜 이런 영향이 나타났는지 짐작이 간다.
5세기 무렵 이민족의 침입을 피해 토르첼로로 피신했던 로마인들은 그곳에 교회와 집을 지었다. 육지의 끝부분이 석호를 감싸는 모양의 베네치아는 이 토르첼로 섬에서 시작된 것이다.
이곳을 찾는 여행자들은 천 년 전에 강성했던 토르첼로 섬의 모양을 상상하기 어렵다. 다만 베네치아 전체 도시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가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과거의 영화를 추측하게 한다.
산타 포스카 교회와 1400년을 살고 있는 산타 마리아 아순타 교회가 남아 있다. 책에는 최대 인구 2만 명 이상으로 쓰여 있는데, 지금 주민등록자 수는 겨우 일곱이다. 농가에서 키우는 닭 숫자가 이보다 많으며, 들고양이들까지 합치면 동물 숫자가 주민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토르첼로의 가치는 헤밍웨이에 의해 재발견됐다. 사냥을 좋아했던 노벨 문학상 수상자는 토르첼로에서 배를 타고 오리사냥을 즐겼으며, 저녁에 기온이 떨어지면 화로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아 부인과 속삭였다.
헤밍웨이의 소설 <강을 건너 숲 속으로>의 도입부에 주인공이 오리사냥 은신처에서 과거를 추억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가 머물렀던 여관 ‘로칸다 치프리아니’에 가면 그런 증거들이 사진으로 남아 있다.
헤밍웨이의 소식이 알려진 뒤로 많은 유명인들이 그 여관으로 여행을 왔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뿐 아니라 가수 엘튼 존, 그리고 많은 배우들이 다녀갔다.
토르첼로의 역사는 문호들을 자극했으며, 토르첼로의 포도밭은 와인 양조가를 고무시키기도 했다. 토르첼로에는 오래된 포도밭이 남아 있다. 몇몇 주민이 집 안에서 마시기 위해 토착 품종을 아직도 가꾸고 있다.
어떤 와인 생산자가 주민들이 여전히 옛날 방식으로 포도를 재배하는 것을 보고 최근에 베네치아 와인 복원 프로젝트를 개시하는 데 도움을 받았다. 현재 이 사업은 마초르보(Mazzorbo) 섬에서 진행되고 있다.
토르첼로로 가는 대중교통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다. 부라노(Burano) 섬에서 바포레토를 타면 5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물론 비싼 요금을 내면 수상택시도 가능하지만. 한편 토르첼로에서도 유리공예용 가마터가 여럿 발굴됐지만 지금까지 명맥이 유지되는 곳은 무라노(Murano) 섬이 대표적이다.
베네치아 섬들 가운데 무라노가 있다. 여기 다가가서 보면 유난히 ‘가마(fornace)’ 표시가 눈에 많이 띈다. 도자기 가마는 아니고 유리공예 가마다. 유리공예 장인들이 작업장에서 신나게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마르코 폴로 가마’라는 간판도 보인다. 무라노에서 만들고 베네치아에서 팔린다.큰 등대가 있으며 거대한 골리앗 기중기도 보인다. 가마 보수 작업으로 베네치아 섬 중에서 가장 공업 냄새가 풍기는 곳이다. 여기서 푸른 생선 모양도 만들고, 문어도 만들고 소소한 액세서리도 만든다.
오랜 전통을 지닌 가마에서 등이 굽기 시작한 장인들의 거칠고 억센 손과 입으로 만들기에 값이 만만치는 않지만 상점은 항상 북적거린다. 무라노는 베네치아 도서 가운데 공장이 가장 많은 섬이라 출퇴근 시간에는 선착장이 붐빈다. 베네치아에서 무라노에 가려면 바포레토 정거장 폰다멘타 누오베에서 노선 LN을 타면 바로 다음 정거장이다. 그 다음은 마초르보 섬이다.
마초르보, 베네치아 와인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마초르보는 바포레토 노선 LN으로 치자면 부라노 섬과 무라노 섬 사이에 위치한다. 아주 작은 섬으로 주민이 약 500명 거주한다. 바로 옆에 위치한 부라노 섬과는 다리를 사이에 두고 있어 왕래가 편하다. 마초르보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교회 종탑은 수백 년 이상 묵은 것이다.
그 탑을 한쪽으로 해서 섬의 상당부분을 높은 담이 싸고 있는데, 그 벽을 통과하면 농토가 보인다. 출입구에 베니사(Venissa)라는 문패가 붙어 있다. 시유지인 이곳을 베네치아 시장은 개발하기로 하고 신청자를 모집했다.
베니스대 출신의 잔루카 비솔은 유명 프로세코 양조장 ‘비솔’의 오너인데, 그는 15명의 경쟁자들을 모조리 제치고 2008년부터 베니사 프로젝트(www.venissa.it)를 수행하고 있다. 그는 학창 시절에 베네치아 역사를 공부하면서 가업인 와인 양조와 역사를 연계하는 꿈을 꾸었다.
베니사 프로젝트는 토르첼로에서 토착 품종의 가능성을 확인한 비솔이 버려진 시유지에다 베네치아의 역사가 담긴 와인을 생산해 내는 일이다. 그는 담으로 쌓인 땅에 포도를 심고 주변에는 채소를 재배하기 시작했다. 각종 채소는 계절별로 풍성한 결실을 이미 맺고 있으며, 2010년 가을에는 처음으로 포도를 수확했다.
베니사 와인은 담벼락으로 쌓인 포도밭에서 나온다. 석호와 습지 위에 조그맣게 떠 있는 듯한 작은 섬에서 와인을 생산한다니 무척 의아했다. 찬바람과 짠 소금기를 어떻게 포도가 견딜까 의심했다.
다행히 벽돌담은 바람을 막아 주고, 포도밭 주변의 기온을 유지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잃어버렸다고 여겼던 청포도 도로나(금포도란 뜻)로 만든 ‘화이트 2010 베니사’는 이름처럼 황금빛이며 짠 내가 났지만 도톰한 질감에 깔끔한 신맛이 나서 기대 이상이었다. 베네치아에서 일반적인 채소튀김이나 새우튀김 혹은 조개 파스타, 생선 리조토 등과 무난하게 어울린다.
비솔은 베니사 입구 근처에 작은 호텔과 와인 가게, 그리고 레스토랑을 설치했다. 내년 2월이면 2010 베니사가 처녀 출시돼 레스토랑에서 손님을 맞게 될 것이다. “베네치아 관광의 하이라이트는 마초르보에서 저녁을 먹으면서 베니사를 마시게 되는 것”이라고 비솔이 포부를 펼쳤다.
부라노 섬, 장난감 도시 같은 색채 마을
마초르보에서 나무다리를 건너 부라노 섬에 도착했다. 부라노에 발을 내디디며 이곳이 모딜리아니의 고향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사각형 속의 색깔이 미술 교과서의 모딜리아니 그림과 같았기 때문이다.
정부에서 페인트 값을 대주는 특이한 섬 마을, 이 마을의 이름은 부라노다. 베네치아에서 관광선을 타면 무라노, 마초르보에 이어 부라노에 다다른다. 선착장에서 빠져 나와 섬에 발을 올리고 고개를 들어 전방을 응시하면 무지개 빛깔의 건축물 면이 눈에 들어온다. 무척 예쁘다. 집집마다 다른 색깔로 칠해져 있다. 뒤로 돌아가 봐도 빈 구석이 없다.
부라노 섬의 격자무늬 빛깔은 안개가 자주 끼는 기후적 특성을 고려해 어부가 쉽게 귀가하도록 한 데서 시작됐다고 전한다. 어떤 이는 이렇게 설명하기도 한다. 남편이 고기 잡으러 멀리 출타하면 아내는 집안일은 물론 실내를 도색하는 일도 해야 했다. 자신의 집 안을 밝게 꾸미기 위해 방마다 다른 색감의 페인트를 칠했는데, 페인트가 남아 바깥 벽도 칠했다는 이야기다.
부라노에서는 흰 빨래를 널면 금세 물감이 들 것 같다. 사방의 모든 벽면들이 각자 다른 색깔로 장식돼 있어 동화책에 나오는 장면 같다. 디즈니 동산에 여행 온 기분이다. 이곳 출신의 디자이너 로렌조는 “옛날에는 안개가 많이 끼어 이런 색깔들이 집을 구별하는 유일한 방편이었다지만, 요즘은 기후 변동으로 인해 짙은 안개가 끼는 일은 별로 없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디자인한 레스토랑을 소개하고 싶다고 했는데, 마침 점심을 우연히 거기서 먹기로 해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이어졌다. 석양이 지면 건물 앞 운하의 빛깔이 분홍색으로 물들기에 분홍빛 강이란 뜻의 ‘리바 로사’라는 이름의 레스토랑이다.
로렌조의 가족들은 토르첼로 섬 출신인데, 100년 전부터 거기서 행상을 하며 관광객들에게 기념품을 팔아 모은 돈으로 이제 버젓한 식당 건물과 다른 가게들을 운영하고 있다면서 토르첼로 출신임을 자랑스러워했다.
부라노 섬은 레이스공예로도 유명하다. 이것 역시 어부와 상관이 있다. 오래 집을 비우는 남편을 그리워하며 소일거리로 시작한 레이스 뜨기는 부라노 섬 아낙네들을 단련시키기에 충분했다. 로렌조의 어머니 역시 집안 내력으로 레이스를 뜨며 근사한 가게도 운영한다.
수백 년 된 앤티크 레이스는 그게 그렇게 오래된 것일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새것처럼 보인다. 부라노의 또 다른 관광자원으로 기울어진 종탑이 있다. 마을 중심에 있는 산 마르티노 교회의 탑이 피사의 사탑처럼 기울어져 있다.
부라노 주민은 상대적으로 많다 해도 고작 2500명밖에 되지 않는다. 토르첼로의 로칸다 치프리아니에 거처를 정하고, 아침 일찍 나서면 저녁 먹기 전에 무라노, 토르첼로, 마초르보 이 세 섬을 다 관광할 수 있다.
헤밍웨이가 묵었던 토르첼로는 인적이 드물지만 유서 깊은 과거 도읍지였기에 천천히 둘러볼 만하다. 그러니 번잡한 베네치아보다는 토르첼로에 묵는 편이 베네치아를 더 깊이 체험하는 방법이다.
섬 하나를 더 추가한다면 당연히 리도(Lido) 섬이다. 베네치아 영화제, 우리에게는 베니스 영화제로 익숙한 섬이며, 해수욕장도 마련돼 있다. 토마스 만의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속 무대가 바로 여기다.
베네치아에서 무라노로 가는 길에 있는 작은 섬 미켈레는 공동묘지로 조성돼 있다. 섬 전체가 묘지로 구성돼 있는데, 멀리서 바라보면 물 위에 묘지가 둥둥 떠 있어 묘한 기분이 든다.
글·사진 조정용 와인칼럼니스트
베네치아를 제대로 살피려면 베네치아를 떠나야 한다. 116개의 섬으로 된 이 수상도시는 근처에 흩뿌려진 유서 깊은 섬을 관광해야 베네치아의 진면목을 이해할 수 있다. 와인 여행자 역시 노선버스와도 같은 바포레토(Vaporetto·관광선이자 통근선)를 타고 때로는 수상 택시도 타고 섬에 올랐다.
베네치아 타운에 사는 사람들은 아침에 바포레토를 타고 근처 섬으로 가고, 섬사람들은 바포레토를 타고 타운으로 출근한다. 좁은 도로에서 매연을 맡으며 엉금엉금 기다시피 자동차를 굴리다가 배를 타보면 말도 못하게 편해진다. 수면 위에 포진한 맑은 바다 공기를 마시면 가슴이 시원해지고 절로 낭만에 빠져든다.
토르첼로 섬, 최초의 베네치아
찬란한 중세의 해양 역사가 살아있는 베네치아에서 죽음을 떠올리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베네치아의 매력은 지난날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것이다. 최초의 베네치아인 토르첼로(Torcello) 섬으로 가면 왜 이런 영향이 나타났는지 짐작이 간다.
5세기 무렵 이민족의 침입을 피해 토르첼로로 피신했던 로마인들은 그곳에 교회와 집을 지었다. 육지의 끝부분이 석호를 감싸는 모양의 베네치아는 이 토르첼로 섬에서 시작된 것이다.
이곳을 찾는 여행자들은 천 년 전에 강성했던 토르첼로 섬의 모양을 상상하기 어렵다. 다만 베네치아 전체 도시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가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과거의 영화를 추측하게 한다.
산타 포스카 교회와 1400년을 살고 있는 산타 마리아 아순타 교회가 남아 있다. 책에는 최대 인구 2만 명 이상으로 쓰여 있는데, 지금 주민등록자 수는 겨우 일곱이다. 농가에서 키우는 닭 숫자가 이보다 많으며, 들고양이들까지 합치면 동물 숫자가 주민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토르첼로의 가치는 헤밍웨이에 의해 재발견됐다. 사냥을 좋아했던 노벨 문학상 수상자는 토르첼로에서 배를 타고 오리사냥을 즐겼으며, 저녁에 기온이 떨어지면 화로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아 부인과 속삭였다.
헤밍웨이의 소설 <강을 건너 숲 속으로>의 도입부에 주인공이 오리사냥 은신처에서 과거를 추억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가 머물렀던 여관 ‘로칸다 치프리아니’에 가면 그런 증거들이 사진으로 남아 있다.
헤밍웨이의 소식이 알려진 뒤로 많은 유명인들이 그 여관으로 여행을 왔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뿐 아니라 가수 엘튼 존, 그리고 많은 배우들이 다녀갔다.
토르첼로의 역사는 문호들을 자극했으며, 토르첼로의 포도밭은 와인 양조가를 고무시키기도 했다. 토르첼로에는 오래된 포도밭이 남아 있다. 몇몇 주민이 집 안에서 마시기 위해 토착 품종을 아직도 가꾸고 있다.
어떤 와인 생산자가 주민들이 여전히 옛날 방식으로 포도를 재배하는 것을 보고 최근에 베네치아 와인 복원 프로젝트를 개시하는 데 도움을 받았다. 현재 이 사업은 마초르보(Mazzorbo) 섬에서 진행되고 있다.
토르첼로로 가는 대중교통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다. 부라노(Burano) 섬에서 바포레토를 타면 5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물론 비싼 요금을 내면 수상택시도 가능하지만. 한편 토르첼로에서도 유리공예용 가마터가 여럿 발굴됐지만 지금까지 명맥이 유지되는 곳은 무라노(Murano) 섬이 대표적이다.
베네치아 섬들 가운데 무라노가 있다. 여기 다가가서 보면 유난히 ‘가마(fornace)’ 표시가 눈에 많이 띈다. 도자기 가마는 아니고 유리공예 가마다. 유리공예 장인들이 작업장에서 신나게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마르코 폴로 가마’라는 간판도 보인다. 무라노에서 만들고 베네치아에서 팔린다.큰 등대가 있으며 거대한 골리앗 기중기도 보인다. 가마 보수 작업으로 베네치아 섬 중에서 가장 공업 냄새가 풍기는 곳이다. 여기서 푸른 생선 모양도 만들고, 문어도 만들고 소소한 액세서리도 만든다.
오랜 전통을 지닌 가마에서 등이 굽기 시작한 장인들의 거칠고 억센 손과 입으로 만들기에 값이 만만치는 않지만 상점은 항상 북적거린다. 무라노는 베네치아 도서 가운데 공장이 가장 많은 섬이라 출퇴근 시간에는 선착장이 붐빈다. 베네치아에서 무라노에 가려면 바포레토 정거장 폰다멘타 누오베에서 노선 LN을 타면 바로 다음 정거장이다. 그 다음은 마초르보 섬이다.
마초르보, 베네치아 와인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마초르보는 바포레토 노선 LN으로 치자면 부라노 섬과 무라노 섬 사이에 위치한다. 아주 작은 섬으로 주민이 약 500명 거주한다. 바로 옆에 위치한 부라노 섬과는 다리를 사이에 두고 있어 왕래가 편하다. 마초르보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교회 종탑은 수백 년 이상 묵은 것이다.
그 탑을 한쪽으로 해서 섬의 상당부분을 높은 담이 싸고 있는데, 그 벽을 통과하면 농토가 보인다. 출입구에 베니사(Venissa)라는 문패가 붙어 있다. 시유지인 이곳을 베네치아 시장은 개발하기로 하고 신청자를 모집했다.
베니스대 출신의 잔루카 비솔은 유명 프로세코 양조장 ‘비솔’의 오너인데, 그는 15명의 경쟁자들을 모조리 제치고 2008년부터 베니사 프로젝트(www.venissa.it)를 수행하고 있다. 그는 학창 시절에 베네치아 역사를 공부하면서 가업인 와인 양조와 역사를 연계하는 꿈을 꾸었다.
베니사 프로젝트는 토르첼로에서 토착 품종의 가능성을 확인한 비솔이 버려진 시유지에다 베네치아의 역사가 담긴 와인을 생산해 내는 일이다. 그는 담으로 쌓인 땅에 포도를 심고 주변에는 채소를 재배하기 시작했다. 각종 채소는 계절별로 풍성한 결실을 이미 맺고 있으며, 2010년 가을에는 처음으로 포도를 수확했다.
베니사 와인은 담벼락으로 쌓인 포도밭에서 나온다. 석호와 습지 위에 조그맣게 떠 있는 듯한 작은 섬에서 와인을 생산한다니 무척 의아했다. 찬바람과 짠 소금기를 어떻게 포도가 견딜까 의심했다.
다행히 벽돌담은 바람을 막아 주고, 포도밭 주변의 기온을 유지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잃어버렸다고 여겼던 청포도 도로나(금포도란 뜻)로 만든 ‘화이트 2010 베니사’는 이름처럼 황금빛이며 짠 내가 났지만 도톰한 질감에 깔끔한 신맛이 나서 기대 이상이었다. 베네치아에서 일반적인 채소튀김이나 새우튀김 혹은 조개 파스타, 생선 리조토 등과 무난하게 어울린다.
비솔은 베니사 입구 근처에 작은 호텔과 와인 가게, 그리고 레스토랑을 설치했다. 내년 2월이면 2010 베니사가 처녀 출시돼 레스토랑에서 손님을 맞게 될 것이다. “베네치아 관광의 하이라이트는 마초르보에서 저녁을 먹으면서 베니사를 마시게 되는 것”이라고 비솔이 포부를 펼쳤다.
부라노 섬, 장난감 도시 같은 색채 마을
마초르보에서 나무다리를 건너 부라노 섬에 도착했다. 부라노에 발을 내디디며 이곳이 모딜리아니의 고향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사각형 속의 색깔이 미술 교과서의 모딜리아니 그림과 같았기 때문이다.
정부에서 페인트 값을 대주는 특이한 섬 마을, 이 마을의 이름은 부라노다. 베네치아에서 관광선을 타면 무라노, 마초르보에 이어 부라노에 다다른다. 선착장에서 빠져 나와 섬에 발을 올리고 고개를 들어 전방을 응시하면 무지개 빛깔의 건축물 면이 눈에 들어온다. 무척 예쁘다. 집집마다 다른 색깔로 칠해져 있다. 뒤로 돌아가 봐도 빈 구석이 없다.
부라노 섬의 격자무늬 빛깔은 안개가 자주 끼는 기후적 특성을 고려해 어부가 쉽게 귀가하도록 한 데서 시작됐다고 전한다. 어떤 이는 이렇게 설명하기도 한다. 남편이 고기 잡으러 멀리 출타하면 아내는 집안일은 물론 실내를 도색하는 일도 해야 했다. 자신의 집 안을 밝게 꾸미기 위해 방마다 다른 색감의 페인트를 칠했는데, 페인트가 남아 바깥 벽도 칠했다는 이야기다.
부라노에서는 흰 빨래를 널면 금세 물감이 들 것 같다. 사방의 모든 벽면들이 각자 다른 색깔로 장식돼 있어 동화책에 나오는 장면 같다. 디즈니 동산에 여행 온 기분이다. 이곳 출신의 디자이너 로렌조는 “옛날에는 안개가 많이 끼어 이런 색깔들이 집을 구별하는 유일한 방편이었다지만, 요즘은 기후 변동으로 인해 짙은 안개가 끼는 일은 별로 없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디자인한 레스토랑을 소개하고 싶다고 했는데, 마침 점심을 우연히 거기서 먹기로 해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이어졌다. 석양이 지면 건물 앞 운하의 빛깔이 분홍색으로 물들기에 분홍빛 강이란 뜻의 ‘리바 로사’라는 이름의 레스토랑이다.
로렌조의 가족들은 토르첼로 섬 출신인데, 100년 전부터 거기서 행상을 하며 관광객들에게 기념품을 팔아 모은 돈으로 이제 버젓한 식당 건물과 다른 가게들을 운영하고 있다면서 토르첼로 출신임을 자랑스러워했다.
부라노 섬은 레이스공예로도 유명하다. 이것 역시 어부와 상관이 있다. 오래 집을 비우는 남편을 그리워하며 소일거리로 시작한 레이스 뜨기는 부라노 섬 아낙네들을 단련시키기에 충분했다. 로렌조의 어머니 역시 집안 내력으로 레이스를 뜨며 근사한 가게도 운영한다.
수백 년 된 앤티크 레이스는 그게 그렇게 오래된 것일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새것처럼 보인다. 부라노의 또 다른 관광자원으로 기울어진 종탑이 있다. 마을 중심에 있는 산 마르티노 교회의 탑이 피사의 사탑처럼 기울어져 있다.
부라노 주민은 상대적으로 많다 해도 고작 2500명밖에 되지 않는다. 토르첼로의 로칸다 치프리아니에 거처를 정하고, 아침 일찍 나서면 저녁 먹기 전에 무라노, 토르첼로, 마초르보 이 세 섬을 다 관광할 수 있다.
헤밍웨이가 묵었던 토르첼로는 인적이 드물지만 유서 깊은 과거 도읍지였기에 천천히 둘러볼 만하다. 그러니 번잡한 베네치아보다는 토르첼로에 묵는 편이 베네치아를 더 깊이 체험하는 방법이다.
섬 하나를 더 추가한다면 당연히 리도(Lido) 섬이다. 베네치아 영화제, 우리에게는 베니스 영화제로 익숙한 섬이며, 해수욕장도 마련돼 있다. 토마스 만의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속 무대가 바로 여기다.
베네치아에서 무라노로 가는 길에 있는 작은 섬 미켈레는 공동묘지로 조성돼 있다. 섬 전체가 묘지로 구성돼 있는데, 멀리서 바라보면 물 위에 묘지가 둥둥 떠 있어 묘한 기분이 든다.
글·사진 조정용 와인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