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종도] ‘유령 신도시’ 논란 속 외자 유치로 활로 모색

지난 2월 20일 오후 인천광역시 영종도 중산동 영종초등학교 인근. 수십 채의 조립식 주택과 빌라들이 찬바람을 맞고 서 있었다. 주택 외벽엔 ‘임대 문의’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지만 지나가는 사람 하나 없었다.

운북동 공원묘지 맞은편도 상황은 비슷했다. 논밭 사이로 서너 채씩 신축 주택들이 지어졌지만 모두 비어 있었다. 공사가 중단돼 흉물로 방치된 곳도 있고, 논 한가운데 잡초만 무성하게 자란 집도 있었다.

영종도 부동산 시장의 ‘현 주소’를 보여주는 모습들이다. 작년 12월 말 인천국제공항과 하늘도시 등을 제외하고 영종도 대부분 지역이 경제자유구역에서 해제된 이후 현지 부동산 시장은 깊은 시름에 빠져 있다.

가뜩이나 도로, 생활편의시설 등 기반 시설이 턱없이 부족해 기업들이 투자를 꺼리는 상황에서 경제자유구역이란 호재마저 사라졌기 때문이다. 송도국제도시와 청라지구 등 인천의 다른 경제자유구역들은 점차 침체에서 벗어나 활기를 되찾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급매물 적체, 땅값 20% 이상 급락

경제자유구역에서 해제된 곳은 매물이 널려 있다. 보상을 염두에 둔 투기 목적의 개발이 극성을 부렸던 이곳에는 급매물이 쌓이고, 땅값이 20% 이상 떨어졌지만 매수세를 찾아보기 어렵다. 보상을 노리고 대출을 받아 샀던 외지인 소유 토지들도 하나둘씩 매물로 나오고 있다.

운서동 P공인 관계자는 “외지인이 전체 토지의 절반 이상을 소유한 것으로 현지에선 추정하고 있다”며 “이자 부담을 견디지 못한 일부 외지인들이 땅을 급매로 내놓으면서 땅값 하락세가 가파르다”고 설명했다.

올 들어 도로와 가까운 농지의 경우 3.3㎡당 100만∼130만 원 선에서 80만∼100만 원 선으로 떨어졌다. 도로와 떨어진 일부 토지는 3.3㎡당 50만 원 선이다. 땅값이 단기 급락세를 보이지만 관심을 갖는 사람이 거의 없다.

‘빈 집’이 넘치면서 주택 임대료도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전용 면적 85㎡(25평) 규모 조립식 주택의 임대료는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30만∼40만 원 선이다. 작년 말에는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 40만∼50만 원 선이었다. 보증금과 월세를 내려도 임대는 여의치 않다.

영종도 유입 인구가 줄고 있는 데다 보상 목적의 ‘날림’공사 탓에 주택 품질이 열악해서다. 가벼운 패널로 벽을 막았지만 방음이 안 되는 집이 부지기수다. 벽 사이로는 찬바람이 끊임없이 들어온다. 상하수도는 물론 가스 설비도 없는 주택이 대부분이다.

집의 형태를 갖췄지만 사람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다. 운북동의 한 부동산중개업소 관계자는 “일부 집주인들이 담합을 해 임대료가 더 떨어지는 것을 막고 있지만 주택의 상태가 열악해 지금보다 월세를 10만∼20만 원 더 내려도 세입자를 구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경제자유구역이라고 사정이 더 나은 것도 아니다. ‘레저·문화 중심 웰빙시티’, ‘저밀도 생태 주거단지’, ‘자연친화적인 수변 신도시’ 등을 표방하며 개발 중인 운남·운서동 일원 1911만 ㎡(578만 평) 규모의 영종하늘도시. 인천국제공항철도 운서역 남쪽에 위치한 이곳에는 허허벌판에 6개 주택업체들의 아파트 건설현장만이 덩그러니 서 있다.

부동산 불황에 공사도 중지

내년 9월 첫 입주를 앞두고 있지만 ‘유령 신도시’로 전락할 처지다. 벌판에 몇몇 아파트 단지만 들어서고 있고, 주변에는 학교와 상가가 없어 아파트 계약자들이 입주를 꺼리고 있다.

서울 접근성이 떨어지고 택지 분양가도 상대적으로 높아 주택업체들도 택지를 반납하거나 아파트 분양을 무기한 연기하고 있다. 상업용지 매각도 10% 선으로 당초 기대치를 크게 밑돌고 있다.

현재 주택업체에 매각됐던 52개 하늘도시 필지(아파트 건설용지) 중 공사가 진행 중인 곳은 2009년 9월 동시분양에 나섰던 6개사의 7개 필지에 불과하다. 미분양 물량이 아직도 적지 않아 주택업체들은 신규 분양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28개 필지는 주택업체들이 보증금(토지 가격의 10%)을 손해 보는 조건으로 해약됐다. 17개 필지는 아직 분양계획도 세우지 못하고 덩그러니 비어 있다.

주택용지를 보유 중인 한 주택업체 관계자는 “금융권에서 빌렸던 택지매입 대금의 이자가 점점 불어나고 있어 분양을 마냥 늦출 수 없지만 주택 시장 상황이 개선되지 않고는 대규모 미분양이 불을 보 듯 뻔해 선뜻 분양에 나서기도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유령 신도시’ 논란이 거세지자 인천시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외자 유치와 미분양 토지 매각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인천시는 지난 1월 21일 세계적인 항공기 엔진 제작사인 프랫앤위트니(P&W)와 하늘도시 내 항공엔진정비센터 건립을 위한 협약서(MOA)를 맺었다.

P&W는 2014년까지 하늘도시 에이비에이션 클러스터(Aviation Cluster)에 항공엔진정비센터를 세울 계획이다. 인천시는 P&W 정비센터 설립 발표 이후 외자 및 기업 유치가 활기를 띨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LH는 하늘도시의 자족기능 강화를 위해 일부 용지를 산업용지로, 중대형(전용면적 85㎡ 초과) 아파트 용지를 중소형으로 전환했다. 미분양 택지에 대해서도 토지 재감정을 통해 가격을 내리고 대금 납부기간을 늘려주는 등 주택업체 모시기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LH는 또 인천시가 추진 중인 청라지구와 하늘도시를 잇는 제3연륙교 건설에도 기대를 걸고 있다. 제3연륙교가 지어지면 서울 접근성이 개선되기 때문이다. 인천시는 올해 말 착공을 위해 국토해양부와 협의 중이다.

하지만 대다수 부동산 전문가들은 부족한 인프라와 고(高)분양가 등으로 인해 영종도 부동산 시장이 단기간에 활성화되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박합수 국민은행 부동산PB팀장에 따르면 “청라지구와 송도국제도시 등 인근 지역에도 미분양이 적지 않은 데다 하늘도시는 아파트 분양가가 주변 시세보다 10∼20% 이상 비싸고 입지 측면에서도 다른 경제자유구역보다 열세”라는 이유에서다.

부동산투자자문회사인 유니에셋의 윤기식 대표도 “그동안 투기로 급등했던 땅값이 진정되고, 매물이 소화되는 오랜 과정을 거쳐야 현지 부동산 시장의 기능이 회복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김태철 기자 synerg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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