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llector] 1500개 카메라 컬렉션 모델마다 다른 색, 다른 사연

카메라 컬렉터 문재철

문재철 한국창호자동화(주) 대표는 30년 이상 카메라를 수집한 컬렉터이자 사진작가다. 지금까지 수집한 카메라만 1500여 개, 세계에서 나온 거의 모든 카메라가 컬렉션 명단에 올랐다. 카메라에 담긴 문 대표의 묵은 사연을 들었다.


문재철 한국창호자동화(주) 대표의 개인 갤러리는 경기도 일산 주택가에 자리 잡고 있다. 갤러리에 들어서자 거실 저편으로 다양한 모양의 카메라가 눈에 들어왔다. 카메라 앞쪽으로는 오래된 축음기 몇 대가 보였고, 옆 벽면은 찻잔과 주전자 등 생활 도자기가 빼곡히 들어차 있다.

축음기는 좋아하는 음악을 듣기 위해 틈틈이 구입한 것으로 창고에 보관된 것까지 약 30여 개 된다고 했다. 도자기는 직접 만든 것으로 대학시절부터 취미였다고 한다. 지금도 갤러리 한 쪽에 전자 가마를 두고 도자기를 만든다. 축음기와 도자기는 컬렉터 문재철의 취향을 짐작하게 했다.

문명의 손길이 닿지 않은 오지의 순수를 카메라에 담다

본격적으로 카메라를 소개하기에 앞서 문 대표는 얼마 전 다녀온 사진 여행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인터뷰를 부탁했을 때 문 대표는 알래스카 툰드라로 출사를 떠난다며 여행에서 돌아온 후 만나자고 했던 터다.

“9박 10일 일정으로 툰드라에 다녀왔어요. 지금이 오로라가 절정일 때거든요. 영하 40~45도까지 기온이 내려가 힘들었지만 매일 밤 오로라를 볼 수 있어 다행이었죠.”

문 대표는 1년에 6~7차례, 해외로 사진 여행을 떠난다고 했다. 한 번 나갈 때마다 7~10일 현지에 머물며 사진을 찍는다. 촬영지는 대부분 5~6개의 교통수단을 동원해야 닿을 수 있는 오지다. 그는 문명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의 때 묻지 않은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여행에 나설 때는 수동 카메라 1대와 디지털 카메라 1대를 챙긴다. 이번에는 1985년에 구입한 라이카 M4를 가지고 갔는데, 제 역할을 톡톡히 했단다. 영하 40도 이하로 기온이 떨어지면서 디지털 카메라는 배터리가 나가 제대로 쓸 수가 없었다. 반면 수동카메라는 영하 45도에도 끄떡없이 버티어줬다.

카메라 컬렉터 문재철

그는 사진 촬영을 위해 여행을 떠날 때마다 다른 카메라를 쓴다. 카메라도 생명이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기에 골고루 써줘야 기분이 상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카메라마다 특징이 다르기 때문에 각각의 느낌을 맛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제가 중학교 때 사진에 취미를 붙였거든요. 그때 쓴 게 최초의 국산 카메라인 코니카입니다. 지금도 가끔 씁니다. 사진은 카메라마다 렌즈마다 다 달라요. 카메라를 수집하게 된 건 그런 매력 때문입니다.”

본격적으로 카메라를 수집한 건 대학 졸업 후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였다. 최초의 카메라는 ‘가난한 사람의 라이카’라고 불리던 야시카 일렉트로35였다. 카메라의 명품 라이카는 가격이 비싸 당시에도 50만~60만 원을 줘야 살 수 있었다.

차선으로 선택한 카메라가 야시카 일렉트로35였다. 야시카 일렉트로35의 가격도 만만치 않았다. 당시 월급이 3만1500원이었는데, 그중 2만5000원을 뚝 떼어 카메라를 샀던 것이다. 그렇게 구입한 카메라는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종군기자가 쓰던 것으로 지금도 그의 애용품이다.

1500여 카메라에 담긴 1500여 사연

야시카 일렉트로35 구입 이후 그는 카메라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2년 후 사업을 시작해 해외출장 기회가 잦아지면서 컬렉션 기회도 많아졌다. 일과가 끝나는 대로 골동품 가게며 벼룩시장을 뒤지고 다녔다.

오래된 카메라 중에는 고장 난 것도 적지 않았다. 한국에는 달리 수리할 곳이 없어 직접 수리하는 법도 배웠다. 한 달에 일주일, 6개월을 스위스로 날아가 카메라 장인에게 카메라에 대해 배웠다. 그 후론 직접 카메라를 수리했다. 고장이 났더라도 볼트, 너트를 푼 흔적만 없으면 수집했다. 부품만 있으면 수리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수집처는 유럽부터 미국, 인도, 베트남 등 다양했다. 특히 유럽의 식민 지배를 받은 동남아 국가가 좋은 타깃이 됐다. 희귀 카메라인 라이카 1A도 베트남에서 찾았다. 베트남 인근 붕타오를 차를 타고 지나는 길이었다. 오토바이 가게를 지나는데 순간 눈이 번쩍했다. 탁상시계 옆에 진열된 오래된 카메라가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그의 손때가 묻은 앤티크 카메라들

“차를 타고 가더라도 그런 건 눈에 들어오게 마련이거든요. 물속에 잠겼던 거라 형태만 남았더군요. 그걸 사와서 초음파 세정을 하고 부품을 간 후 촬영을 했더니 라이카답게 사진이 잘 나왔어요.”

또 다른 라이카 2F는 독일에서 삼고초려 끝에 구입했다. 라이카 2F는 출장길에 한 숍에서 만났다. 이미 1F와 3F를 갖고 있던 터라 꼭 갖고 싶었다. 그런데 주인이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두 번을 찾아갔는데 팔지 않겠다고 했다.

세 번째는 갖고 있던 1F와 3F를 갖고 독일을 찾았다. 아침 일찍 숍에 들러 “내 걸 사든지, 당신 것을 팔든지 짝을 맞춰주자”고 강짜를 놓았다. 고집불통이던 주인도 그제야 마음을 열었다. 당시 구입 가격이 1000만 원. 현재 유럽의 경매 사이트에서는 1억 원이 넘는 가격에 거래되기도 한다.

독일제 로봇은 캄보디아에서 구입했다. 캄보디아 내전을 취재하러 왔던 독일 종군기자가 게스트하우스에 숙박비 대신 준 것이었다. 아무리 설득해도 주인이 내놓지 않기에 400달러짜리 오토바이 한 대를 사주고 뺏다시피 샀다.

컬렉션에는 미국 남북전쟁 이전에 나온 미국 아구스의 박스형 카메라도 있다. 아구스 박스형 카메라는 세계적으로 가장 먼저 나온 제품으로 1985년 미국 시애틀 출장길에 가라지 세일(garage sale)에서 구입했다. 아이들 장난감인줄 알고 주인이 토이코너에 둔 것을 3달러에 샀다. 카메라를 보여주며 문 대표는 “지금도 잘 찍힌다”며 뿌듯해했다.


카메라마다 다른 셔터의 터치감, 필름 감는 느낌

이렇게 수집한 카메라 1500여 개 중 500여 개는 갤러리에, 나머지는 제습이 잘 되는 창고에 따로 보관하고 있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도 이 정도 컬렉션을 찾아보기 힘들다. 문 대표는 전 세계에서 나온 카메라를 거의 모두 써봤기에 아쉬움이 없다고 했다.

“제 카메라에는 저만의 사연이 담겨 있습니다. 일본 컬렉터에게 어렵게 구한 것, 시위 현장을 취재하던 기자에게 기념으로 받은 것 등 사연 없는 카메라가 없습니다. 카메라마다 특징이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펜탁스의 색감을 좋아합니다. 제가 원하는 색에 가장 가까운 표현을 해주거든요.”

편하게 취미로 사진을 찍으려 했다면 몇 개의 카메라로 만족했을 것이다. 하지만 카메라마다 다른 셔터의 터치감과 필름 감을 때의 느낌을 잊을 수가 없었다. 다른 느낌을 써보고 싶은 욕망이 카메라를 컬렉션하게 했다.

카메라를 수집할 때도 회사 경영처럼 한 번도 무리하게 욕심을 낸 적이 없다는 그는 “때가 되면 수집한 카메라를 관리가 가능한 곳에 기증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글 신규섭·사진 이승재 기자 waw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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