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ket Insight] ‘After Crisis’신흥국 인플레…세계와 한국 경제의 복병되나?

2011년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치가 속속 상향 조정되고 있다. 올 들어 불과 한 달도 안 되는 시점에서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을 4.4%로, 지난해 10월의 전망치인 4.2%보다 0.2%포인트 상향 조정했다.

가장 큰 이유는 당초 예상보다 미국 경제의 회복세가 빠르고 신흥국의 성장세가 지속되고 있어서다. 더 주목되는 것은 내년 세계 경제 성장률을 4.5%로 올해보다 높게 내다봐 2009년 2분기를 저점으로 한 세계경기의 회복국면이 3년 이상 지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2000년대 들어 회복기간이 평균 1년인 점을 감안하면 긴 기간에 해당된다.

아이러니한 것은 세계 경제 성장률이 상향 조정되는 것과는 별도로 월가를 중심으로 ‘애프터 쇼크 혹은 애프터 위기(after shock or crisis)’에 대한 우려가 계속되고 있는 점이다. ‘애프터 쇼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위더머 형제와 신시 스피처가 공동 출간한 <미국의 버블경제>라는 책은 미국 경제가 부동산, 주식, 민간부채, 소비지출, 달러, 정부부채 등 6개의 버블기둥에 의해 불안하게 지탱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 가운데 부동산, 주식, 민간부채, 소비지출에 의해 형성된 버블기둥은 리먼브러더스 사태를 계기로 붕괴됐고, 나머지 두 개 기둥인 달러와 정부부채의 버블은 올해 터진다고 예상했다.

이 때문에 현재 미국 경기와 주가는 정부가 푼 돈에 의해 떠받쳐 지고 있지만 올해는 위기 이후 또 다른 충격인 ‘애프터 쇼크’가 찾아오면서 이마저도 무너진다는 것이다.

‘애프터 쇼크’는 ‘3년 주기설’과 맥을 같이한다. 위기극복 3단계 이론에 따라 첫째 단계인 유동성 부족 과제는 ‘빅 스텝’ 금리 인하와 양적완화 정책으로 해결될 수 있지만 위기를 낳게 한 시스템이 해결되지 않으면 위기발생 3년 차에 위기가 다시 찾아온다는 것이 이 이론의 골자다. 한 마디로 위기 3년 차에 세계 경제에 복병이 될 수 있는 문제를 통칭해 ‘애프터 위기’로 부른다.

하지만 올해 증시 전망과 관련해서는 ‘골디락스’ 국면에 대한 기대도 만만치 않다. 특히 세계 경제 성장률이 상향 조정되면서 그 정도가 높아지고 있다. ‘골디락스’라는 용어는 어느 배고픈 소녀가 숲속을 가다가 곰이 차려놓은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먹기에 가장 좋은 음식을 먹었다는 영국의 전래동화에서 유래된 용어다. 경제나 증시가 더 이상 좋아질 수 없는 이상적인 국면을 말한다.

‘애프터 쇼크’와 ‘골디락스’. 이 두 상반된 운명 가운데 올해 월가가 어느 방향으로 갈 것인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지난해 12월 이후 글로벌 증시를 이끌고 있는 미국 증시의 지속가능 과제인 ‘3대 구조변화(triple paradigm shift)’가 어디까지 와있는가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지난해 이후 내내 월가의 시장참여자들은 이 부문의 진전 여부를 예의 주시해 왔다.

먼저 유동성 문제에 있어서 올해는 정책요인에 의한 유동성 공급은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과잉유동성 공급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주가가 계속 상승하기 위해서는 그동안 퇴장됐던 통화가 증시로 유입될 수 있는 구조변화가 있어야 한다.

최근 월가에서는 시중자금이 빠르게 증시로 이동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10년 만기 채권금리가 지난해 11월 초까지만 하더라도 2.4%에서 최근에는 3.5% 이상으로 상승했다. 그만큼 채권에서 이탈된 자금이 증시로 유입되고 있음을 뒷받침하는 현상이다. 채권자금뿐만 아니라 시중은행의 예·적금 등 단기부동자금이 월가로 속속 이동되고 있다.


이 때문에 위험자산 투자의 선두에 섰던 스마트 머니에 이어 일반 투자자들도 주식투자에 나서는 구조 변화도 급진전되고 있다. 현재 월가의 주식수요기반 대중화 정도를 보면 일반 투자자들이 직간접 투자를 통한 주식투자 비중이 모기지 사태 이전 수준의 70% 정도를 회복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수준을 지나면 비관론은 사라진다.

문제는 지금까지 국가에 의해 주도돼 온 경기가 민간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특정국 경기가 민간에 의해 자발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고용과 설비투자를 늘려야 한다. 그중에서 고용이 가장 중요하다. 총수요 항목별 소득기여도에서 선진국은 70%, 개도국은 60% 정도를 소비가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갈수록 각국의 부가가치가 증강현실 산업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민간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정도로 고용이 늘어나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 산업은 수확체증의 법칙이 적용돼 오히려 ‘고용 없는 성장’은 더 심화된다. 이 때문에 고용이 늘어나기 위해서는 기업들이 투자를 대폭 늘려야 하고 정부의 인위적인 고용창출 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다행히 오바마 정부가 최대 역점을 둬 추진해온 고용창출 노력에 최근 들어서는 희망을 갖게 하는 조짐들이 발견되고 있다. 불안하지만 얼어붙기만 했던 각종 고용지표들이 풀릴 기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미국 기업들도 올해는 설비투자를 대폭 늘려 잡는 신사업 계획을 속속 발표하고 있다.


각종 위기가 어느 정도 거치면 증시를 어렵게 했던 ‘3대 예측실수’들이 투자자들 사이에 거론된다. 이번에도 2009년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의 대공황 예측’, 지난해 ‘마크 파버의 중국 경제 경착륙 예측’에 이어 ‘애프터 쇼크 혹은 애프터 위기론’이 이 범주에 들어갈지 관심사다.

위기 3년 차에 선진국의 재정적자 및 국가채무 문제와 함께 ‘애프터 위기’로 예상되는 현안 중 하나는 신흥국의 인플레이션 문제다. 벌써부터 ‘2008년식 나선형 복합위기(물가 급등→금리 인상→자산가격 급락→마진 콜→디레버리지→투자국 전염→글로벌 금융위기)’의 도화선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2008년 당시 상황을 되짚어 보자. 길게 보면 9·11테러 이후 자산시장을 감안하지 않는 통화정책 방식인 이른바 ‘그린스펀 독트린’으로 2004년 상반기까지 미국의 기준금리가 1% 수준까지 대폭 인하됐다. 이 때문에 자산 가격이 오르고 이에 따른 ‘부(富)의 효과’와 초저금리 효과가 겹치면서 실물경기가 빠르게 회복됐다.

그 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기준금리를 올리기 시작했으나 이미 형성된 저금리와 자산 가격 간 악순환 나선형 고리(spiral vicious cycle)가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빠지면서 자산시장은 전례가 없을 정도로 황금시대를 구가했다. 실물경기도 실제 성장률이 잠재 수준을 훨씬 웃돌면서 물가 압력이 누적됐다.

미국 등 선진국은 인플레 부담이 없는 상황인 데 비해 신흥국 자산시장은 거품이 우려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 2007년 여름 휴가철 이후 소득 대비 주택가격비율(PIR), 기업수익 대비 주가수익비율(PER) 등이 일제히 거품신호를 보내자 자산 가격 상승세가 주춤거리면서 저금리와의 악순환 고리가 차단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서브프라임 모기지론(비우량 주택담보대출)을 많이 받았던 사람들을 중심으로 이자부담이 본격적으로 제기됐다. 이때 인플레 우려에 따라 자산 가격 하락을 촉진시켰던 것은 국제유가였다.

2008년 초 배럴당 70달러대였던 유가가 불과 6개월 사이에 140달러대로 치솟자 인플레 우려가 확산됐고, 자산 가격 급락으로 마진 콜(증거금 부족현상)에 걸린 리먼브러더스 등 투자은행(IB)들이 디레버리지(자산회수)에 나서면서 글로벌 금융위기로 악화됐다.

3년 후인 지금의 상황은 어떤가. 이번에는 자산시장을 감안한 통화정책 방식인 이른바 ‘버냉키 독트린’으로 경기가 회복세를 보임에도 부동산 시장이 부진한 점을 들어 ‘제로(0) 금리와 양적완화 정책을 계속 추진하고 있다. 최근까지 미국 등 선진국들은 디플레이션 우려가 제기될 정도로 인플레 부담이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신흥국 경기는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이를 쫓아가는 선진국 자금의 유입으로 이들 국가의 자산시장은 거품이 우려될 정도로 급등했다.

대부분 신흥국들은 기준금리를 올리고 외국자금에 대한 규제책을 내놓고 있다. 우리만 하더라도 지난해 7월 이후 기준금리를 올린 데 이어 국내 외국 은행 지점의 선물환 한도 제한 등을 추진했다.

이 상황에서 최근 들어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면서 신흥국들은 인플레에 비상이 걸려 기준금리를 추가적으로 올리고 있다. 이를 계기로 자산 가격이 많이 오른 인도네시아 등 일부 신흥국을 중심으로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하락국면에 진입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최근까지 전개되는 상황만 놓고 본다면 2008년과 흡사해 이러다간 당시의 ‘나선형 복합위기’가 재연되는 것이 아니냐 하는 우려가 충분히 설득력 있게 들린다.

이론적으로 최근과 같은 우려가 ‘위기 확산형’으로 악화될 것인가 아니면 ‘위기 축소형’으로 수렴될 것인가는 크게 두 가지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하나는 레버리지 비율(증거금 대비 총투자금액)이 얼마나 높으냐와, 다른 하나는 투자분포도가 얼마나 넓으냐 하는 글로벌 정도에 좌우된다. 이 두 지표가 높을수록 위기 확산형으로 악화되고 디레버리지 대상국에서는 위기 발생국보다 더 큰 ‘나비효과(butterfly effect)’가 발생한다.

2008년 당시 인플레 부담으로 촉발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글로벌 금융위기로 악화된 것은 위기 주범이었던 미국 금융사들의 이 두 가지 지표가 매우 높았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신흥국들은 두 지표가 모두 낮은 편이다. 최악의 경우 인플레 부담으로 자산 가격이 폭락하더라도 글로벌 금융위기로 악화되기에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인플레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신흥국에서 앞으로 자산 가격이 급락해 위기가 발생할 경우 그 충격은 자국민에게 대부분 전가된다는 것이 2008년 당시와 다른 점이다. 이 때문에 한국 등 신흥국에서는 벌써부터 외국자금의 엑소더스(exodus·이탈)’ 현상이 나타나고 있어 이에 대한 대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외국자금의 엑소더스에 대응방안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하나는 사전적 대응방안으로 외국자금 유출입 규제이고, 다른 하나는 내부역량 강화방안으로 외환보유액 확충 등이다. 각각의 대응방안에 대한 실효성을 검토해 보면 외국자금 유출입 규제는 기대했던 만큼 효과가 나타나지 않은 반면 외환보유액 확충방안은 가장 효과적으로 나타났다.

가장 큰 이유는 신흥국들의 자본자유화가 진전되는 과정에서 유입된 외국자금이 이른바 레버리지 투자기법을 즐기는 헤지펀드 등에 의해 주도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자금이 예기치 못한 사유로 증거금 부족현상이 발생하면 자본회수국으로 선택된 신흥국에서 한꺼번에 자금이 이탈되기 때문에 외환보유액이 많을수록 위기발생 억제효과는 크게 나타난다.

외환보유액을 얼마나 쌓는 것이 적정한가에 대해 가장 널리 사용되는 방안은 지표접근법이다. 이 방안도 보유동기에 따라 기도티 모델과 캡티인 모델, 전통적인 IMF 방식으로 구분된다. 기준에 따라 우리의 적정 외환보유액을 따져보면 IMF 방식에 의해서는 1050억 달러, 기도티 모델로는 2993억 달러, 캡티인 모델로는 3814억 달러로 나온다.

우리가 처해 있는 여건 등을 따져보면 IMF 방식은 갈수록 자본시장을 통한 자본거래의 영향이 증가되는 여건 하에서는 부적합하다. 기도티 모델도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 비중이 급증하고 외환시장의 안정성이 떨어지는 점과 북한과의 대치라는 특수성을 감안하면 다소 부족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캡티인 모델은 가장 보수적인 입장으로 급격한 자본유출에 대응하는 가장 안전한 방안이나 대체투자 상실비용 등 외환보유에 따른 부담이 극대화된다는 단점이 있다. 다른 한편으로 글로벌 금융안전망 구축, 제2선 자금인 IMF 쿼터 증액과 통화스와프 협정체결 등으로 보완될 수 있다면 이 기준을 완화하는 것도 어느 정도 가능하다.

적정 외환보유액은 그때그때 달라지는 자본 유출입 환경, 외채구조 등에 따라 달리 선택될 수 있다. 하지만 자본자유화가 진전되고 국제 간 자금흐름이 각종 캐리자금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점을 감안해 최근 각국은 기도티 모델과 캡티인 모델의 중간선에서 외환보유액을 쌓으려는 노력이 증대되고 있다. 우리의 적정 외환보유액은 3300억 달러 내외로 추정된다.

우리의 외환보유액은 외환위기 이후 경상수지와 자본수지 흑자로 증가세가 지속돼 왔다. 특히 금융위기 이후 외환보유액을 지속적으로 축적한 결과 2011년 1월 말 현재 2959억6000만 달러에 달한다. 종전에 비해 상당히 큰 규모이나 여전히 적정수준을 밑도는 만큼 외환보유액을 더 쌓아야 하는 요구가 지속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 만큼 외국자금의 엑소더스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외환보유액을 좀 더 쌓고 단기외채를 줄여 외채구조를 개선해 나갈 필요가 있다. 최근 논의가 되고 있는 단기외채에 대한 은행부과금 도입, 외화유동성 비율규제의 외은지점 확대, 외화 레버리지 규제 등을 긍정적으로 검토해야 할 시점이다.

동시에 최근 추진되고 있는 자산거품 방지와 인플레 대비책은 우리 국민의 부담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만큼 이를 완화시키는 방안이 모색돼야 한다. 여러 대책이 있을 수 있겠으나 신흥국 자산가격 급등이 선진국의 저금리와 양적완화에 기인하고 인플레 압력도 주로 공급자 측에서 제공하는 만큼 금리 인상은 가능한 자제해야 한다.

대신 외자에 대한 방어책과 함께 통화절상, 임금 등 각종 가격통제, 국민에 대한 도덕적 설득(moral persuasion) 등을 통해 자산시장 연착륙과 인플레 안정을 도모해 나가야 한다.

한상춘 한국경제신문 객원 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 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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