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nery Tour] 신대륙 와인이 기다리는 칠레로의 초대

어떤 노선을 따라가도 25시간 이상 비행기의 좁은 좌석에서 몸을 옴짝달싹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재수 좋게 옆 좌석이 비면 그렇게 행복할 수 없다. 칠레로 가는 길은 멀고도 지루하기에 큰마음을 먹지 않으면 안 되지만 그럴 가치는 충분히 있다.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에서 이민국을 통과하는 일은 순조로운 대신 세관에서 실시하는 짐 검사는 엄격하다. 칠레는 지정학적으로 대륙이면서 섬과 같다. 동서남북이 가로막혀 있기 때문이다. 동은 안데스, 서는 태평양, 남은 남극, 북은 사막으로 둘러쌓인 지형이라서 외부 환경에 민감하다.

2010년에 하얏트호텔 주방장이 한식 축제를 위해 여러 식재료와 기물들을 반입하는 과정에서 모두 압수된 일이 있었다. 여행자들이 특히 조심할 일이다. 워낙 동식물, 기타 음식 등에 대해 까다롭기 때문에 웬만하면 규정을 따르는 것이 좋다.

남반구에 위치한 탓에 칠레는 우리와 정말 반대다. 계절만이 아니다. 서울은 강남이 화려하지만, 산티아고는 강북이 화려하다. 산티아고의 중심 구역을 서울에 비교하자면 동대문구, 노원구, 중랑구가 으뜸가는 동네다. 물 좋은 산티아고의 세 동네를 조명한다.


라스 콘데스 지구·현대적인 신시가지

숙소로 그랜드하얏트호텔(santiago.grand.hyatt.com)을 추천한다. 공항에서 25km 정도 떨어져 있다. 여러 특급 호텔 중 제일 낫다. 시내에서는 좀 떨어져 있지만 택시를 타면 금방이니 문제없고, 길이 익숙해지면 운동 삼아 시내로 걸어 들어갈 수도 있다.

무엇보다 호텔 근처에 칠레 최고의 쇼핑몰이 있어 편리하다. 호텔 안에 산책할 수 있는 야외 정원도 있다. 2007년 처음으로 칠레를 여행했을 때 여행 기간 내내 호텔에 머물렀던 적이 있는데, 제법 나무도 많아 쉼을 얻는 데 괜찮았다.

이 호텔은 라스 콘데스 지구에 있다. 길이 널찍하고 현대적 건물이 들어서 오늘날 산티아고의 얼굴 마담이다. 호텔은 ‘케네디 대통령’거리에 있고, 이어 대형 맥도날드 드라이브 스루가 있으며, 쇼핑몰 파르케 아라우코(www.parquearauco.cl)가 있다.


비타쿠라 지구·명품 가게와 맛 집 즐비한 멋진 거리

청담동의 럭셔리 가게들이 즐비한 풍경을 산티아고에 대입하면 비타쿠라의 모습이 된다. 알롱소 데 코르도바 거리 좌우에 늘어선 상점들 중에는 에르메스도 있고, 페라가모나 아르마니도 있지만 주변 풍광을 억누르고 혼자만 휘황찬란하게 보이지 않는다.

이곳에 있는 명품 브랜드 숍들은 이름 없는 다른 상점과도 잘 어울리게 아주 겸손한 외관을 하고 있는 점이 서울과 다르다. 비타쿠라 지구에는 특히 맛 집들이 많다. 최고의 맛 집을 지도에 점으로 찍는다면 비타쿠라는 금세 점박이가 될 것이다.

고기 요리로 유명한 에우로페오(www.europeo.cl)와 티에라 노블(www.tierranoble.cl), 해산물로 유명한 푸에르토 푸이(www.puertofuy.cl), 라 마르 외에도 한인이 경영하는 하나 스시(www.sushihana.cl)도 필수 코스다. 횟감의 질이 아주 좋고 싱싱하다.

프로비덴차 지구·국제 비즈니스의 거리

센트로(센터)에 접한 프로비덴차는 정치, 경제, 외교, 금융의 중심지 역할을 한다. 대한민국 대사관도 여기에 있다. 남미에서 가장 높은 주상복합 아파트 ‘플래티늄이 2010년에 문을 열었으며, 칠레 가전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LG전자 현지법인이 입주해 있다.

남미에서 가장 큰 와인 가게 ‘문도 델 비노(www.elmundodelvino.cl)’는 W호텔 1층에 자리한다. 글로벌 금융기관들도 고층 건물을 하나씩 차지하고 있어 산티아고와 맨해튼의 합성어 ‘산티해튼(Santihattan)’이란 신조어를 생산하기도 했다. 양조장들의 수출사무소도 대부분 여기에 있다. 프로비덴차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비즈니스 디너를 위해 대부분 비타쿠라로 차를 몬다.


칠레의 음식문화

칠레 사람들은 어떤 음식을 먹을까. 음식을 알면 그 나라를 알 수 있다. 칠레 고유의 음식 가짓수는 와인의 종류만큼 즐비하진 않다. 칠레는 플랜테이션을 위해 이민 온 여러 민족의 다양한 음식문화가 혼재돼 있는 게 현실이지만, 스페인과 인접 국가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페루의 해산물 음식과 아르헨티나의 바비큐 ‘아사도’가 발달해 있다. 소갈비나 양갈비를 장작불로 서서히 구워내는 아사도는 칠레의 뚝심 있는 와인, 카르미네르나 카베르네 소비뇽과 딱 맞다. 고기의 하이라이트는 아르헨티나에서 구현되기 때문에 시간 여유가 있다면 멘도사 비행기를 예약하면 된다. 산티아고 멘도사는 서울-부산처럼 가깝고 비행기가 자주 있으니 점심 먹으러 다녀올 수도 있다.


노벨 문학상의 작가 파블로 네루다가 즐겨 먹은 생선 콘그리오로 만든 수프가 있고, 파마산 치즈를 얹어 데워 먹는 키조개 요리, 밀가루를 입혀 튀겨 내는 피조개 요리가 맛깔스럽다. 해산물 요리 중 대표적인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세비체(ceviche: 생선살을 레몬즙에 절인 것)다.

생선살이나 조갯살을 시트러스에 절여 먹는 세비체는 레스토랑의 전채요리로 혹은 반가운 손님을 맞이할 때 주로 선보이는 메뉴다. 침이 고이는 신맛이 특징인 세비체는 살균 효과도 있는 일종의 저장 음식이다.

양파나 아히(고추의 일종)를 많이 넣는 페루 세비체와 달리 칠레 세비체는 스파이시한 맛이 덜하며 대신 재료의 맛을 살려 담백한 맛이 난다. 칠레 사람들에게는 사실 와인보다는 전통주 ‘피스코’가 더 익숙하다.

피스코는 포도로 만든 증류주로 도수로 보면 소주와 같고, 생김새로는 막걸리와 비슷하다. 칠레에 출장을 왔다면 주말을 이용해 와인 여행을 떠날 수 있다. 산티아고 주변에 포진한 칠레의 간판 산지 마이포밸리나 태평양과 가까운 카사블랑카를 다녀오는 데 왕복 두 시간이면 충분하다.

칠레 국민 양조장으로 불리는 콘차이토로 양조장은 시음과 편의시설을 잘 갖춰 방문객이 끊이질 않는다. 칠레를 방문하는 기업가들이 주말 와인 나들이를 하는 데 안성맞춤이다.

산티아고는 국제도시라서 맛 집들이 즐비하다. 비타쿠라에 위치한 보르데 리오(www.borderio.cl)는 11개의 레스토랑으로 구성된 먹을거리 센터로 해산물을 좋아한다면 ‘바라스 항구’란 뜻의 푸에르토 바라스(www.ibisdepuertovaras.cl)를 추천한다.

싱싱한 해산물로 만든 세비체를 즐기고 싶다면 비타쿠라에 있는 라 마르(www.lamarcebicheria.com)에 가야 한다. 격식을 차리지 않은 캐주얼한 분위기지만 맛과 품질은 뛰어나다. 페루 스타일의 세비체를 지향해 많은 단골을 자랑하는 이 식당은 남미 여러 나라뿐 아니라 미국까지 진출해 있다.

칼칼한 신맛이 살아 있는 소비뇽 블랑과 함께 성게알, 생선살이 혼합된 세비체를 추천한다. 아주 환상적인 맛이 난다. 레스토랑 미라올라스(Miraolas)는 시내에 있어 편리하지만 항상 만원이니 일찍 먹는 게 답이다.


‘파도를 보라’는 뜻의 미라올라스 식당은 이름에 걸맞게 신선한 해산물로 특화됐다. 그날그날의 해산물을 엄격하게 골라 요리한다. 하지만 이 식당을 찾기는 쉽지 않다. 간판이 없어 번지수만 보고 찾을 수밖에 없다.

칠레 해산물 식당에서는 보통 오징어튀김, 새우튀김, 갖가지 세비체를 2∼3인분 시킨 것으로 전채를 삼고, 메인으로 킹크랩이나 삶은 전복 혹은 생선 요리를 먹는다. 주소는 산티아고 비타쿠라 4171번지.

화이트 와인이 맛있는 카사블랑카에서는 레스토랑 마세라도(www.macerado.cl)에 꼭 들러야 한다. 칠레인들은 전복을 우리처럼 생식하지 않고 쪄서 채소에다 먹는데, 초고추장이나 간장에 찍어 먹는 우리 전복이 몹시 그리울 것이다.


칠레 레스토랑을 이용할 때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사실 한 가지. 고기 요리를 주문할 때는 반드시 ‘소금 없이(Sin Sal)’를 부탁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소금 폭탄 스테이크를 맞게 될 것이다. 칠레는 고기를 짜게 먹는 습성이 있다. 요리에다 주방장에 간을 하고, 웨이터도 접시를 받자마자 소금을 뿌리기 때문에 주문할 때 단단히 타일러야 한다. 신 살!

Tip

와인쇼핑 1
문도 델 비노(www.elmundodelvino.cl)

남미에서 가장 큰 규모의 와인 판매체인으로 W호텔 1층에 있는 지점이 가장 규모가 크다. 프로비덴차 지구에 있기에 비즈니스 용도로 와인이 잘 팔린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규모의 와인 가게는 없다. 한국에도 여러 번 방문했던 남미 최초의 마스터 소믈리에 엑토르 베르가라가 책임을 맡고 있어 칠레 소믈리에들의 집합 장소로도 쓰인다.

와인쇼핑 2
와인(www.wain.cl)

비타쿠라 지구 레스토랑 라 마르 맞은편에 위치한 단독 건물의 와인 가게로 기존 와인 판매점의 구태의연한 모양이 아니라 용도에 맞게 와인을 진열한다. 교육장도 있고, 오픈 키친에서 와인과 음식의 조화도 탐색하는 등 주인의 와인 사랑이 각별하다. 칠레에서 가장 비싼 와인 폰지벤탈도 판다.


글·사진 조정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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