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0 후 금융시장
G20 서울 정상회의를 계기로 향후 금융시장의 주요 변수들이 어떤 움직임을 보일지가 주목된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환율은 장기적으로 하락하는 가운데 금리는 오름세를 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 마지막 날인 지난 12일. “환율이 펀더멘털(경제의 기초여건)을 벗어나면 정부가 개입할 수 있다”는 신현송 청와대 국제경제보좌관의 발언이 전해지면서 서울 외환시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19원90전(1.8%)이나 뛴 채 거래를 마쳤다. 통상 하루 10원 미만 움직이는 환율이 20원 가까이 오른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하루 전인 11일 코스피시장. 장 마감 10분 전 열리는 동시 호가 시간에 갑자기 2조 원에 달하는 외국인 매도 주문이 쏟아졌다. 1970선에 육박하던 코스피지수는 순식간에 50포인트 넘게 폭락했다.
옵션 만기일을 맞아 한 외국계 펀드가 보유자산을 청산하면서 일어난 ‘해프닝’이란 관측도 있지만 외국인의 국내 증시 이탈이 본격화되는 신호탄이란 분석도 만만치 않다.
G20 서울 정상회의가 막을 내리면서 금융시장의 관심은 정부의 핫머니 규제 대책과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속도에 맞춰지고 있다. 최근 환율과 주가가 크게 출렁인 것도 모두 같은 맥락이다. 실제 G20 서울 정상회의가 끝나자마자 정부는 올해 안에 자본 유·출입 대책을 내놓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외국인 채권 투자 소득에 대한 과세 부활, 외국계 은행지점의 선물환 포지션 제한, 은행 부과금 도입 등이 검토 대상이다. 또 한국은행은 지난 16일 4개월 만에 기준금리를 연 2.25%에서 2.5%로 올린 데 이어 추가 인상을 시사하고 있다. 정부 정책이 금융시장의 최대 변수로 떠오른 셈이다.
환율, 단기 상승-장기 하락
서울 외환시장은 당분간 변동성이 커질 전망이다. 정부의 자본 유·출입 대책을 피하려는 외국인들의 이탈이 가속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다. G20 서울 정상회의 합의문에 ‘신흥시장국의 외국자본 규제’가 공식적으로 포함돼 정부로선 큰 부담 없이 관련 대책을 내놓을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됐다.
임지원 JP모건체이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G20 서울 정상회의 이후 정부의 자본 통제가 강화되면 핫머니 유입이 둔화될 것”이라며 “정부 정책에 불편함을 느끼는 외국인이 국내 시장을 이탈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외국인이 국내 주식과 채권을 팔고 매각 대금을 달러로 바꾸기 위해 외환 시장에 몰려오면 환율이 단기적으로 급등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원·달러 환율이 하락 추세를 보일 것이란 분석이 우세하다. 무엇보다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이 튼튼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올해 국내 경제가 6% 안팎의 성장세를 기록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수출 호조로 올해 무역흑자는 작년(약 400억 달러) 수준을 넘을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내년에는 경제성장률이 다소 둔화되겠지만 여전히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등 선진국보다 나은 흐름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다 한은이 기준금리 추가 인상을 시사한 점도 원화 강세(환율 하락)에 유리한 환경이다.
김윤경 국제금융센터 연구위원은 “정부의 자본 유·출입 규제로 환율 상승이 나타나더라도 단기적인 영향에 그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급격한 하락은 없겠지만 환율 하락 추세는 유효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금리 ‘바닥 쳤다’
시장금리는 기조적으로 오름세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지난달 중순 연 3.05%까지 밀렸던 3년만기 국고채 금리는 지난 5일에는 연 3.6%까지 튀어 올랐다.
최근 연 3.3%까지 밀리기도 했지만 단기 급등에 따른 조정이란 시각이 많다. 채권시장에선 이미 ‘금리가 바닥을 쳤다’는 분석이 잇따르고 있다.
정부의 자본 유·출입 규제 방안도 채권 금리 상승세를 부추기는 요인이다. 서철수 대우증권 채권운용부 차장은 “정부가 외국인 채권 투자 이자에 대해 다시 세금을 물리게 되면 외국인들이 이탈할 수 있다”며 “외국인이 채권을 팔면 채권 가격이 하락(채권 금리는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은 시장금리를 떠받치는 핵심 열쇠다. 김중수 한은 총재는 지난 16일 금융통화위원회가 끝난 뒤 기자간담회에서 “연 2.5%의 기준금리도 성장과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기대치 등을 감안하면 중립적인 수준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기준금리를 좀 더 올려도 경기 회복세를 꺾을 정도는 아니라는 뜻이다.
반면 물가에 대해선 우려를 표시했다. 지난달 배추값 상승 등의 여파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1%를 기록, 한은의 중기 물가안정목표(2~4%)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김 총재는 국내 경기와 국제 원자재 가격 오름세를 감안할 때 향후 소비자물가도 3%대 상승률을 지속할 것으로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경기와 물가 전망을 고려할 때 한은이 기준금리 추가 인상을 강하게 시사했다고 풀이했다. 기준금리 인상 속도와 폭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린다. 박태근 한화증권 연구원은 “물가 상승이 우려되지만 부동산 시장 등 경기 회복 속도나 외환시장의 불확실성을 감안할 때 금리 인상 속도가 빠르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염상훈 SK증권 연구원도 “내년 상반기 한차례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한 후 상당기간 동결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반면 김윤기 대신경제연구소 경제조사실장은 “내년 상반기 중 세 차례 정도 기준금리 인상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주식은 조정 대비 신중해야
증시는 외국인의 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외국인은 올해 들어 국내 증시에서만 19조 원가량의 주식을 사들였다. 누구나 인정하는 국내 증시의 ‘큰손’이다. 문제는 최근 코스피지수가 단기 급등해 ‘과열’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외국인들의 ‘변심’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투자자 입장에선 신중한 태도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얘기다.
옵션 만기일인 지난 11일 외국인의 대량 매도로 주가가 50포인트 넘게 폭락한 것이 단적인 사례다. 아직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외국인의 국내 증시 이탈이 본격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기에 충분했다.
최근 코스피지수가 1900선을 넘어 2000선 근처까지 육박한 데는 글로벌 유동성을 바탕으로 한 외국인 매수세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국내 펀드는 투자자들의 환매에 시달리고 있고 개인들은 지속적인 매수 주체가 되기에 역부족이다.
미국이 추가 양적완화에 나설지도 변수다. 미국은 최근 6000억 달러에 달하는 자금을 풀어 국채를 사들이는 방식으로 돈을 풀고 있다. 덕분에 전 세계적으로 글로벌 유동성이 풍부해졌고 이는 각국 증시를 밀어올린 원동력이 됐다.
하지만 현재로선 미국이 추가 양적완화를 기대하기가 쉽지 않다. 양적완화에 대해 중국, 독일 등이 ‘인위적인 달러화 약세 정책’이라고 비판하면서 미국도 부담이 적지 않다. 김세중 신영증권 투자전략팀장은 “그동안 미국의 양적완화 정책을 바탕으로 외국인 투자자금이 국내 증시에 유입되면서 주가가 상승했지만 이 같은 구도가 변할 조짐”이라며 “앞으론 외국인의 투자 방향을 예측하기 어려워졌다”고 지적했다.
중국의 긴축정책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 중국은 최근 부동산 시장 거품과 인플레이션 압력을 막기 위해 기준금리를 올리고 은행 지급준비율을 인상했다. 이에 따라 중국 상하이 종합주가지수는 지난 12일 5% 넘게 급락한 데 이어 16일에도 4% 가까이 빠졌다.
황인성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중국은 한국의 최대 수출 시장”이라며 “중국이 긴축정책을 지속하면 국내 기업들의 수출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주용석 한국경제신문 경제부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