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론] 금융변수 위기 전 상황 회복 실물경기는 낙관·비관 교차


리먼브러더스 파산 사태가 터진 지 어느 덧 2년이 됐다. 투자자를 비롯한 거의 모든 경제주체들에게는 다시 기억하기조차 싫은 암울한 시기였다. 현 시점에서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외화 유동성과 금융변수를 중시하는 시각들은 이제 대부분 금융변수가 위기 이전으로 돌아간 점을 들어 위기가 끝났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실물경기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점을 들어 위기가 끝나려면 아직도 멀었다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리먼 사태 악몽, 당초 예상보다 빨리 극복되고 있다는 평가가 우세

이 논란의 실체를 알아보기 위해 리먼 사태와 같은 금융위기 극복 경로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한 나라의 금융위기는 ‘유동성 위기→시스템 위기→실물경기 위기’ 순을 거치는 것이 전형적인 경로다.

리먼 사태 발생 이후 지금까지 진전 상황과 각국의 대응 사례를 곰곰이 따져보면 정확히 일치되고 있음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리먼 사태를 극복하는 것도 이 순서대로 부족한 유동성을 극복하고 위기를 낳게 한 체질을 개선하면 자연스럽게 실물부문에 자금이 들어가 경기가 회복되는 경로를 거쳤다. 이른바 ‘위기극복 3단계론’이다.

현 시점에서 국가가 관장하는 유동성 위기는 극복됐으나 금융시스템을 복원하고 실물경기를 회복하는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첫 단계인 유동성 위기극복 과제는 이제 출구전략을 시행하거나 논쟁이 거세지는 점을 감안하면 최소한 정책당국이 관장해야 할 단계는 지난 상황이다. 위기 극복에서 가장 중요한 단계인, 기존 시스템을 보완하고 새로운 환경에 맞게 시스템을 마련하는 두 번째 금융시스템 정비 단계도 비교적 순조롭게 추진되고 있다.

한편으로 부실자산 처리를 통해 금융 중개기능을 복원하고, 다른 한편으로 통화와 재정 양면에서 대대적인 부양책을 병행해 나감에 따라 글로벌 경기는 당초 예상보다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경제지표 성격별로 볼 때 선행지표에 이어 동행지표까지 개선되기 시작한 실물경기는 한국 등은 후행지표인 실업률 등이 개선되고 있으나 고용지표 개선은 여전히 불확실한 단계다. 위기극복 정도로 본다면 7부 능선을 지나는 셈이다.


이 때문에 리먼 사태가 발생한 지 2년이 되는 현 시점에서 향후 경기 모습을 놓고 2단계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단기 경기논쟁은 세계 경기가 저점을 통과했느냐 여부를 두고 1년 전부터 벌어진 논쟁으로 이제는 저점을 통과했다는 데에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최근 가열되고 있는 2단계 경기논쟁은 경기회복의 모양을 놓고 벌이는 것으로 향후 경기회복의 모양에 대해서는 실로 다양한 견해, 특히 ‘더블딥’ 혹은 ‘소프트 패치’ 논쟁이 일고 있다.

리먼 사태가 발생한 직후 극단적인 비관적 전망에도 불구, 글로벌 증시는 지금까지 비교적 순탄한 움직임을 보여 왔다. 현재 증시 상황을 뉴욕 월가에서 주가예측기법으로 가장 각광을 받고 있는 조지 소로스의 자기암시가설을 토대로 진단해 본다면 금융위기 이후 ‘Ⅰ’ 국면과 ‘Ⅱ’ 국면을 거쳐 ‘Ⅲ’ 국면 후반부에 진입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변동성 장세는 지속되지만 갈수록 그 폭이 작아지는 것도 뒷받침해 주는 대목이다.

소로스의 이론대로라면 글로벌 증시가 재차 상승하기 위해서는 유동성보다 경기와 기업실적과 같은 기초 여건, 특히 경기가 어떻게 될 것인가가 관건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주가를 결정하는 많은 요인 가운데 리먼 사태가 발생한 지 2년이 되는 현 시점에서 거시경제 변수, 그중에서 경기와 관련된 논쟁을 주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세계와 한국 경기 향방은 심리적 요인과 네트워크 효과에 주목

1990년대 이후 세계 경기는 경기사이클이 사라졌다든가, 사이클이 있더라도 그 폭은 작아졌다는 주장이 힘을 얻을 정도로 장기호황을 경험했다. 하지만 리먼 사태를 겪으면서 세계 경기와 한국 경기는 그 어느 쪽도 옳은 결론이 아님을 단적으로 입증했다.

오히려 금융을 중심으로 네트워킹이 한층 진전된 글로벌 경제에서는 반대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더 커졌고 심리 요인과 중국 경제의 위상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또 과거의 경기순환은 주로 인플레이션과 관련돼 발생했다. 종전 경기순환이론대로 한 나라 경기가 호황을 지속해 인플레가 문제가 되면 중앙은행이 금리를 인상해 물가를 안정시키는 대신 경기는 하강국면에 들어서게 된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경기순환은 주로 자산버블과 그로 인한 금융 불안에서 비롯되고 있으나 이런 경기침체도 북유럽 위기(1990년대 초), 아시아 외환위기(1997년), 일본의 장기침체(1990년대) 등 국지적으로 발생했을 뿐 이번 리먼 사태처럼 전 세계적인 동반 침체로 이어진 적은 없었다.


리먼 사태 이후 글로벌 경기침체도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를 계기로 불거진 금융 불안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종전과 같으나 세계적으로 동시 침체가 진행됐다는 점, 금융 불안에서 실물경제 침체로 전이속도가 유례가 없을 정도로 빨랐다는 점, 경기 하강 폭이 짧은 순간에 대공황 때와 버금갈 정도로 컸다는 것이 다르다.

그 결과 종전의 경기순환 패턴을 기초로 한 전망이 경제 흐름을 정확하게 짚어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예측 무용론’이 나올 정도로 예측기관에 대한 신뢰가 크게 떨어졌다. 경제학계에서도 요즘은 종전에 우리가 배웠던 경제이론이 통용되지 않는 ‘경제학의 혼돈(Chaos of Economics)’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말이 자주 들리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앞으로 예측기관들이 예측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이번 리먼 사태를 계기로 확인된 네트워킹 효과에다 심리적인 요인, 최근 들어 위상이 부쩍 높아지고 있는 중국 경제에 대한 재평가 그리고 리먼 사태 이후 새롭게 형성되고 있는 금융을 비롯한 각 분야의 트렌드를 감안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검을 토대로 ‘네트워킹 효과’와 ‘심리적 요인’ 등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돌려놓고 중국 경제에 대한 평가가 정확하게 이뤄질 수 있다면 세계 경기와 한국 경기를 보다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금융 네트워킹이 앞으로 어떻게 진화하느냐가 세계 경기와 한국 경기의 방향을 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리먼 사태 이후 세계 경제와 한국 경제 네 가지 시나리오에 주목할 필요

앞으로 경기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리먼 사태가 발생한 지 2년이 되는 시점에서 월가를 중심으로 단기적인 ‘더블딥’과 중장기적인 ‘경기사이클’과 관련해 가열되고 있는 두 가지 논란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지난해 하반기 이후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세계 경기와 한국 경기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인가를 놓고 벌이는 이른바 ‘더블딥’ 논쟁이다. 현재 밴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과 국제통화기금(IMF), 국가별로는 신흥국들이 중심이 돼 앞으로도 회복세가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앨런 그린스펀 전 FRB 의장,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와 전미경제연구소(NBER) 등은 근본적인 문제가 치유되지 않은 상황에서 보이는 회복세는 조만간 침체국면에 빠질 것으로 주장했다.

또 다른 하나는 ‘중장기 경기사이클’ 논쟁이다. 버블론의 저자인 해리 덴트는 인구통계학적 관점에서 베이비 붐 세대가 은퇴하는 2010년대에는 경기가 장기간 침체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고 오래전에 내다봤다.

반면 미국 와튼 스쿨 교수인 제레미 시겔 등은 갈수록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중국, 인도 등에 의해 2010년대 세계 경기를 지탱해 나갈 수 있다는 글로벌 해법을 제시해 덴트의 비관론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장단기 경기논쟁을 조합하면 지난해 2분기부터 회복한 경기가 앞으로 지속되거나 둔화된다 하더라도 경영와 증시 흐름에 적합하게 연착륙되는 중장기 낙관 시나리오, 회복세가 앞으로 1년 정도 지속되다가 그 후 침체되는 단기 낙관 시나리오, 회복세가 위기대책 후유증으로 침체되다가 중장기적으로 성장 추세선에 재진입하는 단기 침체 시나리오, 올 여름 휴가철 이후 침체국면에 진입한 경기가 오래 지속된다는 중장기 침체 시나리오 등 네 가지 ‘경우의 수’가 나온다.

정도 문제이지 과거 위기국의 경험과 세계 경제 복원력 등을 감안하면 각국이 성급하게 출구전략만 추진하지 않는다면 회복세는 지속된다는 것이 예측기관들의 지배적인 시각이다.


차기 위기 발생 후보지에 대한 관심도 높아져

여전히 과제는 남아 있지만 당초 예상보다 리먼 사태가 빨리 극복됨에 따라 다음 위기는 어디서 어떤 형태로 발생할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 벌써부터 높아지고 있다. 이에 대한 답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10년 주기설’이다. 공교롭게도 10년마다 발생한 1987년 블랙 먼데이,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2007년 서브 프라임 사태가 이 설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국제 금융시장에서는 지금까지 위기의 시장별 발생 패턴, 즉 선진국 증시(블랙 먼데이), 이머징마켓 외환시장(아시아 외환위기), 선진국 주택시장(모기지 사태)을 종합해 볼 때 다음 위기는 이머징마켓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이머징마켓에서 발생했던 마지막 위기는 1990년대 후반에 발생했던 러시아 모라토리엄(국가채무 불이행) 사태로 10여 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이머징마켓은 공포의 기억이 잊혀져가는 시장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머징마켓에서 위기가 발생할 경우 어떤 위기가 올 것인가를 알아보기 위해 단기 통화방어능력, 중장기 위기방어능력에 해당하는 해외 자금조달과 국내 저축능력, 자본유출 가능성을 보는 자본 유입의 건전도 등으로 파악하는 모리스 골드스타인의 위기판단지표로 볼 때 동유럽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는 높게 나오지 않는다.

이 때문에 이머징마켓의 금융시장은 당장 붕괴될 가능성은 높아 보이질 않는다. 아직까지 이머징마켓의 버블이 극에 달한 상황이 아니고,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처럼 금융시장 붕괴 직전에 극에 달하는 시장모멘텀과 레버리지(차입 비율)는 관찰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원자재 시장의 강세 행진이 이머징마켓의 상황과 연결돼 있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머징마켓의 상품 시장에 유입되는 자금의 대부분이 매수에 치중(long-only)하는 자금 또는 국내 예금이라는 점은 이머징마켓 상품 시장의 과열 양상을 보여주는 징표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리먼 사태가 발생한 지 2년이 되는 시점에서 유럽 통화위기, 리먼 사태 등을 통해 많은 돈을 번 소로스가 “최근 금값이 너무 뛰어 거품이 우려된다”고 경고한 것이 의외로 많은 파장과 주목을 끄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라고 생각된다.

한상춘 한국경제신문 객원 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 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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