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ne Manners] 가을의 초입, 제철 음식의 맛을 더해주는 와인
입력 2010-09-13 14:55:14
수정 2010-09-13 14:55:14
와인과 음식의 미학, 마리아주-두 번째 이야기
여름 보양식에 이어 이번 호에는 가을의 초입에 먹을 만한 음식과 와인을 매칭해 본다. 이번에도 한국 전통 혹은 토속적인 제철 음식을 골랐다. 특히 올 9월엔 이른 추석도 끼어있다.추석을 즈음해 토속 음식으로 귀한 이들을 대접하는 것도 뜻 깊은 일일 것이다. 가족과 혹은 직원 회식에 혹은 특별하고 재치 있는 접대 자리에서 활용할 만한 우리나라 전통의 가을 별미들에 맞춤한 와인들을 찾아보자.
살랑살랑 부는 바람에서 서늘한 기운이 느껴지는 9월이다. 요즘이야 어느 계절인들 흥미 있는 먹을거리가 부족하겠는가만, 가을이 천고마비인 이유는 어디까지나 그 잔칫상 같은 풍성한 제철 별미들이 이유라고 생각한다.
삼색 나물과 화이트 와인
우리 민족의 가장 큰 명절도 9월에 온다. 잘 익은 오곡과 과실이 오르는 추석 상에서도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것은 나물이다. 선한 기운을 준다고 하던가.
담백하고 참한 어머니의 나물 맛이 기억에 남는다. 요즘은 참한 한정식집도 많으니 한정식 집에선 도리어 탕보다 나물과의 마리아주에 초점을 맞춘 와인을 선보여도 좋을 법 하다.
우리 고유의 음식인 나물은 그 자체의 씁쓰름한 뒷맛과 참기름, 깨 등 첨가된 양념의 영향으로 와인과 매칭하기 어려운 음식 중 하나다. 그러나 몇몇 와인들은 나물과 매칭해도 다른 와인과 음식의 매칭들과 비교했을 때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 궁합을 보여 주기도 한다.
나물에는 과일 향이 매우 강조된 달콤한 느낌의 화이트 와인이나 묵직하고 떫은 맛이 강한 레드 와인보다는, 가벼운 화이트 와인이 잘 어울린다. 프랑스 알자스 지방의 리슬링 품종으로 만든 화이트 와인이나 독일, 이탈리아 북부에서 생산한 가벼운 스파클링 와인이 좋을 듯.
추어탕과 샤르도네
추어탕과 어울리는 와인을 찾을 때 주의해야 하는 것은 향신료와 추어 특유의 강한 풍미를 지우는 와인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특히 뜨겁고 국물이 많은 탕 요리는 뜨거운 국물의 온도로 인해 미각이 마비되기 때문에 매칭하는 술에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추어탕의 경우는 화이트 품종 중에서 향이 강하고 화려한 샤르도네, 특히 맛이 묵직한 미국산 샤르도네 화이트 와인을 추천한다. 가벼운 화이트 와인은 향에서 밀릴 것이고, 그렇다고 쉽게 레드 와인을 선택하면 추어의 맛과 와인의 맛이 부딪힐 수 있다.
열대과일 향이 풍부하면서 묵직하고 부드러운 오크 터치감이 느껴지는 미국 샤르도네 화이트 와인은 추어탕 향신료에 밀리지 않으면서도 입 안을 잘 정돈해 줄 것이다.
전어와 화이트 와인
가을 전어구이를 대접한다면, 독특하게 스파클링 와인을 준비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전어의 담백함을 살려줄 수 있는 상큼하고 시원한 느낌의 화이트 와인이나 가벼운 스파클링 와인이 잘 어울린다. 물론 스파클링 와인이 가진 특유의 화려함은 자리를 아주 흥겹고 특별한 순간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마늘, 양파, 깻잎 등 갖은 채소와 함께 초고추장에 버무려 먹는 전어회 무침에는 가벼운 단맛과 청량감이 좋은 화이트 와인이나 로제 와인이 어울린다.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가격대의 와인 중 호주산 리슬링, 미국산 화이트 진펀델(Zinfandel), 독일산 리슬링, 프랑스산 게부르츠트라미너(Gewurztraminer)가 잘 어울릴 것이다.
대하와 화이트 와인
가을에 통통하게 살이 오르는 대하구이. 특히 서늘해지고 고요해진 가을 바다의 석양을 보며 직접 불을 피워 먹는 대하구이는 가을의 호사스러운 별미 중 1위라 할 수 있다. 가족과 소박하게 먹어도 좋지만, 여러 사람이 모여 시끌벅적 바비큐를 해도 좋은 메뉴다.
특히 최근에는 단합대회나 오리엔테이션 등을 해변가 펜션을 빌려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서해안으로 가게 된다면 대하구이 맛을 꼭 보게 될 듯하다.
아니라면 과감하게 서해안으로 귀빈을 모시는 것은 어떨까. 바다냄새 가득한 가을 공기 속에서 갓 잡아 올린 싱싱한 대하를 대접하는 것도 아주 근사한 접대가 될 것이다.
쫄깃한 질감과 담백한 맛, 그리고 진한 새우 향을 가진 이 음식은 감귤류(시트러스 계열)의 과일 향과 풋풋한 허브향이 풍부하고 산도가 좋은 소비뇽 블랑 품종의 와인이 잘 어울린다. 프랑스 루아르 지방의 상세르(Sancerre)와 뉴질랜드에서 생산되는 와인이 가격 대비 퀄리티가 훌륭하다.
송이와 레드 와인
가장 예스러운 아취를 드러내는 고급 가을 별미가 아닐까 싶다. <삼국사기>에 진상품으로 기록돼 있다니 예로부터 사랑받고 귀하게 여겨진 식품임이 틀림없다. 송이버섯이 귀한 이유는 양식으로 기르기 어려운 데다, 서식지가 많지 않아서라고 한다.
소나무 밭에서 자라 그 독특한 향이 주는 풍미 역시 더할 수 없이 인상적이다. 어디선가는 서양의 3대 진미 중 하나인 송로버섯을 겨눠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향이 짙은 송로와 강하지는 않지만 은은한 향이 오랜 여운을 남기는 송이는 서양과 동양의 미학처럼 닮았으면서도 다르다.
매력적인 특유의 향을 지닌 송이버섯은 섬세한 타닌과 흙 향 등이 은은히 풍기는 레드 와인이 좋을 듯하다. 특히 풀보디의 강건한 와인보다는 섬세하고 여운이 짙은 와인으로 서로의 섬세한 향을 살려줄 수 있는 와인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레드 와인의 여왕이라는 불리는 피노 누아(Pinot Noir) 품종이 가장 적합할 듯하다. 특히 충분히 숙성돼 여운이 깊어진 피노 누아일수록 좋겠다. 피노 누아는 프랑스 부르고뉴가 가장 유명하다. 최근에 각광받고 있는 캘리포니아 피노 누아 와인 및 유럽에서 생산된 메를로(Merlot) 품종의 와인도 매력적인 조합이 될 듯하니 도전해 볼 것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