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와 베토벤, 두 음악가의 다른 점 중 하나는 작품의 다양성 여부다. 바흐의 경우 단번에 ‘바흐의 곡’임을 알게 하는 전형성을 지닌 반면 베토벤은 카멜레온처럼 다채롭다. 운명교향곡처럼 남성성이 느껴지는 곡이 있는가 하면 첼로소나타 1번처럼 섬세하고 여성적인 곡도 있는 것. 그래서 연주곡을 듣고 나서 “이 음악이 베토벤곡이라고?”하고 반문하게 되는 경우가 왕왕 생긴다. 바흐가 탁구대만한 넓이에서 음악가적 역량을 펼친다면 베토벤은 축구장만한 운동장에서 종횡무진하며 음악가적 역량을 보여준다고 할까(재능의 차이가 아니라 성향의 차이일 뿐 이를 가지고 두 사람의 우열을 비교하자는 것이 아니다).회화, 사진, 조각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작업하는 정혜진 작가는 미술계의 베토벤이라고 할 만하다. 작업실에 혼재된 여러 작품을 보노라면 한 사람의 작업이라고 보기 어려울 만큼 다양하다.그녀가 이화여대 서양화과를 다니던 1980년대는 바야흐로 우리 미술계에 무채색의 모노크롬 화풍이 유행하던 시대였다. 원색을 써서 컬러풀한 화면을 구성한다는 것은 상상하는 것조차 용납되지 못할 만큼 금기사항으로 여겨질 정도였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교육받고, 이런 상황에서 작품 활동을 했어야 했다. 그러나 유행 사조와 정반대로 그녀의 예술적 촉수는 구상화와 원색 쪽으로 발달해 있었으니 시대를 잘못 타고나도 한참 잘못 타고난 셈이었다. 동그란 모양의 우리나라 베개 양쪽에 화려하게 놓인 수 장식, 조각보 같은 전통적인 문양과 색을 좋아했다. 그러나 그녀와 성향이 다른, 그 당시 사람들이 보기에는 ‘싸구려’ 같은 색으로 치부되었던 것이다. 그런 교육을 받다보니 ‘난 왜 이런 색을 좋아하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하는 대로 흉내도 내고 유행하는 사조에 맞춰 그리기도 했는데 10여 년을 그려도 그녀한테 맞지 않았다.“1993년 남편 업무로 가족들이 함께 미국에서 지낸 적이 있어요. 그곳에서 학교를 다니고 그림을 그리면서 저의 진짜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죠. 서울에서는 작업을 하면서도 미술가라면 이러이러해야 한다고 받은 교육, 교수님과 선후배들의 작업 방식을 늘 의식하면서 그림을 그렸거든요. 아무도 나를 보지 않는 곳에서 내 마음대로 한 거죠. 그런 상황에서 내가 자유로울 수 있는 것, 좋아하는 것을 추구하다보니 한국 사람이라는 몸짓이더군요. 한국 사람이기에 나올 수밖에 없는 선으로 드로잉 한다는 것 자체가 다른 나라 사람과 구별되는 요소이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솔직하게 하는 게 다른 이들과의 차별점이라는 것을 깨달았죠.”그러나 3년여간 미국에서 작업을 하면서도 큰 틀은 깨뜨리지 못했다. 색에 관해서는 여전히 자유롭지 못했던 것. 그녀는 극복하든지 아니면 예술을 그만두라고 스스로에게 과제를 던졌다. 2000년 즈음부터 선보인 밝고 경쾌한 작품 색감은 정혜진 작가가 자신과의 투쟁을 통해 ‘그녀다운 색깔’을 찾아낸 결과다.정혜진 작가의 작품은 밝은 색감으로 인해 일견 아름다워 보이지만 가만히 보면 이미지가 강한 편이다. 예컨대 닭을 소재로 한 사진 작품 의 경우 여기저기를 실로 꿰맨 생닭이 비너스 포즈를 하고 누워있는 모습에 풍선, 주얼리 등을 촬영한 이미지를 콜라쥬 했다. 도톨도톨한 닭살이 고스란히 드러난 생닭, 게다가 프랑켄슈타인처럼 짜깁기 된 생닭을 보면 다소 흉측하다는 느낌이 들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눈으로 보고 느끼는 것에서 그치지 말고 생각과 상상이 더해져야 한다. 작품 에 등장하는 풍선, 주얼리 이미지는 생명체의 본질을 결정짓는 DNA를 상징한다. 미인이 되기 위해 수술대 위에 올려진 사람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생닭과 연출 이미지를 결합해 DNA(잠재성)는 시대가 변해도, 제3자의 힘이 가해져도 겉은 변할지언정 속은 변하지 않는다는 본질적인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우리가 살면서 대면하는 여러 가지 상황을 작업으로 어떻게 표현할까 하는 것이 가장 큰 고민이자 숙제에요. 국가적, 사회적인 이슈에서부터 개인적인 상황이나 문제 등을 저의 시각에서 보고 생각하고 표현하는 것인데, 가학적인 상황들이 예술을 통해서 작품으로 탄생할 때는 얼핏 아름다워 보여요. 총 천연색의 화려한 색감과 반짝이는 비즈 등을 소품으로 활용하기 때문이죠. 그러나 속에서는 상당히 가학적이고 인위적인 행동들이 더해져요. 물고기를 소재로 한 라는 작품에서 실을 토해내는 물고기는 보는 사람에 따라 실을 토해내는 것이 아니라 입으로 먹는 것이라 여기기도 하죠. 이중적 해석이 가능한데 정답은 없어요. 그건 관람객들의 몫이니까요.”목인(木人)이란 글자 그대로 사람의 모습을 나무로 형상한 조각을 의미한다. 수호신 역할을 했던 마을 어귀의 장승에서부터 복을 비는 용도로 쓰였던 신상, 혼례 때 사용한 목안, 무덤 부장용으로 썼던 목용 그리고 상여 장식용으로 쓰였던 꼭두에 이르기까지 선조들의 일상 생활에서 목인은 다양한 역할을 했다. 정혜진 작가의 조각품을 보았을 때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우리의 전통 나무인형인 목인에서 그 이미지를 차용했기 때문이다. 우직하면서도 순박한 모습으로 땀 흘리며 열심히 일하는 머슴을 형상화한 조각에서부터 은근한 교태를 보이는 여자 조각, 쓰다듬게 만드는 동물 조각에 이르기까지 그녀를 통해 재탄생된 목인의 형상은 그야말로 한국적 현대 미술이다.“박물관에서 우연히 목인을 보게 된 것이 계기였어요. 우리나라 민예품, 민화 우리나라 사람들의 놀이 문화, 순장 문화에서 출토된 옛 선조들의 공예품을 보고 새삼스레 전통 미감에 눈을 뜨게 된 거죠. 젊은 시절 오방색을 좋아하고 그대로 받아들였을 때에는 문화적인 얼까지는 못 보았어요. 그런데 나이가 들어서 우리나라 공예품을 보니까 또 다른 면이 읽히더라고요. 선조들의 삶이 그대로 녹아있는 그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작업으로 풀어본 거예요. 사람들은 컨템포러리 아트라고 하면 우리 것과 서양적인 것을 적당히 섞으면 된다고 여기는 것 같아요. 하지만 진정한 한국적 컨템포러리 아트는 전통을 우리의 현대 삶에 맞게 재해석해서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요?”현대 사회에 맞고 현대인의 성정에 부응하는 예술을 선보이기 위해 그녀는 회화, 사진, 조각에서 멈추지 않고 3D 영상 작업으로도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라고 한다. 조각으로 형상화된 작품들이 캐릭터가 되어 영상으로 보여지는 것을 상상해본다.글 정지현 미술전문 칼럼니스트·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