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중계권의 경제학

미국이 2016년 올림픽 유치에 실패한 데에는 TV 중계권료 마찰이 원인이 됐다는 분석이다.림픽과 월드컵, 프리미어리그, 미식축구, 프로야구 등 전 세계의 인기 스포츠는 TV 중계권으로 최대의 수익을 창출한다. 각 스포츠 단체들이 방송사로부터 TV 중계권 명목으로 벌어들이는 액수는 이미 수십억 달러를 넘어섰다. 스포츠의 ‘캐시카우’인 TV 중계권의 속을 들여다보자. FIFA에 따르면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의 TV 중계권료는 27억 달러(약 3조1500억 원)다. 2006년 독일 월드컵의 TV 중계권료인 20억 달러보다 30%가량 늘어난 액수다. 독일 월드컵 중계권료는 2002년 한·일 월드컵 때보다 15.4%가 인상됐다. 중계권료는 1990년 이탈리아 대회 때 840억 원,1994년 미국 대회 때 970억 원,1998년 프랑스 대회 때 1200억 원이었다.FIFA는 미국과 2010년과 2014년 2개 대회를 묶어 중계권료로 4억2500만 달러(약 4934억 원)를 벌어들여 단일 국가와 계약으로는 최고 기록을 세웠다. 또 유럽 전역에 남아공 월드컵을 중계하는 대가로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스페인 방송사로부터 10억 유로(약 1조7250억 원)를 받기로 계약했다. TV 중계권료는 2개 대회를 묶어서 패키지로 판매한다. FIFA는 중계권만으로도 최소 8년간 안정적인 운영 재원을 마련하는 셈이다.올림픽을 주관하는 IOC는 중계권료로 얼마나 챙길까. IOC의 수입 가운데 TV 중계권이 차지하는 비중은 거의 70∼80%에 달한다. 최근 IOC가 공개한 2004년 아테네올림픽과 2008년 베이징올림픽의 손익계산서를 들여다보면 2004년에 총 벌어들인 돈이 18억 달러였고 2008년에는 24억 달러였다. 이 가운데 방송 중계권료 수입이 2004년에 14억9000만 달러였고 2008년에는 17억3000만 달러를 기록했다.IOC는 TV 중계권의 경우 동계와 하계 올림픽을 묶어서 판다. 동계올림픽의 인기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점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가장 최근에 체결된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과 2012년 런던 하계올림픽 TV 중계권료는 미국 NBC가 총 22억1000만 달러, 유럽연합(EU)이 7억4600만 달러, 일본의 ‘재팬 컨소시엄’이 2억2000만 달러를 지불했다. 주요국 중계권료만 합쳐도 30억 달러를 훌쩍 넘는다. 2016년 올림픽을 시카고로 유치하기 위해 미국이 버락 오바마 대통령까지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유치에 실패한 이면에는 TV중계권료 마찰이 원인이 됐다는 후문이다. 미국올림픽위원회(USOC)는 TV 중계권료와 마케팅 수입을 놓고 IOC와 잦은 갈등을 겪었고 최근에는 IOC와 별도로 올림픽방송국 설립을 추진해 IOC의 반발을 샀다. 그래도 2016년 올림픽이 미국과 시간대와 비슷한 브라질에서 열리게 됨으로써 또 다시 TV 중계권료가 폭등할 가능성이 높다. 중계권료만으로 50억 달러를 돌파할 수도 있다.세계 최대의 프로스포츠 시장인 미국의 TV 중계권 시장을 들여다보자. CBS, NBC, ABC, FOX 등 4대 네트워크 채널이 스포츠 중계권을 확보하기 위해 지불한 금액을 보면 어마어마하다. 폭스채널은 미식축구 중계를 위해 지난 2006년부터 2013년까지 8년간 57억6000만 달러를 지불했다. 메이저리그를 방송하기 위해 2007년부터 2013년까지 7년간 18억 달러, 나스카(자동차경주)의 경우 2007년부터 2014년까지 8년간 17억6000만 달러를 냈다.ABC는 내년부터 6년간 NBA를 중계하는 조건으로 46억 달러를, 나스카에는 2007년부터 2014년까지 8년간 21억6000만 달러를 베팅했다. 중계권료만 봐도 해당 종목의 인기도를 판단할 수 있다. ABC는 메이저리그축구의 중계권료로 나스카와 같은 기간인 8년간 계약을 맺었는데 전달한 금액은 고작 6400만 달러였다. 축구의 인기가 나스카의 30분의 1에도 못 미친다는 얘기다.CBS가 가장 비싸게 지불한 중계권료는 미국 대학 간 스포츠 경기인 NCAA(National Collegiate Athletic Association:미국대학체육협회)의 남자농구다. 64개 대학이 토너먼트 방식으로 치르는 이 경기는 최종 4개 팀이 결승전 시리즈인 ‘파이널 포(Final Four)’에 진출한다. 3월에 열리는 ‘파이널 포’는 젊은 대학생들의 정열과 패기, 눈물 등이 뒤범벅되면서 ‘3월의 광란’으로 불릴 정도로 미국 전역을 뒤흔든다. CBS는 지난 2002∼2003년부터 2012∼2013년까지 11년간 독점 중계하는 조건으로 60억 달러를 쾌척했다. 미식축구는 2006년부터 2013년까지 8년간 49억6000만 달러를 지불했다.CBS는 지난 2007년부터 남자프로골프대회인 PGA투어를 중계하는데 2012년까지의 중계권료로 29억5000만 달러를 건넸다. 마스터스 골프대회는 별도로 계약을 맺는다. 장기 계약이 없고 1년짜리 계약을 매년 갱신하는데 나흘간 중계료가 300만 달러다. 테니스대회인 US오픈은 2008년부터 2011년까지 4년 계약에 1억4500만 달러를 지불했다.NBC는 미식축구를 2006년부터 2013년까지 중계하는 대가로 48억2000만 달러를 NFL에 전달했다. 내년도 동계 올림픽과 2012년 하계 올림픽 중계권료로는 22억1000만 달러가 들었다. PGA투어 중계권료는 CBS와 같은 조건으로 6년간 29억5000만 달러를 냈다. 2008년부터 4년간 윔블던테니스대회를 중계하는 비용으로는 5200만 달러를 건넸다.미국에서 방송사들이 미식축구를 중계하려면 연간 7억∼8억 달러를 내야 한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미국에서만 즐기는 미식축구(NFL)의 인기는 다른 종목과 비교가 안 된다. 지난해 말 뉴욕 양키스와 필라델피아 필리스 간의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와 NFL 경기의 시청률을 비교해보자. 폭스채널이 중계한 월드시리즈 가운데 가장 시청률이 높았던 4차전 경기는 조사 전문기관인 닐슨 미디어리서치 지수로 13.5를 기록했다. 이 경기에 앞서 오후 4시15분부터 7시24분까지 같은 방송사에서 중계한 미식축구 미네소타 바이킹스와 그린베이 패커스의 시청률은 17.4였다. 지난해 6월에 열린 미국프로농구 LA레이커스와 올랜도 매직간의 챔피언 결정전인 ‘NBA 파이널’은 10.9가 최고였다.미식축구는 정규 시즌 경기의 시청률이 평균 15.0을 가볍게 넘는다. 매 경기가 월드컵 결승전 같은 분위기에서 열린다. 슈퍼볼은 비교도 안 된다. 지난해 열린 피츠버그 스틸러스와 애리조나 카디널스 간의 슈퍼볼 시청률은 44.7였다. 이 수치는 2008년 슈퍼볼보다 5.8%가 떨어진 것이었다. 슈퍼볼은 30초 광고에 250만∼300만 달러(약 36억 원)를 지불해야 하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광고비로 유명하다. 중계권료는 갱신할 때마다 엄청나게 폭등한다. 이로 인해 협상 시기가 되면 방송사와 스포츠 단체 간의 줄다리기가 피를 말린다. 미국의 스포츠비즈니스저널에 따르면 최근 중계권 협상과 관련해 피를 말리는 사건이 있었다. 뉴욕 양키스와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월드시리즈 5차전 경기가 뉴욕에서 방영되지 못할 뻔한 일이었다. 월드시리즈를 독점 중계하는 폭스채널과 계약을 맺은 뉴욕의 지역 방송 사업자 간의 협상이 순조롭지 않아 폭스채널이 송출 중단을 시도했다. 천신만고 끝에 5차전이 열리는 전날 저녁에서야 합의에 도출했다. 그 방송사업자의 가입자가 무려 300만 명에 달해 하마터면 ‘대형 사고’로 이어질 뻔 했다.마이애미(미 플로리다주)=한은구 기자 to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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