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가 이석주 & 미술평론가 이재언
숙명여대 서양화과 이석주 교수는 우리나라 극사실주의 1세대 작가이다. ‘일상’, ‘서정적 풍경’에서 최근의 ‘사유적 공간’ 시리즈까지 그의 그림은 많은 컬렉터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방학을 맞아 그림에 몰두하고 있는 그의 작업실에 미술평론가 이재언 씨가 찾아왔다.석주 교수의 작업실은 MT촌으로 유명한 대성리 인근, 북한강변에 있다. 방학을 맞은 그가 먹고 자며 그림에 몰두하고 있는 작업실을 찾았다. 작업실을 찾은 날은 마침 서울에 100여년 만의 폭설이 내린 이틀 후였다. 폭설과 한파로 도로는 꽁꽁 얼어붙었지만 북한강변의 설경은 더없이 만족스러웠다.작업실에 들어서자 이 교수와 함께 진돗개 두 마리가 기자 일행을 반겼다. 기자 일행보다 앞서 도착한 미술평론가 이재언 씨는 차를 마시며 큰 창으로 난 북한강변의 설경을 즐기고 있었다. 응접실을 겸한 작업실은 큰 창이 강변으로 나 있었는데, 창을 통해 북한강이 한눈에 들어왔다.손수 차를 내온 이 교수가 “경치가 괜찮죠?”라며 말을 건넸다. 작업실은 시골집 치고는 그리 넓지 않았지만 확 트인 창 덕분에 좁아 보이지 않았다. 이 교수가 이곳에 작업실을 마련한 것은 13년 전. 처음 시외에 작업실을 마련한다는 데 동의하지 않던 아내가 요즘은 텃밭 가꾸는 데 재미를 붙여 청담동 자택에서 자주 찾아온다고 했다. 아내의 발길이 잦은 덕에 생활에는 불편함이 없다.그는 아침이면 창을 통해 들어오는 풍성한 햇살에 눈이 부시다고 했다. 그날처럼 햇살이 좋은 날은 강물에 반사된 햇살이 작업실 천정에 닿아 금빛 물결을 이룬다며 경이로운 듯 그는 말했다.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아침을 맞을 때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이곳에 있으면 햇살이 좋으니까 생명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꽃이나 식물이 정말 아름답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이 교수는 나이가 들수록 자연이 좋아진다고 했다. 시계를 소재로 많은 그림을 그렸던 그는 한때 시계를 도시의 상징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시계가 도시보다는 삶의 유한성을 상징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인지 삶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고 그는 말했다.70년대부터 극사실 작업을 해온 대표적인 작가답게 작업실에는 사진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미완성 작품들이 그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옆에서 차를 마시던 이재언 씨는 대학에 다닐 때 이 교수의 작품을 놓고 그림 연습을 많이 했다고 했다. : 평론가들도 일반인처럼 그림이 좋으면 그 작가와 친하게 지내고 싶어합니다. 제 경우엔 이 교수님이 그런 분인데, 제가 대학 다닐 때부터 좋아하던 작가입니다. : 평론가들은 대부분 날카롭고 냉철하다고 생각하잖아요. 이 선생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마 평론가 중에서 가장 편안한 사람일 겁니다. 물론 평론을 하실 때는 날카로우시지만요. 그런 면에 호감이 가요. 사람 관계에서는 친분도 중요하지만 호감도 중요하거든요. 이 선생님은 호감이 많이 가는 분이에요. : 저한테 호감을 갖고 계신 줄 여태 몰랐습니다(웃음). 사실 교수님이나 저나 술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사교적인 편은 아니거든요. 교수님 보면 수업 끝나면 바로 화실로 가시는 분이시니까요. : 우리는 주로 맛있는 국수집 정보를 나누며 친해졌어요. 둘 다 국수를 무척 좋아하거든요. 포천에 김치말이 국수를 잘 하는 집이 있었는데, 최근에 문을 닫아서 아주 아쉬워했죠. 물론 같이 일을 하기도 합니다. 제 작품 중에 ‘환’시리즈가 있는데요, 그때 이 선생님이 평론을 써주셨어요. : 그때 어떤 평을 썼는지 기억은 안 납니다만, 교수님이야 70년대부터 극사실을 해오신 대표적인 작가잖아요. 개인적으로는 극사실이 한국적 회화와 잘 맞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 작품은 초현실적인 극사실인데, 그 속에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해오셨어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권태가 빨라서 유행이 금방 바뀝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우직하게 한우물만 파신 분이죠. 그래서 더더욱 돋보이는 분이죠. : 저도 다른 걸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젊어서부터 형상에 매료되다보니 결국은 하던 걸 계속하게 되더군요. 아마 집안 영향이 큰 것 같습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연극배우 이해랑)로부터 리얼리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으니까요. : 좀 다른 얘기 같습니다만, 제가 요즘 영화를 별로 안 좋아합니다. CG를 너무 많이 쓰다 보니, 배우는 조연이고 CG가 주연인 듯해요. 그래서 사람이 등장하는 뮤지컬이나 연극을 더 자주 봅니다. 그림도 마찬가집니다. 형상이란 게 매일 보는 것이지만 고향처럼 느껴지고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손을 통해 탄생하는 그림의 매력이죠. : 그럴 수 있겠네요. 그런데 어릴 때만 해도 리얼리즘이라면 고리타분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지금 생각하면 그때 말씀하신 게 인간내면의 리얼리즘을 이야기하신 듯합니다. 젊어서는 자기 안을 본다는 게 어렵지만, 나이 드니까 그런 깨달음을 얻네요. 이제는 제 안에 있는 여러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이 교수는 이해랑 선생의 자녀 중 유일하게 예술가 기질을 물려받았다. 두 형들은 모두 기업가로 성장했다. 현재 이해랑연극재단을 이끌고 있는 이방주 이사장이 큰형으로 이 이사장은 한국주택협회 회장과 현대산업개발 부회장을 지낸 전문경영인이다.둘째형은 에이티넘파트너스의 이민주 회장.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이 회장은 2000년 설립한 종합유선방송사 C&M 지분을 2008년 3월 1조4600억 원에 매각해 화제가 되었다. 이 회장은 그해 미국 경제지 ‘포브스’가 선정한 한국 부호 순위 16위에 올라 또 한 번 언론의 관심을 모았던 인물이다.이 교수는 집안 환경 탓에 형들은 어려서부터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기업가로 되었다고 했다. 연극배우란 게 예나 지금이나 가난하기는 매한가지여서, 집안은 늘 가난했다. 다행히 형들이 집안을 책임져 준 덕에 그는 자신의 재능을 키울 수 있었다. 어릴 때부터 만화를 잘 그렸던 그에게 작가는 숙명이었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예술가 집안의 피를 물려받은 이 교수의 딸이 그림을 그린다. 서양화가 이사라 씨가 그이다. : 딸은 집에서 그림을 그리는데, 우리 부녀는 그림 얘기는 절대 안 합니다. 학교에서 제자들은 가르쳐도 딸은 못 가르치겠더라고요. 딸이 붙임성이 있어서 다른 얘기는 하는데, 그림 얘기는 안 하게 되더라고요. : 화가 부부들도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화단에 화가 부부가 더러 있는데, 서로 작품 얘기는 절대로 안 한답니다. 전시회를 해도 서로 얘기도 안 하는 경우가 많대요. : 화가 부부들 얘기 들으니 공감이 되네요. 저희도 그래요. 딸도 가끔 전시회를 하는데, 가기도 뭣해서 안 갑니다. 작품도 옆에서 조언을 좀 해주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되더군요. 아마 욕심 때문에 그럴 겁니다. 잘 하겠거니 믿고 내버려두는 거죠. : 제가 보기에는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던데요. 아버지처럼 사실성에 충실한데, 대신에 여성 특유의 소녀적 감수성이 작품에 나타나요. 그리고 더 깔끔하죠. : 딸에 대해서는 욕심을 버리는 게 참 어려워요. 트렌드가 너무 빨리 바뀌어서 딸아이 같은 젊은 작가들 작품을 이해하는 게 쉽지 않아요. 가끔 아트 페어도 가지만 제 경우에는 가급적 자제하는 편입니다. 그런 데 다녀오면 들뜬 기분이 남아 한동안 작업에 집중할 수가 없거든요. 작가는 너무 폐쇄적이어도 안 되지만, 자제를 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그의 작품은 평론가들로부터 완성도가 높다는 평을 자주 받는다. 그만큼 한 작품을 하는 데 시간이 많이 든다. 많은 작품을 하지 못하는 이유다. 그렇다고 작품이 그리 적지 않은 것은 작품에 몰두하는 시간이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요즘도 그는 12시면 점심을 먹고 5시면 저녁을 먹는다. 그 외 시간은 모두 작업에 몰입한다. 인터뷰를 마치자 곧바로 캔버스 앞으로 돌아가던 그였다. 특히 그가 좋아하는 시간은 아침 시간. 강물에 반사된 햇살이 작업실을 가득 채우는 아침, 캔버스 앞에 서면 더없이 행복하다. 그렇게 행복하게 작업한 작품을 모아 오는 6월 전시회를 연다.글 신규섭 ·사진 이승재 기자 wawoo@moneyr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