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혈병 이겨낸 후의 삶,한국 발레 세계화에 바쳤어요"

계로 향하는 발레계의 등용문 제 2회 코리아국제발레콩쿠르가 지난 6월 개최된 후 지난 7월 6일 저녁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콩쿠르 수상자와 국내외 유명 무용수들의 무대 ‘2009 월드 발레 스타즈 (Ballet Stars)’가 열렸다. 행사를 주관한 한국발레재단 박재근 이사장을 만나 소감을 들어봤다.발레리나 김주원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다른 운동은 뼈를 깎는 고통을 받지만, 발레는 뼈를 바꾸는 고통을 받는다”라고…. 그만큼 힘든 시간을 거쳐 완성되는 아름다운 ‘춤 동작’이 음악과 앙상블을 이루는 무대 ‘2009 월드 발레 스타즈’가 열렸다. 세계적으로 위상을 높여가고 있는 코리아국제발레콩쿠르를 통해 발굴, 검증된 우수한 발레 무용수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무대였다.코리아국제발레콩쿠르를 만든 한국발레재단의 박재근 이사장에게 이 무대의 기획의도에 물었다. “우리나라의 재능 있는 젊은 무용수들은 그 기량은 뛰어나지만 세계와의 교류의 장이 부족해 활발하게 활동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때문에 한국 발레 무용수들이 국제적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국제적인 발언권과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한국발레재단은 이를 돕기 위해 지난 2005년 1월 창립된 것이죠. 특히 해외교류를 통한 한국발레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세계에서 6번째로 유네스코에 등록된 코리아국제발레콩쿠르를 개최하게 됐습니다.”박 이사장은 한국 발레계에서 손에 꼽히는 발레리노 출신이다. 1983년 ‘유니버설발레단’ 창단 멤버로 들어가 1990년까지 수석무용수로 활동하다가, 1991년 러시아의 모스크바 국립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밟았다. “러시아에서 박사과정을 거치며 알마타 국립발레학교 교사와 알마타 국립발레단 안무가로 활동했습니다.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러시아 국립 발레학교의 교사가 된 것이라 당시에는 큰 이슈가 되기도 했죠. 현재는 1996년부터 상명대학교 무용과 교수로 활동하며, 상명아트센터 극장장도 겸직하고 있습니다.”박재근 이사장이 처음 발레를 시작한 1970년대만 해도 남자가 춤을 추면 ‘딴따라’ 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고등학교 때부터 성악을 전공해 음악에 빠져 살던 그에게 ‘발레’는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선화예술고등학교 1학년 때였어요. 오페라 ‘파우스트’를 보다가 ‘음악을 하면서, 춤도 출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됐죠. 그렇게 발레에 도전했습니다. 수도 없이 이어지는 연습에 허벅지 근육이 끊어질 것 같은 고통은 도전 의욕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박 이사장의 발레 열정은 가족에게도 물들어 있었다. 박 이사장이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를 그만두고 박사과정을 밟으러 떠나자 그의 빈자리를 남동생 박재홍 씨가 채웠다. 박재홍 씨는 지난 2003년까지 유니버설발레단의 무용수로 활약하다 지금은 한성대학교 무용과 교수를 맡고 있다.박 이사장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처음부터 발레 무용수로서 성공하기보단, 후진 양성에 더 관심이 많아 보였다. 박 이사장은 “맞습니다. 전 처음부터 좋은 선생님이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유니버설발레단의 무용수로 활동하던 당시에도 발레 학원을 만들어 남자무용수들을 가르치기도 했었죠.” 박 이사장의 후진 양성에 대한 포부와 계획은 바로 코리아국제발레콩쿠르로 이어졌다. “한국발레재단을 만들고 코리아국제발레콩쿠르를 개최하기까지 정말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절 지지해주지 않는 발레 관계자들이 많았었지요. 하지만 지난 2007년 1회 코리아국제발레콩쿠르를 성공리에 개최하고, 올해 2회까지 완벽하게 마무리되자 주변의 시선이 달라지더군요. 이제는 매년 콩쿠르를 열 계획입니다. 내년에는 8월 14일부터 20일까지 제 3회 코리아국제발레콩쿠르가 열립니다.”박 이사장이 이렇게 열정적으로 발레에 헌신하는 이유는 그가 지금 ‘제 2의 인생’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박 이사장은 지난 1999년 백혈병 말기 진단을 받고, 앞으로의 삶이 3개월 남짓 남았다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를 들었다. 병상에 누워 죽음을 기다리기를 1년 2개월여. 마침 출시된 신약과 그에게 딱 맞는 골수를 찾고 기적같이 병을 이겨낼 수 있었다고. “제게 병을 떨치고 난 이후의 시간은 1분 1초가 모두 소중합니다. 전 이 소중한 시간을 발레를 위해, 한국 발레의 위상을 높이는 데 사용하고자 마음먹었습니다.”박 이사장에게 앞으로 한국 발레가 더욱 성장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가장 필요할지 물었다. “이번 제 2회 코리아국제발레콩쿠르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이번 대회의 수상자 중에는 한국 선수가 한 명 포함되어 있습니다. 솔직히 한국 선수들의 기량이 뛰어난 데 비해 이런 국제 콩쿠르에서 상을 받는 경우는 드뭅니다. 그 이유는 바로 테크닉은 뛰어나나 예술성에서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박 이사장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전문 교사를 길러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 교사도 음악성, 예술성, 테크닉을 고루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음악과 안무력과 티칭력이 삼위일체가 되어야 제대로 된 후진을 양성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나라에도 발레 전문학교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해외에서는 대한민국에 발레 전문학교가 한 곳도 없는데도 우수한 인재를 발굴해 냈다는 것을 신기하게 바라봅니다. 전문학교가 생긴다면 러시아와 미국 같은 발레 강국을 따라 잡는 것도 가능한 일이 아닐까요.”박 이사장은 “앞으로도 무용인들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한 발판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한국발레재단에서는 은퇴하는 무용수들이 후진 양성을 위해 노력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 과정’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러시아와 독일, 프랑스, 우크라이나에 있는 발레 학교와 연계하는 ‘후진 양성 플랜’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서울과 가까운 거점 도시들에 이들을 파견해 숨어 있는 발레 인재 양성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라고 포부를 밝혔다.그는 발레의 대중화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발레는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한국적인 것을 찾을 때 한국의 전통 음악과 춤만 꼽을 수는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는 다양한 레퍼토리를 만들어 발레를 전파시키고 싶습니다. 이번에 진행한 갈라 콘서트가 인기가 있었던 것은 바로 어린이가 좋아하는 한 여름 밤의 꿈과 같은 내용을 각색해서 남녀노소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장이 되도록 했다는 데 있습니다. 앞으로도 발레 무대를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문화의 장으로 만들겠습니다.”한국발레재단 이사장상명아트센터 극장장상명대학교 무용과 교수한국교사협회 회장한국발레재단 이사장코리아국제발레콩쿠르 이사장前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글 김가희·사진 이승재 기자 holic@money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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